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4일 토요일

필객의 붓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며

 
쓰레기를 버리러 문밖을 나서니 사탕을 보고 달려드는 동네꼬마처럼 바람과 섞여 놀던 오후의 햇살이 와르르 나를 둘러쌉니다. 공기 중에 배어있는 꽃 향기와 풀 냄새에 코끝의 숨이 달콤해지고 친구를 만난 아이처럼 반가움으로 가슴이 부풀어 오릅니다. 잠깐 문 밖만 나서도 기분이 전환 됩니다. 밑빠진 독처럼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어 보채는 욕망을 달래며, 뭔가 허전하고 가슴 끝 어딘가 늘 불안에 젖어있는 것 같은 평생의 느낌을 지고 살아가는 인생 위에 드넓은 하늘이 펼쳐져 있어, 그 무한한 공간에 기도를 쏘아 올릴 수 있음이 정말 은혜입니다.
날이 좋으니 가라지를 열어놓고 차 청소를 하는 사람들, 현관 의자에 나와 앉은 사람들, 길을 막아놓고 하키를 하는 아이들로 텅 비어있던 거리가 사람 사는 동네답게 북적거리니 삶이 풍요롭게 느껴집니다. 모두가 저렇게 평화롭고 단순한 심령으로 더불어 살아간다면 바로 여기가 천국일텐데, 가족 모두가 일 자리로 내몰리고 결핍감과 시간에 쫓기며 사는 북미의 삶에 이런 한가한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일용할 양식에 대한 염려는 부자나 빈궁한자나 할 것없이 누구에게나 일생을 두고 따라붙는 염려인 것 같습니다. 이전처럼 양식이 부족한 때도 아닌데 아직도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가 사람들의 마음을 염려로 짓누르고 마음을 각박하게 하고 삶의 내용을 구차하고 서글프게 하고 뼈가 녹아내릴 정도로 근심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 안에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 하심은 정말 놀라운 뜻이 담겨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장래에 대한 걱정을 하고 평생을 대비하고 계획하는 것이 책임성 있게 사는 것인 양 교육을 받은 우리에게는 매일 손을 벌린다는 것이 무책임하고 무계획하고 처량하게 들릴지도 모를 일이지만,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존재들인 우리에게 그 약속은 연속적이고 어김없이 일정하게 채우시겠다는 임마누엘의 놀라운 약속입니다. 하루 하루 주어지는 시간들을 무심하게 받아들이며 내일이 온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다가 갑자기 큰 병이 들거나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단 일초도 단 한 순간도 내 것이라 주장할 수 없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나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 거두시겠다고 하면 거두어지는 것입니다. 품꾼의 날과 같은 인생이라는 성경의 표현처럼 하루하루 사는 존재들에게 일용할 힘과 지혜, 일용할 관계와 사랑, 일용할 은혜와 기적, 일용할 양식과 시간을 주시겠다는 약속은 그래서 참으로 다행스러운 약속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양식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만나는 다음 날까지 남겨둘 수 없으며 많이 거둔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자도 모자람이 없는 것이라 합니다. 사람들이 탐욕을 부리는 이유도 결핍에 대한 불안감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매일 주어지는 은혜와 채우심이 있는 줄 안다면 미리 내일까지 염려하며 강박적으로 움켜쥐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자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를 걱정하며 불평하고 원망하고 두려워하며 살도록 지음을 받지 않았습니다. 생계가 우리를 압박해 올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욱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함으로 이 모든 것을 더하시는 은혜 앞으로 더 가까이 나가야 합니다.
전 세계가 어렵다고 하는 이 때 우리는 낮은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 생의 자랑으로 자존심을 내세우며 마음을 높이면 안됩니다. 
도살의 날에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마음을 살찌게 하면 안된다고 야고보 사도는 권면합니다.
경제침체와 불안한 정국이 노래가 되어버린 뉴스를 닫고 잘 준비를 하며 양치를 하며 거울을 보면 뭔가 정리가 안된 채로 세월의 보폭을 따라 잡느라 숨차게만 가고 있는 것 같은 초조함을 느끼곤 합니다. 잠깐만이라도 세월에 브레이크를 걸어놓고 생이라는 바퀴가 확실한 달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짙은 안개 속에서도 속도를 줄여주지 않고 마냥 제 속도로 달리는 세월 위에 얹혀가야 한다는 것이, 제 멋대로 달리는 말 위에 앉은 눈 먼 사람처럼 불안하고 위태롭게 느껴질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마음 안의 흐트러진 노래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허무가 아니라 믿음, 낙심이 아니라 기쁨, 미움이 아니라 사랑, 슬픔 대신 희락, 걱정대신 감사로, 내 안의 노래를 믿음으로 소망으로 사랑으로 바꾸는 것이 우리 인생이 메마른 광야에서 끝나지 않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열쇠일 것입니다. 지금 내 입에 있는 말을 보면 앞으로 내가 거둘 약속의 분량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충만하게 임하는 은혜를 볼 수 없도록 눈을 가리고 염려에 몰두하게 하는, 술거품이 이는 잡다한 생각의 잔을 거부하고 말씀하신대로 기뻐하고 기도하고 오직 감사하며 쉽지 않은 현재의 문제를 호미삼아 삶의 잡풀을 매고 지금의 시간에 아름다움과 가치의 씨를 심으며 찌푸려진 미간을 활짝 펴고 웃어봅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쉴 것이라' 는 시편의 말씀을 노래하며  침상 위에 예수님의 평강을 넓게 펼쳐 깝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라'는 말씀의 폭신한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 덮고 나로 인해 기쁨을 이기지 못해 노래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믿음으로그리며 깊은 잠속으로 들어갑니다. 
 
[서수영 사모 / penofg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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