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8일 금요일

예수님의 마음치유


제 16 장 사랑스러운 톰보이들



톰보이의 깨어진 가정

우리 부부가 중국에 나가서 치유 집회를 하고 돌아와서 거기서 만난 한 선교사의 부인과 메일을 시작했다. 세미나 중에 틈틈이 이 부인과 상담 할 시간이 있었고 두어 번 본인의 삶에 대해서 짧게지만 대중 앞에서 이야기할 시간이 있었다. 대화를 나누기가 매우 어려운 상대였다. 온통 자신의 생각에 붙잡혀 있고 모든 일이 ‘남의 탓’이라고 믿고 있었고 특히 남자들에 대해서 큰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도 이 부인을 몹시 피곤해 했다.

삶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녀가 엄마로부터 많은 상처를 입은 톰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빠 하나에 딸 셋인 집에 첫딸인데 어머니가 아들만을 사랑했고 딸들은 사람대접을 해 주지 않았다. 집에서 오빠가 아무데나 던져놓은 가방을 넘어가기라도 하면 엄마가 날카롭게 야단을 쳤다 “얘, 너는 기집애가 어떻게 오빠 가방을 넘어 다니냐!”
오빠가 누워있는 것을 넘어갔다면 그렇게 야단을 맞을 수도 있겠지만 오빠의 가방을 넘어갔다고 야단을 치는 엄마는 확실히 병적이다. 그 어머니도 딸이라고 부모에게 엄청나게 차별과 천대를 받은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톰보이 엄마는 딸을 많이 무시하기 때문에 그 딸들도 대부분 톰보이가 된다. 자신이 무시당하는 어려움을 겪었으면 딸을 더 보호하고 사랑해 줄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다. 자신도 모르게 “나는 아들을 가져야만 해.” “아들이 있어야만 내 인생에 의미가 있는거야.” “아들은 딸보다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거야.” 등과 같은 생각들이 마음속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 엄마는 딸만 둘을 낳았다, 아들을 간절히 원했지만. 그 중의 하나가 아들이었으면 자기 엄마처럼 딸을 차별했겠지만 딸만 둘이기에 반응이 많이 달랐다. 자기 딸들이 여자라고 차별을 받는 것을 견딜 수 없어하는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집 앞에서 스쿨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다가 버스가 오면 먼저 힘센 남자 애들이 타고나서 여자 아이들이 타는 것이 보통이다. 그것을 보는 이 엄마는 속에서 불이 타올랐다. “왜 내 딸들이 나중에 타야 해? 그럴 수 없어 !” 그래서 딸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너희들, 스쿨버스 탈 때에 남자 아이들을 제치고 먼저 타야 한다! 절대로 양보하지 마라!”

세미나에 그 부인의 작은 딸이 함께 참여했다. 그런데 그 딸아이의 여성스러움이 아주 많이 상해 있었다. 얼굴은 여성스러움이 가득한 모습인데 목소리, 말투, 대화의 내용은 ‘완전 남자’다. 그 엄마가 오랫동안 그 딸들을 남자로 그리고 남자와 경쟁해서 이겨야 하는 사람으로 뒤틀어 놓은 것이다.

이제는 선교사 남편과의 관계가 많이 망가져 버렸고 남편은 혼자서 두어 시간 떨어진 곳에 몇 년 째 따로 살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 상황이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아내는 지금도 부부 사이가 어려워진 모든 책임을 남편에게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아픔의 뿌리는 그 부인의 어머니에게서 시작된 것이다. 아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였으리라.

컴퓨터를 쓸 줄 모르는 그 부인에게 E-메일 사용법을 가르쳐가며 부모의 삶을 설명해
줄 것을 부탁했다. 기다리던 첫 번 메일이 왔다.

구 선생님, 희진이 엄마입니다.
죄송합니다. 인터넷 사용법은 배웠으나 기계에 대한 두려움과 익숙치 못하여서 여러 번 시도 했지만 계속 연결이 되지 않았어요. 오늘도 편지를 다 썼는데 보낼려고 시도하다가 다 지워져서 다시 쓰는 것입니다.
남편은 얼마 전에 한번 다녀갔지만 요즘엔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그동안 제 마음에서는 남편에 대한 미움과 섭섭함이 끊임없이 지속되고 과거에 대한 아픔들과 용서하지 못함의 자책으로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예수님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하고 스스로 위로 하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계속>


구자형 목사(밴쿠버내적치유사역원장)
sarangheali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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