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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한 성도로부터 목사님도 방언 기도를 하는지요? 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은사에 대한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북미주에서 또 다시 잘못된 신비주의에 대한 흐름이 생기자 아마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전 오래전
신학교 때부터 방언 기도를 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은사에 대한 모든 것을 인정하고 사모도 합니다. 그러나 은사는 교회 공동체를 세우고
주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편리한 도구일 뿐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날 우려가 되는 것은 은사 자체가 목적화
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체험하기 위한 신앙생활을 하는듯합니다. 감각적이고 현상적인 것 자체를 믿음 생활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북미주의 교회들이 이런 영향권 안에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
습니다.
이런 현상이 기독교뿐만이 아니라 오늘날의 범종교적 유행이 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에 있어서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집회에 참여해서 안수와 기도를 통해 신비한 현상들을 경험합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기독교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일어납니다. 방언, 치유, 예언, 입신 더군다나 무아지경에 이르는 단계에서 통증 없이 실제로 칼로 머리를 찌르고, 가슴을 관통시키고, 송곳으로 입안을 찔러서 밖으로 튀어 나오게 합니다. 신기하게도 상처 난 곳은 피가 거의 없고, 치료되는 회복 속도도 놀라울 정도로 빠릅니다.

이런 현상이 기독교뿐만이 아니라 오늘날의 범종교적 유행이 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에 있어서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집회에 참여해서 안수와 기도를 통해 신비한 현상들을 경험합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기독교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일어납니다. 방언, 치유, 예언, 입신 더군다나 무아지경에 이르는 단계에서 통증 없이 실제로 칼로 머리를 찌르고, 가슴을 관통시키고, 송곳으로 입안을 찔러서 밖으로 튀어 나오게 합니다. 신기하게도 상처 난 곳은 피가 거의 없고, 치료되는 회복 속도도 놀라울 정도로 빠릅니다.
현대의 종교들에게 있어서 이런 현상은 서로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공통된 모습에서 바로
샤머니즘의 얼굴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샤머니즘은 무서운 존재입니다. 그 생명이 매우 끈질깁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만 봐도 알 수가
있습니다. 삼국 시대에 불교가 한반도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한민족의 정신문화를 지배 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유교가 국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육백년 유교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보니 처음의 불교와 유교는 토착화 되어지는 과정에서 사라지고 다분히
다른 형태의 모습을 가지게 됩니다. 바로 거기에 샤머니즘의 얼굴이 비쳐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묻고 싶은 것은 “오늘날의 기독교는 안전한가? 우리의 신앙은 안전한가?”입니다. 현재 샤머니즘은
기독교에 얼씬도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전 이 질문에 부정적이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과거에는 기복신앙의 모습에서 최근에는 감각적이고 현상적인
신비주의 형태로 활발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특히 북미주의 교회들이 이 유행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영적 현상 자체에 뿌리를 두는 신앙은 자동적으로 영적 쾌락주의를 형성하게 됩니다. 좀 더 자극적이고 강한 현상을 쫓게 되면서 그런 것을 찾아 전전긍긍합니다. 반면 믿음의 성숙과 인격적인 성장과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다분히 감각적이고 현상적인 샤머니즘적인 그림자를 끌고 다닙니다. 그래서 그 영향으로 교회 공동체를 해치는 모습을 주변에서 종종 봅니다.
영적 현상 자체에 뿌리를 두는 신앙은 자동적으로 영적 쾌락주의를 형성하게 됩니다. 좀 더 자극적이고 강한 현상을 쫓게 되면서 그런 것을 찾아 전전긍긍합니다. 반면 믿음의 성숙과 인격적인 성장과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다분히 감각적이고 현상적인 샤머니즘적인 그림자를 끌고 다닙니다. 그래서 그 영향으로 교회 공동체를 해치는 모습을 주변에서 종종 봅니다.
요즘은 잘못된 종말론과 부합하여 영적 엘리트주의로 발전을 하고 있습니다. 음모론에 쉽게 빠지는 사람들의 특징이
바로 영적 엘리트주의를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잘 모르는 것을 체험하고 특별한 비밀을 소수만 알고 있다는
희열이 잘못된 엘리트 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최근에 논란거리로 북미주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잘못된
은사주의 운동과 종말론이 이것에 해당되지 않는가 생각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오늘날의 강단에서 말씀 중심의 설교가 살아나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성경의 말씀보다 강한 파워는 없습니다. 말씀보다 더한 설득력은 없습니다. 풍성한 말씀이 있으면 유행을 탈 이유가 없습니다. 모든 강단에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역사할 때, 이 땅에 건강한 교회의 부흥이 시작되리라 생각합니다.
[라일주 목사 / 로고스교회 / 778-898-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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