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29일 금요일

선교 칼럼


25. 아빠, 우리 여기 왜 왔어?




온 가족이 만성설사로, 아내는 온 몸에 소양증으로 고생을 하던 어느 날 큰 딸이 내게 물었다. “아빠, 우리는 왜 집으로 안 돌아 가는 거야! 나, 덕현유치원 병아리반 가고 싶어! 여기서 많이 잤잖아! 몇 밤 더 자면 한국가는 거야?” 딸에게 설명을 하고 또 했지만 어른 못지 않게 아이들도 문화충격과 향수병을 겪고 있었다.

주말에만 열리는 자동차 시장이 있다기에 가격을 알아 보고 구경도 할 겸 교회에서 통역을 하는 강 그레고리집사님께 부탁을 드렸다. 차를 타고 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강집사님은 사할린에서 일본인 거주지에서 나고 자라서 한국어, 일본어에 능통한 분이었다. ‘노보시비리스크’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타슈켄트에 취업과 함께 그곳에 정착하셨다. 나는 우리 가정이 겪고 있는 만성설사와 아내의 어려운 형편을 설명하며 혹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까 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적응기간에는 그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 않겠냐”라고 말씀하실 뿐이었다.

자동차시장은 중고차와 신차, 그리고 부품을 파는 제법 규모가 있었다. 자동차 시장 옆에는 생필품 도매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자동차 시장엔 몇 십 년 된 자동차부터 신차까지, 주인이 직접 몰고 나와 구매자와 직거래를 하는 형식이었다. 강집사님은 나를 생필품 도매시장으로 인도했다. 식용유를 파는 상점 앞에서 멈추어 서더니 해바라기 기름을 사는 것이다. 네덜란드 산인데 적은 한 병 값은 미국달러로 3불 가까운 금액이었다. 그 당시에 그곳의 일반인 임금으로는 엄두를 내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그래서 나는 집사님에게 “이곳에 싼 목화유도 많은데 왜 굳이 비싼 외국산 식용유를 사서 드세요?”라고 물었다. 그 순간 강집사님은  “목사님, 혹시 집에 무슨 식용유를 쓰세요? 목화기름을 쓰세요?” “저희 집은 목화기름을 쓰는데요.” 아니! 목화기름을 누가 주었어요?” “옆 동에 사는 고려인 아주머니가요.” “그 분이 사모님에게 아무 말도 안하고 목화기름을 먹으라고 주었단 말입니까?“  “아내가 한국 가져온 식용유가 떨어져 옆 동에 사는 고려인 성도에게 어디서 사냐고 물었더니 그 분이 목화기름 한 병을 선물로 주셔서 쓰고 있는데요.”

내 대답을 들은 강집사님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표정이 완전히 굳어져 버렸다. 나는 불안해 하면서 강집사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목사님, 우즈베키스탄에는 목화 농사를 지을 때 노란 약을 칩니다. 그 약을 쳐서 수확기에 목화의 잎을 말려 떨어뜨리고 목화가 만개하게 하여 수확합니다. 한국에서 오신 분들은 그것을 고엽제라고도 하더군요. 월남전에 미군이 사용했던 것과 같은 것이죠. 연방해체 전에는 목회 기름을 5단계공정으로 정제를 해서 사용하다가, 러시아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공장이 엔지니어가 없어 제대로 정제를 못하고 시장에 내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도 목화기름을 사용을 하려면 가정에서 별도를 작업을 해서 사용하는 형편입니다.”
‘고엽제’라는 말에 나는 완전히 온 몸에 맥이 풀려버렸다. ‘아니, 온 가족의 만성설사와 아내의 눈에 심한 이물질과 소양증의 원인이 고엽제 때문이란 말인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무거운 침묵만 흘렀다. 집에 들어서자 말자 나는 아내에게 이웃이 준 그 식용유병을 좀 가져오라고 했다. 사이더병에 2할 정도만 남아 있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강집사님은 입을 열지 못하고 서 계셨다. 한 참이 지나자 강집사님은 “사모님, 이 기름병을 주면서 아무 말도 안 말도 안하고 주던가요?”
옆 동 남선생님이 “닦아드소”라고 하시면서 주셨는데, 병이 깨끗한데 뭘 닦아라는 말인지 몰라 그냥 사용했어요.
“사모님, ‘닦아라’는 말은 고려인 말인데 ‘볶아라, 끓이라”라는 말입니다. 면실유를 사용하려면 기름을 불에 끓이며 양파를 던져 넣어 그 속에 있는 화학성분을 제거하는 과정을 고려인들은 ‘닦는다’라고 합니다.”

 나는 이미 패닉 상태에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앞 날에 닥칠 일들이 그려지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강집사님이 집으로 돌아가고 저녁이 되어 나는 조심스레 목화기름과 고엽제를 대해 조심스레 설명했다. 듣고 있던 아내는 충격으로 온 몸을 떨며 거의 정신이 나간 상태가 되고 말았다. 자신의 잘못으로 온 가족, 특히 어린 자식들이 고엽제에 노출되었다는 것이 몹시도 아내를 괴롭혔다. 그리고 그런 물건을 유통시키는 정부를 향해 아내는 분노를 터뜨렸다. 그 이후 아내는 얼마 동안 아무 음식도 만들 수가 없었다.

발코니에 서서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바라볼 때면 ‘어쩌다 온 가족이 이런 처지에 몰리게 되었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밀려 왔다. 그리고 지난 번 동기목사의 가정에서 보았던 큰 딸의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이른 아침 나는 참담한 심정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등뒤에서 나를 부르는 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겨우 벽을 의지하고 선 체 “아빠 우리 여기 왜 왔어?”라고 물었다.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막막했다. 여행 온 줄 아는 저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나하고 잠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머뭇거리자 딸은 “아빠, 그것도 몰라! 예수님 전하고, 교회 세우고, 선교하러 왔지!”
이 소리는 분명 어린 딸의 소리가 아니었다. 이 말씀은 주님이 내게 주시는 음성이었다.

‘주님, 그렇습니다! 사명이 끝나지 않았으니, 아니 시작도 안 했으니 반드시 살아서 사명을 감당할 것입니다. 데려가시더라도 사명을 마친 후 데려 갈 것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나는 딸을 끌어 앉고 성경을 펴고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믿은 자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을 것이며…” (막16:17-18)




 [SEED Canada 대표 / 778-316-3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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