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의 표징 - 할례 / 창 17:9-14, 23-27

할례- 불신과의 단절
할례는 무엇인가를 제거한다는 의미에서 “단절 (discontinuity)”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포피’를 뜻하는 히브리어 ‘바사르’가 ‘남자의 생식기’뿐 아니라 ‘살, 육신, 혈육, 혈기’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닌 단어이기 때문에 이것을 확대해서 적용한다면, ‘육적인 것,’ ‘불신의 죄악’을 제거하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은 물론 그의 집의 모든 사람들이 불신의 죄에서 벗어나 구별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육체’에 차돌을 대어 포피들을 잘라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할례- 하나님 앞에 지켜져야 할 언약그런데 하나님은 10절에서 할례가 “내 언약”이라고 하십니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0절의 ‘내 언약’이란 단어만을 놓고 본다면, 마치 할례가 2절에 나오는 ‘내 언약’ 과 같은 의미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10절의 ‘내 언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루어 주시겠다고 주신 언약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이스라엘이 지켜야될 언약을 가리킵니다. 또한 ‘할례’ 그 자체가 언약이 아니라, ‘할례를 행하는 것’이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할 언약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고, 언약과 함께 하며, 자손 대대로 말씀에 사로잡혀 살기 위해서는 변화를 받아야 하는데, 변화받기 위해서는 먼저 불신의 죄악이 ‘단절’ 되어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할례- 언약의 표징
11절에 보면,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고 나와 있습니다. 할례란 불신과의 단절이고, 지켜야 할 언약이고, 그 자체가 하나의 구별된 표시가 됩니다. 몸에 언약의 표시를 함으로, 그 표시를 볼 때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생각하고 꼭 지키라는 뜻입니다. 오늘날 이 언약의 표징은 우선적으로 세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확대하면 우리가 신앙고백하는 모든 것 즉, 주일성수, 기도, 전도, 십일조가 바로 언약의 표징이 될 수 있습니다.
할례- 언약의 성취를 위한 준비
더 나아가 구체적으로는 언약의 성취인 이삭의 출생이 하나님에 대한 불신의 상태가 아닌, 믿음의 상태에서 이루어지기를 하나님은 원하셨기 때문에 할례를 행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이 불신의 죄악 가운데 잉태하고 출생한 아들이었다면, 이제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가 될 이삭은 결코 불신의 죄악 가운데 잉태될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삭의 출생을 준비시키기 위해, 아브라함과 그의 집에 속한 모든 사람들의 불신의 죄악을 제거하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즉, 우리는 할례를 통해서, 범죄의 도구였던 아브라함의 ‘육체’를 정결케 하셔서 불신의 흔적을 없애시고 아브라함의 후사를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사랑의 역사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할례- 모든 남자 신앙인의 의무
10절에 보면, “너희 중 모든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하나님께서 남자들만이 할 수 있는 할례를 언약의 표시로 삼은 이유는 남자에게 헤드십 (Headship)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전 11:3에,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 나와 있습니다. 또한 창 2:20절에 보면, 여자를 “돕는 배필”로 지으셨다고 합니다.
할례- 모든 남자 신앙인의 의무.......... 또한 창2:20절에 보면, 여자를 “돕는 배필”로 지으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도울 수 있다는 것은 능력이 더 많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종합하면 하나님께서 여자에게는 능력을 주셨고, 남자에게는 헤드십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는 여자의 머리로서, 가정의 대표자로서 언약의 표시를 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할례- 집에서 난 자가 받아야 할 의무12절에 보면, “너희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집에서 난 자”란 특히 어린 아이들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어린 아이를 소홀히 여기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어린 아이들도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언약 가운데 있습니다. 따라서 어린 아이들도 주일이 되면 부모와 함께 교회에 와서 예배드려야 합니다. 예배는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남녀노소 다함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집에서 난 자”들이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는 자녀들에게도 언약의 표시가 나타나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잠언 22:6을 보면, “마땅히 행할 길을 어린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나와 있다. 어린아이들도 언약의 분명한 표시가 나타나게 해야 할 것입니다.
할례- 불신과의 단절
할례는 무엇인가를 제거한다는 의미에서 “단절 (discontinuity)”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포피’를 뜻하는 히브리어 ‘바사르’가 ‘남자의 생식기’뿐 아니라 ‘살, 육신, 혈육, 혈기’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닌 단어이기 때문에 이것을 확대해서 적용한다면, ‘육적인 것,’ ‘불신의 죄악’을 제거하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은 물론 그의 집의 모든 사람들이 불신의 죄에서 벗어나 구별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육체’에 차돌을 대어 포피들을 잘라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할례- 돈으로 산 자들도 받아야 할 의무12절에 보면,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라고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 “돈으로 산 자들”이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즉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도 언약의 표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후 6:14에 보면,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라고 나와 있습니다. 만약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믿음에 있지 않다면 저들도 언약의 표시가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할례- 신속하게 행해야 할 의무12절에 보면,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팔일 째’가 의학적으로 가장 아픔을 덜 느끼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신속하게 언약의 표시가 나타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고백은 우리의 삶 속에서 더디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신속하게 나타나야 합니다. 말씀을 들었으면 바로 그 말씀을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할례- 마음에 행해야 할 의무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록 말씀대로 할례를 행했지만, 갈수록 형식적으로 할례를 행할 뿐 그 정신은 점점 희석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롬 2:25에 보면,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모세도 신 10:16에서,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예레미야도 렘 4:4에서, “...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마음 가죽을 벤다는 것은 생각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즉, 할례가 외적이고 형식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되고 내적이고 영적인 변화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할례란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에 대한 표시이고, 할례를 행하라는 것은 불신을 제거하고 신앙고백을
하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신앙고백은 자신은 물론 가정과 직장에서도 나타나야 하는데 특히 우리의 생각이 바꾸어지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아직까지
하나님 앞에서 신앙적으로 잘라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재확인하고 제거하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히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기수 목사 / 캐나다중앙교회 / 778-237-8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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