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 장 주님의 치유가 시작되면 ...
A.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 (계속)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를 터뜨리는 사람이 아주 많다. 주로 남자들 중에 많지만 여자들 중에도 드물지 않다. 폭탄과 같은 사람들이다. 말을 걸기가 무서워서 그냥 저만큼 거리를 두고 살아간다. 가족 중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온 가족의 삶이 많이 힘들어진다.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없기에 모든 관계가 망가져가며 자녀들의 마음이 찌그러져 간다.
강의를 통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고 안경을 벗어가면서 그런 사람이 차분해지기 시작한다. 화를 내지 않는다. 지금까지 “이건 화를 낼 일이야. 화를 내서 마땅해!!” 라고 생각했던 일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며 오히려 나를 치유하시는 주님의 손길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참는 힘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화내는 마음 자체가 잦아드는 것이다. 자신을 이해하면서 감정을 조절하게 되고, 다른 사람의 상처받은 마음을 보기 시작하고 말을 절제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강의 중에 물었다. “여러분의 성품들 중에 가장 맘에 들지 않는 것 한가지씩만 말해 보세요.” 여러 사람이 손을 든다. 앞에서 남편의 변화를 이야기한 권사님에게 기회를 드렸다. 놀라운 답이 나온다. “혈기 부리는 거요...” 여러 가지가 함께 설명이 되는 답이었다.
(4) 열등감에 눌려서 좌절하고 두려워하던 사람이 담대해지고 당당해지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심각한 열등감을 가지고 태어난다. 왕의 아들이라도 예외가 아니다. 여성을 비하하는 문화에서 자란 어머니의 태중에서 열 달을 지내고 나오기 때문이다. 엄마의 깊은 열등감을 자기 속옷으로 입고 태어나는 것이다. 중국 연변에서 유치원을 운영하는 선교사가 이렇게 말한다. “목사님, 아주 속이 상하는 일이 있어요. 베풀어주는 우리들의 아이들보다 도움을 받는 중국인 아이들이 더 당당한 거예요. 이것도 치유될 수 있겠지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심각한 열등감을 가지고 태어난다. 왕의 아들이라도 예외가 아니다. 여성을 비하하는 문화에서 자란 어머니의 태중에서 열 달을 지내고 나오기 때문이다. 엄마의 깊은 열등감을 자기 속옷으로 입고 태어나는 것이다. 중국 연변에서 유치원을 운영하는 선교사가 이렇게 말한다. “목사님, 아주 속이 상하는 일이 있어요. 베풀어주는 우리들의 아이들보다 도움을 받는 중국인 아이들이 더 당당한 거예요. 이것도 치유될 수 있겠지요?”
그 열등감 때문에 세상에 태어나서는 자신과 남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 실망하며 좌절하고 자신을 꾸짖고 때리고 정죄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 사람은 결코 이웃을 사랑할 수가 없다.
마음의 치유가 시작되면 이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기 시작한다. 더 이상 자신을 정죄하지 않고 자신에게 칼질을 멈춘다. 자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를 알게 되기에 자신을 격려하며 세워가기 시작한다. 이제는 악순환이 아니라 선(善)순환 (Good-cycle) 이 시작되는 것이다. 인간의 열등감의 뿌리는 워낙 깊어서 완전히 치유되는 데는 아주 오랜 세월이 필요하지만 눌려있던 어깨가 또 고개가 서서히 들려 올라간다. 당당해져간다. 주위 사람들이 놀라는 변화가 시작된다.
“나 괜찮아요. 주님과 함께 잘 살아요...”
어려서부터 부모의 그
늘에서 보호만 받고 자라던 40대 부인의 이야기이다. 부잣집 외동딸로 어려움을 모르고 늘 온 가족의 보호를 받고 자랐다. 원하는 것은 다 할 수 있었고 아무에게서도 괴로움을 당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오빠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못하는 바보”라는 생각이 마음 깊이 새겨졌다. 결혼하고 나서도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지 못하고 남편의 그늘에서 아이들만 기르며 살았다. 그러다가 아이들 교육 때문에 태평양을 건너 남편과 떨어져 사는 기러기 엄마가 되었다. 홀로서야 하겠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돌보아주는 사람이 없는 밴쿠버에서의 삶은 너무 외로웠고 힘들었다. 오히려 십대의 아들이 엄마를 돌보는 상황이 되어갔다. 그런데 치유 학교에 참석하면서 자신의 참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하나님의 딸이고 주님이 늘 함께하시는 것을 알게 되고 경험하게 되었다. 당당해지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감히 하지 않던 담대한 말을 한다.
“나 괜찮아요. 주님과 함께 잘 살아요...”
남편이 날마다 이렇게 말한단다. “어... 당신 이제 혼자서도 잘 사는 것 같네...”
“나 괜찮아요. 주님과 함께 잘 살아요...”
남편이 날마다 이렇게 말한단다. “어... 당신 이제 혼자서도 잘 사는 것 같네...”
구자형 목사(밴쿠버내적치유사역원장) sarangheali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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