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5일 토요일

정성헌선교사의 선교칼럼



내 부모는 나를 버렸지만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니 (2편)

 
“안나 할머니에게 부탁해 놓을 테니 한글을 배워보세요.” 차로 태워다 드리고 돌아왔다.
반 년이 지났을 즈음의 일이다. 교회 개척의 핵심이던 안나 할머니와 또 다른 성도 간에 다툼이있어 교회가 평온칠 않았다. 자존심이 강한 안나 할머니는 젊은 사람이 사람들 앞에서 자신에게 면박을 주었다며 용서를 못한다며 감정 섞인 말을 토하고 다녔다. 조용히 불러 성숙한 분들이 좀 품으라고 했더니 자기는 다시는 그 사람 얼굴을 안 보겠다고 역정을 냈다. “사람의 힘으로는 용서가 안되니 기도하는 길 밖에 없다.”라며 달이 훤히 뜬 사막 한 가운데로 기도하러 가자고 모시고 갔다. 물론 안나의 그림자 같은 슈라 할머니도 따라 나섰다. 마침 대보름이라 달이 훤히 비취는 사막에서 우리는 찬송을 불렀다. 그리고 개인기도 시간을 가지는데 안나 할머니가 대성방곡을 했다. 기도가 끝나고 용서할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하늘의 헤아릴 수 없는 별들과, 이 사막의 모래까지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 모래 하나만도 못한 나를 용서하셨는데, 왜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겠냐”고 눈물을 닦았다.
 
그 일 이후에, 두 달이 못되어 다시 분란이 나고 말았다. 이제 남들 보기도 부끄러우니 교회를 안나오겠다는 것이다. 용서해야 한다고 내가 간곡히 권면을 하는 데도 안나 할머니는 막무가내였다.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슈라 할머니가 가만히 들고 있던 한국어 성경책을 열더니 고린도전서 13장을 읽어주는 것이다. “사랑은 언제나..….” 성경에도 이렇게 사랑하라고 쓰여 있잖아요. 안나, 하나님 말씀대로 용서하세요!”

나는 눈과 귀를 의심했다. 몇 달 전 까지 글을 읽지 못하던 할머니가 한글성경을 줄줄이 토씨 하니 안 틀리고 읽어 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거의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아니,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슈라 할머니, 그 사이에 한글을 뗀 것입니까?” “예, 안나가 얼마 동안 읽는 법을 가르쳐 줘서 한글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안나할머니도 슈라가 읽는 ‘사랑장’에 감동을 받았는지 자기의 좁은 마음을 위해 기도해 달라며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어느 날 슈라가 나에게 찾아와 자신이 집안살림을 돕겠다는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을 했냐고 물었더니 죽은 자기 아들과 내가 너무 닮았다는 것이다. 죽은 아들에게는 해 주고 싶어도 못하고, 나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니 자신이 수발을 하겠다는 것이다. 추방되었다가 돌아오면서 수도에 가족을 두고 사역지를 오가는 나에게 가장 큰 문제는 식사와 빨래였다. 게다가 교회 안에 있는 사택은 늘 찾아오는 사람들이 그치질 않았다. 응답이다 생각하여 허락을 했다. 슈라는 새벽에 일어나 넓은 예배당 정원을 안팎으로 돌봤다. 밭일에 이골이 난 사람인지라 손이 가는 모든 곳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갔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슈라에게 ‘황금의 손’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사택이며 예배당에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정리정돈 하고, 틈이 나면 성경을 읽었다. 그리고 교회에 드나드는 고아들 몇 명을 지극 정성으로 섬겼다. 자신의 어릴 적 처지를 생각해서 인지 턱없이 부족한 자신의 연금으로 그 아이들의 필요를 채워주었다. 교회는 늘 배고픈 이들로 들끓었다. 많은 부분이 슈라의 부담이었다. 고아들 중 하나인 알료샤에게 특별한 사랑을 주었다. 갓 대학에 들어간 알료사는 슈라에게 러시아철자법과 읽는 법을 가르쳤다. 슈라의 손에 쥐여진 러시아어 성경은 점점 손 때가 묻어 가더니 조금씩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새벽 4시 30분에 예배당으로 가서 문을 열고, 5시 새벽기도회 준비를 마치고 혼자 기도를 시작한다. 저녁이면 9시에 예배당으로 나가 한 시간 반 기도를 하고 돌아와서 어김없이 내 잠자리를 봐 주고, 머리맡에 차주전자와 찻잔을 가져다 놓았다. 교회의 청소는 슈라의 몫이 되었다. 농아교회 개척초기 좌변기에 물을 내리는 법을 몰라 뒷일을 보고 그냥 달아나 버리면 뒷정리는 슈라의 연단 거리였다. 자신도 모르게 역정을 내고 불평을 터뜨리면 내가 나가 조용히 뒷처리를 하곤 했다. 그러면 슈라는 “목사님은 더럽지도 않습니까? 화장실 막힌 것을 치우자면?” 나는 웃어 보이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슈라할머니, 성숙한 사람이 섬기는 법이랍니다!”
몇 개월이 지나 성탄절과 연말이 가까워 오자 수도에 있던 아내와 아이들이 교회로 내려와 같이 생활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친할머니처럼 슈라를 따랐다. 아내는 교회의 성탄선물을 준비하면서 특별히 슈라할머니에게 겨울코드 한 벌을 선물했다. 곱게 포장을 해서 슈라할머니 침실에 넣어 놓았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누군가 본당에 있던 나를 불러 사택에 가보라고 했다. 사택 문을 열자 복도에는 슈라에게 선물로 준 코트가 패대기 쳐져 있고, 아내는 침통한 표정을 하고 있고, 아이들은 울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슈라할머니가 선물로 드린 코드를 보고선 역정을 내시며 “이런 것 받으려고, 내가 목사님과 교회를 섬긴 것이 아니라며 옷을 집어 던지고 집으로 가 버리셨어요.”라는 것이다.

무슨 연유가 있겠지 생각하며 차를 몰고 슈라할머니의 집으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불도 켜지 않은 방에서 아이 마냥 웅크려 앉아 울고 있었다. 한 참을 기다리다 무슨 맘 상한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목사님, 사람들이 뒤에서 내가 ‘목사님을 섬기면서 얼마나 미국달러 많이 받기에 얼굴이 저렇게 폈을까!’라고 해요. 나는 내가 좋아서 하는데, 사람들은 내게 애매한 소리를 해요. 내가 한 푼이라도 무엇을 바라고 그 일을 했으면 벌을 받아요.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의 수근 거리는 말 때문에 힘이 드는데, 사모님이 선물로 준 그 코트 걸치고 다니면 사람들에게 내가 정말로 목사님과 사모님에게 달러 받은 것이 되요. 그러면 나는 아무 공이 없어요”
나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한 줄기 눈물을 흘리고는, “내 집에 올 때도 내 허락을 받고 왔으면 갈 때도 내 승락을 받고 갔어야지요! 이건 무효! 아직 보따리도 안 풀었네요. 자 다시 갑시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목사님. 잘못했습니다. 참지 못하고 역정을 내서, 사모님이랑 아이들에게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집에 가서 하시고, 갑시다!”
 
[SEED Canada 대표 / 778-316-3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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