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20일 금요일

예수님의 마음 치유

제 10 장  인간의 영, 혼, 육과 모세의 성막과의 대비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 하나님과 항상 교제하는 영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꼭 알아야하는 것이 “영, 혼, 육”의 구별이며, 관계이며, 각각의 기능이다.


여기 1) 영, 혼, 육의 관계는 바로 모세의 성막 (솔로몬의 성전)의 모습이다.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 하느뇨
성전 뜰과 성소를 아무리 화려하고, 거룩하게 해도 하나님의 영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오직 “지성소” (Holy of holies) 에서만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 반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시고자 하더라도 성소에서 제사장들이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성소에 등불이 켜져 있지 않으면, 성소가 청결하고 거룩하지 않으면, 성소의 문이나 칸막이가 열려있으면 제사를 드릴 수도 없고, 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도 없다.

또한 성소가 준비되어있더라도 성전 뜰이 거룩하지 않고, 그 마당으로부터 우상들이 깨끗이 제거되지 않으면, 또 짐승들이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소란스럽게 하고 있다면, 역시 제사를 드릴 수 없다.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하심만 자초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이 지성소이고, 혼은 성소이고, 육체는 성전 뜰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비유를 통해서 독자들도 자신의 영, 혼, 육을 어떻게 관리하고, 보양하고, 유지해야 하는가를 바로 이해 했으리라 믿는다. 하나님께 신령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영과 혼과 육이 모두 성결하게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롬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가운데서 다시 산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예배니라
(고전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줄을  알지 못 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2) 영, 혼, 육은 세 개의 ‘동심원’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당신이 앞에서 설명된 성막의 비유를 받아들인다면 영, 혼, 육은 당연히 세 개의 동심원 이어야 한다. 다른 어떤 그림으로도 표현될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다음의 말을 또한 쉽게 받아들이게 된다.
      육체는 혼을 담고 있는 그릇이고
      혼은 영을 담고 있는 그릇이다


그릇이 망가지거나 구멍이 나면 내용물이 담겨지지 않게 되고 나아가서 그 내용물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즉, 육체가 질병 속에 있으면 (새고 있으면) 혼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혼에 (그중 마음에) 상처가 많아서 손상이 크면 (새고 있으면) 아무리 귀한 은사를 받았더라도 영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과 교제하시면서 “영”이 혼을 주관하기를 원하시고 “혼”이 영의 지시에 따라 의지를 온전히 제어해서 “육”을 제어하기를 원하신다. 그렇게 성결케 된 “육신”이 세상을 정복해서 승리하기를 원하신다.

구자형 목사(밴쿠버내적치유사역원장)
saranghealing@hanmail.net

성경 인물


위대한 지도자 모세


놀라운 장면을 보거나 거인 또는 거장을 만날 때 우리는 “아(Ah)!”라는 감탄사와 함께 말문까지 막히게 되는데, 모세가 바로 그런 거인이었다. 그의 사상과 인격과 업적에 대하여 읽고 묵상할수록 우리는 감탄과 충격과 압박감마저 느끼게 된다.

모세라는 이름 자체가 ‘구원자’를 의미하듯이, 그는 사탄의 상징인 애굽왕 바로 밑에서 수백 년 동안(창 15:13; 출 12:40) 종살이하던 동족 이스라엘을 구출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또 다른 모형이다. 모세라는 한 인간을 통하여 ‘야웨(YHWH)’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되었고(출 6:3; 3:15), 그를 통하여 오늘의 기독교 뿌리인 유일신 야웨 종교가 체계화되었다.

인간의 구원과 영생과 성화의 길을 밝히는 ‘모세오경’의 저자로서뿐만 아니라 열 가지 재앙, 홍해의 갈라짐, 만나와 메추라기, 구리뱀 사건 등 수많은 기적을 통하여 모세는 야웨께서 전능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였다. 무엇보다도 그는 노예와 오합지졸에 불과한 200여만(출 12:37)의 이스라엘을 광야 40년의 여정을 통하여 의식 있는 하나님의 성민으로 훈련하고 시내산에서 야웨와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계약·Covenant)까지 성사시킨, 훌륭한 지도자요 사상가요 교육가였다.

구약성경에서 그토록 신비하고 위대한 인물로 소개되는 모세가 성경 밖의 자료에서는 언급되지 않기에 일부 급진주의 학자들은 그의 역사성을 부인하려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애굽 황제들의 이름(투트모세, 아모세, 라모세/람세스 등), 셈족 계통 힉소스족의 애굽 통치(BC 1750∼1550) 당시 요셉의 총리 임명 가능성, 힉소스족 추방(BC 1550) 후의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의 등장(출 1:8)과 셈족 이스라엘의 노예화 가능성, 출애굽 당시 람세스 2세의 국고성 람세스 건축 등등 모세의 역사성을 입증하는 역사적 자료는 많다.

모세의 위대한 사상과 인격과 능력은 과연 어디에서 기원한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사람을 만나면 역사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을 만나면 기적이 이루어진다”는 어느 목사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된다. 시내광야의 ‘불타는 떨기나무’(출 3) 앞에서 처음으로 야웨를 대면하기까지 모세는 실패자요 절망자였다. 그러나 지난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 버려진, 볼품없는 떨기나무와 메마른 지팡이처럼 무기력하고 무의미한 자신을 먼저 찾아오신 하나님을 뵙고 난 후 그는 불붙은 떨기나무처럼 고난 속에서도 소멸되지 않는 이스라엘의 미래를 보았으며,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의 도구로 바뀌는 지팡이의 영광과 신비를 깨달았다.

불타는 떨기나무 체험을 계기로 그는 항상 하나님의 능력을 전수받는 비결, 곧 하나님 앞에 마른 막대기가 되고 볼품없는 떨기나무가 될 때 누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과 영광을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 역사의 중대 고비마다 시도된 40일 금식을 통하여, 특히 어떤 인간도 해본 적이 없는 이 금식기도에 세 번이나 도전함으로써(신 9) 더 이상 낮아질 수 없고 더 이상 가난해질 수 없는 생명포기의 경지에서 고백하는 바, 생명을 건 하나님 사랑의 선구자가 될 수 있었다. 그 어떤 인간도 경험하지 못한 인격의 최고 경지, 즉 지상에서 가장 온유한 자(민 12:3)라는 명예까지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재미있는재미있는 여호수아서

도피성Ⅱ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지하개척교회 전도사로 있을 때 일이다.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처음보는 남자 중학생 한명이 교회를 찾아와 상담을 요청했다. 좁은 본당 뒤쪽에 마련된 작은 테이블로 그를 안내했다. 자리에 앉자, 가슴에 담아둔 이야기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자신이 초등학교 때 이혼하셨다. 아버지와 함께 단칸방에 살았다. 홀로된 아버지는 매일 밤 아들 몰래 음란비디오를 보았다. 아들이 이 광경을 매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채……. 사춘기에 처음 만난 음란비디오는 강력한 토네이도와 같은 힘으로 그의 몸과 영혼을 황폐화 시켜 나갔다.

‘도피성’과 예수님은 닮은 점이 많다. 세 가지 면에서 그렇다. ‘도피성’(수20:1-9)과 예수님은 ‘접근성’이 아주 뛰어나다. 도피성은 이스라엘 지역의 그 어느 곳에서 출발해도 하루 정도만 달려가면 도착할 수 있는 곳에 두었다(요단강 좌우, 3개). 그리고 유대 전성에 의하면 도피성으로 가는 길목에 ‘미클라트’(도피성) 표지판을 두어 쉽게 그곳을 찾아 갈 수 있도록 했다. 예수님도 접근성이 아주 뛰어나신 분이다. 로마서10장12절을 보라! 주의 이름을 부르며 누구나 그에게 나가갈 수 있다. 신인(神人)의 벽을 완전히 허무셨다. 예수님은 결코 멀리 계시지 않고. 언제나 가까이 계시는 분이시다. 단지 우리는 그가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55:6)는 명령에 순종만 하면 된다.

두 번째로 ‘도피성’과 예수님은 ‘개방성’이 뛰어나다. 도피성 제도는 절대 유대인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땅에 거주하는 모든 자들, 거류민, 타국인, 모두에게 열려 있었다(수:20:9절, 민35:15). 누구든지 부지중에 죄를 범하면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조차도 도피성으로 피할 수 있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다. 그는 아주 개방적인 분이셨다. 그에게는 차별이 없다. 그 어떤 조건도 없다. 누구든지 그에게 믿음의 엔진을 달고 달려가기만 하면 된다. 마태복음 11장28절을 보라! 땡볕 더위에 얼음 냉수와 같은 말씀을 하신다.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은 그의 백성들을 위해 앞문, 뒷문, 옆문, 하늘 문까지 다 열어 놓으셨다.

마지막으로 도피성과 예수님은 ‘자발성’을 요구한다. 도피성은 살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야 갈 수 있는 곳이다. 억울한 죽음을 면하기 위해 마련된 도피성이지만 살인자가 도피성으로 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민35:25). 예수님께 나가는 것도 ‘자발성’이 필요하다. 요한계시록 3장20절 말씀을 보라!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겠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무슨 말씀인가? 주님이 나의 마음의 문을 두드릴 때 내가 문을 열어 그에게로 들어 가야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에게 생명과 위로와 평강이 있을지라도 그에게 피하지 않는 자는 그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다. 우리의 모든 힘과 능력을 내려놓고 그에게로 달려가야 한다. 그는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14:6) 되시기 때문이다.

음란의 토네이도는 사춘기 남학생의 순수한 마음에 견딜 수 없는 무게의 죄책감을 남기고 떠나 버렸다. 죄책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몸부림 쳤다. 그러나 스스로의 힘으로 절대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교회의 문을 두드렸다. 그에게 도피성 되시는 예수님을 소개했다. 예수님을 진심으로 그는 영접했다. 세월이 흘러 그는 ‘주의 종’이 되어 나의 앞에 다시 나타났다.

황보창완 목사 (밴쿠버성산교회 청년부) / 778-708-5540

2012년 7월 19일 목요일

길진리생명이신 그리스도 예수 < 1 >


“어지러운 세상중에…”




0001. 뉴에이지 철학의 목표
(글을 정리하면서 지난 10~20년 기간동안의 뉴스레터를 다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것이라 좀 어려운 부분도 있으나 차차 이 지면을 통해 다시 설명해 나갈 생각입니다). 뉴에이지 철학의 목표는 서로 반대되는 모든 대립을 소멸시킴에 있음. 과학과 미신을 같은 단계로, 모든 가치론의 파괴와 선(善)과 악(惡)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론임. 모든 것이 하나라는 기치 아래 종교통합을 시도하고 있는 중임. 마지막 때의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불안을 긴장없는 『유토피아』의 세계사회로 도망함을 통해 해소해보려는 인간들의 어리석은 시도임.

0002. “이단이란 성경과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진 자로서, 성경공부모임에 자주 참석하며…”
위의 글은 미국 클린턴행정부의 법무장관/검찰총장으로서 파킨스병 환자인 자넷 리노가 내린 이단의 정의다. 뉴에이지 대통령(Newsweek, Feb. 1, 1993)으로서 뉴에이지 취임식(New York Times, Jan.13,1993)을 가진 뉴에이지 정치인 (US World News & Report, Feb.1,1993) 클린턴은 뉴에이지의 길(Time, Feb.1,1993)을 제시, 이러한 물결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자는 가려내어(“should be identified”) 근절시키겠다(“stamped out”)는 공갈을 대통령 취임식날에 선언하였음. 집에 도둑이 침입한다면 모두가 경계하리라 믿지만 교회, 학교, 사회, 국가에 침투한 세력에 대하여는 침묵으로 일관하니 불법이 성하리라고 한 시대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무감각한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데,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마11:16~17).

0003. “소경이 소경을 인도함” (마태15.14)
목회성공(?)한 미국교회순례를 위해 한국교회목사들의 나들이를 부추기는 기독교계잡지. 그들이 방문하는 교회들의 대부분이 ‘에큐메니칼’이단들의 소굴로서 로마교황청과 손을 잡고 있는 교회들임. 이제는 웃음조차도 거룩하게(?) 웃어야 하는지 토론토행 광고가 요란하다. 단지 웃기 위해 그렇게도 많은 경비를 낭비하고 다니다니...(집에 앉아서 웃을 것이지!). 점을 치면 안되지만 역학은 봐도 되는냥 오도하고 있는 기독잡지(‘빛과 소금’ 95년 11월호, 42-45쪽). 이제는 “1만불시대의 교회상과 그리스도인”(‘빛과 소금’ 96년 1월호)을 구가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빚을 지고 있는 나라의 사치스런 국민성을 더욱 부추기고 있음-(1993년 3월).

0004. 부흥이란 이름의 배도
배도의 근원은 대개 기독교회의 야심적인 지도자들로부터 기인한다(딤후4.3,4/요일2.18,19/요삼9,10). 고로 배도는 진리에 대한 무지, 또는 사단의 올가미에 걸린 이단과는 구분된다. 배도자들은 선지자들이나 주님, 사도들과는 달리, 서로가 서로의 영광을 취하며, 세상의 인정을 추구한다. 근래에는 1200여명이 넘는 영국성공회의 사제들이 집단으로 천주교로 개종, 배도를 실감하게 된다. 유명한(?) 교계지도자들의 이름을 안고 ‘그리스도의 교회’안으로 들어온 이 배도의 세력으로 인하여, 성도들이 흩어질 위기에 처해있다. 어느 목회자가 『여호와의 증인』 지도자들과 정기적으로 교제하면서 저들을 두둔한다고 하자. 그 목회자는 『여호와의 증인』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 이단으로서 교회를 떠나야 할 것이다. 오늘날 교계신문을 오르내리는 소위 부흥했다는 세력의 90% 이상이 모두 로마교황청의 『에큐메니즘』의 세력에 관련되어 있다(이에 대하여는 단계적으로 다룰 예정이며, 독자는 ‘나의’ 지식, ‘나의’ 경험을 떠나, ‘베뢰아’사람들의 태도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열어야 하리라).
어지러운 세상속에 기쁜소리 들리네
예수 말씀하시기를 믿는 자여 따르라
(찬 366 어지러운 세상중에 ①)

                                       구영재 선교사 [문의: 크리스쳔신문]

하나님의 국가대표, 메달을 향해 달려라


하나님의 국가대표, 메달을 향해 달려라

영국교회 재부흥?…


1948년 7월 일제 치하에서 벗어난 지 3년. 대한민국 51명의 선수들은 런던으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가슴에는 태극기를 등에는 KOREA라는 이름을 새겼다. 아시아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았지만 배에서 기차로 또 비행기를 타며 그들은 런던으로 향했다. 기나긴 여행으로 컨디션은 엉망이었지만 배의 갑판에서 연습을 하고 비행기의 활주로에서 몸을 추스르며 런던에 도착했다. 그리고 역도(김성집)와 복싱(한수안)에서 값진 동메달 두 개를 얻었다. 1936년 베를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가슴에 일장기를 달 수밖에 없었던 손기정 선수의 설움을 씻어내는 순간이었다.
그랬던 대한민국이 ‘스포츠 수혜국’에서 ‘스포츠 원조국’이자 ‘스포츠 강국’으로 런던을 다시 찾는다. 2012년 제30회 런던올림픽 참가를 위한 발걸음이다. 총 22개 종목 245명의 선수가 지난 20일 비행기에 올랐다. 7월 27일부터 8월 13일까지 열리는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에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은 당당히 출사표를 던졌다. 특히 이번 올림픽의 출전 선수 중 47명과 감독ㆍ코치진 28명이 크리스천이다. 이들이 출전하는 경기에 대한 한국 교회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가대표, 그들에게 믿음이란
수영 국가대표 박태환 선수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 수영 400m 예선에서 ‘부정출발’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실격을 당한 바 있다. 1차 시기 다른 선수의 부정출발에 이어 2차시기에 실수로 실격된 것이다. 1, 2차 모두 부정출발을 한 것도 아닌데 실격이라는 판정이 억울했을 만도 하지만 규정에 따라 박 선수는 보따리를 싸야 했었다. 아테네올림픽 당시 15살이었던 박 선수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실력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더욱이 한국 수영사상 첫 금메달이었다. 박 선수는 2008년 4월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성경공부와 새 신자 모임에 꾸준히 참여했던 것은 금메달을 따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역도 국가대표 장미란은 믿음 좋기로 유명한 선수 중 한 명이다. 장미란 선수 역시 아테네올림픽에서의 편파판정으로 아쉽게도 은메달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그 후 연속으로 금메달을 따 세계대회에서 그랜드슬램을 넘어 일곱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 준비에 한창이다. 장미란 선수의 어머니 이현자 전도사(예수사관학교)는 “우리 미란이의 강점은 꾸준함”이라며 “8월 5일 미란이가 하나님께 다시 한 번 영광 돌릴 수 있는 일이 있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장미란 선수는 선수촌에서 드려지는 예배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등 예배에 빠짐없이 참여하기로 유명하다.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태권도 국가대표 황경선 선수도 믿음생활에 열심인 것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태릉선수촌 박종길 선수촌장은 “황 선수는 매주 드려지는 태릉선수촌교회의 수요예배에도 늘 참여해 뜨겁게 기도할 뿐만 아니라 봉사도 열심히 한다”며 “게다가 훈련까지 열심히 하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올림픽 출전선수 중 크리스천 선수들이 밀집된 종목은 유도다. 박 선수촌장은 “크리스천 지도자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며 “김재범, 조준호, 김성민, 황의태, 정경미, 김잔디 등 많은 선수들이 수요일 저녁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김재범 선수는 지난 11일 올림픽경기장 올림픽 홀에서 열린 ‘제30회 런던올림픽 대한민국 대표선수단 결단식’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후 어떤 세리모니를 할꺼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저는 크리스천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라며 기도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세리모니를 취해 많은 선수들에게 도전을 심어줬다.
기도의 힘으로 승리를
최근 여러 스포츠 대회의 시상식에서는 선수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결과에 감사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하나님께 의지해 기도의 힘으로 승리를 거머쥔 국가대표 선수들이 있었다.

독일 축구 리그 분데스리가의 전설로 불리는 차범근 안수집사는 매번 시상식 인터뷰에서 “하나님의 은총으로…”라는 말로 운을 떼 삶속에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차 안수집사는 아들인 전 축구 국가대표 차두리 선수의 경기에도 “늘 기도로 응원한다”고 밝혀 믿음으로 자녀를 가르친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차 안수집사는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성화 봉송 주자로 선정돼 20일 그레이브젠드에서 성화를 들고 달렸다.

전 탁구 국가대표 양영자 씨는 국가대표에 선정되기 전 팔꿈치 통증으로 6년간 진통제를 맞으며 탁구를 쳤다. 또 추후 간염 등으로 고생했지만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 1987년 세계탁구선수권 복식 금메달, 1988년 서울올림픽 복식 금메달 등을 수상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이 때문에 그는 믿음으로 메달을 딴 탁구 국가대표로 기억되고 있다. 또 양 씨는 하나님의 은혜로 몽골에 선교사로 파송돼 15년간 봉사하다 귀국했고, 올해 런던올림픽에서는 탁구 부문의 해설자로 나설 예정이다.
여자탁구 국가대표 감독 현정화 집사 또한 기도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양영자 씨와 함께 대한민국을 탁구강국으로 부상시킨 현 집사는 김경아, 박미영, 유승민 선수 등을 신앙의 힘으로 가르쳐 이번 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많은 기독교인 선배들의 기도가 있었던 덕분에 대한민국은 스포츠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올림픽에 대처하는 그들의 자세
런던으로 출국 전 태릉선수촌의 표정은 한껏 긴장되어 있었다. 올림픽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이 때 선수들은 평소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준비하고 있다. 경기에서 최상의 컨디션으로 최고의 기량을 뽐낼 수 있도록 몸을 만드는 과정을 거친다. 바로 훈련 최종 마무리 단계다.
이 과정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은 개인 체중을 조절하고, 부상된 부분을 치료하는 등 개인 점검의 시간을 갖는다. 박종길 선수촌장은 “현재 선수들의 컨디션은 매우 좋다”며 “이번 런던올림픽을 통해 선수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선수들이 굳은 신념을 가지고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을 현실로 이루길 바란다”고 전했다.
지난 4일 런던올림픽 파송 ‘대한민국선수단 필승기원예배’에서 설교를 전한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는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능력’이라는 제목으로 “작고 아무것도 아니던 겨자씨와 누룩이 전체를 변화시키듯이 국가대표 선수들의 노력으로 대한민국이 변화되길 바란다”고 도전을 심어주고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안수기도 하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승리하길 기원했다. 세계 곳곳에서 올림픽을 보기 위해 모여드는 관광객에게 복음을 전하고, 대한민국 선수단을 응원하기 위한 서포터즈 행렬도 이어질 예정이다.
한국기독교스포츠총연합회는 응원단 39명을 구성해 국가대표 선수들 응원에 나선다. 현지 교민들의 준비로 ‘런던올림픽 한인 선교대회’도 열릴 예정이다. 이 대회를 위해 재영한인교회연합회(KCA)를 주축으로 재영한인선교사회(KMC), 국제장로회한인노회(IPC), 순복음유럽총회, KOSTA 등 유럽 지역 기독교단체들은 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회는 런던 근교 브랜트우드(Brentwood) 지역의 트리니티 처치(Trinity Church)에서 연다. 7월 27일부터 8월 11일까지 16일 동안 대한민국의 문화를 이용한 노방전도에도 나서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에서 복음을 전할 준비에 나서고 있다.



영국교회 재부흥?…

영국에서 2005년부터 2010년까지 교회가 1248곳 늘었다고 18일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영국 통계전문가 피터 블라이얼리 박사는 “기존 교단들은 그동안 1101곳의 교회를 폐쇄했지만 오순절 교단과 소수민족 대상 군소교단들의 활발한 개척에 힘입어 전체 교회 수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블라이얼리 박사에 따르면 오순절 계통 교회는 668곳, 군소교단 소속 교회는 1460곳 증가했다. 현재 영국에는 가톨릭교회를 포함해 모두 5만734곳의 교회가 있으며 목회자는 3만6600여명이다.

영국 교회는 수십 년간 쇠퇴를 거듭하다 2005년부터 조금씩 회복되는 추세다. 교회 수뿐 아니라 예배 출석 성도 수도 안정화되고 있다. 현지 조사기구인 크리스천리서치에 따르면 성공회의 예배 출석 성도는 2001년부터 2010년까지 120만명 수준을 유지했으며 침례교는 2002년 13만9000명에서 2010년 15만4000명으로 늘었다.

영국 신학단체 데오스 관계자는 “지역사회를 효과적으로 파고든 교회들과 이주민 교회의 부흥이 영국 교회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면서 “이 같은 변화는 세속화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북한선교 위해 한 목소리 되어 사랑을 노래한다


시온선교합창단 극동 어린이 합창단 초청

30주년 기념 콘서트 연다



1982년 2월, 교파와 교단을 초월해 호흡이 다하는 그날까지 찬양하고 선교하며 작은 힘이나마 이웃에게 도움이 되고자 창단된 크리스찬 여성들로 구성된 ‘시온선교합창단’이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초창기부터 참가한 단원들이 벌써 90세를 바라보니 밴쿠버 여성 합창의 산 역사를 대변한다하여도 과언을 아닐 것이다.
작년 10월 카네기 공연과 국내외의 세계적인 무대를 올랐으며 올해 말에는 오타와 국회의사당 공연을 초정 받는 등, 시온합창단의 공연의 깊이는 아마추어의 수준을 넘어 명실공히 밴쿠버를 대표하는 여성 합창단으로 자리 잡은지 오래이다. 

이런 시온선교합창단(지휘:정성자)이 오는 21일 창단 30주년을 맞이하여 극동 어린이 합창단을 초청, 어린이들과 한 목소리가 되어 북한 선교를 위한 콘서트를 갖는다. 특히 이번 무대에는 나이 차이만 날 뿐 그 목적과 활동이 흡사한 극동방송 어린이합창단을 초청, 할머니의 자애로움과 포근함 그리고 손자손녀의 발랄함과 귀여움이 한 목소리 되어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는 무대가 될 것이다.  

극동 어린이 합창단은 지난 1999년 4월 선교를 목적으로 창단된 어린이 합창단으로 창단부터 개최된 정기연주회와 극동방송 찬양대합창제, 복음성가경연대회, 각종 축하공연 등을 비롯해 미 8군 초청연주회 및 각종 사회단체의 초청공연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매년 미주 순회연주를 비롯해 유럽, 호주, 동남아시아 등 전 세계를 다니며 찬양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다.

특히 2010년 6월에 개최된 6. 25 전쟁 60주년 평화 기도회(강사: 조지W부시 미 전 대통령)에 초청되어 6만 여명의 참석자들에게 음악을 통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며 큰 감동을 안겨준 바 있다. 그 밖에도 BWA(전세계 침례교 대회), UN, 백악관에 초대되어 한국의 위상을 높이며 가는 곳마다 민간외교의 역할을 크게 감당하고 있다는 해외언론의 호평을 받고 있다.

시온합창단은 작년에는 공연 수익금 전액을 탄자니아 우물을 파기 위한 단체를 위해 기부 하는등 매년 구제의 대상을 바꾸어 공연 수익금을 기부 하고 있고 올해는 그 대상을 북한으로 잡았다. 정성자 지휘자는 "북한은 철저한 통제 사회로써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있고, 공식적인 지원을 할 수 없는 곳이기에 라디오 방송만큼 선교와 나눔에 적합한 것은 없다”며 선교를 통한 나눔의 필요성에 관해 말했다. 이어 정성자 지휘자는 “창단30주년 기념 연주회는 그 동안의 성과를 되짚으며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의미있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 했다.

       일시: 7월 21일 (토) 오후 7시
       장소: 퍼시픽 아카데미


“농어촌 꿈나무” 밴쿠버 도착했습니다

“농어촌 꿈나무” 밴쿠버 도착했습니다


밴쿠버에서 보내 준 사랑의 힘으로 외국 여행이 불가능 했던 아이들에게 밴쿠버를 여행하며 영어 공부를 하게되는 역사가 아이들에게 이루어 졌습니다.

한 아이는 엄마와 둘이 살고 있고 세 아이는 엄마 얼굴을 모르지만 이제 철이들고부터 다 이해를 했다고 의젓하게 말을 합니다.

착하고 반듯하게 자라난 이 아이들에게 일일 어머니가 되어 섬기실 분들은 연락을 바랍니다.

[문의: 숭실교회 604-813-0864 크리스쳔 신문 604-961-6052]

2012년 7월 18일 수요일

아브라함 이야기


땅의 약속에 대한 하나님의 확증 / 창 15:7-21 (상)



지난 시간에는, 전쟁의 보복을 두려워하며, 물질 걱정을 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는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하늘의 별들을 보여주시면서 자손에 대한 약속을 확신시켜 주실 때 (창 15:1-5), 아브람이 다시 한 번 여호와를 신뢰한 것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창 15:6). 하나님은 아브람의 믿음이 회복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친히 찾아오셔서 그를 격려하시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증을 주셨던 것입니다.
땅에 대한 약속의 확신
자손에 대한 약속을 아브람이 확신한 후, 하나님께서는 땅에 대한 약속을 다시 언급하십니다. 7절에 보면,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 땅에 대한 약속을 다시 언급하신 이유는 아브람이 아직도 땅에 대한 약속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가나안에 온지 벌써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브람에게는 땅 한 평 없었습니다. 그래서 8절에 보면, 아브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아브람은 다시 한 번 하나님께 확실한 증거를 요청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브람의 솔직한 면모를 보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믿음이 있는 척 하지 않았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드러내었고 이러한 자세 때문에 그의 믿음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계약 의식을 요구하신 하나님증표를 요구한 아브람의 요구에 하나님은 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이는 고대 사회에서 행해졌던 계약 의식을 반영하는 대목입니다. 왜냐하면 10절에 보면, 아브람이 그 모든 제물들을 쪼개어 마주 대하여 놓았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계약을 맺을 때, 먼저 희생 제물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어 양쪽에 늘어놓았습니다. 그리고 계약 당사자인 두 사람으로 하여금 함께 그 사이로 지나가게 했습니다. 이런 계약 의식을 통하여 계약 당사자들은 서로가 하나임을 확인했고, 동시에 이 계약은 파기될 수 없음을 모든 사람 앞에서 천명했던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계약을 파기하면, 여기 쪼개져 죽어 있는 짐승처럼, 쪼개어 죽임을 당해도 좋다는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그 당시의 방법대로 계약의식을 치루자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9절에 보면, 하나님은 이 계약의식이 아브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위하여.”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선택하셔서 부르셨기 때문에, 아브람이 확신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아브람의 인내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모든 제물을 준비하고, 하나님과의 계약식을 체결하기 위해 아브람은 기다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계약식이 체결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11절에 보면, 솔개가 쪼개논 동물들의 사체 위에 내릴 정도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나타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징표를 보여주실 것으로 믿고 끝까지 인내하였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해가 지고 기다림에 지쳐 깊은 잠에 빠진 아브람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창 15:12). 여기서 우리는 아브람의 끈질긴 인내를 깨닫게 됩니다. 비록 아브람이 의심할 때도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 응답을 주실 때까지 인내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아브람의 인내는 우리의 좋은 귀감이 될 것입니다.   <계속>

[정기수 목사 / 캐나다중앙교회 / 778-237-8084]

정성헌 선교사 선교칼럼


아이스크림과 바나나



관계의 문이 열리면서 전도의 문도 열렸다. 근처에 아직 개척된 교회가 없어 우리 가정이 전도한 성도들은 먼 곳에 위치한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사역언어인 러시아어를 배우는 일에 집중하고 있던 때라 부담이 있었지만 전도와 성경공부모임이 자연스레 교회개척으로 이어 졌다. 우리 아이들의 친구이자 곧 주일 학교 학생이 된 동네 아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초인종을 눌렀다. 우리 삶은 말 그대로 유리상자였다.


한 날 길거리 내걸린 광고를 보고 아이들에게 주려고 아이스크림을 샀다. 침을 다시는 아이들과함께 기도를 하고 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아이스크림이 변질되어 있었다.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정전이 일상이던 가게에서 녹은 아이스크림을 다시 얼려 판 것이었다. 잔뜩 기대하던 아이들의 실망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런 어느 날 터키에서 세운 슈퍼마켓이 들어서자 아이스크림이 팔기 시작했다. 종종 쇼핑을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왔다. 집에 자주 드나드는 니고라와 두 동생, 그리고 몇 몇의 아이들이 우리 집에서 아이스크림을 맛볼 기회가 있었다.


얼마 뒤 선교사 수련회가 있어 몇 일 동안 집을 비워야 했다. 외국인이 집이 비웠다는 것을 알면 도둑이 들 것을 염려해서 아나똘리에게 집을 부탁을 하고 떠났다. 수련회에서 돌아오는데 우리를 맞는 아나똘리의 얼굴 표정이 밝질 않았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것이다. 안방에 들어서자 바닥에는 진흙으로 된 신발 자국이 선명하게 말라 있었다. 일층의 방범창을 타고 올라와 발코니로 들어온 것이다. 집을 살펴보니 몇 가지 귀중품과 교회 헌금 일부가 사라졌다. 특이한 것은 냉장고의 아이스크림이 모두 사라진 것이었다. 주위를 살펴보니 아파트 출입구 지붕에 아이스크림 포장지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아이들의 소행이 분명한데 2층까지 방범 창을 타고 올라온 것은 예사롭지 않은 위험 천만한 일이었다.


다음 날 외출에서 돌아오는데 동네 아이들이 아파트 출입문 입구의 나무 위를 오르고 있었다. 니고라가 슬리퍼를 신고 나무 위로 오르는데 슬리퍼가 벗겨져 땅에 떨어지자 내 눈 앞에서 뒤집혔다. 그런데 슬리퍼 밑창의 무늬가 안방에 남겨진 그 발자국 무늬와 똑 같은 것이었다. 순간 나는 눈을 의심했다. 그러나 분명히 니고라의 것이다. 나는 아나똘리와 상의를 했다. 나는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것 같아 그냥 덮자고 했다. 그러나 아나똘리는 아이들의 성장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일층 방범창을 타고 2층으로 넘어 올 정도라면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했다. 부모에게 알려 제대로 훈육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경찰 간부인 니고라의 아버지가 어떻게 나올까 고민스러웠다. 기도하면서 니고라의 부모와 만나 진솔하게 이야기를 했다. 결과적으로 이 일로 두 가정은 더욱 가까워 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현지인의 눈에 우리의 생활이 어떻게 비춰 지고 있는지를 살피고, 위화감을 줄이기 위해 고민을 했다. 그리고 현지 사람을 실족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영적 긴장이 밀려왔다.

그러던 어느 날 시장을 갔다. 시장입구의 전면을 차지한 과일가게에 노란 바나나가 다발 채 쌓여있었다. 이것을 본 아이들은 “와! 아빠, 바나나다”라고 외쳤다. 그리고 바나나를 사달라고 졸랐다. 나는 다가가서 바나나를 살펴 보았다. 에콰도르 원산지 표시가 붙어 있었다. 에콰도르에서 쌍뻬제르부르그를 거쳐 중앙아시아까지 오다니 보니 바나나 하나의 가격은 미화 1달러 가까운 가격이었다. 현지 임금수준으로는 엄두를 낼 수 없는 가격이었다. 여유가 있는 일부 특권층 사람들에게나 결혼식에 쓰이는 장식용 과일 바구니에나 쓰일 정도였다. 먹고 싶다고 조르는 아이들의 청을 거절하기란 쉽지 않았다.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덕을 세우는 일, 그리고 현지인의 삶을 생각하니 자식들의 입에 바나나를 사서 넣어 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냉정하게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려는데 어린 둘째가 키오스크의 과일 진열대를 향해 목을 고쳐 세우고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가 아들의 손을 잡아 끌자 아들은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겨우 달래고 얼려서 다른 현지 과일을 사서 돌아왔다. 그 이후에도 아이들과 함께 시장을 갈 때면 입구에 버티고선 노란 바나나 다발은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무능, 자기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시험거리가 되어 갔다. 아이들의 유치함의 대부분은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다고 했던가! 아이들이 자라 말귀를 알아들을 때가 되었을 때 왜 바나나를 줄 수 없는지를 설명하려고 미화 100달러를 현지 돈으로 바꾸어 놓고, 바나나 1kg그램 값을 나란히 놓았다. “애들아, 이 만큼의 돈으로 6명이 한 달을 살아야 하는데, 바나나 1kg는 이 돈 중에서 이 만큼이란다. 아빠와 같이 일하시는 분은 이렇게 생활한단다. 그래서 아빠는 너희들에게 바나나를 사 줄 수가 없단다.” 아이들이 덕스러움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몇 년이 지나 한국을 방문하자마자 필요한 생필품을 사러 슈퍼마켓에 갔다. 물건을 사서 나오는데 입구에 위치한 과일 코너를 보자 아이들이 “와! 바나나다” 함성을 질렀다. “아빠! 여기는 우즈베키스탄이 아니라 한국이잖아요. 바나나 사주세요.” 그리고는 덥석 바나나 다발을 끌어 안았다. 그 때는 이미 한국에선 바나나가 제일 싼 과일이 되어 있었다.

<그동안 한국, 중국 등지로의 출장으로 인해 컬럼을 게재치 못한 점 애독자 여러분께 양해를 구합니다.>

[SEED Canada 대표 / 778-316-3579]

터키 이야기 (8)

터키 이야기 (8)



            청동 뱀 기둥                                         
콘스탄틴 기둥                                                 



이집트 오벨리스크



5) 히포드럼 (경마장)


로마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리우스에 의해 AD 203년, ‘비잔티온’에 만들어졌다. 그 후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확장되었다. 당시 경기장의 규모는 폭이 117m, 길이 480m에 달했으며, 10만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각종 경기, 황제를 위한 축제 등이 거행되었던 비잔틴 시민 생활의 중심지이기도 했지만 두 차례의 대학살이 이곳에서 발생하는 등 슬픈 역사의 비극도 함께 간직하고 있다.

경기장의 중앙 분리대는 ‘스피나’라 불렀으며, 당시 이곳에는 해와 달을 상징하는 오벨리스크를 비롯한 많은 대리석 및 청동탑이 세워졌으나 현재는 다음 세 개의 유적만 남아있다.

◎ 히포드럼 - 청동 뱀 기둥
히포드럼에 있는 두 번째, 즉 가운데 있는 청동제 뱀 기둥(Serpentine Column)이다. 이 기둥은 이스탄불에 있는 그리스 유적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원래 이 기둥은 페르시아 제국과의 살라미스 해전 및 플라미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31개의 그리스 도시국가가 기원전 479년, 그리스에 있는 델피의 아폴로 신전에 세운 것이다. 이 기둥의 아랫부분에 31개의 도시국가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콘스탄틴 대제가 이곳으로 가져온 것으로 추측된다.

청동으로 된 3마리의 뱀이 서로 꼬여서 있는 모습의 이 탑은 원래 8미터 높이였는데, 머리 부분이 소실되어 5.5m만 남아있다. 이 뱀의 머리 위에는 금으로 된 삼각 받침대 위에 황금 꽃병이 놓여있었다고 하나, 이곳에 가져오기 전에 이미 델피에서부터 없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없어진 3마리의 뱀의 머리 중 하나가 1847년에 발굴되어 현재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히포드럼 - 콘스탄틴 기둥
바로 뒤에 보이는 탑이 콘스탄틴 기둥 또는 일명 거상(The Colossus)이라 하며, 이 기둥은 AD 940년, 콘스탄틴 7세에 의하여 석회석 돌(높이 32m)로 만들어 세우고 기둥 표면 위에 청동을 덮어씌우고 그 위에 농부와 어부들의 모습을 새겨 놓았었다. 그러나 1204년, 제4차 십자군이 들어와 이 도시를 파괴하면서 청동을 벗겨서 다른 용도로 동전 및 주조에 사용하였다 한다. 현재는 보이는 것처럼 거칠게 보이는 돌기둥으로 남아있으며, 청동을 벗긴 흔적이 남아있다.

◎ 이집트 오벨리스크 (Egyptian Obelisk)
24m 높이의 한 개의 반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이 화강석 오벨리스크는 이집트의 왕 “투트마시스 3세(ThutmasisⅢ)” 치하(기원전 1502-1448)에 이집트의 고대도시인 다이렐 바흐리(현재의 ‘룩소’)에 있는 카르낙 신전에 세워진 4개의 오벨리스크 중 하나였는데, 약 2,000년 후인 390년에 테오도시우스 1세가 이것을 콘스탄티노플로 가져와 하나의 의식을 거쳐 스키나에 세운 것이다. 이것을 세우는데 만 32일이 소요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오벨리스크는 수송 중에 40%가 훼손되어 20m 높이의 대리석 받침대 위에 세워져 있는데, 이 대리석 받침대의 4면에는 각각 다음과 같은 내용이 부조되어 있다.

북쪽 편에는 오벨리스크를 세우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황제 및 황제 가족들, 서쪽 편에는 정복된 적들로부터 충성을 서약 받고 있는 테오도시우스 1세 및 그의 가족이 보이고, 아래층에는 조공을 바치고 있는 정복 민족들이 부조되어 있다. 남쪽 편에는 경주를 관람하고 있는 황제 및 그의 가족과 경호원, 관람객들의 모습이 보이고, 아래쪽에는 히포드럼의 경주 코스 모습이, 바닥의 라틴어와 그리스어는 황제와 사령관 프로클루스를 칭송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동쪽 편에는 마차 경주의 승자에게 수여하기 위해 월계관을 손에 들고 서있는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모습과 양 옆에 그의 두 아들인 아르카디우스(Arcadius)와 호노리우스(Honorius)의 모습이 보이고, 그 뒤에는 경호원 및 관객들의 모습, 아래쪽에는 무희들 및 악대들의 모습이 보인다.

6) 그랜드 바자르

비잔틴 시대부터 시장으로 사용되었으며, 정복자 메흐멧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후 1461년 나무로 지붕을 놓고 대상들의 무역을 위해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잦은 화재로 여러 번 재건되었으며, 오늘날 벽으로 둘러싸이고 돔 형식으로 된 건물은 그 면적이 20만 평방미터에 이른다. 이곳에는 5000여 개의 상점들이 작은 거리와 통로로 된 미로에 퍼져 있으며, 카펫, 공예품, 금, 은, 가죽제품 등을 취급하고 있다.

<계속>


이집트 오벨리스크 대리석 받침대

언어의 영성 - 진재혁 지음

언어의 영성 - 진재혁



말처럼 극과 극의 경험을 하게 하는 게 있을까요? 말처럼 소중함을 알면서도 함부로 사용하는 게 있을까요? 지혜롭고 절제된 언어생활을 위한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입술의 파수꾼’을 세우길 바랍니다.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하라
간단한 말로도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말을 구분할 때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 쌍소리’라고도 합니다. 말은 곧 그 사람입니다. 인격이며, 신앙의 성숙도를 나타내는 표지 입니다.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좋은 말을 하고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칭찬하고 격려하며, 축복의 말을 할 때 사람을 살리는 말이 됩니다.

힘을 주는 말을 하라흔히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합니다. 말은 마음의 거울입니다.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뭇 달라집니다. 말은 마음의 거울입니다. 사람마다 속에 있는 것이 말로 드러납니다. 표현과 선택에 주의해야 하고 남을 배려해야 합니다. 또 말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아무 말이나 막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듣고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듣고 계십니다.

하나님께 내 언어를 맡기라
말은 금이나 옥보다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말은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馬)의 입에 재갈이나, 배의 키, 혹은 불씨 처럼 작지만 전체를 좌우합니다. 말은 위험하기도 하고 변덕스럽기도 합니다. 사람을 죽이는 독이 있습니다. 한번 나간 말은 그냥 돌아오지 않습니다. 길들여지지 않은 말처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말이 형편없으면 그 영성도 비례합니다. 모든 말과 묵상이 주께 열납되는 성숙한 언어가 필요합니다.

유일한 대언장어(大言壯語)만 외치라 대언장어는 분수에 맞지 않는 말을 잘난 척하며 하는 것인데 피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제 파악이 필요합니다. 과거에 집착하거나 미래를 지나치게 장담하지 말아야 합니다. 살면서 최고인 것 같은 것을 가져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원망하는 태도를 버리십시오. 그리고 믿음으로 말하시기 바랍니다.

깨끗한 입술을 사모하라
삼인성호(三人成虎)는 세 사람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들어낸다는 말입니다. 그 만큼 언어의 정직성이 도전 받는 다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피해야 합니다. 다양한 유형과 의도의 거짓말이 있지만 무엇보다 그것이 죄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거짓말에도 민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성령께서 내 입에 파수꾼을 세워주셔야 합니다.

가십을 경계하라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날아간다고 합니다. 가십은 반드시 어떤 사람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정말 모르고 의도 없이 할 수 있지만 악한 마음으로 퍼뜨리는 말, 심지어 허위사실도 있습니다. 가십은 시비를 일으키고, 관계를 파괴합니다. 남의 말 하는 것은 ‘별식’과 같지만 내가 남의 말을 할 때 남도 나의 말을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타인에 대해 늘 좋은 말을 하십시오. 그를 지키고 세우는 말을 하고 많은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쟁이가 없으면 다툼이 쉬게 됩니다.

쓴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사람의 듣기 좋은 말보다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거슬리는 말을 들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목회자는 성도가 원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것을 전해야 합니다. 사람의 말속에서도 하나님이 말씀하고자 하는 것을 분별력 있게 듣는 것이 지혜입니다.

칭찬의 권세를 사용하라
감언이설 (甘言利說)로 사람을 혼미케 하면 안됩니다. 아첨이나 아부는 위험합니다. 올바르게 칭찬해야 합니다. 진실성을 갖추고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그것에 합당하게 주는 것이 칭찬입니다. 그것은 보물찾기와 같습니다. 아랫사람뿐 아니라 리더들도 칭찬과 격려가 필요합니다. 먼저, 아낌없이, 작은 것을 구체적으로 칭찬하시기 바랍니다. 칭찬은 힘든 사람에게 힘이 됩니다.

가정의 언어를 다스리라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됩니다. 마른 떡 한 조각 가지고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가족은 종종 언어폭력의 희생자가 되기도 합니다. 가족을 소중히 대해야 합니다. 건강한 대화를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평화와 기쁨이 가정에 있습니다.

감사가 흘러 넘치게 하라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는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잘 생각 (Think) 하면 감사 (Thank)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습관입니다. 건강한 습관을 기르셔야 합니다. 감사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없는 것을 불평하지 말고 있는 것에 감사하십시오. 현재의 결과에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에 감사하십시오. 큰 것에 불평하지 말고 작은 것에 감사하십시오.

언어는 축복의 도구입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은 한 우물에서 단물과 쓴 물이 날 수 없듯이 부정적이고 더러운 말을 버리고, 입술로 하나님을 높이고, 덕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나오는 것이 문제임을 예수님도 지적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대화에 함께 하심을 기억하고 아름다운 언어생활로 축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를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잠18:21)

[778-868-3063 / Ezekiel475k@gmail.com]

2012년 7월 16일 월요일

길진리생명이신 그리스도 예수 < 0 >



“해지는 저편 (Beyond Sunset)…”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아버지, 해(太陽)가 하루의 임무를 마치고 ‘애로우스미스’ (Arrowsmith) 산(山)을 넘어갑니다. 참으로 세월이 화살 같습니다. 우주라는 ‘빨레뜨’(palette)에 아버지께서 그리시는 황혼 녘의 그림은 황홀하고 눈물겹습니다. 긍휼은혜자비라는 세 단어가 가슴을 치며 심령을 채울 때, 나이 먹어간다는 것이 젊음보다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쁩니다. 1분이면 가던 거리를 5분 걸려 천천히 가면서도 사물을 유심히 관찰하고 느끼는 또 다른 시간을 즐기고 있습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서 산의 세미한 부분들은 그 모양세가 감춰지고, 어두움 속에서도 산능선이 뚜렷하게 선을 그어가는 것이 마지막 세상을 미리 보는 것 같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배도의 밤’은 깊어가는데 사단의 흑암의 세력들도 저들의 악한 활동을 위해 필요한 어두움이 예비된 것 같은 어지러운 세상입니다.

  아버지, 저는 지금 ‘제로’ (0) 지점에 선 자신을 보고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아버지의 마음 시원하게 해드리고 싶어 성급하게 서둘렀던 그 많은 서두름들은 기다림만 길게 만들었을 뿐이었다는 생각과 이제는 죽는 것까지도 아버지의 때를 기다려야만 한다는 사실에 숙연해집니다. 거동이 불편해지고 자신들이 여러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분들을 보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오히려 자신이 아버지 앞에 다시 깊이 발견되어지는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 이것은 정말로 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씩 깨달아 알게하심이 온 하루를 기쁘고도 감사하게 합니다. 그러나 교만과 의욕, 과장된 자아(自我)에 속임당한 돌이킬 수 없는 세월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쓰려옵니다. 이것 저것 다 접고도 제대로 되어가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아 낙담, 실망한 세월들이 너무 길었습니다. 좌절감, 죄책감, 원망, 처절한 외로움….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는 것인가? 등등…

  아버지, 쉽고 가볍다고 하신 주님의 멍에가 제게는 왜 이다지도 무거운지요…? 주님 저를 부르신 날부터 하루도 마음 편할 날 없었습니다. 아버지를 알아가게 되자 제 자신이 보이기 시작하였고, 또 심판아래 있는 구원받아야 할 세상과 말로 다 할 수 없는 만물의 피곤함과 신음하며 고통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이후로는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고 하루라도 지나친 날이 있었는지요? 아버지를 좀 잊어버리고 살았으면하고 크게 번민한 적도 있었지만 아버지께서 이 가련한 미물을 너무나 흔들어 놓으신지라 아버지를 잊어버린다는 것이 불가했습니다. 겨우 로마에 상주하는 저 죄의 사람(살후 2.3)이 아버지의 영광의 성호, 거룩하신 아버지(Holy Father, 聖父, 요17.11)를 찬탈하고 세상을 누비고 다니는 것 볼 때… 저는 이것 때문에도 마음이 편하지가 않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글재주가 없는 사람이 가슴 답답하여 쓰는 글이오니 아버지께서 알아서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어린아이일지라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죄의 교활성, 전염성, 파괴성의 위력으로 인해 ‘탕자의 계절’은 어디에나 와 있는데, 죄의 실체는 피하고 감정만 다루고 있는 그 많은 교회들….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여, 호흡이 코에 있는 자들로부터 인정추구를 바라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아버지의 기름부으심이 나타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 권능이 역사하여 성령님의 인치심으로 듣고 읽는 자들의 영혼에 변화가 일어나 “어찌할꼬?”(행2.37)라고 외치는 자들이, 아니면 “이를 가는”(행7.54) 자들이라도 일어난다면 제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올바로 전하는 줄로 알겠습니다. 

  아버지, 예수님 믿는다(‘뜰’의 신앙)는 것, 평생의 일이지만 이런 줄은 몰랐습니다. 예수님 섬기는(‘성소’의 신앙)것은 또 다르고, 예수님 따른다(‘지성소’의 신앙)는 것은 전 인격을 요구, 나의 모든 것을 철저히 내려놓는 것임을 우둔한 저는 늦게사 깨달았습니다. 주님께서 처음부터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나를 따르라’ (마4.19)고 하신 말씀이 이제사 가슴에 와닿습니다. 이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대한 생명의 유산을 전해주신 기도의 어머님을 허락하셨음을 생각할 때 감사치 아니 할 수가 없습니다. 이 땅의 나그네 길에서 변하는 허무에 열중하던 저희들 불러 택하시고 자녀삼아 주신 목적, 저희들이 이 세상에서 추구해야 할 것은 무사안일의 행복(Happiness)이 아니라, 영적전투를 위한 하나님을 향한 성결(Holiness)임을 깨닫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덧없는 인생의 잠에서 깨워주심에 감격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지 않았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 아래 있다’는 이 ‘가장 고상한 지식’을 올바르게 알리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교회는 찾았으나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그 많은 사람들이 먼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버지와 화목케 되는 역사가 불같이 일어나게 도와주시옵소서.  


구영재 선교사 [문의: 크리스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