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망을 삼킨 생명 |
걷는 것은 마음에 쉼을 줍니다.
어깨에 내려 앉는 눈 부신 봄 햇살이 마음속까지 환하게 비춰드는 것 같습니다. 걷 잡을 수 없는 초록으로 번져오르는 봄 기운이 들썩이는 거리로 나서니, 마음 한켠 눅눅하던 생각들이 하얀 깃털같은 기도말로 풀려 오르고 늘 무심히 지나치던 담장 밑의 풀들이 봄 햇살에 반짝이고 있음이 눈에 들어옵니다. 냉장고의 소음에 익숙해져있던 귀가 엔진이 멎었을 때 새롭게 소음의 강도를 인식하는 것처럼, 꽉 조이던 마음의 단추가 풀린 것 같은 이완의 느낌이 들고 푸근하게 마음이 놓이는 것을 보니 지붕 아래 평소의 삶에서 조차 얼마나 마음의 엔진을 크게 돌리며 긴장이 많았었는지가 인식이 됩니다.
어깨에 내려 앉는 눈 부신 봄 햇살이 마음속까지 환하게 비춰드는 것 같습니다. 걷 잡을 수 없는 초록으로 번져오르는 봄 기운이 들썩이는 거리로 나서니, 마음 한켠 눅눅하던 생각들이 하얀 깃털같은 기도말로 풀려 오르고 늘 무심히 지나치던 담장 밑의 풀들이 봄 햇살에 반짝이고 있음이 눈에 들어옵니다. 냉장고의 소음에 익숙해져있던 귀가 엔진이 멎었을 때 새롭게 소음의 강도를 인식하는 것처럼, 꽉 조이던 마음의 단추가 풀린 것 같은 이완의 느낌이 들고 푸근하게 마음이 놓이는 것을 보니 지붕 아래 평소의 삶에서 조차 얼마나 마음의 엔진을 크게 돌리며 긴장이 많았었는지가 인식이 됩니다.

무릎을 꺾는 인간의 뉴스들에 휘청거리며 사는 삶에 탁트인 하늘을 보며 살아갈 수 있음이 정말 다행스럽습니다.
하늘을 통해 하나님이 계신 보좌를 그릴 수 있고 드넓게 펼쳐진 소망의 시어들을 읽을 수 있다면 절망을 이길 수 있습니다. 사단이 인간에게 가장
하고 싶은 것이 하늘을 가리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는 기계들을 만드느라 혈안이 된 것만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고 놀라운 컴퓨터의 세계가 0과 1의 숫자 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숫자의 가장 밑이나 위로도, 가장 작은 단위의 간격 안에도 무한대로
존재하는 숫자를 통해 만들어내시는 하나님의 광대하고 세밀하신 창조는 도무지 상상도 못할 너무나 아름답고 경이가 가득찬 세계일 것이며 천국이나
영원의 시간이 너무나 광대하고 충만할 것이라 기대가 됩니다.
건널목에 꽃이 놓여있습니다.
누군가 불의의 사고로 이 생을 떠난 자리인 모양입니다. 사랑하는 이가 빠져들어간 영원의 틈새를 더듬으며 애통하는, 누군가의 눈물이 고여있는 자리가 두렵도록 안쓰러워 눈길이 갑니다. 죽음도 이렇게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며 사람의 존재는 영원이 아니면 설명이 안됩니다. 아무리 보이고 들리는 것만을 인정하겠다는 듯 물질에 코를 박고 살아도 곳곳에서 영원의 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매일 많은 죽음들을 보고 접하며 살아가면서도 이 생의 자랑과 걱정이 영원할 것처럼 기를 쓰며 사는 것을 보면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했던 사단의 거짓말이 문자 그대로 인간의 심장에 박힌 것은 아닐까 합니다.
죽음 이후의 삶은 부활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선한 일을 행한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아갈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육체를 벗어나기 전, 이 생에서도 많은 죽음을 지나가야 합니다. 자아가 죽어야만 인간에게 부여하신 진정한 생명이 본질이 살아납니다. 날마다 죽노라 한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자아가 죽음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날마다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가정을 이루는 일도 부모가 되는 일도 죽음을 통과해야 합니다. 자녀에 대한 헛된 꿈과 기대에서 죽어야 자녀들을 제대로 돌볼 수 있고, 상대에 대한 허영심과 집착에서 죽어야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부부로서의 참된 사랑과 존중의 관계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누군가 불의의 사고로 이 생을 떠난 자리인 모양입니다. 사랑하는 이가 빠져들어간 영원의 틈새를 더듬으며 애통하는, 누군가의 눈물이 고여있는 자리가 두렵도록 안쓰러워 눈길이 갑니다. 죽음도 이렇게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며 사람의 존재는 영원이 아니면 설명이 안됩니다. 아무리 보이고 들리는 것만을 인정하겠다는 듯 물질에 코를 박고 살아도 곳곳에서 영원의 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매일 많은 죽음들을 보고 접하며 살아가면서도 이 생의 자랑과 걱정이 영원할 것처럼 기를 쓰며 사는 것을 보면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했던 사단의 거짓말이 문자 그대로 인간의 심장에 박힌 것은 아닐까 합니다.
죽음 이후의 삶은 부활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선한 일을 행한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아갈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육체를 벗어나기 전, 이 생에서도 많은 죽음을 지나가야 합니다. 자아가 죽어야만 인간에게 부여하신 진정한 생명이 본질이 살아납니다. 날마다 죽노라 한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자아가 죽음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날마다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가정을 이루는 일도 부모가 되는 일도 죽음을 통과해야 합니다. 자녀에 대한 헛된 꿈과 기대에서 죽어야 자녀들을 제대로 돌볼 수 있고, 상대에 대한 허영심과 집착에서 죽어야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부부로서의 참된 사랑과 존중의 관계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인간의 관계도 마찬가지 입니다.
원망, 집착, 쓴뿌리, 남의 탓에서 죽어야 진정한 친교와 소통의 문이 열립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는 이 고귀한 죽음이 빠져 있습니다. 교회가 비는 기도의 내용 역시 우상 앞에 비는 사람들처럼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러움의 형상으로, 나를 지지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자녀들이 보란듯이 잘되고, 승진하고 사업체를 늘려가고, 남이 부러워할 만한 뭔가를 손에 쥐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십자가 종탑 안에서 조차 자아가 시퍼렇게 살아 말다툼에서 이겨야 하고, 조금만 나를 힘들게 하면 밀쳐버리고, 조금만 부담이 되고 조금만 불편하고 조금만 이해가 안 되어도 견디지 못하고, 조금만 내 뜻에 어긋나도 욕하고 바로 등을 돌립니다.
원망, 집착, 쓴뿌리, 남의 탓에서 죽어야 진정한 친교와 소통의 문이 열립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는 이 고귀한 죽음이 빠져 있습니다. 교회가 비는 기도의 내용 역시 우상 앞에 비는 사람들처럼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러움의 형상으로, 나를 지지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자녀들이 보란듯이 잘되고, 승진하고 사업체를 늘려가고, 남이 부러워할 만한 뭔가를 손에 쥐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십자가 종탑 안에서 조차 자아가 시퍼렇게 살아 말다툼에서 이겨야 하고, 조금만 나를 힘들게 하면 밀쳐버리고, 조금만 부담이 되고 조금만 불편하고 조금만 이해가 안 되어도 견디지 못하고, 조금만 내 뜻에 어긋나도 욕하고 바로 등을 돌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차하고 누추하고 치졸한 생각에 갇혀 가슴을 치며, 미워하고 저주하고 복수의 칼을 가는 말을 함부로
뱉으면서 사는게 사는게 아니라고 울부짖습니다. 이에 대한 치유는 상담이나 심리분석이 아니라 말기암보다 더 치유 불가능한 자아를 통째로 드러내고
그 자리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채워넣음으로 감사와 축복과 영광이 가득한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는 기적을 이룰수 있습니다.
믿는 자의 부활은 완전한 영광 속에 있습니다.
욕된 것을 심고 영광스러움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을 심고 강한 것으로 살고, 육의 몸을 심고 신령한 몸 즉 썩지 아니할 것과 죽지 아니할 것을 입습니다. 꽃씨를 품고 있던 땅이 꽃을 피워올립니다.
언땅을 비집고 올라온 새로운 생명에 길게 입을 맞추는 봄 햇살에 숨죽인 바람도 빛에 녹아들어 온화한 숨을 뿜어 냅니다. 여기저기 피어난 꽃들을 보고 꽃씨를 품고 있던 땅이 어디였는지가 드러나듯 지금은 마음이 보이지 않더라도 마음에 품고 있던 것은 숨길 수 없습니다.
욕된 것을 심고 영광스러움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을 심고 강한 것으로 살고, 육의 몸을 심고 신령한 몸 즉 썩지 아니할 것과 죽지 아니할 것을 입습니다. 꽃씨를 품고 있던 땅이 꽃을 피워올립니다.
언땅을 비집고 올라온 새로운 생명에 길게 입을 맞추는 봄 햇살에 숨죽인 바람도 빛에 녹아들어 온화한 숨을 뿜어 냅니다. 여기저기 피어난 꽃들을 보고 꽃씨를 품고 있던 땅이 어디였는지가 드러나듯 지금은 마음이 보이지 않더라도 마음에 품고 있던 것은 숨길 수 없습니다.
나중의 삶이 아름답고 향기로울 수 있도록 꽃씨처럼 아름다운 기도 말을 오늘 마음에 품어야 겠습니다. 삭막하고
흉악한 소식들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 예수님의 향기요 진리의 빛깔이 될 수 있도록 생각속에 말씀만을 새겨 넣으렵니다. 봄 볕에 무섭도록 번져나가는
신록의 생명처럼, 오늘도 생명의 복음이 편만하게 퍼져 나가길 기도합니다. 꽃을 피우는 봄의 부드러움이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하는 겨울의 폭력을
삼키는 것 처럼 예수님의 진리가 죄와 사망의 폭력으로 얼룩진 세상의 눈물과 아픔과 미련과 악을 삼킬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서수영 사모 / penofgod@gmail.com]
[서수영 사모 / penofg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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