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4일 토요일

한국 홀사모 난생처음 밴쿠버 나들이 (3)



 
 
 

서미옥 목사 (부산) 간증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저는 신앙 간증을 하기에는 아직 많이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단지 지금까지 저와 함께하셨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그 신앙을 고백하는 좋은 기회를 주신 하나님과 캐나다 숭실교회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경남 진주 근교 작은 마을에서 중1때 친구를 따라 옆 동네에 있는 교회에 나가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음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시골마을 깊숙히 자리 잡은 교회라 목회자도 없었고(가끔 노회에서 파송한 목회자들이 오셔서 세례를 주고 가기도 하고, 여름 성경학교를 해 주고 가기도 함) 신앙을 지도해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린이에서 어른에 이르기까지 함께 모여 자발적으로 찬송하고, 기도하고, 성경 읽고, 예배드리며, 신앙생활을 했었습니다. 중2 때 학습을 받고  주일학교를 만들어 반사로 섬겼으며, 제가 만난 하나님을 학교친구들에게도 열심히 전하면서 꼬마전도사라는 새로운 이름표를 달고 열심히 교회를 섬기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부산 큰언니 집에서 살며 신학을 하게 되었고, 신학생 신분으로 개척교회 유년부, 중고등부를 맡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키 작은 시골 출신 처녀 전도사가 사역의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경남, 경기도, 부산, 울산, 등등 7개 교회를 주님이 인도하시는대로 달려갔습니다. 힘든 줄 모르고 언제나 즐겁게 그 길을 걸어가던 중, 함께 계시던 어른 목사님들께서 노처녀로 사역하기보다는 결혼하여 남편과 함께 동역하라는 권면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남편을 18 년 전에 소개를 받게 되었고.... 그때부터 고난의 길이 시작되었습니다.
남편은 공부도 충분히 했지만, 가정사에 덮친 어려움을 이기지 못해 술에 빠져서 살다가 결국 알콜 중독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을 새벽기도 가시던 장로님이 업어서 병원에 입원을 시켰고 그 증세가 너무나 심하여 부산 시립병원 원목으로 계시던 목사님께서 정성으로 돌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학적으로 90%이상의 사망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과 몇몇 분이 임종 예배를 드렸습니다. 죽었다는 의사의 최종 진단으로 시체 안치실로 옮겨졌는데, 마치 그때 안치실이 자리가 없어서 이틀을 복도 어두운 곳에서 대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흰 천으로 덮어 놓은 사람의 발가락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고, 영안실에 근무하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조금씩 살아났으며, 어느 정도 건강이 회복 되었을 즈음에, 그 사람을 소개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지나가는 말로 “서울 신학대학에 합격하면 결혼 하겠다”고 그것이 불가능하기에 그렇게 퇴짜를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길로 신학 대학에 합격을 하였고 저는 제가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하기에 알콜 중독자 출신이며 죽었다가 살아난 이상한 신학생과 96년도에 결혼을 하였습니다.
어렵게 신학은 다 마쳤지만, 주기적으로 알콜 중독이 재발하여 언제나 넘어지기를 반복하는 남편은 사역자 아내에게 격려자가 아니고 언제나 걱정과 근심의 발원지가 되었습니다. 그런 환경을 부여안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지금도 남편은 회복이 되면 강원도 산중에 있는 알콜 중독자들의 요양소에 가서 봉사를 잘하다가 본인이 넘어져서 또 돌아왔다가 또 가고를 되풀이 합니다.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사역만은 포기할 수 없었던 저는 남편과 함께 다시 신학대학원을 공부하고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조그만 가정공동체 교회를 개척해서 장애인들을 섬기며, 병원 두 곳과 부산진역 노숙자들에게 빵과 함께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긴 터널 같은 인생의 암흑기를 저만 겪었을까 만은 그때는 정말 몇 번이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때도 없지 않았습니다.
저의 인내가 한계에 다달아 견딜 수 없을 즈음 하나님은 우리 가정에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들을 입양을 통해 선물로 주셨습니다. 지금 여섯 살인데도 다 컸다고 하면서 엄마를 돕겠다고 나서는, 자다가도 엄마 팔 좀 주물러 달라고 하면 일어나서 정성껏 만지며 기도해 주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 여호수아. 하나님은 아들을 통해 얼마나 위로하시고 힘을 주시는지 모릅니다. 힘들어도 이제는 힘들다고 말을 하기가 민망합니다. 아들을 통해 주시는 기쁨이 너무 커서, 지나고 보니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다만 저는 신음하며 울었을 뿐인데, 저를 사랑하고, 저의 남편을 사랑하는 하나님은 좋으신 우리의 아버지셨습니다.
한 번도 우리를 버리지도, 실망시키지도 않고, 우리의 손을 잡고 앞서 일하신 신실하신 우리의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위해 뭐든 못 할까 싶은데도 여전히 우리는 연약함을 고백합니다. 이렇게 진이 빠지고 힘들어 신음하고 있을 때, 캐나다 밴쿠버를 방문하는 엄청난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한국도 많이 발전하여 많은 사람들이 외국 여행을 가지만, 우리 같은 사역자에게는 하나님의 위로의 선물이라는 말 외에는 다른 설명이 안 되는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아픈 남편을 두고, 또 어린 아들을 언니에게 맡기고 가는 여행길이지만, 주님께 맡기고 가려고 합니다. 20여년을 달려온 사역의 길도 뒤돌아보고, 하나님께서 저에게 맡겨주신 지금의 가족을 더 사랑하면서, 아직 못 다한 나머지 사역의 길을 가는 용기를 얻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되어 너무나 기쁘고 감사합니다. 
전도사 몇 십 년 하다 보니 조금씩 인생살이도 알아갑니다. 아마도 이민 생활도 목회 못지않게 어렵고 힘들 것으로 짐작이 갑니다. 부족한 여종이 간절히 바라고 기도 합니다, 힘내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큰 축복을 간구합니다.
 
 [서미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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