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무엇 주님께 바치리까
밤을 새워도 이 메마름을 어쩔 수가 없습니다.
폭풍을 맞은 숲처럼 어지러운 생각들을 기도로 올리려 하지만
마음이 다 타고 난 재처럼 닿을 수 없게 바스러져 버립니다.
아무 것도 나를 위로할 수 없을 것처럼 모든 감각이 먹먹하고, 실연을 당한
사람처럼 텅 비고 아픕니다. 빛 한줄기 보이지 않는 짙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어느 쪽으로 생각의 가닥을 잡고 풀어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늘 읽는 말씀조차 남의 것처럼 감이 너무 멀게만 느껴지고 마음에 부딪혀 오는 말씀마저 아전인수격의 해석일 것만 같아 밀쳐내게
됩니다.
상실감에 멍해진 채로 밤새 침대에 앉아 다 포기하라고, 네가 자격이 없는 탓이라고 길게 메아리 치는 어둠의 소리들에 속수무책으로
헝클어지면서, 다 놓아버리고 어디론가 잠적해버리고 싶다는 생각 속으로 침몰하고 있었는데, 넋 놓고 바라보고 있던 성경의 화면 위로 떠올라온 교회
집사님이 올린 아침의 말씀이 단번에 나를 은혜의 그물로 건져 올려냅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내가 확신하노라”
사역을 하면서 힘든 일이 있거나 마음이 흔들릴 때 늘 위로 받던 말씀입니다.
짙은 어둠을 박차고
힘있게 돋는 해처럼 솟아 올라온 이 말씀에, 밤새 메말라있던 눈시울이 단번에 젖어 들고 둑이 터진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립니다. “그러니까 넌 안돼” 였던 절망이 단번에 “그러니까 내가 해야만 돼” 라는 힘찬 의욕으로 바뀌고, 절대 답을 찾을 수 없을 것 같던
왜? 라는 물음이 나의 신앙을 단련시키시는 은혜로운 뜻이라는 답으로 바뀌어 영혼에 감당할 수 없는 환희가 일어납니다.
진리의 힘은 실로 위대합니다
세상의 어떤 약이 이런 효험을 발휘하며, 어떤 친밀한 음성이 나를 이렇게 단번에
위로해 회복시키며, 어떤 예술품이 이런 놀라운 감동을 만들어 내며, 세상의 어떤 지식이 나를 당장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요?
정말이지
성경은 활자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름답고 친밀한 속삭임입니다.
“불법이 성하므로 모든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세상은 미움과 적대감이 충만하여,
자

기의 기대에 못 미치면 바로 등을 돌리고 사소한 일로도 원수를
맺는 일이 흔해졌습니다. 사람들의 관계 안에 사랑에 대한 믿음보다는 미움과 분열에 대한 두려움이 더 강하고 두텁게 역사합니다. 우리 모두 정처
없는 나그네로 내일을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황 속에 살아가면서 왜 이토록 미워하고 하나라도 더 자기의 입지를 세우려고 안간힘을 쓰며 싸우고
다투는지, 요즘 나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미움과 갈등에 대한 이야기들 때문에 너무 어지럽고 마음이 아픕니다.
그 판단과 증오와 미움의
독이 먼저 자신의 생을 좀 먹고, 한번 이기심과 허영과 시기의 마음으로 구멍이 뚫리면 소중한 생의 시간과 에너지가 길바닥에 쏟아져 허비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길 잃은 양입니다.
진리에 목마르고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를 궁금해하며 내가 잘 가고 있는
건지,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건지 늘 의심하고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주저하고 망설이며 사랑하지 못하는 모습에 괴로워하고 사랑 받는 자리에서
밀려날까, 버림을 당할까 노심초사하며, 사람을 기쁘게 하고자 하는 부담에 눌리며, 비방을 받을까 두려워하고 작은 목소리를 내면서도 내가 너무
설치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는 허약한 존재들입니다.
십자가 사랑 아래 서면 우린 서로 절대 적이 아닙니다.
우리의 적은 어떻게든
우리를 그 사랑에서 떼어내려는 악한 영들입니다.
사랑 없으면 아무리 많은 재물도, 모두가 인정하는 인기나 명예도, 천하를 호령하는 권력도
소용이 없고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이를 학교에 내려주고 오른, 아침 안개가 서린 아름다운 산의 풍경에 마음의 어지러움이 확 가시고 마음의 혼란이
당장 누그러집니다. 이런 풍경 속을 걸으면 하늘 아버지의 손이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는 것 같습니다.
완전하고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늘 이렇게 깨어지고 헝클어진 모습을 보입니다. 이제는 깨끗하고 향기로운 모습으로만 있고 싶은데 늘 많은 생각과 말들로 때묻은 영혼으로
하나님을 찾습니다. 믿음으로 힘차고 멋진 모습으로 서있고 싶었는데 이렇게 형편없이 실패감으로 파헤쳐지고 지치고 곤비한 모습으로 주저 앉아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은 오늘도 나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으시며 내 영혼의 빈 잔에 그 사랑을 가득
따라주십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우주처럼 무한하며 그 사랑은 끊이지 않는 새로움입니다.
성자의 귀한 몸 날 위하여 버리신 그 사랑 고마워라 내 머리 주 앞에 조아려 하는 말 나 무엇 주님께
바치리까..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요..
나 같은 죄인이 절대 받을 수 없었던 그 사랑에 겨워 나 아주 작은 사랑이지만,
너무나 짧은 생애지만 전부를 주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많은 것들이 나에게 팔을 벌려도 오직 하나를 사랑하는 강직한 사랑으로, 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 주님만 위하여 늘 살겠습니다.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거나 그 어느 누구를 한하고 탓하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의 빈칸들을 오직 사랑으로 채워나가며 찬송과 기도를 쉬지 않겠습니다.
“나 무엇 주님께 바치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