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7일 일요일

필객의 붓





나의 새 이름



어제까지 여름이었던 거리에 가을의 운치가 가득합니다. 곱게 물든 단풍이 칙칙하고 무겁던 마음을 단번에 알록달록한 소망으로 물들이고 시장을 보러 가는 길이 근사한 여행이 됩니다. 밤 사이에 멋지게 변신을 한 거리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입김이 느껴집니다. 인간의 재능과 물자와 시간으로 이 일을 해내려 했다면 너무나 번거롭고 대대적일 작업이, 너무도 조용히 순간적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모습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성실과 위대한 솜씨를 봅니다. 이래서 옛 사람들이 나무를 신성시 했나 봅니다. 이대로 얕은 생각들로 찰싹거리는 삶에서 벗어나 온통 나무에 둘러 쌓여 이 아름다운 깊이에 침몰해 버리고 싶습니다.

지난 주에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된 이름들을 읽다가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경에서는 한 사람의 이름을 참으로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성경을 처음 읽을 때 아름다운 교훈과 심오한 말들이 적혀있을 것이라 기대했다가 사람들에 관한 자질구레한 이야기가 기록 되어 있음에, 지극히 높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셨다는 책이 너무 가벼운 것 아닌가 무척 실망스러웠었는데, 그 이름들 안에 담긴 놀라운 구원의 섭리들에 눈 뜨면서, 진리는 뭔가 심오한 듯 하지만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자신도 결국 뭔지 모르겠더라 하는 텅 빈 공론이 아니라 믿음과 순종의 인생 여정 안에 체화되는 것임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임마누엘의 은총임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이름은 무엇을 남기고 갈 것 인가, 마지막 날 하나님께서 생명 책에 기록된 나의 이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실까, 늘 눈으로 대충 훑으며 빨리 지나쳐 버리던 말씀이 던지는 너무나도 엄중한 도전을 이번엔 피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이 땅에 왔음은, 나의 이름에 대한 중요한 소명이 있음입니다. 서수영이란 이름은 세 글자의 활자로 고정된 하나의 얼굴이 아니라 내가 누군가에게 남기고 있는 기억들이며 움직이는 이미지이며 살아있는 이야기들로 나의 역사로 쌓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이름들에 둘러 쌓여 살아갑니다. 주변의 아는 사람들뿐 아니라, 인터넷 세상에 열거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이름들의 환영 아래서, 그 이름들이 누리는 영화와 명성에 침을 삼키며 부러워하고 비참한 추락에 혀를 차기도 하면서, 실상을 확인할 수도 없는 이야기의 허구 속에서 자신의 이름에 대한 인식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요즘은 드라마를 실제 뉴스인양 올려놓은 기사들까지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 관한 대단한 뉴스가 떠있어 놀라 클릭해 들어가니 어느 드라마 이야기여서, 이제는 드라마가 실재라는 의식의 선을 침범해 들어오고 있는데도 괜찮을 정도로, 드라마의 천국 백성답게 이토록 드라마에 잠겨 살아가고 있는가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저도 인터넷에서 저명한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으면서 그분의 신앙이 내 것인양 끄덕거리며, 자만심에 충만하여 행함도 없는 판단만 키우고 있을 때도 많습니다. 이런 앎은 실상은 짙은 어둠이며 차라리 알지 않음만 못한 앎이라, 안다는 착각이 삶의 진실을 흐려놓고 주변에 더 큰 혼란과 번거로움만 주는 위험한 것이며 이불 속에서 핑계만 키우는 무기력함 입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다른 이름들처럼 내 삶은 환영이 아닙니다. 내 가장 가까운 가족들조차 나의 시간과 공간에 등장하지 않는 동안은 환영 속의 존재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내 삶만은 나에게 실재이며 24시간을 꽉 채우는 엄연한 현실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그래서 너무나 큰 부르심이며 우주보다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너는 이 세상에 단 하나’라는 의식을 지우시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으로 일컬을 수 없고 절대 카피할 수 없는 나만의 삶을 이룰 소명이 있다고 나를 흔드십니다.

내 기억의 문간에 놓인 방명록에도 많은 이름들이 있습니다. 내 삶이 아름답게 수정될수록 그 이름도 점점 아름다운 이름으로 바뀌어가는 것을 보면서, 그 이름들의 의미는 그 사람이 남긴 행위나 말보다도 그 이름을 해석하는 나의 기억에 달려있음을 알겠습니다. 좋은 기억으로 남겨진 이름들뿐 아니라, 나를 아프게 하고 힘들게 했던 이름들 때문에 나는 더 자라났고 더 노력하게 됐고 지혜와 사랑을 연습할 수 있었기에 고마운 이름이 될 수 있습니다. 아직도 내가 수정되어가는 과정에서 미처 정리가 되지 않은, 아프고 추한 자리에 떨어져 뒹구는 몇 개의 이름들을 위해서도 좋은 자리를 비워 놓을 것입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고, 사래가 사라가 되고,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는 은혜를 믿는 믿음 안에서 나의 이름도 새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 새 이름에 합당한 삶을 위하여 날마다 마음의 뜰에서 허접한 생각들과 게으름과 낮은 자존감의 독한 잡초들을 걷어내고 싱싱한 진리들을 옮겨 심을 것입니다.
로키산 자락에서 짙은 향기로 나를 매료시켰던 이름 모를 들꽃처럼 확실한 존재감을 가지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익명의 자리이며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을 평범하고 가난한 자리이지만 유명한 자 못지 않은 고명한 정신을 가지고, 내 이름으로 오늘이라는 현실을 아름답게 살아낼 것입니다.

앞으로 나의 이름이 일컬어질 때, 나의 이름을 보고 듣는 사람들이 마음이 따뜻해지며 좋은 기억으로 웃음 지을 수 있도록 오늘도 성실로 영혼의 풀을 맬 것입니다.

[서수영 사모 / 밴쿠버크리스찬문인협회 부회장 / penofg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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