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말하는 사람들 ③ - 약한 자들을 택하사

한 날 기도중인 농아성도들의 모임에 들어갔는데 기도하던 형제자매들 몇 사람이 땅바닥에 구르기 시작했다. 은혜가
임하자 손으로 기도하다가 손의 움직임이 마음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자 쓰러져 온 몸으로 구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그 때 그들 속에 있는
주님을 향한 가난함과 갈망을 지켜보며 눈물로 기도했다. 그 후 입으로 말하는 성도들이 몸이 아프거나 문제가 있으면 농아성도들에 찾아가 기도
부탁을 했다. 그 때마다 역사가 따랐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지방 전도를 떠나는 5명의 농아교회 전도자들에게 무엇이 필요한 지 물어보았다. 그들이 전도하러 다닐 때 가는
곳의 잠자리가 너무 불결해 개인 침낭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가 침낭을 사서 선물할 때 형제들은 순교의 각오라도 한 듯이 침낭을 받아 들고
비감한 감사기도를 했다. 농아형제들이 국경을 넘어 투르크메니스탄으로 전도여행을 떠났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까지도 투르크메니스탄에는 공식적인
교회가 하나도 없었다. 투르크메니스탄 북서부 거점도시인 쿤야 우르겐치로 갔던 형제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온 교회는 기도하기
시작했고 몇 일이 지나 형제들이 돌아왔다. 전도하는 중에 경찰에 붙들려 많이 맞고 유치장에 갇혀 있다가 국경까지 호송되어 쫓겨났다는 것이다.
취조하던 경찰들이 말이 통하지 않으니 답답해서 때리고 몇 일 가두었다가 성경만 빼앗고 다시 돌려 보낸 것이다. 말 못하는 것이 이렇게 은혜라며
서로 쳐다보고 웃었다.
다섯 명의 전도자 중에 가장 신실했던 청년은 카작민족인 ‘아바이’였다. 부모와 형제들은 들을 수 있으나 그는 어릴
적에 열병으로 청력을 잃었다. 그는 잘 생기고 영민한 청년이었다. 몸은 그리 튼튼하지 못했지만 교회건축이나 모든 일에 솔선수범이었다. 어느 날
‘아바이’가 다른 도시로 선을 보러 갔다 오겠다며 떠났다. 몇 일 뒤 너무도 고운 처녀를 데리고 교회에 나타났다. 데려온 예비신부도
후천성농아였다. 농아교회 담임전도사가 된 ‘콘스탄틴’은 나에게 그들의 결혼식 주례를 부탁했다. 나는 전통적으로 모슬렘인 양가의 허락을 받아
교회에서 혼인예식을 거행하기로 했다.
농아형제자매들은 오랫동안 준비한 수화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신랑신부를 축복했다. 내가 둘이 부부가 된
것을 선포한 후 신랑신부가 차례로 양가 부모님에게 인사를 하도록 했다. 신랑신부는 그들 속에 있는 감사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먼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서서히 손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콘스탄틴이 양가부모들과 하객들을 위해 수화를 러시아말로 통역하고, 다시 볼료자는 러시아말을
카라칼팍말로 통역했다. 수화를 모르는 가족들은 이 농아 부부가 자신들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눈치로 만 헤아릴 뿐 그 때까지 한 번도 말
못하는 이들의 속내를 속 시원히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 어머니,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시고, 늘 아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가정을 가질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살아 보답하겠습니다. 그리고 형님!......” 신랑신부의 수화가 통역되어 러시아말과 카라칼팍말로 전달되기 시작하자 먼저
양가 부모들이 울먹이기 했고, 연이어 가족들과 친지들, 하객들은 복받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예배당은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되어 버렸다. 주례인
내가 겨우 진정을 시키고 양가부모들이 신랑신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고 요청했다. “아들아, 어릴 적 열병으로 귀가 먼 너를 키우며 이
어미는 평생 죄인의 심정으로 살았다. 너무 너무 미안하구나…. 그리고 이제 너를 보니 아들아, 너무 자랑스럽구나. 사랑하는 내 아들아. 부디
행복하게 살아라!”
이 말이 수화로 통역되자 신랑신부는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 고운 신부의 화장은 엉망이 되어
버렸지만 드디어 소통과 공감이 찾아온 것이다. 소통은 오랜 묵었던 담을 허물고 서로에게 깊은 사랑와 일치를 가져다 주었다. 내가 했던 주례 중에
가장 감동적인 주례였다. 내 인생에 그런 감동적인 일이 다시 올 수 있을 지?
우리 농아교회는 타직스탄으로 2명의 선교사를 파송할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한국으로 일하러 간 동생이 말 못하는 형을 위해 현지인은 쉬이 가질 수 없었던 컴퓨터를 선물로 사 준 것이다. 그
즈음에 그곳에도 인터넷이 막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가 인터넷을 통해 게임과 음란물에 노출되면서 영적으로 무너져 실족해 버리고 만 것이다. 혼자
보낼 수 없어 대기시킨 다른 한 사역자도 이성교제로 열심이 식어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실망하고 낙담했다. 특히 밤낮으로 가르쳤던 콘스탄틴과
부하라 농아형제들의 실망감은 이만 저만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정부의 핍박은 더욱 거세져 갔고 모임을 지속하기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그렇게 열심이던 농아형제들도 지쳐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세상으로 갔던 ‘막셑’이 돌아왔다.
막셑은 농아교회 개척초기에 신앙에 회의를 품고 쾌락을 쫓아 육신의 길을 가다가 교회를 떠났다. 그러나 주님은 몇 년 간 방황하며 죄악의 늪에
빠져있던 그를 다시 찾아 불러내신 것이다. 주님이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죄악 중에 있는 그를 깨끗하게 하시고, 천국의 문이 서서 닫히고 있는
것을 보여주시며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너는 일어나 복음을 전하고 형제들을 일깨우라!” 말씀하신 것이다. 막셑이 지방을 돌며 그 받은 은혜를
나눌 때 침체되었던 모임들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시 농아 리더들은 그와 함께 여러 도시를 다니며 기울던 모임을 새롭게 일으키기
시작했다.
[SEED Canada 대표 / 778-316-3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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