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소아시아와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
◇ 에베소의 주요 유적들 ◇
◎ 사도요한 교회 ◎
사도 요한의 무덤이라고 전승되어 오던 곳에 사각형의 목제건물이 세워졌고(4세기), 이 건물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527-565)에 의해 길이 130m가 넘는 장엄한 규모로 십자가 모양의 교회가 증축되었으며, 7세기경에는 교회 외부의 성벽을 만들었다. 중세 성지순례가 유행하던 시기에 각색 병자들이 방문했는데, 그 이유는 창문에서 기둥을 타고 들어오는 먼지를 맞으면 병을 고치게 된다는 미신적인 믿음 때문이었다고 한다. 요한의 유해 중 남은 것은 없고, 교회 내에 있었던 안치소만 볼 수 있다.
사도 요한의 무덤이라고 전승되어 오던 곳에 사각형의 목제건물이 세워졌고(4세기), 이 건물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527-565)에 의해 길이 130m가 넘는 장엄한 규모로 십자가 모양의 교회가 증축되었으며, 7세기경에는 교회 외부의 성벽을 만들었다. 중세 성지순례가 유행하던 시기에 각색 병자들이 방문했는데, 그 이유는 창문에서 기둥을 타고 들어오는 먼지를 맞으면 병을 고치게 된다는 미신적인 믿음 때문이었다고 한다. 요한의 유해 중 남은 것은 없고, 교회 내에 있었던 안치소만 볼 수 있다.
◎ 아데미 신전 ◎ (세계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
제단과 신전으로 구분되며 규모는 55m×110m이며, 세계 최초의 대리석 건물로 대리석 기둥만 해도 120개나 되었다고 한다. 아데미(아르테미스)는 라틴어 디아나와 동일시되며 이 신전은 서쪽과 바다를 향하고 있다. 아데미는 에베소의 수호신이며 아시아 전역에 편만했던 신으로 인간과 동물, 가축의 다산의 신, 풍요의 신으로 가슴에 수많은 유방이 있다.
제단과 신전으로 구분되며 규모는 55m×110m이며, 세계 최초의 대리석 건물로 대리석 기둥만 해도 120개나 되었다고 한다. 아데미(아르테미스)는 라틴어 디아나와 동일시되며 이 신전은 서쪽과 바다를 향하고 있다. 아데미는 에베소의 수호신이며 아시아 전역에 편만했던 신으로 인간과 동물, 가축의 다산의 신, 풍요의 신으로 가슴에 수많은 유방이 있다.
이 신전에 종사하는 제사장은 고자였고, 여사제들은 천한 여성들이었으며, 노예들도 함께 종사했다. 제례의식이 끝나면
이어서 음주와 매음행위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이 신전은 BC 550년에 건립되어 7번 무너졌고, AD 262년 고트족에 의해 파괴된 후
부분적으로 보수되었으나, 기독교의 등장으로 이 신전의 대리석들은 새로운 기독교 건축물들을 짓는데 사용되므로 단순한 채석장으로 전락하게 되었고,
신전의 일부 유물은 비엔나에 있다. 현재 1세기경의 ‘큰 아데미’ 여신상과 2세기경의 ‘에베소’ 여신상이 셀축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아데미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르테미스’ 여신으로 라틴어는 다이애나(Diana)이며, 주피터(Jupiter)와 라토나(Latona)의 딸로서 아폴로신과 쌍둥이이다. 아르테미스 신은 달의 여신이며, 사냥의 여신으로 개를 앞세우고 사냥을 다니는 사냥꾼으로도 알려져 있다. 소아시아 지방에서 ‘처녀여신’을 숭배한 것은 이 지역의 전통적인 풍작제의(豊作祭儀)와 관련된 대모(大母)여신 숭배와 혼합된 듯하다.
아데미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르테미스’ 여신으로 라틴어는 다이애나(Diana)이며, 주피터(Jupiter)와 라토나(Latona)의 딸로서 아폴로신과 쌍둥이이다. 아르테미스 신은 달의 여신이며, 사냥의 여신으로 개를 앞세우고 사냥을 다니는 사냥꾼으로도 알려져 있다. 소아시아 지방에서 ‘처녀여신’을 숭배한 것은 이 지역의 전통적인 풍작제의(豊作祭儀)와 관련된 대모(大母)여신 숭배와 혼합된 듯하다.
◎ 마리아의 집 ◎ 카톨릭 전승에 의하면 요한이 로마의 박해(AD
37-42)를 피하여 마리아와 함께 에베소에 왔다고 하며, 에베소에서 7Km 떨어진 해발 420m의 뷸뷰르(Bülbür) 산 위에 마리아가
살았다고 한다. 카트리나(Katerina Emmerich, 1774-1824)라는 독일 여인은 지체 불구자로서 태어나서 한 번도 자기
침대에서조차 일어나 보지 못한 여자인데, 그녀가 보았다는 환상에 대해서 들은 바 있는 신부가 1891년 그곳을 방문하여 본 결과 그녀의 환상과
일치함을 확인했다. 그곳은 원래 비잔틴 시대의 수도원이 있던 자리였으며, 지역 정교도인들이 8월 15일 마리아 승천일에 마리아를 기념하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일들이 복합되어 이곳을 마리아의 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논쟁도 늘어감에 따라 1950년 지금의 형태로
보수하였다. 1961년 교황 요한 23세가 카톨릭 교회의 성지로 공포함으로 이곳이 카톨릭에서는 공식적인 성지로 인정되어 많은 카톨릭 신자들이
방문하고 있으며, 코란에도 마리아에 대한 내용이 많이 언급되기 때문에 모슬렘들 역시 성지로 인정하고 있어서 많은 모슬렘들이 이곳을 찾아오고
있다.
◎ 원형 경기장 (The Stadium) ◎
헬라시대에 만들어졌으나 네로 황제 때(AD54-68) 변형, 확대되었으며(230m×30m), 투사들의 전투경기, 전차경기들이 이루어졌다. 특히 기독교가 심한 박해 아래 있을 당시 많은 기독교인들을 잡아다가 맹수들의 밥으로 잔인하게 죽였으며, 그 장면을 즐기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기독교가 공인되자, 기독교인들이 원형 경기장의 좌석들을 다 뽑아버리고 기독교 건축물을 세우는데 사용하였다. 사도요한 교회 건축에 많은 부분이 사용되었다.
헬라시대에 만들어졌으나 네로 황제 때(AD54-68) 변형, 확대되었으며(230m×30m), 투사들의 전투경기, 전차경기들이 이루어졌다. 특히 기독교가 심한 박해 아래 있을 당시 많은 기독교인들을 잡아다가 맹수들의 밥으로 잔인하게 죽였으며, 그 장면을 즐기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기독교가 공인되자, 기독교인들이 원형 경기장의 좌석들을 다 뽑아버리고 기독교 건축물을 세우는데 사용하였다. 사도요한 교회 건축에 많은 부분이 사용되었다.
◎ 성모 마리아 교회 ◎ (The Church of The Virgin
MARY)
원래 로마시대의 건물로 하드리안 황제 때에 Museion(특별교육을 위해 세워진 특수학교의 일종)으로 의학과 과학의 수준 높은 교육의 장소로 사용되었고, 4세기 콘스탄틴 대제 시대에 교회로 전환하여 증축하였고, ‘성모 마리아 교회’로 불리게 되었다. 이는 아시아에서 최초의 마리아 교회이다. 이곳에서 431년 200명의 주교들이 모여 제3차 에베소 종교회의를 가졌다. 이 종교회의에서 ‘동정녀 마리아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의 어머니가 아니라, 인간인 예수의 어머니’라고 주장했던 네스토리안(Nestorian)은 이단으로 정죄되고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Mother of GOD)”로서 받아들여졌다. 1967년 교황 바오로 6세의 방문으로 마리아 교회와 마리아의 집을 성지로 지정하였다.
<계속>
원래 로마시대의 건물로 하드리안 황제 때에 Museion(특별교육을 위해 세워진 특수학교의 일종)으로 의학과 과학의 수준 높은 교육의 장소로 사용되었고, 4세기 콘스탄틴 대제 시대에 교회로 전환하여 증축하였고, ‘성모 마리아 교회’로 불리게 되었다. 이는 아시아에서 최초의 마리아 교회이다. 이곳에서 431년 200명의 주교들이 모여 제3차 에베소 종교회의를 가졌다. 이 종교회의에서 ‘동정녀 마리아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의 어머니가 아니라, 인간인 예수의 어머니’라고 주장했던 네스토리안(Nestorian)은 이단으로 정죄되고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Mother of GOD)”로서 받아들여졌다. 1967년 교황 바오로 6세의 방문으로 마리아 교회와 마리아의 집을 성지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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