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7일 일요일

정성헌 선교사 선교칼럼 (34)



 

건너와 우리를 도와 주세요!


실크로드의 중심이었던 하레즘주 우르겐치시에서 이은희 선교사라는 분이 타쉬켄트를 방문했다. 그곳은 수도에서 10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이었다. 이선교사님은 독신으로 고려인이 중심이 된 교회를 맡아 섬기고 있었다. 그 교회는 헤레즘주에 개척된 유일한 개신교회였다. 세례교육을 마쳤으나 인근에 집례할 목사가 없어 멀리 수도까지 올라와 나와 동사하는 이 목사님에게 집례를 요청한 것이다. 같이 가자는 제안에 나는 언어학교를 핑계 삼아 동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일 주일 뒤 선교여행에서 돌아온 이 목사님은 크게 흥분되어 있었다. 기도회 모임에서 선교여행 중 있었던 일을 소개했다. 자신이 하레즘에서 가장 오지인 카라칼팍스탄자치구로 들어가다 끄질쿰 사막에서 대낮에 선 채로 환상을 보았다는 것이다. 이목사님은 전통적인 장로교목사이고 신앙색깔도 이성적이고 의지적인 부분이 강한 분이었다. 나는 “저렇게 흥분한 것을 보니 환상을 보긴 본 모양이네!”라고 생각하다가 불연 듯 더욱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제가 차를 타고 가다가 사막에서 잠깐 쉬고 있는데 광야에 샘이 솟고, 사막에 시내가 흐르고, 꽃이 피고 초목이 가득해 지는 환상을 보았어요. 그 곳에 생물들이 살아나는 거예요. 그러니 그곳으로 주님이 저희 가정을 부르시는 것이 확실해요. 아직 그곳은 교회가 없어요. 정목사님이 교회를 맡아 주시면 저희 가정은 당장 누쿠스로 내려가서 개척사역을 시작하겠습니다.”
“아니 이 목사님, 겨우 예배당 짓고 교육관도 완공해서 지도자 세우는 일에 전념을 해야 할 때인데 가긴 어디를 간단 말입니까? 그리고 갓 시작한 신학교의 교무처장 일은 어떻게 하고요?”
“정 목사님 우리 두 가정이 한 교회에서 동사하며 섬기는 일이 아름답지만 카라칼팍스탄에는 아직 교회가 없어요. 이런 사정으로 볼 때 한 교회에 목사 가정이 둘 씩이나 있는 것은 영적으로 과소비라고 봐요. 저희 가정이 내려 가서 개척을 시작할 테니 정 목사님은 후방, 수도에서 저희 가정을 지원해 주세요!”

워낙 강한 확신을 가지고 가겠다라고 하지만 정작 가야 할 사람은 나, 우리 가정이었다.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불러내어 사명의 땅으로 나아가라고 하시는 말씀하고 계셨다.

다음 날 언어학교를 마치고 교회로 갔다. 사택의 문을 열어 주는 사모님의 얼굴에 아직 흥분이 가라 앉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 때까지도 두 부부가 심각한 논의를 계속한 모양이었다. 후배인 나를 동생처럼 생각하던 사모님은 “아니, 여기 있는 200명 교인들은 하나님이 맡긴 양떼가 아닙니까? 겨우 3년 밖에 안된 교회이고, 교회 지도자를 세우는 할 일도 태산인데 어딜 가자는 것인지 이해가 안됩니다. 정 목사님에게 맡기고 가자는데, 정목사님은 아직 언어연수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교회의 짐을 어떻게 다 지운단 말입니까? 가면 혼자 갑니까?”라며 완강하게 자신의 뜻을 밝히셨다. 그 후로도 두 부부가 간다, 못 간다 몇 일 동안 심각한 의견대립을 겪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되네이고 있었다. ‘제가 죄인입니다. 그곳은 이목사님 가정이 갈 곳이 아니라 저희 가정이 갈 곳입니다. 그 곳은 파송되기 전부터 주님이 제게 보여주시고 가라고 명하신 곳입니다. 그러나 아내가 엄두를 못내고 있습니다. 환경오염이 워낙 심한 지역이라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갈 만한 용기가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고엽제 사건 이후로 저도 순종할 자신이 없습니다.’

나는 수도에서 교회개척과 언어연수 중에서도 거실에 걸어놓은 우즈베키스탄 지도에서 애써 카라칼팍스탄을 외면했다. 아내와 아이들이 고엽제가 든 면실유로 사경을 헤매는 경험을 하고서는 더욱 지도에서 조차 그 땅을 보지 않으려 했다.

그 즈음, 톰 다니엘 선교사님과 시작한 제자훈련을 마무리하는 소박한 수료식이 있었다. 마지막 마침 기도를 하기 전 톰 다니엘 선교사님은 이선교사님과 나를 향해 이렇게 말씀 했다.

“몇 달 전 카라칼팍스탄 누쿠스에 갓 주님을 영접한 성도 몇 분이 저를 찾아 왔습니다. 수도에는 40여 선교사 가정이 있다고 들었는데 왜 카라칼팍스탄에는 선교사를 보내주시지 않느냐며 선교사 가정을 찾아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지난 주일 그 분들이 다시 저희 교회를 방문해 한국에서 온 선교사를 자신들에게 보내줄 것을 요청하고 갔습니다. 그 먼 길을 와서 선교사를 보내달라고 하는데 마땅히 갈 사람이 없으니 어쩌면 좋겠습니까?”라며 그 파란 눈으로 우리 두 목사를 번갈아 쳐다 보시는 것이었다. 차마 그 눈을 마주 보지 못한 체 나는 겨우 울음을 참았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지도를 다시 살펴 보았다. 그렇게 보지 않으려고 외면했던 그 곳으로 끝까지 몰아가시는 주님의 인도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겨우 고엽제 사건에서 벗어나 안정을 찾은 아내에게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그 곳으로 가자라는 말이 차마 입에서 나오질 않는 것이었다. 번민에 번민. 몇 일을 먹는 둥 마는 둥하며 잠을 설치며 한 숨만 쉬고 다녔다.

그런 내가 측은했는지 아내가 느닷없이 “여보, 그렇게 고민만 하지 말고 한 번 가보기라도 합시다!”라는 것이다. 나는 귀를 의심할 지경이었다.

[SEED Canada 대표 / 778-316-3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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