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27일 금요일

무너진 한국교회 - 설교 표절

표절과 대필은 다른 사람의 지적 재산을 가져가는 명백한 ‘죄’
목회자들의 박사 학위 대필문제, 학문의 우상에 빠졌다는 증거


사회 속에서 목사의 신뢰도는 어느 정도일까. 시사 전문 주간지 ‘시사저널’과 미디어리서치가 지난 2009년 7월 21일에 전국 1천여 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33개의 직업 중에서 목사는 25위(53.7%)였고, 신부는 11위(74.6%), 승려는 18위(64.0%)였다.

설문조사 결과 종교인에 대한 신뢰도가 전체적으로 낮았다. 종교인들에 대한 신뢰도가 은행원(8위)이나 미용사(9위)보다 낮게 나온 것이다. 과거 종교인들이 사회를 염려했지만 이제는 사회가 종교인들을 염려하는 시대가 되었다고들 한다. 무엇보다 목사, 신부, 승려 중에 목사의 신뢰도가 가장 낮다.

목사의 신뢰도가 이렇게 땅에 떨어지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목사에 대한 신뢰도가 땅에 떨어진 가장 큰 이유는 손봉호 박사가 잘 지적했듯이 도덕성의 문제가 아닐까? 특별히 한국 대형 교회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부자계승의 문제, 간음죄의 문제, 교회헌금 유용(流用)의 문제, 표절과 대필의 문제 등 주로 대형 교회 목사들에 의해서 저질러진 모습들이 사회 속에서 크게 부각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교회가 큰 만큼 동시에 사회적인 영향력도 커지기 때문에 대형 교회 목회자들의 비리들은 곧 사회 속에서 확대되어 보이게 마련이다. 대형 교회 목회자들의 도덕성의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한국 교회 모든 목회자들의 신뢰는 함께 바닥에 떨어지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 언론 플레이도 대중 속에서 목회자들의 나쁜 이미지를 부각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믿는다.

도덕성을 따지자면 누가 하나님 앞에서 도덕적으로 완전하다고 하겠는가? 모두가 부족한 사람일 것이다.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도덕성을 생각할 때, 어느 누가 또한 도덕적으로 완전하다고 장담하겠는가? 요한 1서 3장 16절 말씀은 우리의 도덕성이 형제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자리까지 나아가도록 요구하고 있다. 주님이 요구하시는 도덕성은 단순히 법을 어기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 교회 지도자들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져 가장 기본적인 것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다.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라고 부르셨는데, 교회 지도자들의 도덕성은 땅에 떨어져 하나님의 영광을 현저히 가리게 되었다.

특히 앞서 말한 네 가지 문제 중 세 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마지막 문제인 ‘표절’과 ‘대필’에 대해서는 심각성을 잘 모르는 것 같아 이 부분을 좀 다루고자 한다. 몇 해 전 황우석 사건 이후에 한국 사회는 표절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인식하게 되었다. 장관 공천이나 국회의원 선거 후에 표절 문제가 종종 대두되어 당사자들이 창피를 당하는 모습도 보게 된다.

표절이나 대필이 왜 심각한 문제인가? 이는 다른 사람의 지적 재산을 자신의 것으로 가져가는 도둑질이기 때문이다. 표절의 간단한 정의는 다른 사람의 정보를 출처의 인용 없이 사용하는 행위이다.미국에서는 네단어 이상 다른 사람의 글을 그대로 사용하면, 반드시 따옴표를 붙여 인용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말로 바꾸어 사용한다고 해도, 반드시 출처를 밝혀줘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각을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람의 글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도 넓게 보면 표절이다. 아무리 말을 자기 것으로 바꾼다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사상을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보다 표절과 대필이 십계명의 제8계명을 어긴다는 사실을 꼭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표절과 대필은 중대한 죄이다.작년에 어느 기독교단체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신임 회장이 설교를 하는데, 어느 유명한 설교자의 설교를 그대로 베껴 와서 읽고 있었다. 이는 명백한 설교 표절이다. 자신의 설교가 아니라 남의 설교를 인용도 없이 그대로 사용한 설교 도둑질이다. 이분만이 이렇게 설교를 베껴 와서 설교하겠는가? 아마 많은 설교자들이 이 문제에 걸릴 것이다.

어느 양심적인 분이 자신의 책에서 남의 설교를 베껴서 사용한 잘못을 고백한 것을 읽어보았다. 설교는 일반 표절과는 달리 엄격하게 다루기가 힘든 부분이 많다. 설교 중에 일일이 누구의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예화와 같이 많은 사람에게 널리 알려진 내용은 사용하더라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중요한 사상이나 개념 등은 출처를 밝혀주는 것이 양심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남의 설교를 통째로 베껴서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못한 행위이다.

설교 표절을 미국 교회에서는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는지 한 실례를 보면 알 수 있다. 필라델피아 어느 교회의 담임목사는 유명한 설교자의 설교를 표절했다가 발각이 되어, 결국 교회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우리 한국 교회도 설교 표절의 문제는 반드시 개혁되어야할 문제이다. 남의 설교를 베껴 와서 읽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겠는가? 학문적인 글을 쓸 때 표절의 문제는 더욱 엄격하다. 위에서 제시한 표절의 기준을 철저히 따라야 한다. 황우석 사태는 일반 학계에서 표절의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하물며 도덕적으로 더욱 순결해야할 목회자들이 글을 쓸 때, 남의 것을 훔쳐서 사용해서 되겠는가? 이는 남의 글을 사용하기를 두려워하라는 말이 아니다. 논문이나 학문적인 글들은 반드시 선행연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남의 글을 참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양심을 따라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라는 것이다. 구미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구미의 학자들이 표절을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는가를 분명히 깨달았을 것이다.

소위 한국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사람들이 표절 문제에 걸려 F학점 받고 중도 탈락하는 경우가 많다는 소문을 들었다. 대필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자신의 논문이나 책을 다른 사람이 대신 써주는 행위이다. 바쁜 목회자들을 위해서 부목사나 다른 사람들이 글을 대신 써주는 행위이다. 이는 표절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대필해주는 사람이 학문적으로 뛰어난 사람이면, 표절 없이 쓸 수 있기 때문에 대필자 본인이 입을 다물면 외부적으로 전혀 표시가 나지 않는다.

한국 교회 담임목사들이 똑똑한 부목사들을 시켜서 박사학위 논문을 대필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는 정말 표절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대필자가 입을 다물면 전혀 표시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쓴 글과 사상은 누구에게서 나온 것인가? 이것도 남의 것이기 때문에 분명한 도둑질이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이에 걸리는 사람이 있다면, 꼭 회개하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도록 하라.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신다.

자기 아래에서 일하고 있다고 부교역자들을 시켜서 대필하게 되면, 담임목사로서 존경과 신뢰를 평생 잃게 된다. 이는 나 자신의 경험이었고, 주위에 아는 분들 중에도 이런 경험으로 인해서 평생 존경과 신뢰를 잃어버린 경우도 보았다.왜 한국 교회 지도자들은 이렇게 해서라도 박사학위를 받으려고 하는가? 물론 신학교에서 가르치려면 박사학위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많은 한국 교회들이 웬만한 사이즈만 되면 박사학위를 요구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기를 쓰고 학위를 받으려고 한다. 이는 분명히 한국 교회가 박사학위를 하나의 우상처럼 만들어버린 것이 아닐까? 목회하는 데는 목회학 석사(M.Div.)면 충분하다. 목회자 양성을 위해서 만든 과정이 목회학 석사과정이 아닌가? 한국 교회는 학문의 우상으로부터 자유해야 한다. 그럴 때 표절과 대필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김진규 목사 / 백석대학교회(천안) 담임 / 백석대 구약학 교수

마커스, 그들은 누구인가?


다양한 연령 섬기고, 찬양으로 헌신 유도



▲ 좌측부터 팀장 한래현 씨, 인도자 심종호 씨, 드러머 김현성 씨, 테너보컬 김경현 씨

마커스의 팀장 한래현, 인도자 심종호, 드러머 김현성, 테너보컬 김경현 씨를 만났다. 이들의 솔직하고도 거침없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 마커스는 무슨 뜻인가요?

한래현
“마커스는 갈라디아서 6장 17절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The marks of jesus)을 가졌노라’라는 말씀에 근거를 두고 ‘예수님의 흔적을 가진 사람들’, ‘예수님의 흔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 마커스의 예배가 다른 점이 있다면?

심종호
“다양한 연령을 섬길 수 있는 것이 마커스만의 특별함인 것 같습니다. 찬송가를 부르며 신앙생활하신 어른들과 함께 예배드리기 위해 찬송가를 함께 부르는 것도 마커스의 특징이죠. 마커스는 주로 젊은 세대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있지만 그들이 나이를 먹어 중년이 돼도 그들과 함께 예배하고 함께 늙어가는 예배자이고 싶습니다.”

- 마커스 수익이 굉장히 많을 것 같은데?

심종호
“이렇게 비교하면 조금 그럴까요? 실질적으로 기독교음반 시장이 일반 가요시장의 30분의 1입니다. 다른 팀에 비해 음반 구입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사역하기 위해서 돈을 벌고 계시는 분들도 많아요. 특히나 가정이 있으신 분들은 레슨이나 다른 일들을 통해 돈을 벌어 사역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많은 사역자들이 생존의 문제 때문에 사역을 내려놓는 상황에서 그래도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 작년 잠시 목요모임을 쉬었던 기간이 있었는데 이유가 뭔가요?

김경현
“예배를 드릴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고민이 많아졌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또 기대하시는 것, 예비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향력을 허락하신 이유와 의미를 찾아가자는 의미에서 휴식기간을 가졌어요. 덕분에 하나님을 향한 첫 사랑을 회복하고 온전히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게 됐습니다.”

- 멤버는 조금씩 바뀌는 것 같은데?

심종호
“저희 29명의 마커스 멤버는 변함이 없습니다. 단지 당일 컨디션에 따라 조절되는 순환구조예요. 새로운 멤버의 충원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오디션도 없어요. 끝까지 함께 가는 거예요. 하나님이 모아주신 사람들과 함께 가는 길은 무엇보다 즐겁습니다.”

- 마커스의 찬양 중 특별히 생각되는 찬양이 있다면 어떤 곡인가요?

김현성
“저는 ‘부르신 곳에서’라는 곡이요. 상황과 여건에 상관없이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라는 자기 고백이잖아요. 저도 늘 그렇게 찬양하고 싶기 때문에 부르신 곳에서를 좋아해요. 마커스 초기에 예배자들이 적어 어려운 상황일 때 하나님께서 어떤 증거를 보여주셨으면 싶었을 때 부르신 곳에서를 부르며 위로를 얻었던 기억이 나요.”

- 젊은 크리스천들에게 한 마디 해주신다면.

심종호
“우리 세대는 풍요의 세대죠. 우리 선배 세대들은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 신앙생활을 했는데 우리는 덕분에 너무 편안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어요.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보다는 내가 편하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모습은 정말 안타까워요. 대형교회에서 훈련받고 교육받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부르신 자리에서 헌신하는 청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청년들이 광야로 나갔으면 좋겠어요. 모든 편안함을 내려놓고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곳이요.”

2012년 7월 26일 목요일

아브라함 이야기

 

 땅의 약속에 대한 하나님의 확증 / 창 15:7-21 (하)


후손들이 차지할 땅의 시기에 대한 예언
13-16절을 보면, 끝까지 인내한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아브람의 후손들에 대한 예언을 주십니다: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이것은 아브람의 후손에 대한 예언이면서 동시에 아브람의 후손들이 차지할 땅에 대한 예언입니다. 16절에 보면,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라고 나오는데, 다시 말하면, 이 땅이 아브람 때가 아닌 (15절-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400년 후에 (cf. 출 12:40- 430년) 아브람의 후손들의 소유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16 하반절에 나오는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의 모든 거주민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거주민의 죄악’을 언급하는 것은, 아브람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해 벌여야 하는 가나안 정복 전쟁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이 예언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입니다. 즉,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아브람의 살아있을 때 뿐만 아니라, 아브람의 후손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차지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계약식의 체결
언제 아브람의 자손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할 것인가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주신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계약식을 체결하십니다. 17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여기서 ‘연기나는 화로’와 ‘타는 횃불’은 출애굽기 13:21-22에 나오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연상시키는 것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고대 근동의 계약 체결은 상호 동등한 관계에서 맺는 계약 (parity covenant) 과 주종관계에서 맺는 계약 (suzerainty covenants) 이라는 두 가지 형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형식의 계약 체결에서, 마지막 맹세 의식은 ‘낮은 자가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감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왜냐하면, 그가 주인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을 때, 쪼갠 고기처럼 생명을 잃을 것을 상징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렘34:18-20). 아브람과의 계약에서, 비록 하나님은 왕이시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낮추시고 친히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심으로서, 이 언약이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책임지시고 이루실 것을 맹세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계약의 주체자이시며, 하나님께서 계약의 내용을 확실하게 보장하신다는 뜻입니다. 즉, 이 계약은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것이며, 하나님의 구속적인 책임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지리적 경계
18-21절은 언약의 땅에 대한 지리적 경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있는 땅의 경계는 역사적이라기 보다는, 이상적이고 영적인 경계로 알려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과 솔로몬의 황금 시대에 ‘유프라테스’까지 정치적이며 경제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삼하8:1), 이곳을 지배하지는 못하였을 뿐 아니라, 솔로몬의 전성기 때에도, 이스라엘의 경계는 여기에까지 미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이 땅들을 주셨고 이것은 믿음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경계 너머에 있는 백성들을 몰아낼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약속을 성취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계속해서 아브람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있는데,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아브람이 처음부터 완성된 믿음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믿음 없음에서 시작하여, 믿음이 성장하면서 때때로 의심하고 넘어지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때마다 그에게 믿음의 확증을 주셨기 때문에 다시 믿음이 회복되어 마침내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사람으로 우뚝서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위로가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믿음의 확증을 주시므로 아브람과 같은 위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기수 목사 / 캐나다중앙교회 / 778-237-8084]

정성헌 선교사의 선교칼럼

기도회와 영적 전쟁



교회개척이 시작되기 전까지 우리 가정은 한국선교사님들이 개척한 교회들을 방문하기로 했다. 예배에 참석하여 부임 인사를 하고, 선교사역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둘러 볼 기회를 가졌다. 신학교 선배이자 미국에서 온 이선교사님이 개척한 ‘믿음교회’를 방문하여 예배를 드렸다. 고려인들이 중심인 다른 교회들과는 달리 거의 대부분의 성도가 러시아인으로 구성된 교회였다. 이선교사님은 예배시간에 우리 가정을 위해 온 성도들과 함께 축복기도를 해 주었다. 특별히 자신이 받은 축복의 두 배를 받으라고 복을 빌어 주셨다. 그리고 이 두 배 복을 비는 이유는 우즈베키스탄에 첫 선교사로 부임하여 교회를 개척한 선배가 부임하는 후배들을 위해 기도하던 모범을 따르는 것이라고 설명을 했다.

초기 우즈베키스탄에 선교사 사회는 존경할 만한 좋은 선배들이 있었고, 동료간에 우애가 깊었다. 그래서 우리는 깨달았다. “화목의 복음을 들고 온 우리가 서로 위하고 화목하고 화평할 때 섬기는 나라와 민족 속에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가 있음을” 이런 연으로 이목사님과 가까워졌다. 어느 날 이목사님이 전화를 걸어 삼겹살 파티가 있으니 오라고 초청을 해 주었다. “아니, 어디서 삼겹살을 구하셨어요? 와, 보시라!” 그 때만 해도 시장에 돼지고기는 있었지만 부위별로 파는 곳은 없었다. 시장 정육점에는 고기 달라고 하면 파는 사람 마음대로 아무 부위나 잘라 주던 시절이었다. 집에 들어서자 최근 미국 파송교회 방문 때 선물로 받아왔다며 작은 고기 절단기를 식탁 위에 설치하고 있었다. 냉동된 돼지 고기를 기계에 넣어 자르니 삼겹살을 되는 것이었다. 나는 돼지고기의 삼겹살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때에야 알았다. 이선교사님은 다재다능하고, 아는 것이 많았다. 본인 가정이 오래 동안 일식당을 경영해서인지 식재료 선별과 요리엔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피자까지 구워주었다. 함께 초대된 박선교사님 가정과, 싱글인 유선교사님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분위기가 화기애애 하게 무르익었을 때 이선교사님이 모인 모두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매주 모여서 함께 기도회를 갖자는 것이었다. 모두들 지쳐 있었고, 건축 중이라 기도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목사님의 믿음교회는 본당을 건축했으나 교육공간이 없어 교육관을 두고 기도하고 있었고, 박선교사의 교회는 건축을 시작하다가 건축을 맡긴 고려인이 선수금을 들고 모스크바로 도망을 가는 바람에 적잖게 낙심해 계셨다. 유선교사님은 대학생 중심의 개척교회를 했는데 공동체 생활을 할 공간을 두고 시급히 기도가 필요했다. 초연병인 내가 보기로도 모두들 언어와 문화적응할 시간도 제대로 없이 현지 사정에 의해 급히 진행된 사역들로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우리는 매주 한 번씩 모여 저녁을 같이 먹고 함께 기도하기로 했다. 갈급한 시점에 젊고 아직은 따끈 따끈한 우리 가정이 부임하여 활력소가 되었는지 기도회는 뜨겁고도 은혜롭게 진행되었다. 모두가 저녁 기도회 시간을 기다릴 만큼 화목하고 영적 은혜에 갈급해 있었다.

가을이 깊어가던 한 날 기도회 중간에 비가 억수같이 퍼 붓기 시작했다. 기도회를 마치고 집으로돌아오는 길은 비에 가로등 조차 고장이 나서 칠흑 같이 어두웠다. 달리던 차가 뻥소리와 함께 강한 충격으로 오른쪽으로 휙 쏠리는 것이다. 겨우 멈추어 서서 쏟아지는 비속에서 내려 보니 오른쪽 타이어가 완전히 찢어져 있었다. 새 차를 구입한 지 몇 일 밖에 되질 않았는데……. 우리가 지나다니는 길은 타슈켄트의 비행기 공장과 직원들이 사는 주택 지역을 지나는 간선도로였다. 독립 후 경제가 어려워지자 공장의 직원들이 임금을 받지 못해 금속이라면 다 뽑아다 고철로 팔면서 맨홀 뚜껑까지 걷어가버린 것 이었다. 낮은 그런대로 피해서 다녔는데 비가 오자 맨홀 뚜껑까지 물이 차서 분간이 안되 타이어가 파손된 것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스페어 타이어를 갈아 끼는데 늦가을 비로 추위에 이까지 부딪혀 소리를 내고 형색은 영락없이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그래도 천만다행이었다. 가족 모두가 무사하니 말이다. 

그 다음 주 기도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지난 주 빠졌던 맨홀 지점을 조심스레 저속운행을 하며 피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차 뒤 좌석에 타고 있던 네 살 된 딸이 “내가 너희들을 다 불 태워 죽일 것이다. 불태워 죽일 거야!”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그런데 옆에 앉아 있던 아내의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이건 분명 아이가 제 정신으로 하는 소리가 아닌 것이다. 어둠의 영들이 어린 딸의 입을 통해 우리 가정에 두려움으로 도전하고 있는 것이었다. 등골이 오싹했다. 자동차를 옆으로 세우고 실내등을 켰다. 놀란 나와 아내는 뒤쪽에 있는 딸을 돌아 보았다. 아이의 상태는 멀쩡해 보였다. 아내는 차 뒤로 가서 앉아 딸을 꼭 껴 안았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를 했다. 하나님의 손이 나타나 우리 가정, 특별히 어린 자녀들을 지켜 주시고, 동료들의 가정과 사역을 지켜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원수 마귀를 대적하는 기도를 했다.  마귀의 불화살이 직접 우리 가정을 향하고 있다는 생각하니 기도하면서도 불안 마음이 쉽게 가시질 않았다. 이미 우리는 영적 전투 속에 깊이 들어와 있었다. 나는 말씀을 붙들어야 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사43:1-3)

 [SEED Canada 대표 / 778-316-3579]

예수님의 마음 치유

3) 영, 혼, 육의 관계는 전등불에 비유할 수 있다. (완전한 비유는 될 수 없지만..)
전등이 빛과 열을 내는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온전한 전등과 전류의 흐름이 필요하다.

‘육’은 필라멘트를 보호하고 있는 유리로 만든 외벽이다. 겉 유리가 금이 가거나 깨어져 있으면 이 전등은 쓸모가 없다. ‘혼’은 빛과 열을 내게 하는 필라멘트에 해당 한다. ‘영’은 전류에 해당 한다. 온전한 전구 안에, 망가지지 않은 필라멘트에, 적정의 전류가 흐를 때에 기대하는 빛과 열이 나오는 것이다. 육체가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유리 외벽, 즉 그릇이고 전류는 필라멘트 안에만 흐르는 것이다. 즉 영은 혼의 영역 안에서만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고
필라멘트 (혼)에 손상이 가는 순간에 흐름을 멈추게 되는 것이다.

4) 에덴 동산의 이야기
여기서 하나님의 에덴 동산의 비밀을 한가지 짚고 넘어가기를 원한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너희가 정녕 죽으리라고...

(창2: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아담과 이브가 이 나무의 실과를 먹었을 때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나무 뒤에 숨는다.
(창3:8)그들이 날이 서늘 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아직 살아있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혼란에 빠진다. 하나님 말씀이 그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이다. 그렇지 않다. 아담과 하와는 과일을 먹는 순간에 바로 죽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오는 전원의 스위치가 내려진 것이다. 즉 사랑의 전류를 받아들이던 아담과 하와의 “영이 죽은 것이다” (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진 것이다).

인간 창조의 영화로운 모습과 중국 문자에 담긴 비밀
창세기 3장 7-8절의 말씀이 어렵다. 그런데 이 말씀을 제대로 깨닫는 것이 하나님과 우리들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 참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모르고 있다.

7)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무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8)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아담과 하와의 눈이 밝아졌는데 왜 벗은 것이 별안간 문제가 되었을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질 않는다. 여태껏 잘 지냈는데 왜 그렇게 되었을까? 몇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나에게 성령님이 주신 해석은 이렇다. “아~~, 그 순간에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광채가 사라졌구나...” 죽음의 첫 단계가 즉각적으로 임한 것이다.
하나님이 두 사람의 ‘영’을 통해서 부어주시던 광채가 사라졌다. 모든 동물들이 보고 두려워하며 순복하던 능력의 빛이 사라졌다. 자신들에게서 광채가 찬란하게 비쳐나고 있을 때는 자신들의 부족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죽음’이 임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영광이 그들에게서 사라지면서 동시에 ‘부끄러움’을 아는 눈이 더욱 밝아진 것이다.

이제 당신은 “그 해석에 무슨 증거가 있나요?” 라고 물을 것이다. 모세의 증거가 있다.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40일 동안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지내다가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들고 내려올 때 그 얼굴에 광채가 있어서 사람들이 두려워했다.
모세에게 이런 광채가 주어졌다면 온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은 아담과 하와에게는 참으로 놀라운 광채가 임했으리라는 것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구자형 목사(밴쿠버내적치유사역원장) saranghealing@hanmail.net

교회를 꿈꾼다 - 김형국 지음

교회를 꿈꾼다 - 김형국 지음



오늘의 교회는 안타깝게도 그리스도인에게나 비그리스도인에게 모두 ‘뜨거운 감자’가 되었습니다. 세상은 세속화되고 영양가 없는 교회를 향해 심지어 비속어를 동원해서 까지 험한 말을 퍼붓습니다. 교회는 내부적으로도 갈피를 못 잡는 것처럼 큰 교회는 큰 교회대로,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대로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민교회는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성도들은 부유물처럼 떠돕니다. 탄식과 아픔이 있는 이 시대에도 교회에 소망이 있을까요? 답은 ‘있습니다’ 입니다.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도 이 땅의 교회를 통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꿈꾸는 사람들
안디옥 교회와 같은 교회가 되기를 꿈꾸어 봅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의 확장과 교회의 시작이 안디옥에서 벽을 넘어 온 세계로 이어집니다. 사도행전 11장과 13장을 중심으로 한 안디옥 교회의 모습은 오늘의 교회가 주목하고 따라야 할 모범입니다. 그들은 먼저 역사의 주관자와 연출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현장에서 자신의 삶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둘째로, 그들은 무명의 그리스도인 들이었지만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것을 추구하였습니다. 박해를 받으면서도 가는 곳 마다 복음을 증거하며 삶으로 나타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고정관념을 넘어섰고, 맡겨진 작은 일에 충성하였습니다.

셋째로 그들은 성장의 비밀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중심되신 그리스도를 붙들었고, 거기 머물렀습니다. 그들은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림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계속 배우며 꾸준히 연습하였습니다. 한번에 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자라나는 은혜를 경험하였습니다.

넷째로 안디옥 교회는 사람을 세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처음 목회를 하였던 바나바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았고, 바울을 격려하여 동역하였습니다. 윈-윈(Win-Win)을 선택한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균형 있게 성숙한 사람으로 착하고,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였습니다.
다섯째로 안디옥 교회는 서로 다른 것을 포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지도자들이 있었지만 차이점이 가져오는 유익을 경험하고, 단순한 조화가 아니라 궁극적인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멋진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교회의 주인 되신 그리스도께 순종하며 진정한 공동체성을 경험하였습니다. 자기 정체감이 분명하며, 주님을 섬기는데 기도와 금식으로 행하며, 실제적인 결단을 실행하는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함께 자라가는 교회
나들목 교회 (한국, 서울)는 안디옥 교회를 모델로 하여 비전을 세웠습니다.

첫째는 찾는 이 중심으로 디딤돌이 되어주는 교회를 소원합니다. 참된 회심이 일어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는 편견을 깨고,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아픔을 간직하고, 건강하고 올바르게 말하기를 힘쓰고, 삶으로 살아내는 것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사람들을 예수께로 인도하여 연속적으로 회심이 일어나게 하는 것을 꿈꿉니다.

둘째는 균형있는 성장을 추구합니다. 오늘의 교회의 난맥상은 자칫 복음의 역사의 디딤돌이 아니라 거침돌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며 철저하게 준비하고 훈련합니다. 성도들이 주의 일에 구비되고, 각자가 성장하여 자기 몫을 감당하도록 합니다. 예수 만나서 행복해진 사람들이 서로를 세우고 격려해주면서 더 큰 걸음으로 나가도록 돕습니다. 함께 일하는 법을 배워 시너지를 내게 합니다. 성도들이 목양의 책임을 나누어지고 서로를 돌봅니다.

셋째는 진실한 공동체를 추구합니다. 교회에 다니다 실족한 사람들은 소위 가나안 성도 (거꾸로 하면 안나가 성도)인데 이를 극복해야 합니다. 서로 다르지만 서로에게 실망하고 실족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지만 교회를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진정한 교회와 거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며, 마치 오케스트라가 조화를 이루듯 그리스도-교회의 지도자-모든 성도가 하모니를 내기를 힘씁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 소리가 중심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맞는지를 점검하지 않고서는 소리를 내지 않도록 합니다. 함께 짐을 지고 순종하는 성숙함을 추구합니다.

넷째로 안팎의 변화를 통해 이웃과 세상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교회를 지향합니다. 아울러 공동체에 속한 성도들이 기쁘게 드나들 수 있는 교회가 되도록 합니다. 교회안과 밖에 어려운 이웃을 위해 지정헌금을 통해 서로 돕고, ‘바나바 기금’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기도 합니다. 또 사회적 약자를 위해 어린이집, 북카페, 밥집, 공부방 등을 운영하여 교회가 속한 지역사회의 필요에 부응합니다. 또한 교회의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기를 힘씁니다. 성경 속의 안디옥 교회나 한국초기교회 역사의 장대현 교회처럼 그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역사를 실현하는 교회가 되기를 꿈꿉니다. 이를 위해서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고, 시대적 상황을 잘 인식하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각 개인이 헌신하고, 공동체를 통해 표현하고, 그 역사를 함께 누리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불러주신 은혜, 하나님을 알아가는 은혜, 다른 사람에게 임한 은혜를 누릴 뿐 아니라 세상으로 흘러가게 하는 공동체를  이루어 가길 원합니다.
또 하나의 부러운 교회이야기로 듣는 것이 아니라 동일하게 이루어야 할 교회임을 무겁게 인식하기 원합니다.  “교회를 건강하게 하는 것은 방법론이 아니라 ‘생명력’을 붙잡는 것”이라는 말을 마음이 적습니다.    

김영남 목사 [778-868-3063 / Ezekiel475k@gmail.com]

재미있는 여호수아서

‘미생지신(尾生之信)’



“미생지신(尾生之信)”이란, 미생이란 사람의 믿음이란 뜻이다. 중국 춘추시대 노(魯)나라에서 있었던 일이다. 미생(尾生)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약속을 생명과 같이 여기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미생은 그의 애인과 마을 어귀에 있는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는 정시에 약속 장소에 나갔다. 웬일인지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미생이 계속 그녀를 기다렸다.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져 개울물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생은 약속 장소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기다렸다. 결국 미생은 교각을 끌어안은 채 익사하고 말았다. 

한 사람의 ‘책임감’과 ‘성숙도’를 측정하는 좋은 방법이 있다. 그것은 한번 맺은 약속을 얼마나 신실하게 지키는가를 확인해 보면 된다. 약속의 의미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 ‘어떤 일에 대하여 어떻게 하기로 미리 정해 놓고, 서로 어기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는 말이다. 영어 단어 ‘Word’의 의미 가운데 ‘약속’이란 뜻이 내포되어 있다. 이것은 사람의 말은, 곧 약속이 된다는 말이다. 자신이 한 말을 책임지고 지키는 것이, 곧 그 사람의 인격이다.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의 백성이 약속을 신실하게 이행 한다는 것은, 신의 성품을 닮아가는 고귀한 행위에 속한다.

가나안 정복 전쟁이 시작되기 전의 일이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가나안 동쪽 땅을 미리 분배 받았다. 그러나 조건이 있었다. 이 약속은 하나님과 모세 그리고 이들 세 지파 사이에 맺은 약속이다. 먼저 ‘전쟁이 시작되면 무장하고 이스라엘 군대의 선두에 서겠다’ (민32:17,27), 그리고 ‘정복전쟁과 땅 분배가 끝나기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민32:18), 마지막으로 ‘정복한 가나안 땅을 받지 않겠다’(민32:19)는 세 가지 약속이었다. 모세는 단호히 말한다. “이 약속을 어기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는 것이다.”(민32:23).

세월이 흘러 모세는 죽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도 바뀌었다. 모세와 맺은 약속은 헌신짝 처럼 져버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약속의 당사자인 모세가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가나안 정복 전쟁 6-7년 동안 생명을 걸고 약속을 신실하게 지켜냈다. 이제 가나안 정복 전쟁을 마쳤다. 땅 분배도 마쳤다. 여호수아는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를 불렀다(수22:1). 충성스러운 용사들을 향하여 이제 그들의 거처로 돌아갈 것을 명령했다(수22:4). 이들을 떠나 보내며 축복의 말(수22:7)과 함께 심히 많은 선물도 주었다(수22:8). 이것은 오래전 모세와 맺은 약속을 신실하게 지켜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다.(수22:2-3).

하나님과 맺은 약속은 두 가지의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기억하라. 첫째, 하나님과 맺은 약속은 본인에게 큰 해가되고 손해가 된다 해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시편15편 4절 말씀을 보라!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하셨다. 둘째, 약속의 파기는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는 행위다. 신명기 23장21절을 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는 “서원을 갚는 것은 내 삶의 최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최우선순위가 된다.”라고 말했다. 약속에는 ‘일방통행’이 없다. 약속은 ‘상호작용’이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길 바라는가? 그렇다면 내가 먼저 하나님 앞에서 맺은 약속들을 신실하게 이행하라!      
          
황보창완 목사 (밴쿠버성산교회 청년부) / 778-708-5540

2012년 7월 25일 수요일

진화론에는 진화가 없다

진화론은 비과학이자 상상에 근거한 강력한 신앙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회 | 생명의말씀사


얼마전 일부 교과서에서 진화론 관련 내용의 수정 및 삭제 조치를 이끌어 낸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회(회장 이광원, 이하 교진추)’가 진화론자들의 말들에서 과학적 오류들을 짚어낸 책 「진화론에는 진화가 없다」(생명의말씀사)를 펴냈다.
책은 리처드 도킨스, 칼 세이건, 토머스 헉슬리, 존 듀이 등 대표적 진화자들의 진화론 관련 발언들을 소개하면서, 동시에 일관되지 않은 그 말들의 과학적 오류들을 짚어내고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책 「눈먼 시계공」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생물학은 목적을 가지고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 복잡한 조직체들을 연구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한 인터뷰에서는 “살아있는 물체의 특색을 설명해야 한다면 모든 면에서 거의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교진추는 “그가 생물들을 관찰했을 때 계획적인 설계의 증거들로 인해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강력한 환상’이라고 표현했다”며 “그러면서도 애써 모든 설계의 흔적은 부인하고 있다. 반면 증거가 없는 가설인 진화론은 과학이라고 강변한다”고 비판했다.
 
 
교진추 이광원 회장은 “진화론은 실험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과학의 탈을 쓴 비과학이요, 추리와 상상에 근거한 범신론적이며 유물론적인 신념이자 강력한 신앙”이라며 “이러한 진화론의 실상과 허상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함은 물론, 비판하며 경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교과서를 통해 제도권 교육 깊숙이 침투해 있는 것이 현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또 “생존경쟁과 자연도태를 도구로 하는 진환론은 인간을 우연의 결과물로 전락시키고 약육강식을 정당화시키며 오만과 폭력에 면죄부를 주는 하나의 생존 형태에 불과하다”며 “생물의 역사는 추상화처럼 묘사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과정을 설명하려는 진화론이 과학으로 인정받으려면 논리적인 증거와 과정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럴 수 없다면 진화론은 하나의 해석체계에 불과하며 믿음이라는 과정을 배제하고는 존립하지 못하는 학문이 되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책의 주 집필가인 김재욱 씨는 “이 책을 통해 진화론자들의 일관성이 결여된 모습은 물론, 진화의 증거는 없다는 사실, 진화론자들이 논리를 위한 논리를 세워가는 과정, 그리고 진화론 피해자들마저 진화론을 과학으로 신봉하고 있는 현실 등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이 책을 소개했다.

2012년 7월 23일 월요일

길진리생명이신 그리스도 예수 < 2 >

“어지러운 세상 중에…”



0005. 뉴에이지를 주도하는 유엔 (제네바 신문, 1994년 7월 29일자)
뉴에이지와 새세계질서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님. 로마제국의 동방지역평정을 위해 『씨져』(가이사)들은 새질서(New Order)를 선포하였고, 로마교황청 세력을 업고 나섰던 천주교회의 아들 히틀러도 “새질서”를 부르짖었음. 사탄의 하수인 학자들은 전성경을 통하여 단 한 번 언급된 개혁(Reformation)이란 단어를 제거하고 이 “새질서”라는 단어를 교묘히 성경에 첨가시켜 놓고 “새 세계질서”(New World Order)를 부르짖고 있음 (NIV, 히9:10 참조) - (1994년 7월).

0006. BILLY GRAHAM, BILL BRIGHT & BLIND GUIDES
하나님의 사람도 잘못(실수)을 범할 수가 있는가? 마귀의 유혹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보장받은 자가 이 세상에 있단 말인가? 유명인은 더욱 더 표적의 대상이 아닌가? 다윗, 솔로몬이 아니더라도 하갈에 속임을 당한 아브라함(창16), 야곱에 속임을 당하는 이삭(창27), 레아와 그녀의 아버지에게 속임을 당하는 야곱(창29)......여호수아(수9:5), 예수없이 사흘 길을 걸어갔던 마리아와 요셉, 주님으로부터 사단아! 소리를 들었던 베드로(마16:13-24), 성령충만했던 바나바(행11:24)가 베드로와 함께 복음의 진리를 벗어나 바울의 꾸중을 듣는 장면(갈2:14)......실수나 속임을 당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지만 로마교황청과 손을 잡고 세계복음화, 『지구촌』 복음화를 외치는 이 유명한 “신학적인 테러분자들”(theological terrorists)이 파괴하는 힘은 너무나 크다는 사실이다.

0007. “템플톤”상
종교통합을 위한 ‘뉴에이지’상, 일명 ‘템테이션’(유혹)상으로 알려진 이 상의 수여를 결정하는 위원회는 힌두교, 불교, 이슬람, 천주교, 유대교, 기독교 등의 종교지도자들로 구성되어있다.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 우리의 교계신문잡지들이 철없이 떠들고 있는 이 상은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에게만 하사되며, 빌리 그래함에 이어, 이번에는 빌 브라잇이 받게 된다. 이들이 관련하고 있는 “21세기운동”, PROMISE KEEPERS 등은 볼 것도 없는 배도를 치닫는 운동들이다. ‘씨씨씨’ 조직에는 천주교도들을 정식스탭으로 기용하고 있다(『아일랜드』등의 천주교국). ‘자마’의 팜플렛에 나와있는 빌 브라잇, 부쉬, 척 콜슨, 스윈돌, 제임스 답슨 등은 모두 향(向) ‘로마’의 세력들임은 이미 잘 알려져 있으며, ‘프라머스 키퍼’의 창설자 맥카트니까지 스피커로 동원하고 있는 이 운동의 끝은 배도로 치닫고 있는 운동이다. 천주교도들을 스탭으로 기용하고 있는 CCC 정책에 대한 레이놀즈 박사의 질문에 빌 브라잇 박사는 ‘나는 예수를 주로 부르는 자와는 누구든지 함께 일 할 수 있다’라고 대답. 다시 “나더러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거라 하리라”(마7:21-23)로 나선 레이놀즈 박사의 응수에 할 말을 잊은 빌 브라잇 박사의 퇴장.
0008.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들”
홍수가 나면 온 천지가 물난리지만 정작 마실 물(생수)은 없어진다. 맘모스 집회홍수시대라 생수의 근원은 가려진다. 선지자들을, 사도들을, 『무디』 등을 세우신 하나님이 하시는 부흥의 방법과, 인간중심의 집회란 얼마나 다른가!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한 바리새인들”(요12:42-43)처럼, 서로가 영광 취하느라 유명인들이 필요하고, 신문방송후원이 필수적이며, 모금운동이 또 있어야 하고, ‘비전’이란 이름 하에 『메스미디어』를 통해 장기적으로 과장선전된 『프로그램』과 치밀한 조직에 의해 동원된 군중을 가지고 성령의 역사운운 조작한다. 군중에 기만 당하지말라. 군중은 군중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순도 100%의 순수성을 외치나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취한 방법이 아님은 자명하다. 서울 Y교회의 Y목사님의 말씀은 세상에 들떠있는 자들을 자숙자제케 한다.

“...... 한국교회의 무대에 나서서 활동하고 있는 지도층의 인사들......그들이 중심이 되어 또 국가조찬기도회니 한국교회개혁이니 하는 것은 이제는 그만 두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마음 좀 편하게 목사의 일을 볼 수 있도록 놓아두면 좋겠습니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조찬모임, 구국기도회, 연합사업, 각종 대형집회, 전시효과적인 모임들이 얼마나 목사의 삶을 허무하게 만들고 피곤하게 해왔는지 모릅니다. 마치 그러한 것들이 한국교회를 묶어오고 유지시켜온 것처럼 착각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교회를 더 공허하게 하고 내용이 없는 교회로 만들었으며, 더 피곤하고 혼잡하게 해왔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 입니다...... 모두 영웅이 되겠다는 망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돌아갑시다.”

이들에 대한 바울의 권고는 여전하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에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3:18-19)-(1996년 5월).

0009. “미국을 카톨릭화 하자!”(Make America Catholic!)
『예수회』의 200년 묵은 이 구호는 이제 그 쓴 열매들을 거두고 있다. 미국의 장래를 걱정하며 “미국을 구하자!”는 거창한 구호들을 외치며 자기도취에 빠진 소경지도자들(그들 자신들이나 악의 세력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민망함이 있다), 소경어른들로 인해 파생된 청소년문제들은 심각하다. ECT(Evangelicals Catholics Together)를 통해 ‘로마교황청’세력들과 하나되어 미국의 도덕적 타락을 회복하겠다는 자들. 이 타락은 오히려 지도자들이 『바빌론』의 음녀의 세력들과 함께 혼합된 술을 퍼마시며 영적 간음죄를 범하면서, “땅의 음녀들과 온갖 가증한 것들의 어미”(계17:5), 모든 악의 근원이 되는 무리들과 오래 전부터 손을 잡았기 때문에 생긴 문제들이다. ECT에 관한 뉴욕타임즈(1994.3.30)의 보도를 보자.

 “그들은 낙태와 ‘포르노그라피’(음란성 제작물)에 대항하는 운동에 함께 노력했으며, 이제 저명한 카톨릭과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놀라운 믿음의 도약을 위해, 드디어 그들의 양떼들에게 서로가 크리스챤으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였다”.

고도화된 문명을 자랑하나, 영적으로는 중세암흑시대를 능가하는 흑암으로 내리 치닫고 있는 세상을 거슬러 살아야하는 때에 살고 있다 (1996년 9월).

0010. ‘Christianity Today’(CT)는 『에큐메니즘』의 도구로 1956년 빌리 그래함에 의해 창간된 잡지다. 『빌리 그래함 전도재단』에는 천주교 고문들까지 고용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공개하면서, 아들 프랜클린도 천주교와의 협력을 선언하였다 (CT, 11 Dec.1995).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것에 강한 염증(厭症)을 느끼나, 대부분의 악의 세력은 ‘긍정적’인 얼굴을 가지고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나타난다. 저들은 요17:11 한구절을 떼내어 『에큐네니즘』의 슬로건으로 악용하나,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은 이미 실존하고 있다는 사실과, 이 구절은 우리가 목표로 두고 도달해야하는 어떤 것을 다루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교리보다 교제를 앞세우나, 참된 복음전도는 지극히 교리적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말씀하신 것으로서, 기독교는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도달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다. 현대인이 믿기 쉬운 방식으로 접근, ‘다른 복음’을 전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인하고 있다.

이러한 자들에게 두 번이나 저주를 선언한 바울이 부정적인가?(갈1:6-10).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7:14)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부정적’사고방식의 원조란 말인가?

세상 헛된 신과 영화 모두 내어버렸네
예수 친히 하신 말씀 날 더 귀히 여겨라
(찬366 어지러운 세상 중에 ②)


 구영재 선교사  [문의: 크리스쳔신문]

성경 인물

애굽의 태양신 ‘바로’



성경을 의미 있게 읽으려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조건 하나가 있다. 그것은 성경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지식이다. 주전 2000년대 후반의 애굽 문화에 대한 지식은 이스라엘의 ‘뿌리 경험’으로 간주되는 출애굽사건(Exodus)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이다.

학자들의 가정에 따르면, 출애굽 당시 모세와 대결했던 ‘바로’(Pharaoh: 애굽왕의 직함, ‘큰집’ 또는 ‘황제’라는 뜻)는 제19왕조의 라암셋2세(Ramses II, BC 1304∼1237)였을 것이다. 그가 고센 땅에 국고성을 건축하고 ‘라암셋’이라 명명했다는 기록(출 1:11) 하나만으로도 이 가설은 설득력이 있다.

대부분의 애굽 황제들은 단명했는데, 라암셋2세는 90세 이상 생존하며 108명의 자녀를 두고 가장 오래(66년) 통치했다. 그는 모든 전쟁에 백전백승함으로써 막강한 부와 권세를 누렸던, 애굽 역사의 가장 위대한 황제였다. 수백 년의 종살이로 인하여 오합지졸로 전락한 선민 이스라엘이 이같이 막강한 황제로부터 탈출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했으며, 그만큼 엑소더스는 야웨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로만 가능했던 기적 중의 기적이었다.

피라미드가 건설되던 제3왕조(BC 2686∼2613) 때부터 바로는 태양의 아들 곧 태양신이었다. 물신숭배(animism)가 상식으로 통했던 당시에 엄청난 빛의 권세로 만물을 살리는 능력을 갖고 있는 태양은 물론, 연중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건조한 사막 한가운데로 끊임없이 생수를 공급하는 나일강도 신격화되었다. 또한 가장 교미기간이 긴 짐승으로서 어떤 짐승이라도 죽일 수 있는 독으로 무장한, 그리고 강과 육지를 함께 품고 다니는 코브라도 신으로 숭배되었다. 이와 같은 신격화된 태양과 코브라는 애굽의 모든 신전과 바로의 왕관과 무덤의 석관에 어김없이 새겨져 있다.

막강한 권세를 과시하던 바로가 이처럼 신격화된 태양과 나일강과 코브라와 동일시되었다는 사실은 ‘라’(Ra: 태양신의 이름)와 ‘모세’(태어나다)의 합성어인 ‘라암셋’에서도 드러난다. 특히 피라미드는 바로의 미라가 안치되어 있는 왕릉이자 태양신전(벳세메스: 태양의 집/렘 43:13)이었는데, 태양광선 형태의 이 신전을 지키고 서 있는 반인반수(半人半獸)의 수호신 스핑크스도 이를 반영한다.

아침에 나일강 동쪽에 떠올라 하루 종일 창조사역을 수행하다가 저녁 서산에 진 다음에 이튿날 아침 다시 부활하는 신비한 태양처럼, 태양의 아들인 바로도 다시 부활할 것을 믿었기에, 그들은 거대한 피라미드와 현존하는 태양신 앞에 기꺼이 충성하였다. 이와 같은 신화를 제조 유포한 자들은 왕과 함께 영광을 누린 사제계급으로서, 이들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많은 신화를 통하여 백성들을 속이고 그들의 삶을 영구히 노예화할 수 있었다.

엑소더스는 이처럼 생명의 수혜자로 위장한 거짓 신 바로로부터 참사랑과 진리의 하나님 야웨를 향한 탈출이었고, 아울러 태양과 코브라와 나일강 같은 거짓 우상들로부터 살아계신 참 하나님 곧 태양을 어둡게 하고 나일강을 피로 심판하시는 창조주 야웨를 향한 탈출이었다. 다른 신과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십계명, 그리고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물어죽이던 불뱀을 놋뱀으로 만들어 장대에 매달아 저주한 사건은 이와 같은 애굽의 거짓된 우상문화의 빛에서 이해할 때 그 의미가 더욱 풍성해진다.

2012년 7월 22일 일요일

“진화론 100% 완전한 학설 아니다”

창조론·진화론, 과학 교과서로 충돌하나




교진추 “시조새와 말의 화석은 진화론의 증거로 부적합”진화학계 “교진추의 주장은 과학적 근거 없고 왜곡됐다”
최근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회(이하 교진추)가 교육과학기술부에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에 실린 진화론의 일부 내용을 삭제ㆍ수정해달라는 청원서를 내면서 이른바 ‘과학 교과서 개정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이 논쟁은 교진추의 청원서에 대해 진화학계가 반론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 ‘과학 교과서 개정 논쟁’지난해 12월 교진추는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에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에 실린 진화론의 내용 중 ‘시조새’와 관련된 부분이 사실과 다르게 게재됐다며 ‘개정 청원서’를 보냈다. 교진추는 이 청원서에서 “공룡이 조류로 진화한 중간 종 생물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시조새에 대한 기술은 학술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며 관련 내용의 삭제ㆍ수정을 요구했다.

이를 뒷받침할 근거로 △1984년 독일에서 열렸던 ‘국제시조새학술대회’에서는 시조새가 완전히 비행할 수 있었던 멸종된 조류라고 공식 선언했다 △최근 중국 고생물학자들이 시조새는 깃털 달린 공룡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영국의 프레드 호일을 비롯한 일부 학자들은 시조새 화석이 위조된 것이라고 계속 주장하고 있다 등을 제시했다.

이어 교진추는 지난 3월에도 ‘말의 진화계열은 상상의 산물’이라며 관련 내용의 삭제ㆍ수정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교진추는 이 청원서에서 “말이 몸집이 커지고 발가락이 감소하는 방향으로 점진적으로 진화했다는 말의 화석계열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말의 점진 진화를 보여주는 중간 종 화석은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았고 완전한 형태로 나타났으며 발가락 수나 신장 크기의 변화는 진화의 증거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교진추의 청원 내용은 과학 교과서를 펴내는 출판사 7곳에 전달돼 일부 출판사들이 ‘시조새’(5곳), ‘말 화석’(3곳)과 관련된 내용을 수정하거나 삭제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유명 과학저널 ‘네이처’, ‘사이언스’ 등 외신에까지 보도되면서 한국 고생물학회와 한국 진화학회 추진위원회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 학회는 지난달 20일 공식 반론문을 통해 “교진추의 주장이 과학적 근거가 없고 언급된 학계의 동향도 왜곡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한 고생물학자도 “교진추의 주장은 대응할 가치도 없는 허구로 가득하다”며 “교진추의 진짜 의도는 진화론 삭제 문제를 이슈화해 궁극적으로는 창조론을 진화론과 같은 과학으로 교과서에 넣는 것이며, 문제를 크게 만들면 교진추의 의도에 넘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교진추 이광원 회장은 “이번 청원은 창조론을 과학 교과서에 소개하자는 것이 아니라, 진화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소개한 교과서를 바로잡자는 취지”라고 반박하며 “종교적 시각이 아닌 학술적 시각에서 진화론의 문제점을 검토한다면 교과서는 수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창조와 진화:진화론 비판과 창조 모델로 살펴본 생물의 기원’의 저자 양승훈 교수(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는 “교진추의 주장은 학계의 동향을 왜곡한 것이 아니라 소수 의견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며 “기본적으로 창조과학자들이 시조새 화석과 말의 가상적 진화계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양 교수는 “다만 근거가 된 문헌들은 교진추에서 직접 연구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문헌을 인용하고 있고 학계의 소수 의견”이라며 “시조새와 말의 화석에 대한 직접적인 연구 또는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연구를 근거로 진화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종교’와 ‘과학’의 전쟁?
문제는 교진추의 취지와 다르게 과학 교과서 개정 논쟁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이번 청원이 ‘창조론을 주장하는 종교단체에 의한 무모한 소행과 위협’으로 비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교진추 학술위원 임번삼 교수(장신대)는 “이번 청원으로 인해 정통 과학이론이 큰 위협이라도 받는 듯이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며 “더 나아가 ‘창조-진화’ 또는 ‘종교-과학’의 논쟁구조로 몰아가려고 한다”고 우려했다.

또한 임 교수는 “교진추 구성원의 상당수가 크리스천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청원내용이 종교적이라는 논리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이번의 청원은 학술적으로 잘못된 내용을 학술적 자료에 근거해 시정하려는 것 뿐”이라고 반박했다.

논란이 가중되자 교과부에서는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의 진화론 내용에서 ‘시조새’ 화석 등이 수정 또는 삭제된다는 것은 교과부의 의견이 아니라 교진추에서 제기한 두 차례의 민원에 대한 교과서 집필진의 의견”이라며 “이번 논란에 대해 관련 학회 및 전문가들의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쳐 서울시 교육감의 승인을 받을 것”이라는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한편 교진추는 앞으로도 ‘화학진화론은 생명의 기원과 무관하다’ ‘생명계통 수는 허구이다’는 등의 청원을 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