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8일 금요일

4인4색 밴쿠버목양일기








예수님의 재치 있는 표적



작년 가을 즈음에 소개를 받아 어떤 분 집에 방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젊은 집사님인데 예전에 믿음이 좋았으나, 지금은 특별히 출석하시는 교회가 없는 것 같다고 하여, 내심 전도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신이 나서 약속을 잡고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 분이 신학을 공부하고 집사님이 아니라 전도사님이 되어 계시더군요. 전도는 못하게 되었으나, 귀한 사역자가 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싶어 “앞으로의 사역에 대한 축복을 해드려야겠다” 고 생각하는데, 이 분이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과 신약에 나타난 하나님이 다르고, 심지어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도 어쩔 때는 안수하여 사람을 낫게 하고, 어쩔 때는 환자를 보지도 않고 말씀으로만 고치시고, 또 어쩔 때는 진흙을 눈에 붙여서 병자를 고치는 모습이 나오는 등, 성경에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는 겁니다. 결론은 성경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며 다양하게 과장되고, 부풀려지고, 편집되었다는 식의 이야기이고, 또 자신의 학문적 지식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 때 바로 드는 생각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고전 8.11) 라는 구절 이었습니다. 저도 캐나다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비평이론에 대해 공부를 하였습니다만, 신학이론은 성경의 연구에 도움이 되는 방법으로 사용되어야지 성경의 내용에 우선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속으로 드는 생각이 이런 사람이 목회하면, 그야말로 바르지 못한 지식으로 믿음이 약한 성도를 넘어뜨리게 되는 일이 생기겠구나 싶어 차분하게 권면하고 나왔습니다만 그 후에는 만나본 일이 없어 소식을 알지 못합니다.

지난 달부터 연속으로 요한복음의 표적에 관한 설교를 하고 있는데 지난 주에 갑자기 그 때의 일이 생각 났습니다. 설교 본문이 바로 9장에 나오는 ‘날 때부터 눈 먼 자에게 진흙을 눈에 붙여서 낫게 하시는 부분’이었거든요. 확실히 이 표적은 조금 특이합니다. 대부분의 경우와 달리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라는 특별한 행동을 통해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십니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님께서 말씀으로만 낫게 하실 능력이 없어서 이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술적인 샤머니즘이 나타난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기록이 성경에 삽입된 것도 아닙니다.

요한복음의 표적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께서는 일관되게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그리고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을 주시는 것을 선포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표적들은 뒤로 갈수록 더 강하게 표현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의 표적을 통해 믿음을 가지기보다는 신기하게 여기고 그 기적적인 결과만을 보고 환호하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열병에 걸린 아이를 고치시고, 다음은 38년된 병자가 나오고, 그 다음은 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이 나오고, 그 다음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것입니다.

저는 이 표적을 보며 ‘그냥 말씀으로만 고치시지 않고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르시고 고치셨다는 사실에’ 더 큰 은혜를 받았는데, 그 이유는 예수님의 위트와 세심한 배려를 느낄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보는 독자 여러분들은 “예수님께서 진흙을 이겨 맹인의 눈에 바르시는 행동”을 상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뭐가 생각나십니까? 저는 가장 처음 떠오르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 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우리 사람을 만드신 창조, 그 창조로 인해 태어난 아이가 날 때부터 맹인(부족함이 있는 피조물)으로 태어났습니다. 그 부족한 부분을 예수님께서 침으로 진흙을 이겨 채워 넣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시는 것은 물론이요, 창조의 권능이 있음을 보여주셨고, 요한복음 1:3의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의 예를 우리에게 재치 있게 보여 주셨습니다.

다른 표적들도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표적을 통해서 ‘광야에서 내렸던 하늘의 양식 - 만나’ 사건에서처럼 주님의 인도하심과 은혜를 선포하시고, 물 위를 걸으셨던 표적을 통해 ‘모세의 홍해, 여호수아의 요단강’에서 처럼 심판을 넘어 구원의 약속으로 인도하는 구원자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이제 창조의 권능이 있음을 보여주신 후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제자들에게 ‘나사로의 표적’을 통해 부활의 권능을 확인시켜 주시며, 우리에게 생명의 약속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사모하는 사순절 기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시험에 드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은혜가 임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용균 목사 / 밴쿠버한마음교회 / 778-554-9003]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