제 18 장 주님의 치유가 시작되면 ...
A.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 (계속)
(5) 우월감으로 가득해서 교만하게 행동하던 사람이 겸손하게 된다

열등감과 우월감은 동전의 양면이다. 열등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자신보다 약해보이는 사람 앞에서 우월감을 드러내려 애를 쓰기에 교만하게 보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의 마음은 약하고 겁에 질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에게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마음 때문에 약점을 보이지 않으려고 결사적으로 노력한다. 그런데 주위 사람에게는 그 모든 것이 잘 보인다.
그 사람이 치유를 받으면 여태 보지 못하던 자신의 뒷모습을 보게 되고 자신의 열등감의 뿌리와 그 원인을 알게 된다. 자신의 부족함이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닌 것을 깨닫게 되면서 자신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자신의 약점을 담대하게 고백하게 된다. 자신의 마음을 열고 사는 것이다. 점점 겸손해지고 기분 좋은 사람이 되어간다.
(6) 귀신이 들렸다고 손가락질 받던 사람이 정상으로 회복된다
영적인 속임수에 빠져서 고통하던 사람이 옳은 신앙으로 돌아온다. 한 가족을 대대로 사로잡고 있던 속임수와 미움의 결박이 풀어진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매우 사모한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강조하고 성령님의 초능력을(Super power) 사모한다. 기적이 많이 일어나고 구원의 역사가 넘친다. 참으로 귀한 신앙이다.
그런데 거기에도 부작용이 따른다. 성령님이 인격적인 삼위일체 하나님 중의 한분이라는 것을 자주 잊어버리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제는 성령님의 시대입니다” 라는 말까지 한다. 위험한 신앙관이다. 나아가서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성령님과 사탄의 능력의 대결로 보면서 능력 사역을 (Power ministry) 주장한다. 기록된 말씀에서 자주 벗어나면서 쉽게 속임수에 빠진다. 그 미혹은 자녀들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매우 사모한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강조하고 성령님의 초능력을(Super power) 사모한다. 기적이 많이 일어나고 구원의 역사가 넘친다. 참으로 귀한 신앙이다.
그런데 거기에도 부작용이 따른다. 성령님이 인격적인 삼위일체 하나님 중의 한분이라는 것을 자주 잊어버리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제는 성령님의 시대입니다” 라는 말까지 한다. 위험한 신앙관이다. 나아가서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성령님과 사탄의 능력의 대결로 보면서 능력 사역을 (Power ministry) 주장한다. 기록된 말씀에서 자주 벗어나면서 쉽게 속임수에 빠진다. 그 미혹은 자녀들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이 같은 신앙에 길들은 기독교인들
은 어떤 사람의 행동과 말이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면 “저 사람 귀신 들렸어...” 라고 말하며 어려운 상황을 피해나간다. 자신의 잘못으로 가족이나 이웃과의 관계가 깨어져도 같은 식으로 사탄과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피해나간다. 영적으로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중에 이런 경향이 심각하다.
“당신 딸이 귀신 들렸어...” 라는 말을 들은 엄마가 받는 충격을 생각해보자. 온 집안이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엄마가 어린 딸을 데리고 여기 저기 기도를 받으러 다니다가 능력 있다는 사람을 만나서 기도를 받았다. “이제 당신의 딸에게서 귀신을 다 쫓아냈습니다” 라는 선포를 받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같은 증상이 다시 나타난다.
나아가서 그 아이를 대하기가 아주 부담스러워진다. “저 아이에게 있는 귀신이 나에게 또 다른 가족에게 넘어오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에 서서히 잡혀간다. 사랑하는 딸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두려워지고 딸이 두렵고 부담스러워진다. 부모가 그런 마음을 품으면 그 아이는 점점 더 이상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이제는 귀신 쫓는 기도도 믿어지지 않는다. 예수님이 야속하고 “아~ 예수님도 우리 딸을 보호하지 못하는구나 ...” 하는 생각이 자리를 잡는다. 믿음의 기초가 무너져 간다.

“당신 딸이 귀신 들렸어...” 라는 말을 들은 엄마가 받는 충격을 생각해보자. 온 집안이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엄마가 어린 딸을 데리고 여기 저기 기도를 받으러 다니다가 능력 있다는 사람을 만나서 기도를 받았다. “이제 당신의 딸에게서 귀신을 다 쫓아냈습니다” 라는 선포를 받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같은 증상이 다시 나타난다.
나아가서 그 아이를 대하기가 아주 부담스러워진다. “저 아이에게 있는 귀신이 나에게 또 다른 가족에게 넘어오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에 서서히 잡혀간다. 사랑하는 딸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두려워지고 딸이 두렵고 부담스러워진다. 부모가 그런 마음을 품으면 그 아이는 점점 더 이상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이제는 귀신 쫓는 기도도 믿어지지 않는다. 예수님이 야속하고 “아~ 예수님도 우리 딸을 보호하지 못하는구나 ...” 하는 생각이 자리를 잡는다. 믿음의 기초가 무너져 간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또 그 사람의 자녀들에게 “귀신이 들렸습니다” 하는 진단은 대부분 잘못된 것임을 발견한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상한 행동과 말을 하는 것은 ‘거의 모든 경우’ 어려서 받은 마음의 깊은 상처와 아픔 때문이다. 귀신이 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속의 어린아이가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다. 마치 출산의 진통을 겪는 임산부가 온갖 이상한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해대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런 임산부에게 “당신 귀신들렸어..” 라는 말을 한다면 오히려 그 사람을 정신 병원에 집어넣어야 하리라.
구자형 목사(밴쿠버내적치유사역원장) sarangheali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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