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5일 토요일

필객의 붓



 
 
 

시험에 들게 마옵시며

 
우리 집에서 하이웨이로 나가는 길목에는 몇 년 전 사고를 당한 사람을 위해 유가족들이 가져다 놓은 촛불과 꽃과 인형과 사진들이 놓여있습니다. 사고를 당한지 벌써 몇 해를 넘기고 있는데도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곳을 방문하는 모양으로, 맑은 날은 물론이고 비가 오는 춥고 어두운 겨울에도 우산을 받쳐들고 촛불을 켜는 모습을 자주 보았더랬습니다. 그곳은 생의 소음과 욕망과 속도로 들끓고 있는 이생에서 벗어난 진공의 공간처럼 마음에 어지럽던 생각이 순식간에 가라앉고, 쾌락과 정욕과 이생의 자랑의 세속의 거센 바람이 힘을 잃고 멎어버리는 곳 같습니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생의 마지막에서도 여전히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인생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너무도 짧고 기약이 없는데 마치 살아있는 날들이 영원히 계속 될 것처럼 생명을 소홀히 하거나 사랑하는 일을 미루지 말아야 함을 다짐하면서, 아직 나에게 회복할 기회가 있고 생명을 실현할 기회들이 있음에 감사하게 됩니다. 나 뿐 아니라 그곳을 지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생에 대한 실망감을 이겨내고 살아갈 용기를 얻고,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사랑의 마음을 회복하고, 용서하고, 이해하는 등의 선한 역사들이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애통의 자리, 세상에서 가장 아픈 저 자리에서는 아무도 마음을 높일 수 없을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시험에 들었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 시험의 대부분이 판단의 문제로 사단은 교묘하게 인간의 생각 안에 자기 의를 넣어주고 그 기준에 못미치는 사람들을 실랄하게 판단하게 하며 분열시킵니다. 교회에 나가지 않고 인터넷에서 설교를 들으면서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가나안 성도라고 하는데 그들 대부분이 교회 안에서 시험 든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인간 관계에 말려들기 싫고 부담을 피하고 언제든 자신이 편한 시간에 자신이 편한 방식으로 믿는 장점이 있다고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종교가 아니라 관계이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이론이나 지식이 아닌 체험을 통한 앎임을 간과하고 있는 것으로 그런 식의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유명 설교가들의 말씀을 접할 수 있는 것은 유익한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식으로 뭔가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목사님들의 말씀을 비교하고 판단하는 위험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교회는 말씀을 듣는 것만이 아니라 예배를 위한 섬김과 헌신과 성도의 교제를 위해 세워진,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세상과 분리되어 거룩한 삶을 살도록 서로 격려하는 공동체입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을 선하고 아름답게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영생의 복을 명하셨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인간적인 체온을 부비며 함께 울고 웃고 갈등하고 부딪히며 온전해지는 살아있는 생명체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혼자는 활활 타오를지 모르지만 거울 속의 불처럼 죄악과 탐욕의 먼지 하나도 사를 수 없는 가짜 불이며, 그들이 추구하는 바가 영이 아니라 육으로 흐르기 쉽고 그들이 추구하는 사랑과 진리가 실재가 아니라 피상이고 허구가 되기 쉽습니다. 예배는 종교적인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과 사랑의 표현입니다. 한 남편에게 속한 아내처럼 한 교회에 속하여 그곳에서 견디고 깍이고 깊어지고 사랑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바람난 여인처럼 여기저기 떠돌다보면 결국 자신의 신앙이 시큰둥해지고 판단의 정신이 굳어져 어딜가나 쉽게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율법의 요약은 정죄가 아니라 사랑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의 첫째 속성은 오래 참음입니다. 오래 참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세상에서 참는 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참는 것은 억울하고 어리석은 것이니 할 말 다하고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참지 않는 이 세대가 맺은 열매는 분열과 거역과 폭력과 불순종의 고통으로 가정과 직장, 인간 관계들이 상처와 눈물로 얼룩져 있습니다.
 
금지옥엽으로 기른 소중한 딸을 시집보내면서,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을 말하며 그 집안의 진정한 가족이 되게 했던 옛 어른들의 지혜를 생각하면, 영생을 같이할 교회 가족들이 서로 사랑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평생을 생각 없는 자처럼, 말을 못하는 자처럼, 보지 못하는 자처럼 살아도 가하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시험은 상황이나 다른 사람의 무경우 때문이 아니라 자기 마음 안에 있습니다. 같은 상황을 지나가도 시험에 드는 것이 아니라 성숙의 기회로 바꾸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음이 신실하고 겸손한 사람은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판단이 급한 사람치고 지혜가 많은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속이 정리가 안되고 불안에 쌓인 사람일수록 남의 문제를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판단합니다.
 
죽은 이의 생일이었는지 축하 풍선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습니다. 유가족들의 진지한 사랑과 기림의 행위처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교회 안에 저런 절절한 실재가 되어, 주님 오시는 날까지 더욱 깊이 사랑하고 용납하며 크고 작은 시험들을 이겨내는 굳건한 교회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서수영 사모 / penofg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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