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뿌리는 교회

혼자 전도지를 가지고 길에서 나누어 주다 보면 아무래도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됩니다. 한인교회이다 보니,
백인들에게는 그냥 “God bless you~!” 인사하고 맙니다. 주로 아시아인들을 살피고, 그 중 한국 분이다 싶으면 더 반갑게 웃으며
전도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제 눈썰미가 부족한지 중국사람들을 잘 구분 못하는 편입니다. 반갑게 말을 걸었다가 중국 사람이면 머쓱하니
웃고 역시 “God bless you~!” 인사하고 맙니다. 짧게 예수님을 믿는지 묻고, 교회에 다니시라고 권유하기는 하지만 한국 분을 바라 볼
때처럼 간절함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그러다 한국에서 노방전도 할 때의 생각이 간혹 나곤 합니다. 그 때는 내 눈에 보이는 사람이 다 한국사람이었고,
내 말을 듣는 사람이 다 한국사람이었는데…… 하고 말입니다.
예전에 마태복음 13장, 마가복음 4장, 누가복음 8장에 나오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왜 귀한 씨앗을 함부로 뿌리는 것일까요? 좋은 땅에만 정성껏 심어서 잘 가꾸면 될 텐데 말입니다. 길가나 돌밭이나 가시떨기에는
아예 처음부터 뿌리지 않으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인 것은 모른 채 말입니다. 굳이 여기에서 “과거에는 지금처럼 체계적인 농법으로 농사짓지
못하고 그냥 모든 곳에 씨를 뿌리고 그 사이로 사람들이 다니면 길이 생기기도 했다”라는 식의 해석을 붙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뻔히 보이는
길가에도, 돌밭에도 가시떨기 위에도 뿌려지는 씨앗의 은혜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렵니다.
예전 유명한 S그룹의 회장이 이런 말을 했지요. “한 명의 엘리트가 만 명, 십만 명을 부양할 수 있다”라고
말입니다. 결과적으로 지금 세계적인 대기업이 되어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세상적으로 보면 그의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적어도 그리스도의 신앙 안에서는 그의 말을 결단코 부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 곳에나 씨를 뿌리는 것이 합리적이지 못하고 비효율적이라고 생각이 드는 이유는, 우리들 스스로가 좋은 땅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좋은 땅이 아니라, 돌밭이고 가시떨기, 아니면 심지어 길가인지도 모릅니다. 귀한 생명의 씨앗을 아낌없이 다
뿌리고, 가꾸어 모두 좋은 밭으로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바로 우리 주님의 마음이겠지요. 그것이 우리가 받은 사랑이고 은혜인줄 믿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분명하게 선포하셨습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 시키러 왔노라”(누가복음 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 시키러 왔노라”(누가복음 5:32)
선한 사람을 찾고, 의인을 보고, 좋은 땅을 찾는 것은 우리들 사람의 마음입니다. 내가 사역하는 교회에 올 것
같은 사람에게 눈길이 더 가고 신경이 쓰이는 것도 사람의 마음이겠지요. 그러나 우리 주님은 죄인을 구하고, 잃어버린 양을 찾으실 때, 좋은 땅만
찾으시지 않고 길가와 돌밭과 가시떨기에도 아낌없이 생명을 뿌리십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5-8
2013년 한 해 동안 우리모두 좋은 땅이 되어 백배의 결실을 수확하기를 축복합니다. 더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길가에도 돌밭에도 가시떨기에도 아낌없이 나누는 풍성한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김용균 목사 / 한마음교회 / 778-554-9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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