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51. 예루살렘이냐? 로마냐?
예루살렘은 4복음서에 70번, 전 성경에 982번(구약 831 / 신약 151) 언급되어있다. 로마는 어떠한가?
구약과 4복음서에는 아예 나오지도 않는다. 사도행전과 서신서에 모두 9번 언급되어 있다(독자는 사단의 수 ‘9’라는 숫자를 마음에
새겨두시길...).
* ‘이스라엘’은 신구약에 2574번(‘히브리’인 /‘유대’인은 포함하지 않은 수) 나오며 이탈리아는 신약에 겨우
5번 언급되어있을 뿐이다.
어느 로마카톨릭 사제가 ‘기독교의 근본이요 요람인 로마카톨릭(천주교)...’ 운운했다. 기독교의 요람은
로마카톨릭교가 아니고 유대교이다. 구약의 그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 신약의 초대교인들, 첫 순교자 스데반, 첫 선교사 바울, 주님의 12제자들,
요셉과 마리아 등, 이들은 모두 유대인들이었다. 성경은 거의가 유대인들의 손을 통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천주교가 초대교황이라고 주장하는
베드로도 유대인이었다. 베드로는 천주교를 알지도 못한 자였다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행3:6)라고 했는데 이제는 금은보화가 너무 많은
집단이 되었다). 육신으로는 유대인으로 오신 우리 주님과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요한4:22)는 말씀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초대교회
때에는 이방인들이 예수믿는 것을 보고 유대인들이 놀라는 장면을 보게 된다. 말세에는 유대인들이 예수믿는 것을 보고 이제 이방인들이 놀라워한다.
첫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AD 33년 아시아의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지, 유럽의 로마가 아니었다. 로마는 AD 54년이 되기까지는 기독교
공동체를 갖고 있지 않았으며 AD 150년이 되어서야 첫 교회감독을 가졌다. 330년 5월, 콘스탄틴이 수도를, 로마를 모방한 일곱언덕의 도시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그의 이름을 따라 콘스탄티노플, 즉 “새 로마”(Nova Roma)를 건설하고, 그 곳에 첫 에큐메니칼 교회가 그 본부를
설립하였을 때에만 해도 로마종교는 교회건물이라 할 만한 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 첫 1,000년 동안에 있었던 8번의 에큐메니칼 공회 중 단
한번의 공회도 로마의 감독에 의해 소집되었거나, 또는 로마교황에 의해 관장되어 열린 적이 없었으며, 감히 어느 로마의 감독도 자신을 ‘교회의
머리’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아직도 국가교회의 무대는 유럽이 아닌 아시아였다. AD 1054년 수위권 다툼으로 동방교회, 서방교회로 갈라진 후
AD 1059년에 가서야 서양사는 처음으로 ‘로마카톨릭교회’라는 모순적인 용어를 기록하였다. ‘카톨릭’(catholic)이란 말은 고대 점성술의
“하늘 제신(諸神)들의 집합체”를 의미한다. 보편적, 우주적인(universal) 교회라고 하나 『로마』는 지역적(local,
regional)인 한 도시로서, ‘로마카톨릭’이란 말은 두 단어가 서로 모순된다. 그 외에도 사원(寺院, cathedral),
성당(shrine), 혹은 성골함, 교황(papa), 교부(敎父), 신부(神父), 수녀 등의 용어들은 모두 이교에서 유래된 것들이다.
0052. 유대인, 그들은 누구인가?
하나님의 선민, 이 유서깊은 민족을 칭하는데 쓰이는 세 가지 이름 - 히브리인, 유대인, 이스라엘 사람 - 들의
유래는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 특별히 구별된 백성으로 “거룩한 백성” 또 “택하심을 받은 백성”으로 칭함을 받은 민족이다. AD
70년 예루살렘성이 함락되고 온 세계로 흩어짐을 당하게 된 그 날부터 이 민족은 온 세상으로부터 경멸함을 받아왔다. 천주교에 의해 그들에게
뒤집어 씌어진 죄명은 ‘그리스도를 죽인 자’(Christ-Killer)들로서 인류 역사상 가장 길고도 오랫동안 정죄받아온 죄명이다.
0053. 『오리겐』의 유대인 말살 정책
어느 날 프러시아의 왕이 궁정목사에게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를 물었다. 궁정목사의 대답은 간단하였다: “폐하,
유대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위해서 지으심을 받은 백성들이었다(사43.21).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를 죽인 자’들이란 죄명을
씌운 로마교회는 알렉산드리아의 흉악한 이리(행20.29) 오리겐의 유대인 말살정책, 개종, 추방, 멸종의 3단계 이론을 로마카톨릭교회의
교의(敎義)로 삼아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사단은 종교개혁과 함께 제외되었던 천주교의 ‘외경’을 성경의 정경으로 만들기 위해 기독교회사의
최초의 이단들 중 하나인 오리겐을 ‘기독교회사에서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둔갑시켜놓았으며, 이미 배도의 문턱에 들어선 오늘날의 신학계는 천주교
성경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여호와’를 ‘야훼’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오리겐의 비유법 해석은 어거스틴을 거쳐 오는 동안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송두리째 제거시켰고 교회가 이스라엘이라는 논증을 들고 나섰으나, 교회는 교회이며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다. 구약은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으로
가득 차 있다.
0054. “그럴 수 없느니라”
이스라엘은 교회와 별도의 운명을 가지고 있으며, 이스라엘이 넘어졌으나 최종적이 아님을 바울은 로마서 9-11장에서
힘써 강론하고 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롬11:1-5). 주님께서는 육신으로는 유대인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또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요4:22)라고 말씀하심으로
이를 확정하셨다.
0055. 도스또예프스키가 기술한 로마카톨릭주의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중심부는 로마카톨릭신앙이 자리잡은 곳이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이 프랑스에 거주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긴 이야기가 필요하다.
한때 영국의회 하원의원을 지낸 거물급 인사로서 케임브리지 대학의 근대사(近代史) 교수를 역임한 역사가
악톤(Lord Acton, 1832-1902) 교수는 철저한 로마카톨릭교도였다. 그러나 그는 학문의 자율성을 부르짖고 로마교황 비오 9세와
대결하였던 인물이었다. 그는 크레이튼 주교에게 보낸 서신에서, 정권과 결탁, 왕권을 뒤흔들었던 로마교황청이 누려온 세상권력을 두고 ‘모든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며, 절대적인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였으며, 종교재판 등 로마교황청이 저질러온 종교적인 살인행위에
대해서는 ‘로마 교황들은 대규모적인 살인자들일 뿐이니라, 살인을 로마교회의 정당한 체제로, 구원의 조건으로 설정하였다’고 논평하였다.
로마카톨릭교회로부터 워낙 많은 어려움을 당했던 프랑스 역사는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민중의식이 깨어나고
천주교의 본질을 깨닫게 됨으로써 프랑스인들은 천주교 신앙보다는 차라리 무신론을 택함으로써 유대인들에게는 피난처가 되었다. 러시아의
대문호(大文豪) 도스또예프스키(F. Dostoyevsky, 1821-81)는 그의 작품 『악령』(惡靈)에서 “로마카톨릭교는 이미 기독교가
아니라고 당신은 믿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설명에 의하면, 로마는 마귀의 세 번째 유혹에 빠진 그리스도를 선전한 것입니다. 지상왕국 없이는
그리스도도 자신의 지위를 보전할 수 없다는 사상을 선전한 로마카톨릭교회는 이 선전으로 반(反)기독교 사상을 보급시켰고, 나아가서는 유럽 전체를
멸망시킨 셈이 되는 것입니다. ‘프랑스가 오늘 날 고민하고 있는 것은 단지 로마카톨릭교회의 죄(罪)인 것이다. 그것은 프랑스가 더러운 로마의
신(神)을 배척하고도 새로운 신을 찾아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고 당신은 명백히 시사해 주었습니다... 프랑스가 마침내 로마의 신을 심연 속에
던져버리고, 스스로 사회주의라고 부르는 무신론(無神論)속으로 뛰어든 것은 무신론이 로마카톨릭교 보다는 훨씬 건전했기 때문입니다”라고 기술했으며,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家)의 형제들』 등등 그의 여러 작품에서 로마카톨릭교회와 예수회의 비행에 대해 장황하게 다루고 있다.
생명의 말씀인 나의 주여
목말라 주님을 찾나이다
해변서 무리를 먹임같이
갈급한 내 심령 채우소서
(찬송가 284 / 주예수 해변서②)
목말라 주님을 찾나이다
해변서 무리를 먹임같이
갈급한 내 심령 채우소서
(찬송가 284 / 주예수 해변서②)
구영재 선교사 [KOO, P.O. Box 8844 Victoria, BC V8W 3Z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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