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17일 토요일

길진리생명이신 그리스도 예수 < 16 >






0078.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기독교회를 향한 유대인의 감정은 단순하지가 않다. 복잡하다못해 처절하다. 중세 로마카톨릭교회의 일곱 차례의 십자군 원정(역사가에 따라서는 여덟 차례로 보기도 함)은 유대인들에게는 또 다른 재앙이었다. 성지순례자들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살육과 약탈을 일삼아온 로마교황청의 야욕을 그대로 표출한 역사였다.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십자군’(Crusade)이란 단어를 혐오하기 때문에 CCC (Campus Crusade for Christ)가 유럽대륙에 상륙하면 CC (Campus for Christ)로 바뀐다. ‘회칠당한’ 교회사에 속임당한 북미교회나 그 영향아래 있는 교회들이 아직도 십자군의 망령에 묶여있는 것이다. 로마교황청의 지원아래 천주교 ‘십자가’ 깃발 아래서 결단, 로마카톨릭교회의 아들 ‘나치’ 히틀러의 유럽침공과 600만이 넘는 유대인 살육을 감행한 ‘20세기 십자군 나치’ 역사를 통해 기독교를 보는 유대인들의 감정은 치유가 불가하다할 정도로 그 상처의 골이 깊다.

이스라엘에 가면 초등학교의 산수 교과서에는 만국 공통부호인 더하기(+)표가 없다. 십자가 모양이라 하여 ‘더하기표(⊥)’ 모양이 우리와 다르다. 숫자 4안에도 십자가 모양이 있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숫자 4는 변형된 모양( )이다. 국제 적십자 기관도 있으나 붉은 십자가 모양을 쓰지 않고, 청색의 ‘다윗의 별’( )로 대신하고 있다. 다윗의 별로 알려진 이 별은 유대인의 백과사전에 의하면 실제로는 다윗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임을 『히브리』대 교수들과의 만남에서 알게 되었고 전 세계 33개국이 넘는 국가에서도 발견되어지는 별이다. 헤르츨이 초안한 이스라엘의 국기는 ‘일곱 별’을 그린 것이 그의 스케치북에서 발견되었으나 이 다윗의 별은 유대교의 비교(秘敎) 카발라(Cabbala) 종교에 심취하였던 독일계 유대인 은행재벌 로스차일드(M. Rothschild, 1743-1812) 가문의 후손들에 의해 채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5년도 더 된 지나간 이야기이지만 ‘반(反)셈주의’ (Antisemiticism)란 주제로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과 ‘야드 바셈’(Yad Vashem)이 주관한 여름모임(Summer Session)에서 필자가 받은 교육은 건국 이스라엘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전세계에서 20여명이 선정된 모임이었는데 하루 7-8시간씩 강행된 강의가 거의 1개월간 계속되었다. 마사다(Masada)와 텔아비브의 ‘유대인 박물관’견학 외에는 예루살렘의 온 여름을 강의실에서 보냈다. 성지(聖地)의 이곳 저곳을 여행하게 되리란 계획과 기대는 포기한 상태였다. 여러 명의 『히브리』대 교수들의 강의 중점은 2000여년의 유대인들의 방황과 십자군, 나치의 대학살 등의 모든 불운을 기독교에 돌리고 있었다. 유대인들이 기독교와 천주교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필자의 지적으로 인해 시간마다 들어오는 유대인 교수들의 어색한 눈총을 받게 되었다. 미국 태생의 플로리다주(州)에서 온 젊은 유대인 ‘랍비’가 자기는 필자가 언급한 사실들은 다 이해하고 있다면서 교수들도 잘못 알 수 있지않겠냐고 반문하였다. 착하고 진실하게 보였던 그의 위로로 지루했던 1개월간의 강의를 견뎌낼 수 있었다.


중세 십자군 원정을 통해 예루살렘을 탈취하려던 로마교황청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으며 저들은 그 야욕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천주교의 아들 히틀러의 다음 목표는 ‘예루살렘’이었으며, 그 당시에 이미 예루살렘에 세워질 로마교황청의 청사진이 완료되어 있었음을 『예루살렘 포스트』(The Jerusalem Post, Apr. 3, 1993)가 보도하였다. 1994년 말, 이스라엘은 중동의 평화를 위해 로마교황청에 ‘예루살렘의 양도(讓渡)’를 합의하였다. 예루살렘을 바티칸에 맡겨 세계 평화의 중심으로 삼겠다는 계획으로써 예루살렘의 시장으로는 이스라엘측과 팔레스타인측 시장이 선출될 것이지만 두 시장은 로마교황의 지시를 받게 된다. 예루살렘은 제2바티칸이 되어 교황의 지배하에 세 종교(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를 대표하도록 되어있다. 이스라엘이 로마교황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되면 무역과 관광 등에서 큰 도움을 받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간의 갈등도 쉽게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도 표시했다. 이스라엘을 삼겹 사겹으로 둘러싸고 있는 18개의 아랍국가들과 중앙에 놓여있는 이스라엘을 비교한 지도의 국토면적을 보면 이스라엘은 마치 대형 축구장 한 복판에 놓여있는 휴대용 노트북 컴퓨터 한 대와 같은 크기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로마교황 아래 두기로 제시한 이스라엘의 ‘라빈’(Yitzhak Rabin, 1922-95)수상은 1년이 채 못되어 암살 당했다. 그는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로서 고토(故土)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최초의 수상이었다.

0079. 『라테란』공회
AD 445년 야심적이며 활동력이 강한 로마의 『레오』주교는 로마교회의 수위권에 몰두, 스스로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로 선언하고 로마교회의 우위를 주장하기 위해 성경에 없는 교리들을 창안해 내기 시작하였다. 황제의 에큐메니칼 교회가 존속한 325-1054년 까지는 아직도 황제 자신이 교회의 머리가 되는 최고승원장(Pont. Max.)의 칭호를 지니고 있었고, 이 기간동안에는 로마교회의 교황권을 언급한 믿을 만한 문서는 단 하나도 존재한 적이 없다. AD 1054년, 수위권 다툼으로 동방교회와 갈라진 로마교회는 1123년에 가서야 유럽대륙에서는 처음으로 자기들만의 모임인 라테란(Lateran) 공회를 개최하였다. 그 후 최근의 제2바티칸공회(1962-65)에 이르기까지 13번의 공회는 모두 로마카톨릭교의 영토안에서 개최되었고 동방교회에서는 이를 인정치 않는다.

0080. 십자군 원정의 시작
로마종교 안에 늘 있어온 세력다툼으로 동방교가 생겨나자 이 ‘어미’(The Mother, 계17.5)는 곧이어 십자군원정이란 악(惡)을 세상에 내어보냈다.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성지순례자들을 보호한다는 구실 등과 함께 1096년 부이용(Bouillon, 현 벨기에 남부의 小都)에서 시작된 첫 십자군원정군은 처음부터 로마교황청의 대외기업(對外企業)으로서 약탈과 살인을 일삼았다. 예루살렘 성을 장악, 땅 위의 모든 권위의 구색을 갖추려고 하였던 이 어미 종교는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갈4:26) 기록된 기독교의 어머니의 모조품이다. 『라틴』형의 십자가로 요란하였던 『십자군』들은 『유대』인 등을 대량 살육하였고, 200여 년 동안 유럽사(史)를 피로 칠한 7차의 십자군원정은 로마카톨릭교회가 산출해낸 탐욕의 열매로써, 로마교황의 세속적 권력을 크게 증대 강화시켰다. 옛 로마제국의 혼(魂)은 1273년에 다시 로마카톨릭교회 안에서 신성로마제국이란 제국을 품었다. 제수이트 교육을 받은 볼테르(F. Voltaire, 1694-1778)에 의하면,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적(的)이지도 아니한(사실은 『게르만』적이었다.), 한 제국도 아닌’, 이 비밀의 큰 바벨론은 세상영토 확장에 광분하였다. 오늘 날까지 로마교황은 해외여행 중 비행기에서 내리면 그 나라의 영토에 입맞춘다. ‘이 땅도 로마카톨릭교회의 영토가 되게 하소서’라는 염원과 함께...

0081. “교회와 국가를 하나로 묶은 『니케아』(Nicaea) 공회”
에큐메니즘 종교사에 나타나고 있는 공회를 기독교회 공회라고 믿는 것은 중대한 오해이다. 이는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복음이 아닌 종교에서 찾는 어리석음과 같다. 예루살렘 공회 이후로 모든 공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에 대적하는 교리를 산출한 ‘사단의 회’(계2:9)였다. 교리제정, 이단근절의 미명하에 콘스탄틴 황제의 명(命)에 의해 소집된 니케아(Nicaea, AD 325)공회는 교회와 국가(Church and State)를 하나로 묶는데 이용된 공회였다. “그리스도의 신성”교리를 제정하였다고 하나 성경에 이미 예수님의 신성이 기록되었으며, 콘스탄티노플 공회(AD 381)가 “성령의 신성”을 제정하기 전에 이미 성령께서는 신성하셨던 분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해서 성경이 “성(聖, Holy)”령이라고 말씀했단 말인가? 마치 인간들의 공회가 산출한 생명없는 거짓된 고백이 기독신앙을 보호해온 것 같이 착각말라. 황제들은 공회들을 정권유지의 목적으로, 이미 권력의 창부로 타락한 교회를 교리제정의 미명하에 황제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을 때는 언제든지 소집이 가능하였다. 로마종교의 이단교리들 대부분이 이러한 공회를 통해서 산출되었으며, 성경에 기록된 모든 공회는 늘 주님을 대적한 사단의 공회였다(요한11:47-53 및 행4:14-28 참조, 꼭 읽으시기를...).

0082. “하나님의 어머니 마리아?” 에베소 공회(AD 431)는 마리아를 두고 “하나님의 어머니”(Theotokos)란 이름을 뒤집어 씌웠고, 이 교리는 1931년 비오 11세에 의해 재확인되었다. 칼케돈 공회(AD 451)가 마리아 숭배(Mariolatry)을 제정함으로써 이교의 대모(Great Mother) 숭배죄에 빠지게 하였다. 져스티니안 황제는 콘스탄티노플 공회(AD 533)를 이용,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도성”원리를 이용, 지상통치를 꿈꾸었고, 로마의 주교는 세계교회 위에 군림할 음모를 꾸몄다. 기독교 고전(古典)의 하나로 둔갑한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도성’은 실제로는 ‘요한 계시록’을 철저하게 대적하는, 즉 하나님의 말씀을 반역하는 책이다.

또 다른 니케아 공회(AD 787)는 죽은 성자, 순교자에 대한 기도의 효험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공회였다. 사제들의 결혼을 금한 라테란 공회(1123년), 수백 년 동안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한 악명 높은 종교재판소는 베로나 공회(Verona, 1184)가 만들지 않았던가! 화체설 교리를 만들고, 사제들에게 고해성사를 하도록 한 라테란 공회(1215년), 그레고리 9세에 의해 성경을 금서(禁書)로 확정하고 생명에 이르는 길을 차단한 발렌시아 공회(1229년), “주의 만찬”에서 성도들에게 잔을 금한 콘스탄스 공회(1414년), “7성례전”을 제정한 플로렌스 공회(1439년), 트렌트(1545-63년) 공회들... 무슨 말을 더하랴?


환란 중에 하는 말 예수 구원하신다
다시 살아나시어 예수 구원하신다
지은 죄를 인하여 슬픈 맘이 있어도
숨질 때에 내 할 말 예수 구원하신다
(찬송가 252 / 기쁜 소리 들리니 ③)

구영재 선교사 [KOO / PO Box 8844 Victoria, BC V8W 3Z1 Canada]
 
 
 
 
 
 

4인 4색 밴쿠버 목양일기







10여년 전에 홍석천이라는 개그맨이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이 일로 지금까지도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 분 덕분에 동성애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이 바뀐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동성애를 옹호하지도 않고, 동성애자도 아닙니다. 그런데 저를 좀 커밍아웃 하려고 합니다. 목사로서의 커밍아웃입니다. 제가 크리스챤 신문에 글을 쓰기로 했다고 알리자, 아내는 제발 너무 솔직하게 쓰지 말라고 부탁을 합니다. 주변의 목사님들도 목사의 품격을 지켜서 쓰라고 충고를 합니다. 저에게 작은 욕심이 있다면 목사의 품격보다는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서, 삶에서 부딪치는 일들에 대한 고민과 거기서 얻는 작은 깨달음이라도 솔직하게 나누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글을 쓰게 된 동기일 뿐입니다.

2000년부터 밴쿠버 이민생활을 하면서, 한동안 목사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린 적이 있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이유입니다. 가장으로서 의식주를 책임지기 위해서는 목사의 품격만 가지고는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아닌 다른 필드에서 여러 직업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누군가는 저를 부장님, 선생님 또는 그냥 일하는 아저씨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자랑하고 내세울 일은 아니지만 이민자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를 이해할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과 경험이었습니다.

공항 라이드를 한 적이 있습니다. 손님 중에 크리스챤이 많았습니다. 가끔 저에게 전도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어느 교회 다니세요?” 묻고는 자기 교회를 소개합니다. 대부분 큰 교회에 다니는 분들이 더 적극적입니다. 교회에 대한 자긍심이 강해서 그런지 교회에 다닌다고 해도 노스 밴쿠버에 살면서 써리에 있는 교회에 다니는 분이 자기 교회에 나오라고 설득을 합니다. 꼭 그래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한 번 이야기 했으면 합니다. 하여튼 이런 상황들이 저에게 심적인 부담이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목사인데 먼저 전도하고 새로 시작된 우리 교회를 알려야 하는데, 반대로 전도를 받는 상황이 벌어지니 속으로 답답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도 직업 특성상 한 번 만나고 다시 만나는 경우가 적어서 나름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었습니다(반어적 표현입니다).

제가 좀 내성적입니다. 어릴 적 수업 시간에 방귀가 나오는 걸 너무 오래 참다가 속병이 난 적도 있습니다. 성품 탓인지 ‘크리스챤이다’ 라고 말하는 게 너무 어렵습니다. 뒤돌아보면 모태신앙인 저는 크리스챤이란 사실을 공개하면 따라오는 시선과 제약이 싫어서 그랬던 거 같습니다. 사도행전 11장을 보면 안디옥 교회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크리스챤)이라는 호칭을 듣게 됩니다. 안디옥 교회도 이민교회였습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파송된 바나바와 바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그들은 신앙으로 살면서 삶이 변화되었기 때문에 ‘다르다’는 의미로 존경심을 담아 크리스챤이라 불리게 된 겁니다. 저에게 이번 글쓰기가 ‘달라지기 위한 의미 있는 커밍아웃’이 될 거라 믿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저희 4인의 목사들은 개척교회 혹은 지역 교회를 담임하면서 목회현장에서 경험하는 일들에 대해 진솔하게 자신들의 색깔로 표현하며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저도 이번에 단단히 마음먹고 목사로서, 또 이민자의 고단한 삶 가운데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던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어떻게 하면 어지러운 이 세상 속에서 온전한 크리스챤으로 살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 보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기회를 주신 크리스챤 신문 발행인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오세규 목사 / 밴쿠버오늘교회 / 778-887-8648]
 
 
 
 
 

사망에서 생명으로 (4)



5. 원수를 사랑하라!



하나님 나라의 자유인으로 오늘을 살고계시는 밴쿠버 그리스도인 여러분에게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더욱 차원 높은 주님과의 끈끈한 교제와 소통이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새벽기도시간에 만난 하나님, 그 짧은 시간에 내 인생을 이미 디자인하시고 방콕에 오기까지 치밀한 계획 가운데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으면서 나의 생명을 창조하시고 또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실 아버지가 계시다는 사실 앞에 저는 감격하고 또 감격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뚜렷하고도 정확한 한 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원수를 사랑하라’는 소리였습니다.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행을 결심한 저에게는 분명한 세 가지 목적이 있었고 그 중에 한 가지가 바로 ‘원수를 복수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정확하게 나의 마음을 꿰뚫어보실 줄은 상상도 못했기에 그 음성을 듣고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나를 괴롭게 하고 아프게 했던 사람들을 향한 보복과 복수는 당연한 것이고 정당하다고 변론할 만도 했을 텐데 놀랍게도 저는 그 음성을 들음과 동시에 눈앞에 보여지는 환상을 보면서 바로 주님께 이런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눈앞에 보여졌던 그림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를 흘리시는 주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주님을 바라보면서 떠오른 말씀은 ‘내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 3:16)라는 이 땅의 모든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의 사랑이셨습니다. 하여 저는 “아, 주님! 나를 괴롭히고 못되게 굴었던 그 사람들(한족+조선족)이 주님을 몰라서 그랬군요. 그들이 주님을 알았더라면 그런 나쁜 마음으로, 나쁜 짓을 하지 않았을 텐데요.”라고 고백하면서 그냥 그 사람들이 용서가 되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말씀드리면 주님이 시켜서 되었던 것이 아니라 말씀과 함께 십자가의 복음의 핵심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성령이 도우셨기에 그냥 되어진 것이었죠. 주님을 만나는 자리에서 성령은 제 스스로 깨닫게 하셨고 십자가의 참 복음에 대하여 동의하게 하셨던 것이죠. 이러한 첫 만남의 현장에서 일어났던 일들과 저의 신앙고백을 하게 하신 것이 결코 그냥 되어진 것이 아님을 저는 훗날 사역하면서 더 깊이 깨닫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관찰하다보면 하나님께서 각 사람들을 만나주시는 방법과 모양이 다 다른 것을 알게 됩니다. 어쩌면 그 첫 만남의 부르심이 그 사람의 destiny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주님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위와 같은 고백을 하게 하신 이유는 바로 제 인생 전체를 이끌어가실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는 핵심이었음을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 이 문제는 특별히 한민족 안에 시행되어야 할, 영적인 묶임들을 풀어낼 수 있는 귀한 키 같은 것이었습니다. 억지로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 나아가 간절히 간구하며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경지까지 가게 해달라고 기도해야만 하고 그렇게 될 때 우리는 화해자로, 화해의 직분을 감당하는 민족으로 서게 될 것이고 종국적으로 열방이 주님 안에서 화해의 열매를 맺도록 이끄는 귀한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들 사이에 막힌 담을 육체로 헐어내시려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방문은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계속>

[오 테레사 선교사 / ot2022@hanmail.net]
 
 
 
 
 

교회음악Plus


찬양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



찬양이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찬양은 하나님의 거룩한 신성에 대해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우리의 속에 있는 인격과 내적인 행위를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밖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때, 그가 누구이신지를 증거하며
우리가 믿는 믿음을 밖으로 드러내게 되므로 우리 자신의
믿음과 생각과 생활을 스스로 돕게 되는 것이다.

시편을 읽다 보면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성품과
그의 인품을 보고, 알게 되며,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의 찬양인 것이다.

(시 9편 1절)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사를 전하리이다

홍동근 / 목사, Music Minister

정성헌 선교사 선교칼럼 (40)



내가 이제야 응답하노라



카라칼팍스탄에 도착한 나는 아파트를 임대하여 기거하며 교회개척을 시작했다. 옆집에는 새롭게 선교사로 부임한 연세가 지긋하신 김 선생님 가정이 살고 계셨다. 김 선생님은 미국에서 동원사역을 하시다가 현장으로 나오셔서 학원에서 비즈니스 영어를 가르치고 계셨다. 아침마다 사모님이 가족을 두고 온 나를 불러 식사를 대접했다. 나는 늘 허기지듯 아침이 기다려졌다.

과부 6-7명과 아이들로 모여 시작된 가정교회는 고려인 문화센터 안에 있는 방 하나를 임대하여 예배처를 옮겼다. 한국에서 목사가 왔다는 소문과 함께 본격적인 전도가 시작되면서 가정 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두고 와서 홀로 때론 외로움이 몰려 왔지만 갓 예수를 믿기 시작한 성도들을 양육하고 열심있는 몇 사람을 집중적으로 훈련하느라 변변찮은 러시아 말로 하루 하루를 치열하게 살고 있었다.

혼자 생활한지 3개월이 지난 11월 중순. 성도 한 사람이 급히 달려왔다. 한국사람이 자기 집으로 전화를 해서 나를 찾았는데 다시 전화를 할 것이니 나를 불러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택시를 잡아 타고 그 집으로 갔다 얼마 뒤 전화 벨이 울렸다. 놀랍게도 수영로교회 선교담당목사였다. 그 당시만 해도 그 곳으로 국제전화가 연결되질 않았다. 놀란 나는 어디서 전화를 하느냐고 물었다. 타슈켄트에 도착해서 파송선교사를 방문 중인데 내일 선교부장 장로님과 함께 나를 만나기 위해 내가 있는 곳으로 내려 올 것이라며 비행기 도착시간을 알려주었다. 나는 갑자기 웬 일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기쁜 소식을 들고 갈 것이라며 전화를 끊었다. 기쁜 소식? 설레는 마음으로 거의 잠을 설쳤다.

시골 한적한 공항에 내린 두 사람의 차림새가 튀어 멀리서도 한 눈에 들어왔다. 마중 나온 나를 연세 지긋한 장로님께서 꼭 껴안아 주시며 “목사님, 수고가 많으십니다. 저희 교회에서 목사가정을 파송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무리 연락을 취해도 제대로 연결이 되질 않아 직접 현장을 방문하고 목사님을 모시고 갈려고 왔습니다. 파송준비가 다 되었으니 한국으로 가시기만 하면 됩니다.” 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교회가 본 출신교역자가 아니면 파송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는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선교담당목사는 교회가 숙고 끝에 우리 가정의 파송하기 위해 규정을 고쳤다고 설명했다. 참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놀랍기만 했다.

한국에서 손님이 왔다는 소식에 온 성도들이 모여 두 분을 환영했다. 장로님은 처음 예수를 믿는 고려인 할머니들의 간증을 듣고는 감격하셔서 제대로 드시지도 못했다. 그렇게 몇 일을 지내고 나는 두 분을 따라 파송을 받기 위해 한국으로 갔다.

떨어져 생활하던 아내는 거의 회복이 되어 있었고 아이들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파송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에 아내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부산으로 내려간 우리 가족은 교회에 도착하여 게스트 하우스로 안내되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나는 몇 일간 잠을 설쳐야 했다. 숙소는 골목 하나를 두고 본당 지하의 기도실과 불과 몇 미터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밤새 기도하는 소리로 숙면하기가 어려웠다. 몇 일이 지나자 기도실에서 부르짖는 기도의 내용들이 조각모임 하듯 내 마음에 그려졌다.
‘부산성시화, 민족복음화, 세계복음화’
이삼 주가 지나고 파송예배를 드리는 날이 되었다. 예배 직전 나는 먼저 기도하기 위해 본당으로 들어갔다. 본당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 앞자리로 걸어 나가는데 강대상과 붙여진 배너가 한 눈에 들어오는데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바로 9개월 기도할 때 꿈으로 보여주셨던 그 꿈 그대로 였다. 흰 강대상과 뒤에 걸려진 ‘카라칼팍종족입양 정성헌, 김은숙 선교사 파송예배’라고 쓰인 배너. 내 마음의 소원을 주시고 결국 이루어주신 그 주님 앞에 감사하고 감격했다.

파송예배가 시작되었다. 선교사 서약이 끝나고 안수를 하는데 많은 분들이 강대상으로 올라와 파송기도를 했다. 그 많은 기도 속에서 끓어 앉은 나에게 주님이 찾아 오셨다. 내 귀엔 더 이상 어떤 사람을 기도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무슨 차단벽, 마치 방음벽이 쳐진 것 같았다. 주님은 일대일로 대면하시는 것처럼 내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야 10년 전 너의 기도를 응답하노라.” 순간 나는 주님, 제가 10년 전에 무슨 기도를 했지요라는 질문이 나갔다. 그러자 너무도 선명하게 사진처럼 한 장면이 크로즈업 되며 나타났다.

서울올림픽이 한창이던 1988년 9월말 올림픽선교컨퍼런스가 열렸던 서울광림교회 본당에서 내가 정필도 목사님의 와이셔츠 옷깃을 붙들고 기도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주님 저는 서 발 장대를 휘둘러도 맞을 사람이 없는, 사돈에 팔촌 중에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 없는 가정에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저를 긍휼히 여기시고 민족복음화, 세계복음화를 위해 목회하신다는 이 분과 동역할 기회를 주십시오”

[SEED Canada 대표 / 778-316-3579]
 
 
 
 
 

예수님의 마음 치유


제 15 장 점점 씩씩해져가는 여성들 (Tomboys), 작아져가는 남성들



한국 여성들이 점점 씩씩해져간다. 사회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약진해 간다. 수 백 년 유교 전통과 관습아래 숨죽이며 눌려 살던 여성들이 드디어 자유와 평등을 경험하며 자존감을 회복해가고 있다. 너무나 반가운 일이고 경하해 마지않을 귀한 일이다. 한국 민족의 미래를 축복하시며 격려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이고 축복이다. 북미 주에 살면서 이곳의 여성들의 위치와 건강한 자존감을 날마다 경험하는 우리 부부에게는 더욱 반가운 일이다. 앞으로 전 세계에 한국 여성들의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지리라.

그러나 모든 긍정적인 면 뒤에는 그림자가 있고, 급한 성장에는 반작용과 성장통이 있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약진하면서 그 반작용으로 많은 남성들이 급격하게 작아져가고 있다. 성적인 대결이나 파워 게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이 겪어온, 또 겪고 있는 현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며 그 상황이 당신의 삶에 지금 미치고 있는 영향력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톰보이”는 학문에서 쓰는 단어가 아니다. “씩씩한 여성”이라는 뜻으로 우리 부부가 사용하는 단어다. 어느 나라엘 가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만 남아 선호 사상이 심한 나라일수록 그 정도가 심각해진다. 중국이 그렇고 이슬람권의 여러 나라도 매우 심각하다. 먼저 우리보다 이 경향이 심각한 중국 사회의 상황을 살펴보자. 중국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의 상황을 비교해 보시기 바란다.

1. 지나치게 씩씩해진 중국 여성들

중국 본토의 거의 모든 여성이 씩씩하다, 모든 면에서 남자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다. 무서운 게 없다. 가까이하기에 매우 부담스럽고 겁이 난다. 여성스러운 여자와 부드러운 남자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 사회가 되었다. 나의 강의를 듣던 어느 중국인 목회자가 이렇게 탄식을 한다. “중국에서 온 아내 중 제일 좋은 아내가 타이완에서 온 제일 못한 아내보다 못한 것 같습니다.” 그 옆에 앉아있는 자기 아내 들으라고 하는 말처럼 들린다...
게다가 대부분의 가정이 아이를 하나 밖에 낳지 못했으니 그 아이는 엄마의 과잉보호 안에서 왕자, 공주로 자라난다. 딸은 엄마처럼 강해지고, 아들은 엄마에 눌린 마마보이가 된다. 그리고 그 아들은 엄마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씩씩한 아내를 만난다. 뒤틀린 삶의 싸이클이 계속되어간다.

그 원인의 첫째는 심각한 남아 선호 사상이다. 이것이 “한 가정 한 아이” 정책과 맞물려서 엄청난 뒤틀림을 가져온 것이다. 그래서 모든 딸들이 태중에서 엄청난 거절 감을 느끼며 남자의 성품을 채워가지고 나오는 것이다. 온 가족이 아들을 원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도시에서는 딸을 낳으면 이름과 생일을 써서 고아원 앞에 내어다 버린다. 우리 가족이 중국 현지 선교 훈련 중에 그런 아이들을 모아놓고 기르는 고아원을 방문해서 한동안 그 아이들을 안아주고 오기도 했다. (광서성의 수도인 남녕에서)

둘째 원인은 공산당의 “남녀평등 정책”이다. 공산당 사회는 아주 어려서부터 남녀가 평등하다고 가르친다. 여자가 남자보다 전혀 못할 것이 없다고 세뇌를 시키며 실제로 그렇게 기른다. 탁아소에서부터 그렇게 가르쳐왔다. 70년 세월이 흐른 지금 여성스러움은 ‘연약함’이 되었고 반동 세력이 되었다.
그래서 중국 여성들은 “자신도 모르게” 남성과 (아들과 남편을 포함해서) 쉬지 않고 경쟁한다. 그리고 이겼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여성스러움이 참으로 귀중한 것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채로 인생을 살아간다. 그리스도인이 되고, 집사가 되고, 목사 사모가 되어서도 말이다. 대화다운 대화를 할 줄도 모르고 그런 대화가 필요한 줄도 모른다. 직업 전선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소리를 높이며 그냥 달리고 또 달린다.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이다.

이같은 중국 여성들의 경우는 우리 한국 여성들에게는 극단적인 경우처럼 보이리라. 우리는 그들보다는 엄청 좋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남아 선호 사상에도 엄청나게 크고 깊은 뿌리가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으리라.

구자형 목사(밴쿠버내적치유사역원장) saranghealing@hanmail.net






재미있는 사도행전



아름다운 유혹 VS 더러운 유혹



유혹의 두 종류, ‘아름다운 유혹’, ‘더러운 유혹’.
‘아름다운 유혹’은 그 목적이 선하고, 개인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더러운 유혹’은 조직과 개인의 삶을 철저하게 부수는 분쇄기다. 문제는 더러운 유혹으로부터의 공격이다. 이는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막기 힘든 공격이다. 최선의 방책은 유혹의 강도가 커지는 만큼 경계의 강도를 높이는 것이다.

유혹의 강도가 커지자, 경계의 강도가 실종되어 버렸다. 부부란 이름의 두 엔진이 함께 돌아 대놓고 거짓말 하고, 보기 좋게 사탄의 밥도 되어버렸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지은 시편 51:11절의 절규의 의미를 이제야 알겠다.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라는 피맺힌 외침의 의미를...... 다윗은 주의 성령이 떠나는 것을 왜 그렇게도 두려워했을까?

성령이 떠난 자리는 사탄의 놀이터로 변해 버리기 때문이다(행5:3).
사탄이 ‘아나니아와 삽비라 놀이터’에서 ‘돈’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이미 이들의 영혼에 사탄이 둥지를 틀고 알까지 낳았다. 새가 나의 머리 위를 비행하는 것,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나의 머리위에 앉아 똥을 싸고, 둥지는 못짓게 해야하지 않겠는가! 유혹! 하루 수 천 번 이상 우리의 영혼을 터치(Touch)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더러운 유혹이 사탄과 함께 나의 영혼에 둥지를 짓고 알은 못 낳게 해야 하는 것이다.

유혹이 오면 초반에 박살내라! 명심하라! 사탄은 절대 대화의 상대가 아니다.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할 대상이다(히12:4). 이들과 대화의 자리에 앉는 순간 이미 패한 것이다. 사탄은 항상 대화를 원한다. 우리를 항상 자신이 마련한 협상 테이블로 이끈다. 속지 말라! 하와가 사탄과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는가? 보기 좋게 실패했다. “적을 알아야 이긴다” 그래야 백전백승한다. ‘손자병법 모공편’에 있는 말이다.

더러운 유혹의 특징은 이렇다, 자기중심적이다. 말씀과 쌍벽을 이룬다. 숨기고 싶다. 거짓말과 자동 연결 된다(행5:4). 사도행전 5장2절을 보라!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땅값 얼마를 ‘감추매’라고 했다. 이 헬라어 ‘에노스피사토’는 ‘……에 등을 돌리다’는 의미다. 여기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횡령하고, 감추는’ 나쁜 행위를 의미한다. 이렇듯 더러운 유혹의 특징은 지극히 자기 중심적이고 거짓의 항구로 우리를 인도한다.

‘최고의 수비는 공격!’이다. 싸움을 걸어오면 기죽지 말라! 대적하라! 무엇으로 대적할 것인가?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성령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성령의 힘을 어떻게 빌릴 것인가? 그것은 바로 말씀의 힘과 능력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마귀의 간계(엡6:11)를 이기기 위해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6:17)고 한 것이다. 말씀의 검을 가지라! 승리는 이미 보장된 것이다.

오늘날 강한 유혹의 문화는 갈수록 그 마수의 손길을 넓게 펼치고 있다. 사탄은 오늘도 헛소리하며 삼킬 자를 찾아 돌아다닌다(벧전5:8). ‘참지 말고 즐겨라’ ‘아끼지 말고 쓰면서 살아라’ ‘숨기지 말고 보여줘라’ ‘걱정하지 말고 취하라’ ‘미련 두지 말고 버려라.’ ‘주저하지 말고 떠나라’ 우리를 충동질하는 광고가 주변에 차고 넘친다. 거짓 광고에 속지말라! 이것 때문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죽음을 너무 일찍 맛보게 되었다(행5:5,10).

황보창완 목사 (밴쿠버성산교회 청년부) / 778-708-5540
 
 
 
 
 

아브라함 이야기



잉태할 힘을 얻은 사라/ 창 18:9-15 (하)


마음의 중심을 살피시는 하나님
사라는 분명 작은 소리로 혼잣말을 했을 것이지만, 속마음까지도 꿰뚫어 보시는 여호와께서는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13b-14)하셨습니다. 17:21절에서 내년 이맘 때 아들이 있으리라고 하셨기 때문에, 잉태기간 10개월을 제외한다면 이 말씀을 하신 때는 길게 잡아도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은 때였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네가 지금 임신을 했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10절에서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말씀을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약속의 성취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반면, 사라는 불신한 것도 모자라 웃지 않았다고 변명을 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15절)하시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부족이 잘못된 것임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사라는 크게 당황했을 것입니다.

잉태할 힘을 얻은 사라아브라함은 다행히 불신과 완고함을 버리고 믿음으로 섰지만, 사라는 입술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이름도 고치고, 할례의식을 도왔지만 마음은 그 약속하신 말씀에서 멀어졌던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그저 귀에 듣기 좋은 소리일 뿐이고, 실제적 삶에 있어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라가 믿음을 가지도록 사라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히브리서 11:11절에 나옵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즉, 사라가 ‘잉태하는 힘을 믿음으로 받았다’고 합니다. 사라는 먼저 하나님께로부터 잉태할 수 있는 힘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사라에게 주신 말씀이 그 힘을 받을 수 있는 통로였습니다. 이때 사라가 믿고 붙잡은 것은 ‘늙었지만 자식을 낳을 수 있다’는 희망이 아니라 ‘약속하신 분이 믿을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17장에서 아브라함이 말씀으로 신앙이 견고하게 되었던 것처럼, 18장에서도 사라 역시 말씀으로 그의 신앙이 견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믿음- 말씀하신 분에 대한 신뢰믿음이란 ‘신념’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말해진 ‘어떤 내용’보다는 말씀하시는 ‘어떤 인격’에 대한 신뢰입니다. 이 신뢰 때문에 말씀이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라 역시 약속의 말씀을 믿어보려고 무진 애를 썼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24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녀의 신념은 점점 흐려졌고 하나님께서의 말씀을 비웃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갖가지 형식과 종교적 활동에 기초한 사라의 신앙을 하나님 자체를 신뢰하는 신앙으로 전환하도록 도우셨던 것입니다.

또 다른 사라의 모습- 우리의 자아
사라처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싶지만, 자신도 모르게 불신부터 앞세우는 것이 우리의 모습일 때가 많습니다. 간절히 기도해온 기도제목이 응답되리라는 확신이 들지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믿음이 떨어질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의 모습이 사라의 모습과 같다면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신 목적부터 바로잡는 것이 필요합니다. 건강이나 물질적 풍요함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아닙니다.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는 것이 나를 구원하신 목적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하면, 때로는 내가 걷는 이 길이 굽어 도는 것 같이 보일지라도 그 길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가장 선한 길임을 신뢰할 수 있고,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성도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분의 인도하심과 공급하심을 신뢰하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사라와 같이 믿음이 약해진 분들이 있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을 바로 깨닫고 하나님 그분 자신만을 신뢰하는 신앙으로 전환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정기수 목사 / 캐나다중앙교회 / 778-237-8084]
 
 
 
 
 

필객의 붓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밴프에서 열리는 교단 모임을 떠나기 전, 나의 빈 자리가 어지러움으로 남지 않도록 새벽 전에 일어나 채비를 합니다. 어질러진 옷들과 책상을 말끔히 정리하고 밀린 빨래를 돌리고 이끼가 끼기 시작한 화장실과 욕조를 약품을 뿌려 솔로 닦고 밤새 끓고 있던 곰국을 새 냄비에 덜어놓고 재워 얼려놓은 고기를 꺼내놓으면서, 이른 아침 어머니의 기척을 들으며, 잠이 많은 나는 어른이 되어도 절대 못할 것이라 했던 일을 척척 감당하고 있음이 스스로도 대견합니다.
나도 어머니처럼 영원히 이 세상을 떠나야 할 때가 반드시 곧 있을 일이고 그것이 언제가 될지 모를 일이기에, 나 떠난 자리가 깨끗하고 향기로울 수 있도록 하루하루 잘 정리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기도로 올려드립니다.

큰 아이가 공항에 내려줄 때만 해도 절대 그치지 않을 것처럼 열렬하게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비행기가 두터운 비 구름을 뚫고 날아오르자 햇살이 찬란하여, 로키 산정에 쌓인 눈과 설탕이 코팅된 것처럼 하얗게 얼어있는 캘거리 도시를 확연히 내려다 볼 수 있었습니다. 내려 밟으면 발 아래서 와작와작 부서질 것 같은 도시의 건물들을 내려다보면서 저 작은 상자 하나를 더 가지기 위해 일생을 바치고, 위에서는 점으로도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재물이나 학력이나 직업 등으로 엄청난 차이를 논하고, 코를 몇 밀리 높이고 좋은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 엄청 공을 들이며 사는 모습이 얼마나 어리석고 부질없는 일인가 생각합니다.
나의 남은 삶, 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높은 하늘 위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바로 그 사람이 되고 싶다는 기도를 드립니다.

캘거리 공항에서 밴프로 가는 버스를 타고 잠깐 졸다가 눈을 뜨니 로키의 기품있는 모습이 웅장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햇살의 광채를 입고 있는 거대한 산 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감동의 음성으로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천지를 지으신 재료가 하나님의 영광의 음성임이 실감납니다. 시편의 기자는 우리의 도움이 인간이나 상황이나 다른 어떤 것이 아닌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로 말미암으며,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신다고 말하는 산의 음성을 듣고 힘을 얻었습니다. 올 때마다 다른 상황, 다른 나이에 다른 소망을 품고 왔던 나에게도 산들은 위로가 필요한 때는 위로의 음성으로, 용기가 필요한 때에는 용기를 주는 말로, 사랑에 대한 약속으로, 꿈을 지지하는 말로, 그리운 추억의 음성으로 언제나 나를 격려하며 손 붙들어 세워 주었습니다.

겁 겁의 세월을 움직이지 않는 신념으로 버티다가 뜨거운 온천을 뿜어 올리는 자애로운 산이 오늘 나를 향해 한 없이 따스하고 촉촉한 시선을 보내옵니다. 20년 전, 거리에 어슬렁 거리는 사슴 곁에서 사진을 찍던 두 살짜리 큰 아이의 잔상이 생생하게 찍혀있는 광장을 지나며, 그 때는 오늘 내가 이 모습, 이 소망을 품고 이곳을 지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처럼, 내 인생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왔지만 오직 사랑과 은혜라는 통일된 축복의 섭리 안에 가고 있음을 마음 깊이 감사합니다.

새로운 시작을 향해 믿음으로 날아오르도록 나의 둥지를 어지럽히신 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모략이었습니다. 안주하고 있는 동안 나의 영혼이 변화를 요하는 기류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못하도록 안일과 비둔함에 길들여져, 너무나 소중한 때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했던 지난 여름의 불안한 자각에 대한 은혜로운 응답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지금 이 순간은 앞으로의 인생에서 가장 젊고, 가장 힘이 있고, 도전에 응할 가장 빠른 때이며, 돈이나 물질보다 지금 이라는 시간이 훨씬 더 고귀한 자산이기에, 돌아가 새로운 장소로 이사해야 할 일을 사역에 대한 믿음이나 삶의 의욕을 새롭게 하는 기회로 삼을 것입니다.

Savior He can move the mountain my God is mighty to save!
찬양을 부르며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다면 산을 옮기겠다고 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떠올립니다. 늘 믿음을 말하며 살고 있지만 실제로는 믿음이 없는 자처럼 못한다는 이유와 핑계가 너무 많았고, 나의 뜻을 당당히 펼치지 못하고 타인의 뜻에 길들여져 왔습니다. 자주 사람을 바라보고 사람을 기대하고 사람에 상처받고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 되면서 흔들리며 살아왔습니다.

오늘 산은 나에게 상황에 따라 요동하며 흔들리지 말고 의연하라고, 말과 생각을 허접하게 하지 말고, 하찮은 것들에 열내지 말고, 눈이 오면 당당히 맞고, 비가와도 웃으며, 햇살이 찬란한 때도 겸허한 마음으로 내게 주신 모든 관계, 내가 가진 조건들을 최고의 열정으로 사랑하면서 내일을 위해 최선의 노력과 진실을 심으며 아름다운 역사를 이루어가라고 말합니다.

모임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 나를 두르고 있는 산 같은 은혜를 의식하면서, 마지막 때까지 복음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내면에서 끊임없이 용솟음 칠 수 있는 열정의 마음을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모두가 요동치고 변질되는 곳에서, 젊은이들 눈치나 보고 그들 비위나 맞추는 허약한 인생이 아니라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당당히 지적할 수 있는, 변하지 않는 진리의 모습으로 산처럼 버티고 선 시대의 어른으로 나이가 들어갈 수 있는 은혜를 구하며 시편 기자의 시를 마음으로 읊조립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서수영 사모 / 밴쿠버크리스찬문인협회 부회장 / penofgod@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