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4. “내 백성을 가게하라”
마이어 대위의 죽음과 드레퓌스 사건은 헤르츨의 마음에 “시온으로 돌아가자”는 열망을 심었다. 『유대국가』(Der Judenstaat, 1896)라는 소책자를 저술한 후, 오지리 비엔나에서 모인 시온주의자들은 스위스 바젤(Basel)을 임시근거지로 삼고 첫 『세계 시온주의자 회합』(World Zionist Congress, 1897)을 개최하였다. 유대인들로부터 ‘새 모세’(New Moses)로 불려지기 시작한 헤르츨은 독일의 황제 빌헤름(Wilhelm), 터키의 술탄(Sultan), 영국의 챔블린(Chamberlain), 이탈리아 왕 빅토르 임마누엘 3세(Victor Emanuel Ⅲ)를, 그리고 1904년에는 마지막으로 로마교황 비오10세(Pius X) 를 만났다. 로마교황은 헤르츨에게 유대인들은 모두 카톨릭으로 개종할 것과 그렇지 않고 팔레스타인에 이주할 경우에는 그곳에 있는 천주교 사제들을 명하여 모든 유대인들을 강제로 천주교 영세를 베풀것임을 통보하였다. 과로한 헤르츨은 로마에서 비엔나의 집으로 돌아와 반년 후에 44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으며, 그가 죽은 후 다시 44년 후인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국가 건국이 델 아비브(Tel Aviv)에서 선포되었다.
0065. 기독교와 교회교(敎會敎)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유다서3)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믿음의 도는 성도들(saints)에게 주어졌지 학자들(scholars)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복음의 본질을 파괴, 복음의 종교화 작업을 위해 사단은 학자들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사도들이 세상을 떠난 후 교회지도자들은 사도에 걸맞는 칭호를
찾다가 옛 바벨론 종교의 제사장들이 사용한 아버지(Father)란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그들은 제우스 신(神)이 아버지로 불려진
것도 알고 있었다. 교회의 박사들로 알려진 초대교부(Church Father)란 역시 ‘교회의 아버지’란 뜻이 된다. 그리하여 이 말은 후에
교황, 신부(神父), 대부(代父)등, 로마카톨릭교의 용어들의 씨가 되었다. 예수께서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아시고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마23:9)고 경고하셨다. 인간의 명예욕은 이미 복음으로 선포된 것을
종교로 변질시키고 있었다. ‘종교’(‘religio’-Lat.)란 ‘로마의 종교의식을 지키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기독교는 곧 그리스도시다. 구약의 그 많은 선지자들에 의해 예고되어온 이름은 교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였다. 마귀를 쫓아낸 이름 또한 교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였다(막9.38; 눅10.17; 행16.18). 교회의 이름이 아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침)례를 받게 되었다(마28:19, 행8:16, 19:5).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업수히 여겼던 구약의 제사장들 처럼(말1:6), 하나님께 바쳐져야 할 영광을 토색질하고도 앞줄에 나와 토색질한 것이 없다고 기도했던 바리새인 처럼(눅18:11), 종교인들의 교만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었으며, 그들은 예수의 이름은 버리고 교회를 전하기 시작하였다. 조직은 주 예수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인간 주 주교(the Lord Bishop)를 앉혔다. 구속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거두어졌고, “예수”대신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구호를 들고 나섰다.
사단은 구원의 초점을 예수로부터 교회로 돌리고 있었다. 학자들은 교회를 두고 성경에도 없는 여러가지 수식어들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이레네우스(Irenaeus)의 ‘어머니 교회’(Mother Church),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의 ‘처녀 어머니’(Virgin Mother), 오리겐의 ‘국가들의 어머니’(Mother of the Nations), 키프리안(Cyprian)의 ‘어머니 교회’등의 표현들이 초대교회 교부들에 의해 로마교회 안에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AD 3세기 경에는 ‘교회를 어머니로 가지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실 수가 없다’라는 해괴망측한 말이 나오기까지 하였다. 교회에 헌신, ‘모든 신자의 어머니’(Mother of the Faithful)가 되는 교회사랑이 곧 신앙(信仰)으로 간주되었다. 서머나의 폴리캅(Polycarp), 리용(Lyons)의 신자들은 교회를 ‘어머니’(Mother)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바벨론의 어미(계17:5)가 이미 로마제국의 영토 안의 교회에 뿌리를 내렸다. 예수의 이름은 제쳐지고 그 자리에 교회가 들어 섰다. 오리겐의 글에 자주 언급된 표현 - ‘교회의 규정’, ‘교회의 신앙’, ‘교회의 가르침’, ‘교회의 전통’- 들은 교회의 주교들이 가졌던 종교적 야심을 그대로 반영한 것들이었다.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거룩한 아이 예수”(행4:27, KJV)를 높이는 대신, 자신들의 위치를 높이기 위해 자기들이 소속된 교회를 높이는데 혼신을 쏟았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ciam nulla salus)라는 말이 나오면서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엡5:25)을 섬김으로써 “하나님의 천국복음”(막1:14)를 보게 하는 대신에, “그의 몸된 교회”(골1:18,24)를 강조,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인간중심의 종교, 교회교(敎會敎, Churchianity)로 향하게 하였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엡5:23-24)의 순서를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머리’위에 올라 앉은 꼴이 되어버렸다.” 기독교회사의 흐름을 바꾼 영향력을 행사한 이단들은 거의 모두가 학자들이었다. 사도 바울과 베드로는 이러한 거짓 선생들이 그리스도의 교회를 교란케 할 것임을 미리 예언하였다(행20:19, 벧후2:1).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Ignatius, 35-107)는 그리스도교회의 일치가 예수가 아닌 주교에 집중시켜, 주교감독 정치제도를 도입, 기독신앙의 일치의 가장 안전한 수호자를 주교(Bishop)에 두었다. 성령께서 가라사대 ‘주교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음성을 들었다고 주장, 주교가 없이는 성례전, 결혼식 거행 등을 불가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의 자리에 대리자로 자처한 이그나티우스에 대해 터툴리안(Tertullian)은 “교회는 주교들의 모임이 아니다”라고 항의 하였다. 리베리우스(Liberius, 352-366)는 대중을 향하여 감히 “한 하나님, 한 그리스도, 한 주교”(One God, One Christ, One Bishop)를 외침으로 삼위일체의 성령의 자리를 주교로 대치시켰고, 콘스탄티노플에서는 주교에 대항한 한 기병장교 대장을 죽여 거리에 끌고 다니게 함으로써 주교에 대한 불경죄의 본을 보여주었다. 주교들의 종교성은 복음에 이르는 길을 차단하고는 복음을 사유(私有)화 하였다. 그리하여 예수의 복음보다도 종교에 몰두 하였다. 예수께서는 교회를 세우시고 3위(三位)가 되신 성령을 통해 그의 사역을 펼칠 터전으로 삼기를 원했으나, 주교들은 성령의 자리를 점령, 교회의 주인행세를 하였으며 교회에 대한 저들의 세속적인 야심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하게 만들었다. 빠스깔(B. Pascal, 1623-62)이 암시하였듯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철학자의 하나님, 신학자들의 하나님으로 채색질하였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믿는 것이지 종교나 교회를 믿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궁극적 목적의 하나는 영생(永生)이며, 우리의 구속주는 예수이며, 그 외에는 아무도 아니다. 성경은 분명히 예수를 믿으라고 말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KJV). 예수 외에 어느 누가 우리에게 영생을 책임져줄 수가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교회에서 복음의 본질보다 인간의 종교성을 밝히는 자들은 천국복음을 인간의 종교와 같은 범주에다 두고 다루는 죄악(罪惡)을 범하면서 기독교의 복음이 배타적이라고까지 말하나,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한 중대한 오해이다.
0066. 『가이사』의 교회로 탈바꿈한 그리스도의 교회
콘스탄틴의 회심에는 군주적인 목적이 있었다. 교회와 국가를 자신의 통제하에 확고하게 둠으로써 백성들로부터 효율적이고도 전적인 지원을 필요로 했으며 정적(政敵)의 공격으로부터, 또 그가 힘들게 손에 쥔 제국을 안전하게 장악해야 할 계산을 가지고 있었다. 잔인하고 독재적인 성격에 마귀적인 영리함을 소유한 인물이었다. 그는 종교의 정치적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어떠한 대가를 무릅쓰고서라도 기독교회와 로마제국을 묶으려고 하였다. 이러한 콘스탄틴의 결정은 로마제국 내의 기독교회에 교리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제국종교로의 진전은 곧 배도 그 자체였다. 아직 국가종교는 안되었으나 제국종교가 된 배도의 황제의 교회는 이제는 제국의 한 상징으로 전락하였고, 로마제국의 종교를 가져보지 못했던 콘스탄티노플에서는 기독교가 곧 국가종교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교회(롬16:16)는 ‘가이사의 교회’로 둔갑하였고, 주교들은 ‘가이사의 성직자’(Caesarean Clergy)가 되어 사도적, 정통, 카톨릭을 표방하고 나섰다. 로마의 국가종교는 유유히 정치목적에 이용되었다. 콘스탄틴 이후로는 이교(異敎)에 기원을 둔 바실리카(Basilica)및 베스타(Vesta)성전이 건축, 헌당되었고, 애굽의 하늘황후 이시스(Isis, queen of heaven) 숭배신앙이 로마교회 안에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오늘날 로마교황에 의해 지정되는 천주교회의 바실리카는 특별히 왕족, 국가원수를 위한 미사집전의 장소로써 그 목적을 수행하고 있으며, 천주교의 수녀(修女)제도와 하늘황후 마리아(‘Mary, Queen of Heaven’)숭배는 모두 바벨론종교에 기원을 두고있는 베스타 처녀(‘Vestal Virgins’)와 이시스 숭배신앙의 연속이다. 이교(異敎)사회의 국가에서는 황제를 최고의 수장(Summus Pontifex)으로 하는 종교적 예식이 공개적으로 치러져 왔다. 로마제국 국가교회의 최고승원장(Pontifex Maximus)이 된 황제는 기독교 창설자로 군림, 국가의 조직기구에 교회를 편입시켜 국가의 보호아래 있는 국가교회(國家敎會, State Church)를 만들어 스스로 그 무덤을 파고 있었고, 저들이 취한 다른 복음(갈1장)은 로마제국의 멸망을 자초한 근본원인이 되었다. 12명의 가이사들이 통치하였던 로마제국은 어부들, 세리 등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들로 변한 열 두 제자들이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적함으로써 스스로 제국의 종말을 고했다.
0067. 교회와 국가의 일치사상
콘스탄틴 이후로 뿌리를 내려온 사단의 ‘교회와 국가의 일치사상’으로 인해 10세기 이후로는 로마교회가 오히려 국가를 흔들기에 이르렀다. 1440년, 로마카톨릭교회 안에서 태어난 합스부르크가(家)의 출범과 더불어 로마교황들은 옛 최고승원장(Pont. Max./PM)을 자유로이 취하였으며, 21세기의 현 교황에 이르기까지 역사상의 모든 교황들이 이 칭호를 탈취, 로마카톨릭교의 본질이 로마제국의 연장임을 스스로 노출하고있다. 교황권제도 자체가 하나의 스캔들임에도 불구, 세상은 이 세력이 종교의 얼굴을 가지고 오랜 세월을 두고 속에 품어온 거대한 정치조직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마22:15-22)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단순히 세금문제를 두고 언급하신 것 만은 아니었다. 다가올 세상에서의 성도들이 세상과 분리되고 성별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시사하셨고,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단호하게 언급하셨던 것이다. 사단에 볼모잡힌 로마카톨릭교회는 애초에 ‘그리스도냐? 가이사냐?’의 갈림길에서 저들이 선택한 가시아의 세력을 더욱 깊이 속에 품었다. 국가와의 경쟁 ‘시소’게임은 이제 판결이 난 것과 다름이 없었다. 옛 로마황제의 칭호에다 ‘아비’(the Pope/PAPA = Pater Paterum/Father of Fathers 마23:9-10)를 추가, ‘우리 주 하나님 교황’(Our Lord God the Pope)이 되었다.
성령을 내 맘에 보내셔서
내 어둔 영의 눈 밝히시사
말씀에 감추인 참 진리를
깨달아 알도록 하옵소서
(찬송가 284 / 주예수 해변서④)
구영재 선교사 [KOO, P.O. Box 8844 Victoria, BC V8W 3Z1 Can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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