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장 사랑스러운 톰보이들
톰보이의 깨어진 가정
우리 부부가 중국에 나가서 치유 집회를 하고 돌아와서 거기서 만난 한 선교사의 부인과 메일을 시작했다. 세미나
중에 틈틈이 이 부인과 상담 할 시간이 있었고 두어 번 본인의 삶에 대해서 짧게지만 대중 앞에서 이야기할 시간이 있었다. 대화를 나누기가 매우
어려운 상대였다. 온통 자신의 생각에 붙잡혀 있고 모든 일이 ‘남의 탓’이라고 믿고 있었고 특히 남자들에 대해서 큰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도 이 부인을 몹시 피곤해 했다.

오빠가 누워있는 것을 넘어갔다면 그렇게 야단을 맞을 수도 있겠지만 오빠의 가방을 넘어갔다고 야단을 치는 엄마는 확실히 병적이다. 그 어머니도 딸이라고 부모에게 엄청나게 차별과 천대를 받은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톰보이 엄마는 딸을 많이 무시하기 때문에 그 딸들도 대부분 톰보이가 된다. 자신이 무시당하는 어려움을 겪었으면 딸을 더 보호하고 사랑해 줄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다. 자신도 모르게 “나는 아들을 가져야만 해.” “아들이 있어야만 내 인생에 의미가 있는거야.” “아들은 딸보다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거야.” 등과 같은 생각들이 마음속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 엄마는 딸만 둘을 낳았다, 아들을 간절히 원했지만. 그 중의 하나가 아들이었으면 자기 엄마처럼 딸을
차별했겠지만 딸만 둘이기에 반응이 많이 달랐다. 자기 딸들이 여자라고 차별을 받는 것을 견딜 수 없어하는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집
앞에서 스쿨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다가 버스가 오면 먼저 힘센 남자 애들이 타고나서 여자 아이들이 타는 것이 보통이다. 그것을 보는 이 엄마는
속에서 불이 타올랐다. “왜 내 딸들이 나중에 타야 해? 그럴 수 없어 !” 그래서 딸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너희들, 스쿨버스 탈 때에 남자
아이들을 제치고 먼저 타야 한다! 절대로 양보하지 마라!”
세미나에 그 부인의 작은 딸이 함께 참여했다. 그런데 그 딸아이의 여성스러움이 아주 많이 상해 있었다. 얼굴은
여성스러움이 가득한 모습인데 목소리, 말투, 대화의 내용은 ‘완전 남자’다. 그 엄마가 오랫동안 그 딸들을 남자로 그리고 남자와 경쟁해서 이겨야
하는 사람으로 뒤틀어 놓은 것이다.
이제는 선교사 남편과의 관계가 많이 망가져 버렸고 남편은 혼자서 두어 시간 떨어진 곳에 몇 년 째 따로 살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 상황이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아내는 지금도 부부 사이가 어려워진 모든 책임을 남편에게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아픔의 뿌리는 그 부인의 어머니에게서 시작된 것이다. 아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였으리라.
컴퓨터를 쓸 줄 모르는 그 부인에게 E-메일 사용법을 가르쳐가며 부모의 삶을 설명해
줄 것을 부탁했다. 기다리던 첫 번 메일이 왔다.
줄 것을 부탁했다. 기다리던 첫 번 메일이 왔다.
구 선생님, 희진이 엄마입니다.
죄송합니다. 인터넷 사용법은 배웠으나 기계에 대한 두려움과 익숙치 못하여서 여러 번 시도 했지만 계속 연결이 되지 않았어요. 오늘도 편지를 다 썼는데 보낼려고 시도하다가 다 지워져서 다시 쓰는 것입니다.
남편은 얼마 전에 한번 다녀갔지만 요즘엔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그동안 제 마음에서는 남편에 대한 미움과 섭섭함이 끊임없이 지속되고 과거에 대한 아픔들과 용서하지 못함의 자책으로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예수님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하고 스스로 위로 하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계속>
죄송합니다. 인터넷 사용법은 배웠으나 기계에 대한 두려움과 익숙치 못하여서 여러 번 시도 했지만 계속 연결이 되지 않았어요. 오늘도 편지를 다 썼는데 보낼려고 시도하다가 다 지워져서 다시 쓰는 것입니다.
남편은 얼마 전에 한번 다녀갔지만 요즘엔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그동안 제 마음에서는 남편에 대한 미움과 섭섭함이 끊임없이 지속되고 과거에 대한 아픔들과 용서하지 못함의 자책으로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예수님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하고 스스로 위로 하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계속>
구자형 목사(밴쿠버내적치유사역원장) sarangheali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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