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장 영의 치유와 혼의 치유
3. 영의 치유와 혼의 치유는 아주 다른 것이다

영의 ‘치유’와 영의 ‘성숙’
영의 치유와 영의 성숙은 또한 아주 다른 것이다. 그런데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혼동하고 있다. 이 혼동이 심각한 혼란을 불러 일으킨다. “영의 치유”가 가장 먼저 필요한 사람들이란 예수를 믿지 않고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영이 기절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깨어나게 해야 한다. 즉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오직 “거듭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기타의 무엇도 그들에게는 의미가 없다, 아니 오히려 해로운 경우가 많다. 일단 죽은 영혼을 살려야만 한다. 예수님의 구원의 복음의 선포가 필요하고 성령님의 “기적”의 역사가 필요하다. 선교지에서 온갖 기적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기적의 역사 말이다. 그 다음으로 영의 치유가 필요한 사람은 어둠의 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다. 즉 악령을 섬기는 자들이고 다른 종교를 깊이 믿는 사람들이다. 회교도, 불교도, 또 사탄 숭배자 같은 사람들이다.
이에 비해서 “영의 성숙”은 거듭난 사람들이 말씀과 성령으로 양육 받으며 자라나는 과정을 의미한다.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마치 어린이들이 해를 거듭하며 자라나는 과정과 같은 것이다.
영의 치유와 영의 성숙은 또한 아주 다른 것이다. 그런데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혼동하고 있다. 이 혼동이 심각한 혼란을 불러 일으킨다. “영의 치유”가 가장 먼저 필요한 사람들이란 예수를 믿지 않고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영이 기절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깨어나게 해야 한다. 즉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오직 “거듭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기타의 무엇도 그들에게는 의미가 없다, 아니 오히려 해로운 경우가 많다. 일단 죽은 영혼을 살려야만 한다. 예수님의 구원의 복음의 선포가 필요하고 성령님의 “기적”의 역사가 필요하다. 선교지에서 온갖 기적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기적의 역사 말이다. 그 다음으로 영의 치유가 필요한 사람은 어둠의 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다. 즉 악령을 섬기는 자들이고 다른 종교를 깊이 믿는 사람들이다. 회교도, 불교도, 또 사탄 숭배자 같은 사람들이다.
이에 비해서 “영의 성숙”은 거듭난 사람들이 말씀과 성령으로 양육 받으며 자라나는 과정을 의미한다.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마치 어린이들이 해를 거듭하며 자라나는 과정과 같은 것이다.
혼의 치유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혼의 치유가 도움이 된다. 대인 관계가
좋아지고 가정이 평화로워진다. 그러나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혼의 치유가 예수님 앞에 나오는 과정을 오히려 지연시킬
수 있기에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으로 내적 치유를 심각하게 시도하지 않는다. 물론 주님께서 이미 예비하신 경우는
예외이지만.
예수님이 성경에서 수많은 “기적”을 일으키셨다. 그런데 이 기적의 장면들을 주의 깊게 봐야한다. 각각의 기적이 ‘죽은 사람’ (아직 거듭나지 못한 사람)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열두 제자들을 포함해서 이미 ‘살아난 사람’을 위한 것인지, 말이다.
예수님이 성경에서 수많은 “기적”을 일으키셨다. 그런데 이 기적의 장면들을 주의 깊게 봐야한다. 각각의 기적이 ‘죽은 사람’ (아직 거듭나지 못한 사람)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열두 제자들을 포함해서 이미 ‘살아난 사람’을 위한 것인지, 말이다.
잘 믿는 그리스도인들도 “눈에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수십 년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따르던 열두제자들도 그랬다. 그들이 비록 거듭났고 하나님이신 예수님과 모든 것을 함께하며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예수님의
음성뿐이 아니라 예수님을 직접 보고 듣고 만지며 말씀을 들었지만 그들은 “세상 남편”의 큰 영향아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조금 있으면 승천하실 상황에서도 이 땅에 “왕국”을 세우고 신나게 권세를 부리는 삶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도행전 1:6)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제자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제자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기적이 아니었다. 기적을 보면 볼수록 그들의 세상을 향한 욕망은 더욱 커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 나도 저렇게 능력을 행사해서 사람들의 인기를 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육적인 마음이 자극을 받는다. 그 기적들은 제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믿지 않는 사람들을 주님께 나아오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였던 것이다.
제자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기적이 아니었다. 기적을 보면 볼수록 그들의 세상을 향한 욕망은 더욱 커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 나도 저렇게 능력을 행사해서 사람들의 인기를 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육적인 마음이 자극을 받는다. 그 기적들은 제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믿지 않는 사람들을 주님께 나아오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였던 것이다.
제자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속사람의 변화”였다. 그들이 예수님처럼 되는 것이 예수님의 목표였다. 그들의 상하고
찢어진 마음을 치료해서 그들의 영으로 받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이 되게 만들어 가시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 훈련”이었던 것이다.
말씀을 통해서 영을 “성장”하게 하면서, 혼을 계속해서 “치유”해 가신 것이었다. 영의 치유가 아니라 “혼의 치유 작업”이었다. 혼이 치유되는
만큼 영이 성장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수준이 목회자라는 그릇의 수준을 넘을 수 없고, 성도의 인격 수준이 목회자의 인격 수준을 넘을
수 없다는 말을 음미해 보시라. 그릇이 수리되는 만큼 성령의 기름이 담겨지는 것이다.
구자형 목사(밴쿠버내적치유사역원장)sarangheali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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