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2일 목요일

예수님의 마음 치유



제 15 장 점점 씩씩해져가는 여성들 (Tomboys), 작아져가는 남성들


2. 톰보이 없는 세상, 재미없는 세상

앞에 말한 중국 여성들의 모습을 염두에 두면서 당신 주위를 살펴보라. 별안간에 많은 것들이 깨달아지리라.
“아 ~~ 우리 엄마가, 할머니가 그렇게 아들을 원해서 이렇게 됐구나......”
“아 ~~ 우리 장모님이 그렇게 아들을 원해서 ........”
“아 ~~ 그래서 우리 누나들이 그렇게 억세졌구나...”
“아 ~~ 그래서 우리 남동생이 여자같이 되었고 그렇게 씩씩한 아내를 만났구나.....”
“아 ~~ 그래서 우리 아빠가 엄마에게 꼼짝을 못하는구나.....”
“아 ~~ 그래서 내 여동생이 그렇게 극성이구나.....”
“아 ~~ 그래서 내가 아내에게 꼼짝을 못하는구나.....”
“아 ~~ 그래서 우리 딸이 그렇게 극성이구나.....”

톰보이는 생활력이 강하다. “함경도 또순이”나 “자갈치 아지매”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된다. 이들은 여자들보다는 남자들과 잘 어울려 지낸다. 회사에서도 남성 사원들, 상사들과 코드를 맞추어서 일을 잘 해낸다. 모든 조직에서 꼭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고 교회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부장님, (교회에서는 목사님,)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일 제가 해 놓을게요.” 라고 선선히 말하는 여성들이 거의 모두 여기에 속한다.

선교지에 가보면 톰보이의 비율이 몇 배로 높아진다. 편안한 조국을 떠나는 담대한 결정을 내리고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 데는 톰보이의 씩씩함이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리라. 독신으로 외진 곳에서 몇 년씩 혼자서 사역을 하기도 하고, 남편들을 리드하며 사역을 개척해 나가고 혼자서 교회 건물도 멋지게 짓고 있는 모습을 본다.

톰보이,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사람들

이들은 우리 민족을 일으켜 세운 어머니들이고 산업화를 함께 이룬 역군들이다. 톰보이가 끼지 않으면 목회도 안되고, 사업도 안되고, 사는 재미가 너무 없어진다. 남자와 여성스러운 여자들과의 다리가 되는 귀중한 사람들이다. 나의 매우 여성스러워 보이는 아내도 톰보이고 두 딸도 그렇다. 오늘도 사회에서 드러나게 활동하는 여성들은 거의 대부분이 톰보이인 것을 본다. 연예인, 사업가, 직장의 중간 관리자, 정치가, 운동선수, 치어 리더, 수많은 리포터와 아나운서, 교회 찬양 인도자, 앞에 나서서 일을 추진하는 지도자, 선교사 ...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모두가 꼭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 같은 긍정적인 측면과 함께 부정적인 측면이 심각한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영적 지도자들일수록 이 비밀을 꼭 알아야 한다. 톰보이들의 장점들을 활용할 뿐 아니라 그녀들의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들과의 관계를 제대로 도와줌으로써 참으로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를 아루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톰보이들은 자신이 여성이면서도 여성적인 것을 우습게 생각한다. 여성적인 말과 몸짓을 하며 살아가는 여성을 보면 “닭살이 돋아요”. 한다. 보통의 여성이 좋아하는 작은 아름다움보다는 무언가 목표나 프로젝트를 이루어 내면서 보람을 찾으려 한다. 식탁 위에 꽃을 꽂는 것 같은 일은 그들과는 별 상관이 없다. “꽃이요? 저는 그저 식탁이나 책상 위가 깨끗하게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좋아요.”

톰보이들의 그런 씩씩한 모습 뒤에는 복잡한 마음이 있다. 자신이 남성이 되지 못한 것 때문에 남성에 대한 동경과 반감이 교차하고 있고 그것이 남성들에 대한 경쟁심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남자 동료들에게 뒤떨어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직장 상사에게는 더 바랄 것이 없는 귀한 부하가 된다. 여성의 섬세한 면이 있으면서 일에 대한 야심이 있고 상사에게 인정을 받겠다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이다. 매우 긍정적인 측면이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그 같은 마음 자세가 직장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정생활에서도, 자식들을 기르는 방법에서도, 모든 대인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특히나 남편에게 결코 지려고 하지 않는다. 부드러운 것은 ‘지는 것’이라고 새겨져 있기에 어디에서든 목소리가 높다. 소리로 상대방을 눌러버리는 것이다. 부드러운 남편과 자녀들의 마음이 많이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닫혀 버린다. 대화 없는 기계적인 삶이 되어간다.

구자형 목사(밴쿠버내적치유사역원장) sarangheali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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