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지는 저편 (Beyond Sunset)…”
아버지, 해(太陽)가 하루의 임무를 마치고 ‘애로우스미스’ (Arrowsmith) 산(山)을 넘어갑니다. 참으로 세월이 화살 같습니다. 우주라는 ‘빨레뜨’(palette)에 아버지께서 그리시는 황혼 녘의 그림은 황홀하고 눈물겹습니다. 긍휼은혜자비라는 세 단어가 가슴을 치며 심령을 채울 때, 나이 먹어간다는 것이 젊음보다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쁩니다. 1분이면 가던 거리를 5분 걸려 천천히 가면서도 사물을 유심히 관찰하고 느끼는 또 다른 시간을 즐기고 있습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서 산의 세미한 부분들은 그 모양세가 감춰지고, 어두움 속에서도 산능선이 뚜렷하게 선을 그어가는 것이 마지막 세상을 미리 보는 것 같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배도의 밤’은 깊어가는데 사단의 흑암의 세력들도 저들의 악한 활동을 위해 필요한 어두움이 예비된 것 같은 어지러운 세상입니다.
아버지, 저는 지금 ‘제로’ (0) 지점에 선 자신을 보고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아버지의 마음 시원하게 해드리고 싶어 성급하게 서둘렀던 그 많은 서두름들은 기다림만 길게 만들었을 뿐이었다는 생각과 이제는 죽는 것까지도 아버지의 때를 기다려야만 한다는 사실에 숙연해집니다. 거동이 불편해지고 자신들이 여러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분들을 보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오히려 자신이 아버지 앞에 다시 깊이 발견되어지는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 이것은 정말로 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씩 깨달아 알게하심이 온 하루를 기쁘고도 감사하게 합니다. 그러나 교만과 의욕, 과장된 자아(自我)에 속임당한 돌이킬 수 없는 세월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쓰려옵니다. 이것 저것 다 접고도 제대로 되어가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아 낙담, 실망한 세월들이 너무 길었습니다. 좌절감, 죄책감, 원망, 처절한 외로움….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는 것인가? 등등…
아버지, 쉽고 가볍다고 하신 주님의 멍에가 제게는 왜 이다지도 무거운지요…? 주님 저를 부르신 날부터 하루도 마음 편할 날 없었습니다. 아버지를 알아가게 되자 제 자신이 보이기 시작하였고, 또 심판아래 있는 구원받아야 할 세상과 말로 다 할 수 없는 만물의 피곤함과 신음하며 고통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이후로는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고 하루라도 지나친 날이 있었는지요? 아버지를 좀 잊어버리고 살았으면하고 크게 번민한 적도 있었지만 아버지께서 이 가련한 미물을 너무나 흔들어 놓으신지라 아버지를 잊어버린다는 것이 불가했습니다. 겨우 로마에 상주하는 저 죄의 사람(살후 2.3)이 아버지의 영광의 성호, 거룩하신 아버지(Holy Father, 聖父, 요17.11)를 찬탈하고 세상을 누비고 다니는 것 볼 때… 저는 이것 때문에도 마음이 편하지가 않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글재주가 없는 사람이 가슴 답답하여 쓰는 글이오니 아버지께서 알아서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어린아이일지라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죄의 교활성, 전염성, 파괴성의 위력으로 인해 ‘탕자의 계절’은 어디에나 와 있는데, 죄의 실체는 피하고 감정만 다루고 있는 그 많은 교회들….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여, 호흡이 코에 있는 자들로부터 인정추구를 바라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아버지의 기름부으심이 나타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 권능이 역사하여 성령님의 인치심으로 듣고 읽는 자들의 영혼에 변화가 일어나 “어찌할꼬?”(행2.37)라고 외치는 자들이, 아니면 “이를 가는”(행7.54) 자들이라도 일어난다면 제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올바로 전하는 줄로 알겠습니다.
아버지, 예수님 믿는다(‘뜰’의 신앙)는 것, 평생의 일이지만 이런 줄은 몰랐습니다. 예수님 섬기는(‘성소’의 신앙)것은 또 다르고, 예수님 따른다(‘지성소’의 신앙)는 것은 전 인격을 요구, 나의 모든 것을 철저히 내려놓는 것임을 우둔한 저는 늦게사 깨달았습니다. 주님께서 처음부터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나를 따르라’ (마4.19)고 하신 말씀이 이제사 가슴에 와닿습니다. 이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대한 생명의 유산을 전해주신 기도의 어머님을 허락하셨음을 생각할 때 감사치 아니 할 수가 없습니다. 이 땅의 나그네 길에서 변하는 허무에 열중하던 저희들 불러 택하시고 자녀삼아 주신 목적, 저희들이 이 세상에서 추구해야 할 것은 무사안일의 행복(Happiness)이 아니라, 영적전투를 위한 하나님을 향한 성결(Holiness)임을 깨닫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덧없는 인생의 잠에서 깨워주심에 감격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지 않았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 아래 있다’는 이 ‘가장 고상한 지식’을 올바르게 알리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교회는 찾았으나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그 많은 사람들이 먼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버지와 화목케 되는 역사가 불같이 일어나게 도와주시옵소서.
구영재 선교사 [문의: 크리스쳔신문]
구영재 선교사 [문의: 크리스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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