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과 바나나
관계의 문이 열리면서 전도의 문도 열렸다. 근처에 아직 개척된 교회가 없어 우리 가정이 전도한 성도들은 먼 곳에 위치한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사역언어인 러시아어를 배우는 일에 집중하고 있던 때라 부담이 있었지만 전도와 성경공부모임이 자연스레 교회개척으로 이어 졌다. 우리 아이들의 친구이자 곧 주일 학교 학생이 된 동네 아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초인종을 눌렀다. 우리 삶은 말 그대로 유리상자였다.
한 날 길거리 내걸린 광고를 보고 아이들에게 주려고 아이스크림을 샀다. 침을 다시는 아이들과함께 기도를 하고
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아이스크림이 변질되어 있었다.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정전이 일상이던 가게에서 녹은 아이스크림을
다시 얼려 판 것이었다. 잔뜩 기대하던 아이들의 실망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런 어느 날 터키에서 세운 슈퍼마켓이 들어서자 아이스크림이 팔기
시작했다. 종종 쇼핑을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왔다. 집에 자주 드나드는 니고라와 두 동생, 그리고 몇 몇의 아이들이 우리 집에서 아이스크림을 맛볼
기회가 있었다.
얼마 뒤 선교사 수련회가 있어 몇 일 동안 집을 비워야 했다. 외국인이 집이 비웠다는 것을 알면 도둑이 들 것을
염려해서 아나똘리에게 집을 부탁을 하고 떠났다. 수련회에서 돌아오는데 우리를 맞는 아나똘리의 얼굴 표정이 밝질 않았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것이다. 안방에 들어서자 바닥에는 진흙으로 된 신발 자국이 선명하게 말라 있었다. 일층의 방범창을 타고 올라와 발코니로 들어온
것이다. 집을 살펴보니 몇 가지 귀중품과 교회 헌금 일부가 사라졌다. 특이한 것은 냉장고의 아이스크림이 모두 사라진 것이었다. 주위를 살펴보니
아파트 출입구 지붕에 아이스크림 포장지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아이들의 소행이 분명한데 2층까지 방범 창을 타고 올라온 것은 예사롭지 않은
위험 천만한 일이었다.
다음 날 외출에서 돌아오는데 동네 아이들이 아파트 출입문 입구의 나무 위를 오르고 있었다. 니고라가 슬리퍼를 신고
나무 위로 오르는데 슬리퍼가 벗겨져 땅에 떨어지자 내 눈 앞에서 뒤집혔다. 그런데 슬리퍼 밑창의 무늬가 안방에 남겨진 그 발자국 무늬와 똑 같은
것이었다. 순간 나는 눈을 의심했다. 그러나 분명히 니고라의 것이다. 나는 아나똘리와 상의를 했다. 나는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것 같아 그냥
덮자고 했다. 그러나 아나똘리는 아이들의 성장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일층 방범창을 타고 2층으로 넘어 올 정도라면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했다. 부모에게 알려 제대로 훈육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경찰 간부인 니고라의 아버지가 어떻게 나올까 고민스러웠다.
기도하면서 니고라의 부모와 만나 진솔하게 이야기를 했다. 결과적으로 이 일로 두 가정은 더욱 가까워 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현지인의 눈에
우리의 생활이 어떻게 비춰 지고 있는지를 살피고, 위화감을 줄이기 위해 고민을 했다. 그리고 현지 사람을 실족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영적
긴장이 밀려왔다.
그러던 어느 날 시장을 갔다. 시장입구의 전면을 차지한 과일가게에 노란 바나나가 다발 채 쌓여있었다. 이것을 본
아이들은 “와! 아빠, 바나나다”라고 외쳤다. 그리고 바나나를 사달라고 졸랐다. 나는 다가가서 바나나를 살펴 보았다. 에콰도르 원산지 표시가
붙어 있었다. 에콰도르에서 쌍뻬제르부르그를 거쳐 중앙아시아까지 오다니 보니 바나나 하나의 가격은 미화 1달러 가까운 가격이었다. 현지
임금수준으로는 엄두를 낼 수 없는 가격이었다. 여유가 있는 일부 특권층 사람들에게나 결혼식에 쓰이는 장식용 과일 바구니에나 쓰일 정도였다. 먹고
싶다고 조르는 아이들의 청을 거절하기란 쉽지 않았다.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덕을 세우는 일, 그리고 현지인의 삶을 생각하니 자식들의 입에
바나나를 사서 넣어 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냉정하게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려는데 어린 둘째가 키오스크의 과일 진열대를 향해 목을 고쳐
세우고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가 아들의 손을 잡아 끌자 아들은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겨우 달래고 얼려서 다른 현지 과일을
사서 돌아왔다. 그 이후에도 아이들과 함께 시장을 갈 때면 입구에 버티고선 노란 바나나 다발은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무능, 자기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시험거리가 되어 갔다. 아이들의 유치함의 대부분은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다고 했던가! 아이들이 자라 말귀를 알아들을 때가 되었을 때 왜
바나나를 줄 수 없는지를 설명하려고 미화 100달러를 현지 돈으로 바꾸어 놓고, 바나나 1kg그램 값을 나란히 놓았다. “애들아, 이 만큼의
돈으로 6명이 한 달을 살아야 하는데, 바나나 1kg는 이 돈 중에서 이 만큼이란다. 아빠와 같이 일하시는 분은 이렇게 생활한단다. 그래서
아빠는 너희들에게 바나나를 사 줄 수가 없단다.” 아이들이 덕스러움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동안 한국, 중국 등지로의 출장으로 인해 컬럼을 게재치 못한 점 애독자 여러분께 양해를
구합니다.>
[SEED Canada 대표 / 778-316-3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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