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
잔디와 꽃과 나무들이 잘 손질된 공원을 걸으며 나무와 풀들이 갓 토해낸 알싸한 아침 공기를 들이키니 이런 저런
풍설을 타고 날아와 탄가루 처럼 쌓여있던 폐 속의 근심이 씻겨 나가고 마음이 깊은 안도의 숨을 뱉어냅니다.
자연은 그대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실제 음성이나 활자는 없지만 나의 영혼을 깊이 어루만져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온 세상 만물을 드셨다고 하시니 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니고 호수는 그냥 호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반영한 창조의 언어들일 것입니다.
공원을 걸으며 어느덧 나의 영혼은 시편 23편을 읽어 내려가고 있습니다. 다윗이 이토록 잘 조경된 공원의 풍경을 본다면 자신의 시를 그대로 묘사한 듯한 모습에 놀랄 것입니다.
자연은 그대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실제 음성이나 활자는 없지만 나의 영혼을 깊이 어루만져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온 세상 만물을 드셨다고 하시니 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니고 호수는 그냥 호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반영한 창조의 언어들일 것입니다.
공원을 걸으며 어느덧 나의 영혼은 시편 23편을 읽어 내려가고 있습니다. 다윗이 이토록 잘 조경된 공원의 풍경을 본다면 자신의 시를 그대로 묘사한 듯한 모습에 놀랄 것입니다.
지난주에 한국으로 진학할 유학생들을 위한 진학 세미나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입시 자료들을 분석하며 영리하게
확률과 통계의 숫자들을 헤쳐가야 한다는 식의 강의를 들으면서, 당사자가 아닌 나의 뱃속에서도 “빠른 경주자가 선착할 것이고, 유력자가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고, 지혜자가 식물을 얻을 것이고, 명철자 만이 재물을 얻을 것이며, 자격증을 많이 딴 기능자만이 생이 주는 은총을 입을 것”이라는
안달이 일었습니다.
자칫 과정이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식으로 오해될 수 있는 말을 들으면서, 남들보다 쉬운 길로 가는 요령들이 교육이라는 이름 앞에 선행되어도 되나, 크게 배운다는 뜻으로 세워진 대학의 문턱을 저런 식으로 넘은 아이들에게 배움의 의미가 시작부터 하찮아지는 것은 아닐까, 늘 이리저리 변하고 흔들리는 기준에 맞추느라 늘 요동하고 안달하면서, 인내와 성실과 신뢰라는 좋은 과정을 쌓지 않고 너무나 얕은 동기와 하찮은 이유들에 약삭빠르게 움직여 다니느라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주변의 관계들이나 결혼, 그 많은 불화와 재정적인 위기들을 어떻게 극복하며 자녀들을 길러내고 그 자녀들이 사춘기가 되어 부모로서의 자격을 통째로 흔들 때, 또 자녀들을 결혼시키고 노년이 되어 가야 할 길에서 어떻게 버티어갈 것인가 나의 실패와 좌절과 시행착오의 시간들에 비추어 염려가 되었습니다.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도전은 독수리 같은 야성의
힘을 요구하는데 이렇게 일찍부터 독수리 같은 야성의 본능이 거세되어 겁에 질린 닭처럼 안일에 길들여져 얕고 쉽고 편한 길을 선호한다면, 요행히
대학을 들어간다고 해도 당장 대학 이후의 현실은 심각한 청년 실업이며 그럼으로 생존의 경쟁은 더 치열하고 치사해질 텐데 무슨 지혜와 힘으로 이런
난제들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착잡했습니다.
더구나,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쌓여온 대학을 향한 사회, 문화, 역사적인 관성 탓인지, 이런 사실이 비밀에 붙여지지 않고 이미 다 공개됐음에도 멈칫하거나 주저함 없이, 오히려 그 무모한 달림이 점점 더 강력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한쪽은 타고 있는데 한쪽은 생 밀가루 풀인 뒤집지 않은 전병을 보는 것 같은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자칫 과정이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식으로 오해될 수 있는 말을 들으면서, 남들보다 쉬운 길로 가는 요령들이 교육이라는 이름 앞에 선행되어도 되나, 크게 배운다는 뜻으로 세워진 대학의 문턱을 저런 식으로 넘은 아이들에게 배움의 의미가 시작부터 하찮아지는 것은 아닐까, 늘 이리저리 변하고 흔들리는 기준에 맞추느라 늘 요동하고 안달하면서, 인내와 성실과 신뢰라는 좋은 과정을 쌓지 않고 너무나 얕은 동기와 하찮은 이유들에 약삭빠르게 움직여 다니느라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주변의 관계들이나 결혼, 그 많은 불화와 재정적인 위기들을 어떻게 극복하며 자녀들을 길러내고 그 자녀들이 사춘기가 되어 부모로서의 자격을 통째로 흔들 때, 또 자녀들을 결혼시키고 노년이 되어 가야 할 길에서 어떻게 버티어갈 것인가 나의 실패와 좌절과 시행착오의 시간들에 비추어 염려가 되었습니다.

더구나,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쌓여온 대학을 향한 사회, 문화, 역사적인 관성 탓인지, 이런 사실이 비밀에 붙여지지 않고 이미 다 공개됐음에도 멈칫하거나 주저함 없이, 오히려 그 무모한 달림이 점점 더 강력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한쪽은 타고 있는데 한쪽은 생 밀가루 풀인 뒤집지 않은 전병을 보는 것 같은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밤이 맞도록 수고 하였지만 얻은 것이 없다는 피곤과 절망이 전세계적으로 심화되고 있습니다. 부유하여 어려움을
모르고 살아가던 사람들의 입에서 조차 힘들다는 말이 더 이상 엄살이 아닙니다. 결국 자신-을 쓰러뜨릴 도미노인 줄 모르고 투기의 붐을 타고
부동산으로 재물을 쌓았던 사람들이 결국 그 때 얻었던 것들을 다 잃을 때까지, 판교 신도시의 경우와 같은 금융권의 횡포와 어처구니 없는 장난질은
멈추지 않을 것이고, 그 잔인한 금융 시스템의 덫을 피하여 숨을 수 있는 곳은 없을 것입니다.
제자들의 곤한 모습을 보시고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어려울수록, 바깥의 바람이 거셀수록
자신의 삶에 깊이를 더해야 합니다.
성경이 경고하고 있는 대로 끝나가고 망해가는 세상임은 분명하지만 그 날과 시가 내일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천 년 후가 될지 모를 뿐더러, 우리가 이 생에서 맺은 열매를 따라 생명의 부활로 혹은 심판의 부활로 나아갈 것이기에, 내일 죽을터이니 먹고 마시자 할 것이 아닙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불법이 성할수록 삶이 진리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일은 너무 중요합니다. 이제 앞으로의 우리의 삶은 매 순간 예수님의 사람다운 사랑과 거룩한 삶의 깊이를 더해가야 할 엄중한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아무리 정확하게 분석한 확률과 통계일지라도 틀릴 수 있고, 전문가의 예언도 빗나갈 수 있고, 어떤 거대한 성도 무너질 수 있는 것이지만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님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린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경고하고 있는 대로 끝나가고 망해가는 세상임은 분명하지만 그 날과 시가 내일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천 년 후가 될지 모를 뿐더러, 우리가 이 생에서 맺은 열매를 따라 생명의 부활로 혹은 심판의 부활로 나아갈 것이기에, 내일 죽을터이니 먹고 마시자 할 것이 아닙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불법이 성할수록 삶이 진리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일은 너무 중요합니다. 이제 앞으로의 우리의 삶은 매 순간 예수님의 사람다운 사랑과 거룩한 삶의 깊이를 더해가야 할 엄중한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아무리 정확하게 분석한 확률과 통계일지라도 틀릴 수 있고, 전문가의 예언도 빗나갈 수 있고, 어떤 거대한 성도 무너질 수 있는 것이지만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님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린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드넓게 펼쳐진 잔디의 엽록색이 주변의 만물을 싱그럽게 합니다.
이 색과 어우러지면 하늘은 더 하늘답고, 꽃들도 제 색깔로 더 아름답고, 나무도 훨씬 운치가 있고 나무와 꽃도 훨씬 깊고 짙은 향기를 뿜어냅니다. 이전에는 빛깔과 향기로 드러나는 꽃이 좋았는데 이제는 아름다운 배경이 되는 초록이 좋습니다. 사람도 돋보이고 잘나 보이는 자리에 선 이들보다, 주위의 사람들을 소박하게 받쳐주는 자리에 선 이들에게 호감이 갑니다.
사랑을 색으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나는 이런 초록 색을 쓸 것입니다.
사랑을 배경으로 하면 모든 것이 아름다움을 발산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평생에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라’는 그 신실한 약속이 그리고 영원까지 보장된 미래에 대한 행복한 속삭임이 공원을 걷는 내내 영혼을 즐겁게 합니다.
무슨 은혜로 이런 엄청난 허구가 나에게 이토록 놀라운 실제가 되었는지 신기해 올려다 본 하늘이 나를 향해 익살스럽게 미소 짓고 있습니다.
[서수영 사모 / 밴쿠버크리스찬문인협회 부회장 / penofgod@gmail.com]
이 색과 어우러지면 하늘은 더 하늘답고, 꽃들도 제 색깔로 더 아름답고, 나무도 훨씬 운치가 있고 나무와 꽃도 훨씬 깊고 짙은 향기를 뿜어냅니다. 이전에는 빛깔과 향기로 드러나는 꽃이 좋았는데 이제는 아름다운 배경이 되는 초록이 좋습니다. 사람도 돋보이고 잘나 보이는 자리에 선 이들보다, 주위의 사람들을 소박하게 받쳐주는 자리에 선 이들에게 호감이 갑니다.
사랑을 색으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나는 이런 초록 색을 쓸 것입니다.
사랑을 배경으로 하면 모든 것이 아름다움을 발산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평생에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라’는 그 신실한 약속이 그리고 영원까지 보장된 미래에 대한 행복한 속삭임이 공원을 걷는 내내 영혼을 즐겁게 합니다.
무슨 은혜로 이런 엄청난 허구가 나에게 이토록 놀라운 실제가 되었는지 신기해 올려다 본 하늘이 나를 향해 익살스럽게 미소 짓고 있습니다.
[서수영 사모 / 밴쿠버크리스찬문인협회 부회장 / penofg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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