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2. “얻을-, 주신-, 받은-”구원 (히브리서)
구원의 주도권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다. “구원<얻을>후사”(히1:14)라는 말씀에서 구원은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거져주시는 것을 <얻을> 위치에 있는 것이다. 값없이 주어진 선물이라는 뜻이다. “볼 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히2:13)는 말씀에서도 우리를 자녀로 삼기위하여 구원을 <주신> 아버지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리하여 구원얻은 이들을 “부름<받은> 이들”(히9:15)로 묘사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히4:16)이며
이 “복”(히6:14)을 <받은> 자들은 구원의 반열에 서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의 근원은 우리의 자아(自我)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서 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인간의 죄 사이에는 중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였으며 “예수의 피를 힘입어…”만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해결책이며 이는 ‘히브리서’의 대 주제이다.

인간은 구제불능에다 요란하기 그지없는 괴물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들 중 인간보다 요란하고 요상한 괴물이 또
있을 것인가? 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괴물 중에 괴물이다. 한없이 배은망덕하기까지한데다 자기자신은 그래도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괴물이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또예프스키(F. Dostoyevsky, 1821-81)의 인간정의다: “사람이 만약 멍청하지 않다면 지독히 배은망덕한 존재이다. 나는
사람이 배은망덕한 짐승이라고 하는 것이 최고의 정의라고 믿는다”. 밀톤(John Milton, 1608-74)은 “비열한 배은망덕”이라고
기술한다. 셰익스피어(W. Shakespeare, 1564-1616)은 “불어라 불어라 너 겨울바람아 그래도 너는 사람의 배은망덕만큼 쌀쌀하지는
않구나”(“As You Like It” 중에서)라고 노래한다.
로마의 웅변가이자 정치가였던 키케로(Cicero, 106BC-43BC)는 인간의 행동을 면밀히 관찰한 뒤에 내린
결론으로 “인간은 구제불능이다”라고 단언하였다. 프랑스의 수학자, 변증가였던 빠스깔(B. Pascal, 1623-62)은 가슴아픈 역설, 곧
하나님의 형상이면서도 동시에 죄로 인하여 철저하게 부패해진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보았다: “인간이야말로 얼마나 괴물인가! 얼마나 희한하고 얼마나
기괴하며 얼마나 무질서하고 얼마나 모순되며 얼마나 비정상적인가! 만물의 재판관이자 연약한 지렁이요 진리의 보고이자 불확실과 오류의 시궁창이요
우주의 영광이자 쓰레기다!”
청교도 전도자 얼라인(Joseph Alleine, 1634-68)은 “오! 비참한 인간이여 죄가 너를 얼마나
괴물로 만들었는가! 하나님은 너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만드셨건만 죄는 너를 악마나 다름없게 만들었도다”라고 탄식하였다. 신학자이자 독일
고백교회의 목사였던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45)는 인간의 죄가 일으킨 타락이 야만에 이르렀음을 예리하게 지적,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사람만이 참사람이다”라고 기술하였다. 죄와 연합된 인간의 사악함을 보고 경험하면서도 죄의 엄격한 실재성을 보지 못하는
인간지혜의 어리석음, 십자가는 이 근본적인 문제, 즉 인간의 죄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써
죄인들의 죄책을 들어내셨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도 나타내 보이신 것이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고후5:21).
자기주장의 추한 본성을 드러냄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는 자는 불쌍하기 그지없는 비참한 자로서 부끄러움을
자초하는 자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죽으심으로 이기신 십자가이다. 우리를 율법으로부터 구원하시기위해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율법의 저주 아래
노출되셔야만 하였다. 그리고 죄인인 육신의 모양을 하고 오셔서 죽으심으로 그 육체를 벗어버리셨다. “다 이루었다”고 하심으로 십자가에서
승리하셨다. 십자가는 구원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최대의 승리사건이다. 부활은 그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나 승리는 승리의 선포보다 중요한
것이다. 복음서 기자들은 단순히 빈무덤이 아니라 ‘열려진’ 무덤을 선포하고 있다.
누구나 어두움의 시간이 되면 누워잔다. ‘죽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광명한 아침이 되면 모두 부시시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부활하는 연습이다. 루터는 봄에 돋아나는 새순을 보고 부활을 노래하였고, 기독교인이자 한 때 미항공우주국(NASA)의
책임자였던 브라운(Wernher von Braun, 1912-77)박사는 “과학은 무(無)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증명하였다. 고로
영혼불멸이다”라고 언급하였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뜻이다.
0154. 로마교황청의 죄(3)
이 세력은 늘 하나님의 백성을 살육해온 기독교 말살작전에 동원된 사단의 병기였다. 기독교는 유기적
조직체(organism)이지, 사회적 조직체(organization)가 아니다. 예수께서 교회를 인간의 몸(body)에다 비유하셨으며, 우리
몸은 기관(器官)이지 조직적 단체가 아니다. 기독교가 정치사회 조직의 탈을 쓸 때는 살인자의 손에 주어진 무기가 된다. 로마카톨릭종교는 그들의
종교적 율법을 무서운 무기로 만들었고, 1,700여 년이라는 세월 동안 기독교인을 처형하는데 온 힘을 기울여 왔던 것이다.
700여 년 동안 스페인의 종교재판에 의해 처형된 사람의 수는 6천 8백만에 달한다. “하나님의
개들”(Domini Cane)로 알려졌던 도미니칸 파의 종교재판의 악랄한 고문에서 살아남은 자는 전무하였다. 3일간의 고문 후에는 반드시 죽이는
것이 “트레스 디아스”(Tres Dias)이다. 16세기 예수회의 문헌에도 언급되어있는 ‘3일’이다. 스페인 군대를 앞세운 로마카톨릭선교사들은
마야, 잉카 문명을 초토화시켰다. 그들은 마야 문명을 훼파한 자리에서 모은 돌로 로마카톨릭성당을 건축하기도 하였다. 평화회담을 미끼로 잉카
문명의 무장비 인디안 들을 산에서 불러내어 5천여명을 살육하고 스페인 군대는 인디안들의 금패물을 모두 탈취하였다. 이 기습에서 스페인 군은 한
명도 죽지 않았고, 그때 탈취한 금패물들은 오늘날 스페인, 로마교황청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유럽을 돌며 전시회까지 가졌다.
로마교황청에 의해 고용된 어용 사가(史家)들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잉카』 문명의 신비”운운이라고 기록, 이
지적(知的)기만은 아이들의 역사교과서에도 버젓이 나타나고 있다. 잉카의 마지막 지도자 아타왈파(Atawallpa)를 강제로 천주교 영세를 받게
한 후 곧 그 자리에서 처형함으로써 잉카문명은 스페인의 천주교침략자들에 의해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1656년 브라질 중부지대로 들어간
예수회 선교사『안토니오 비이라』(Antonio Vieiray)의 일기-“우리들의…원래 목적은 인디안들을 사로잡아 그 지방의 풍부한 자원인 그들의
금맥을 찾아내어 ‘홍금(紅金, Red Gold)’을 가져오는 것이었다”-는 천주교회의 행위와 인디언들의 노예화, 식민지의 시조가 되었음을
들려주고 있다.
0155. 로마교황청의 죄(4)
러시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사가(史家) 『로이 메드베데브』(Roy Medvedev)교수는 그의 저서 ‘역사가
심판하게 하라’(‘Let History Judge’, Columbia Univ., 1989)에서, 1610년 천주교 예수회 선교사들이 오늘의
파라과이 국에 세우고, 150여년 동안『구아라니』인디안의 자유를 착취하고 군대식 통치를 한 구아라니 공화국(Guarani Republic)을
사회공산주의의 시초의 하나로 보고 있으며, 제수이트들은 이 공화국을 두고 ‘기독공산공화국’(Christian Communist
Republic)이라고 부르고 있음을 기술하고 있다.
16-17세기 일본에 들어간 로마교황청의 예수회 선교사들의 행실은 일본인의 눈에도 스페인 카톨릭 왕실의 정치세력
앞잡이로 판단되어 모두 처형되었다고 역사가 토인비는 그의『역사의 연구』에 기록하였다. 스페인의 필립 2세는 지구의 1/4을 손아귀에 넣었고,
아시아의 로마카톨릭국으로 알려진 필리핀은 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으며, 그는 기독교인 학살로 악명높은 “흡혈귀(메리)”여왕의 남편이다. 스페인
국왕의 정식칭호는 “카톨릭 폐하!”라고 부를 만큼 로마카톨릭교는 무력적인 칼의 포교였다. 스페인의 무적함대『아르마다』(Armada)는 영국정벌에
나섰으나 하나님께서 혹독한 태풍으로 저들을 흩으심으로 크게 대패, 또는 도주하였다. 『아르마다』난파선에서 발견된『말타』십자가는 로마교황청의
침략야욕이 실행된 곳에서는 어디서든지 어김없이 발견되는 십자가이다. 실로 “온갖 가증한 것의 어미”(계17-18장) 로마교황청이 5대양
6대주에서 저질러온 모든 죄악들을 다 나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유럽이나 빈부의 차가 극도로 심한 중남미의 그 사치스런 로마카톨릭 성당은
면죄부판매나 노동력 착취 등의 피를 짜내어 건축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바론 드 뽀나』는 “로마카톨릭교회는 피 속에서 태어나, 피 속에서
뒹굴었고, 피 속에서 마셨고, 이 종교의 참 역사는 피로 쓰여져있다”고 기록하였고, 사가(史家)『렉키』(W.E.H. Lecky,
1838-1903)는 “인류역사이래로『로마』교회만큼 무죄한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한 집단이 또 있을 것인가? 로마카톨릭교회에 의해 살해된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완전한 파악은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결론지었다.
기독교회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태7:13-14)는 분부의 말씀을 따라 살아온 성도들의 피의 역사의
기록이다. 인간의 눈에 실패자로 보였던 옛 선지자들처럼, 이들의 형상은 세상사람의 눈에는 정상이 아니었다. 유대 광야에서 사단의 유혹인
천하영광을 거절하시고, 빌라도의 세상권력 앞에서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요18:36)고 선언하신 주님의 기독교는 보혈의
십자가를 금은 보석의 십자가로 둔갑시키고 천하영광과 호흡을 같이 해 온 교권의 로마카톨릭교회와는 다른 것이었다. 거짓된 것이 구체화 되어가고
세상이 이를 옳게 여길 때, 우리는 거짓 선지자『발람』도 참된 예언을 했음을 기억해야 한다(민22-24장). 황량한 산골처녀같은『예루살렘』에
비하면『로마』는 종교, 전통, 위용을 자랑하는 얼마나 세련된 대 도시의 음녀인가!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로마』는 처음부터 살인자로, 우리
주님을 처형한 이후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조직적으로 죽여온 전통적인 도시이다. 그 후 온 유럽 및 식민지의 피(血)로 살쪄온『로마』, 이
세상에서『로마』보다 더 절묘한 우상의 소굴은 없다.
전능하신 주 성령
성결하게 하시고
나의 맘을 괴롭힌
죄를 멸해 줍소서
성결하게 하시고
나의 맘을 괴롭힌
죄를 멸해 줍소서
(찬 176 / 영화로신 주 성령 ②)
[구영재 선교사 [KOO / PO Box 8844 Victoria, BC V8W 3Z1
Cana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