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47.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
100년을 채우지 못하고 죽는 인생들이 살아있을 동안에 취하게 되는 지식의 양이란 참으로 미비하기 그지없다. 불과
4-5백년 전만 해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하였다. 하늘의 별을 일일이 세어보니 모두 1022개가 되었다.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프랑스의
빠스깔(B. Pascal, 1623-62)의 ‘빵세’(명상록)에 기록되어있다. 남반구의 별은 생각지도 못한 시대였다. 머리 위에만 별이 있는게
아니라 우리의 발 아래(남미, 호주지역 등)있는 별들은 북반구에서는 볼 수가 없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케플러, 뉴턴, 헤르셀, 아인슈타인, 허블 등등의 천체(물리)학자들에 의해 하나님의
지식의 부요함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빠스깔의 구닥다리 망원경에 하나로만 보였던 그 별은 오늘날의 고성능망원경으로 보니 실제로는 1조(혹은
10조, trillion)의 별의 집단이었다. 평생을 세어도 셀 수 없는 숫자이다. 헬라어의 ‘갈락토스’(‘우유’의 뜻)에서
‘은하계’(galaxy)라는 단어가 유래되었다.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이나 돈다는 빛의 속도로 1년간을 달려가는 거리를
‘1광년’(1光年)이라고 배운다. 우리의 태양계를 포함하고 있는 이 은하계의 중심에까지 이르려면 빛의 속도로 달려서 25-50만 광년이 걸린다고
하니…그런데 이 우주에 우리의 은하계 같은 ‘조’(trillion)의 별의 집단이 몇 개가 있는지? 천만 개, 억만 개…?
우리가 살고있는 거대한 유성, 이 지구도 우주에서는 모래알 하나에 비유된다. 지구의 주위를 도는 달의 크기는
모래알 하나를 쪼개고 또 여러번 쪼개야하는 크기이다. 하나님의 창조의 원대하심은 측량할 길이 없다. 겨우 달에 발을 디디고 돌아와서 ‘우주를
정복했다’는 인간의 교만에는 혀를 차게 된다. 차라리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시8:3-4)라고 노래한 다윗의 마음이 위대하다. 과학의 발달은 인간의 무지의 영역을 기하급수적으로 더욱 크게 확대시켜놓았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이러한 광대무변한 창조에 관하여는 지극히 간결하게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천지창조의 ‘클라이막스’는
하나님께서 일을 하신 창조 1-6일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시고 ‘안식’을 취하신 일곱째 날, 즉 구원의 날이다. 하나님이 손수 예비하신
‘그리스도안에서의 쉼’이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11:33).
‘축복과 저주’의 신명기 28장에서 복을 저버리고 저주의 완악함의 길을 걸어온 이스라엘. 창조주 아들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서야 어찌 이스라엘이 편할 수 있었겠는가…? 유대인 박멸에 나선 나치 독일은 점령하는 나라마다 수용소를 건립, 무려
15,000개가 넘었고 유대인들의 국적은 모두 29개국에 달했다. 단 이틀 동안에 우크라이나 대학살로 33,000여명이 처형당했고 폴란드에서는
3백만이 넘는 유대인들이 6곳에 흩어져있는 수용소 가스실에서 질식해 죽었다. 연합군에 의한 뉘렘베르크에서 있었던 나치 전범 재판에서 교수형을
당한 폴란드의 총독 한스 프랭크(Hans Frank)는 나치 전범으로서 독일의 죄를 고발하고 죽었다: “1,000년이 지나도 독일의 죄는
지워지지 않을것이다”(“A thousand years will pass and the guilt of Germany will not be
erased”).
중세 십자군의 주체 세력은 거의가 ‘게르만’족들이었다. 신성로마제국의 세력이라고 하나 프랑스의 무신론자 볼테르의
말대로 ‘로마적’이라기 보다 ‘게르만적’이었다. 왕권을 동원, 전 게르만 인구의 1/3을 살생한『30년 전쟁』(1618-48)은 로마카톨릭교회에
의한 기독교인 대학살을 위한 전쟁이었다. 독일 낭만파 작곡가 베버(Carl Maria von Weber, 1786-1826)는‘마탄의
사수’(또는 ‘자유사수’, Der Freischuetz)에서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한 잔악행위와 평화롭던 마을을 불태웠던 ‘30년전쟁’직후의
이야기를 소재로 오페라를 작곡하면서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끝을 맺는다. 독일의 문호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가 “개인으로서의 독일인의 우수성과 집단으로서의 사악성”을 조심스럽게 언급하고 있다(“I
have often felt a bitter sorrow at the thought of German people, which is so
estimable in the individual and so wretched in the generality…” - Goethe).
0149. 로마교황청의 죄(1)
베버나 괴테의 예견대로 이 독일은 제1, 2차 세계대전에 다시 연루되었다. 로마교황청 사절의 대표(Papal
Nuncio)로 독일에 오래 근무하였던 Eugenio Pacelli(1876-1958)가 교황 비오(Pius)12세가 되어 ‘히틀러의 교황’이
됨으로써 유대인 대학살이 다시 시작되었다. 로마제국의 권력을 동원하여 정결한 성도들이었던 도나티스트(Donatists)파들을 괴롭혔던 ‘하나님의
도성’의 성 어거스틴이나 히틀러의 아리안주의(Aryanism)는 기독교회사 초기부터 거론되어온 역사로서 늘 정치권력을 동원, 로마교회의 본질이
정치임을 나타내고 있다. 사단은 이 사악한 히틀러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세상의 권위를 동원하였다. 히틀러를 만나 ‘나치’세력을 직접,
간접적으로 보증선전해준 자들이다. 신학자, 사제들 외에도 미국의 이혼녀와 결혼을 위해 왕위를 버린 영국왕조지 5세(1937) 내외가 히틀러를
예방한다. 경비행기로 뉴욕에서 빠리까지 대서양을 ‘논스톱’으로 횡단, 팬암 항공사 설립 멤버 중에 한 사람이 되었던 린드버그(Charles
Lindbergh, 1902-74), 영국의 사가 토인비(A. J. Toynbee, 1889-1975, 조카 토인비)가 1936년 2월에
히틀러를 만나 서유럽의 생존을 위해 독일세력의 우크라이나(the Ukraine)와 우랄(the Urals)까지 확산을 종용한 사실을 사가이자
Koeln대 교수인 힐그루버(Andreas Hillgruber, ‘Germany and the Two World Wars’, Harvard
Univ.)가 토인비 교수의 저서(‘Acquaintance’, London, 1967)를 직접 인용하여 밝혔다.
헤밍웨이, 린드버그, 간디…등등 온 세상이 ‘대중의 영웅숭상 히스테리아’(‘the mass hysteria of
hero worship’)에 몰두하던 시대라 히틀러는 쉽게 대중을 미치게 만들 수가 있었다. 로마교황청의 20세기 십자군으로 시작한
‘나치’십자군은 다시 유럽을 재난에 몰아넣었을 뿐만 아니라 독일을 다시 황폐하게 만들었다. 두 번의 세계대전(1914-45)기간은 제2의
‘30년 전쟁’으로 간주되기까지 하였다. 오늘 날의 매스미디어들이 ‘영웅’(hero)이라는 단어를 남발하고 있는 것은 이제 히틀러를 능가하는『빅
브라더』(Big Brother)란 영웅(hero)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0150. 로마교황청의 죄(2)
‘그리스도를 죽인 자’(‘Christ Killer’)들 이라고 유대인 박멸에 나섰던 로마교황의 진리에 대한
무식함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무지함이다. 기독교가 아님은 물론, 종교도 아니면서 종교의 얼굴(천주교)을 하고 정치(바티칸)세력을 확장해왔던
이 비밀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은 “비밀”(Mystery, 계17:5)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영적지도자들로 자처하는 많은 분들이 이 비밀에
가리워져 있어 배도는 어디서나 쉽게 기세를 부린다. 종적(宗敵)인 헤롯과 빌라도가 주님을 대적하기 위해 그날은 “하나”(one mind)가
되었다(눅23:12/행4:27). 신약의 바벨론은 구약의 바벨론과 다르다. “어미”(母, Mother, 계17:5)로서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 여자이다”(계17:5-6). 두 번이나 기록된 “한마음”(계17:13,17)에 유의하시라. 종교가 이 “어미”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종교가 아닌 종교는 천주교 밖에 없다. ‘성모’(聖母, Holy Mother)교회, 성모병원 등등… 유럽에서는 마피아도
‘거룩’(?)하다(Holy Mafia, ‘쌍타 마피아’).
오랜 기간 동안 기독교 박해사에 관심을 두고 로마교황청이 저질러온 잔악상을 정리해보았다. 늘 왕권의 정치세력과
결탁, 계획적/조직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유대인 및 기독교인)을 진멸해온 로마교황청의 역사는 상상을 초월한다. “또 내가 보니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 까지도 놀란다. “내가 그 여자를 보고 크게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계17-18장을 정독하자).
0151. ‘누가 그리스도를 죽였는가?’
그리스도를 죽인 자(Christ Killer)는 유대인이 아니라 내 죄(罪)가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진리의 가장자리에까지 이르지 못하였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모두가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다(엡2:3).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의 영혼속에 들어옴으로써 그리도인이 되었다. 우리가 행한 무슨 일의 결과로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간의 의(義)는 “더러운 옷”(사64:6)에 비유된다. 아버지 하나님 한 분만이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드신다.
그리스도의 복음 자체가 시사하는 모든 것과 관련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를 깨닫는 은혜이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처럼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하는 이 없도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난바 계시고…”(딤전3:16, kjv)라고 크게 외칠 수 있는 ‘복된 확신’이다.
할렐루야!!!
영화로신 주 성령
나의 맘에 비추사
어둠 몰아내시고
밝게 하여 줍소서
나의 맘에 비추사
어둠 몰아내시고
밝게 하여 줍소서
(찬 176 / 영화로신 주 성령 ①)
구영재 선교사 [KOO / PO Box 8844 Victoria, BC V8W 3Z1
Cana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