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30일 목요일




“어지러운 세상 중에…”



0023. ‘종교’냐 ‘그리스도’냐

기독교는 종교가 아닌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깔뱅은 ‘기독교강요’에서 이 종교라는 단어를 잘못 사용하고 있으며 한국에 왔던 초기 미국인 선교사 곽안련은 기독교의 ‘복음공과’를 가지고 ‘종교공과’로 잘못 기록하고 있다. 기독교는 ‘고등종교’라는 등, ‘생명의 종교’라는 거짓말을 버리자. 기독교는 곧 ‘그리스도’이시며, 십자가와 생명의 ‘복음’이다. 종교는 ‘미신’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으며,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미신적이구나”(행17:22)의 미신적이라는 단어를 종교성으로 변개, 에큐메니즘의 일치를 위해 희랍정교회(동방교)측의 자극을 피하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하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는 천주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즉 기독교의 요람은 천주교가 아니라 유대교이다(1996년 10월/아래차트참조).

 
 
 

0024. ‘PK’(Promise Keepers) - Purgatory Kit!(‘연옥통’) (1996년 10월)

‘약속이행자들’이 수만명씩 모여서 “담을 허물자!”고 고함친다. 손뼉을 치고 휘파람을 불고 감정이 고조됨에 따라 흥겨운 무드가 술렁인다. “1인의 리더쉽”을 부르짖는다. 즉 ‘로마교황’밑으로 돌아가자는 로버트 슐러의 망언 - “지금은 프로테스탄트 교도들이 목자장이 되신 (로마)교황 앞에 나아가 우리가 집(로마카톨릭교회)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할지를 물어야 할 때이다” (“It’s time for Protestants to go to Shepherd - the Pope - and say ‘what do we have to do come home’?” - Los Angeles Herald Examiner, 19 Sep. 1987) - 을 외치고 있다.

4만 명이 조금 못 되는 목사들을 모아놓고 축구코치가 목사들에게 ‘로마교황’ 앞으로 가는 길을 코치하고있다: “Our clergy are divided,,,We’ve got to have one leadership, one leadership only.” 이에 함성으로 화답하는 목사들. 공중에서 찍은 아틀란타 스타디움 ‘돔’을 꽉 메운 군중은 마치 “끓는 가마솥”같다. 불이 영원히 꺼지지 않는다는 연옥통을 내려다보는 것 같다.

트레스 디아스, 빈야드, 프라미스 키퍼스... ‘가정을 구하자!’는 구호의 포장지가 벗겨지니 그 안에는 다른 것들이 들어있다. 에큐메니칼 이단들이 부르짖는 일치운동의 핵심은 모두 천주교의 ‘미사’로 유인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을 부끄럽게 만드는 제단위의 제사가 바로 천주교의 ‘미사’이다.

0025. 마태16:18의 ‘반석’이 『베드로』라고 선언한 빌리 그래함 등의 신(Neo)복음주의 지도자들로 인해 깊어만 가는 배도의 밤 (Billy Graham: Believe: Love Immesearable / March 4, 2003 → http://billygraham.org/article.asp?i=80&s=64) (2006년 가을)

히브리 성경에서 ‘반석’(바위)은 결코 인간에게 사용되어진 예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유의하시길 (예, 삼상2:2, 시편 18:31, 44:8 등등). “한 몸에 두 혼”(One Body with Two Souls) - 즉 『천주교』(종교)란 이름으로 수많은 천주교도들을 이끌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뉴욕시 센트랄 파크의 1/8크기의 도시국가 바티칸(정치)을 가지고 200 여 개 국에 대사, 영사들을 파견하고 있으며, Passport, 돈(은행), 우표, 군대 등을 독자적으로 보유, 세계제일의 ‘중앙정보부’를 가진 독립국가. 당신은 이것이 신약성경이 말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믿고 있는가?

0026. 『베니 힌』 (1997년 봄)
‘안녕하세요, 성령님’의 저자. 예수님의 타이틀인 ‘평화의 왕자’(Prince of Peace, 사9:6)상을 제정하여 로마 교황에게 바친 자. 베네딕트파가 운영하는 천주교학교를 졸업한 자. “자신의 근본정신은 로마카톨릭정신이며 로마카톨릭 식으로 거듭났음”(Christianity Today, Sep.3, 1991)을 밝힌 자. “나의 생각과 행동은 매우 카톨릭 적(的, very Catholic)”이라고 서슴지 않고 선언한 자. PTL Show에서는 자기를 공격한 자를 향하여, “성령의 따발총으로 머리통을 날려 버리겠다”고 공언한 자. 삼위일체가 아니라 9위1체를 주장한 자. 로마카톨릭 화체설 신봉자이며, 그래서 “나는『베니 여호와』” 라는 망발을 서슴지 않으며, “하나님의 자녀는 인간이 아니고 신(神)이다”라고 지껄이는 자.

베니힌은 자신의 영적능력을 1973년 그가 참석했던 케트린 쿨만의 집회에 두고 있다. 그가 영향을 받았다고 자랑스럽게 말한 쿨만을 포함한 3명의 여자들은 모두 신자(信者)로서 이혼했으며 그 중 한 명은 두 번이나 이혼하였다(이 3명의 여인들은 Kathryn Kuhlman, Woodworth Etta, McPerson 이다). 그러면 베니 힌이 “안녕하세요, 성령님”에서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케트린 쿨만은 누구인가? 그녀는 부흥사 B.A. Waltrip을 자기의 집회에 초청하였고 결국은 아내와 두 아들을 두었던 월트립과 결혼, 8년간 살다가 다시 이혼하였으며 월트립은 감옥에서 죽었다. 그녀는 Dino Kartsonakis라는 미남(美男) 피아니스트를 식당 등 어디에나 에스코트하도록 하였으며 그의 음반제작과 이탈리아에까지 가서 양복을 맞춰 입도록 배려하였다. 케트린 쿨만의 집회에는 자주 늘 30~40명에 달하는 로만칼라 제복차림의 신부들과 수녀들을 초청, 집회 단상 위에 앉도록 하였다. 1975년 10월 11일, 케트린 쿨만은 로마교황청을 방문, 교황 Paul Ⅵ를 만나고 돌아와 정신질환으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것이 쿨만에 대해 알려진 이야기의 대략이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찬503 고요한 바다로 ②)

구영재 선교사 [P.O. Box 8844 Victoria, BC V8W 3Z1]

한중수교 20년




"중국 선교에 긍정적 영향 끼쳤다"



대한민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은 지 20년이 지났다. 그간 중국의 경제는 급속도로 성장했고, 우리 주변에서 ‘Made in China’가 적힌 제품을 찾는 일은 식은 죽 먹기가 됐다. 한중수교 20주년을 기해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수교당시 64억 달러였던 교역액은 2011년 기준 2200억 달러로 34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이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됐다. 물론 대한민국도 경제권 10위의 쾌거를 이뤘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이야기할 때 떼려야 뗄 수 없는 나라 중국. 함께 성장해온 두 나라의 수교 20주년을 맞이해 한중수교가 선교에 미친 영향과 현황을 분석해본다.

# 중국을 향하여한국전쟁 당시 중국은 북한을 지원했다. 한없이 밀려 내려오던 중공군. 이런 중국과 우리나라는 좋은 관계일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수교이전에는 우리 국민들의 자유로운 중국 왕래가 어려웠다. 연변에 가족이 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통행은 여전히 어려웠다.

그러던 1992년 한중수교를 계기로 중국의 문은 조금씩 열려갔다.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중국으로 향하는 학생들의 숫자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미리 중국어를 배워두자는 것이었다. 이에 발맞춰 크리스천들의 중국 진출 또한 눈에 띄게 증가했다.

중국선교연구원 인보라 선교사는 “한국이 중국 선교를 하는데 있어 한중수교는 커다란 역할을 했다”며 “먼저 선교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기회가 주어졌을 때 열심히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의 헌신이 지금의 중국 교회를 있게 한 장본인”이라며 “그들이 중국에 교회가 세워지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실질적으로 중국내 기독교인의 숫자가 20년 전보다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임희국 교수는 ‘한ㆍ중 수교20년, 성찰과 조망’이라는 논문을 통해 “약 20년 전에는 중국 기독교인의 숫자가 1천만 명에서 그친데 비해 지금은 1억 6천만 명 내외로 알려져 있다”며 중국에서 기독교가 그야말로 급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또한 “20세기 중반까지는 세계 기독교의 중심이 유럽과 북미였는데, 이제는 그 중심축을 더 이상 그곳에서 찾을 수 없게 됐다”며 “반면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에서 신생교회들이 활발하게 자라나고 있다. 특별히 중국이 그러하다”고 밝혔다. 현재 중국 기독교가 성장하는 추세를 봤을 때 선교에 있어서도 중국이 어느 정도의 몫을 감당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교회는 현지에 교회가 세워지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깥으로 눈을 돌려 세계에 복음을 전할 준비에 여념이 없다.

# 남겨진 문제들사실 한중수교 20주년이라는 중요행사를 두고 양국은 관계를 개선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까지 두 나라는 ‘불편한’ 관계였기 때문이다. 과거 고구려 역사왜곡, 서해안 불법 조업 등 양국 사이에는 묵은 체증이 있었다. 또한 최근 탈북자 강제북송 사태,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 씨에 대한 고문의혹 등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 나라의 관계는 경색되어 있었다. 그리고 위에서 제기한 문제점들은 지금까지도 ‘미해결 과제’로 남았다.

이런 국제적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중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의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한국인을 향한 중국내 시선이 부정적으로 변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그들이 타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탈북자 강제북송으로 국내 여론이 들끓고 있을 때 중국 공안당국은 중국내 선교사들에게 “1~2주일 안에 중국을 떠나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또한 최근 탈북자 구호사역에 나섰던 전재귀 선교사는 중국 공안에 억류돼 옥고를 치렀다. 일각에서는 “공안에 탈북자를 데리고 있는 선교사를 신고하면 포상금을 받을 수 있는 것 같다”며 “돈 때문에 자신을 돌보던 선교사를 공안에 신고하는 일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렇듯 중국내에서 한국인 선교사들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과 수교한 후 단교한 대만과의 관계에도 회복이 필요하다. 더욱 큰 것을 얻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로인해 대만 국민들의 반한감정은 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만을 품은 한국 선교사들은 어려움이 더욱 커졌다.

# 나아갈 방향OMF 손창남 선교사는 “어느 곳에 파송된 선교사든지 선교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며 가장 기본적인 것에 충실할 것을 강조했다. 손 선교사는 “인권도 중요하고 불합리한 문제들이 잘못됐다고 지적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지만 그런 혈기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주객이 전도될 수 있으니 유의하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에 들어온 제3국의 사람이 우리나라가 지향하는 것과 반대되는 일을 주장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이냐”며 “중국에서 지향하는 문제들이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그 곳에서 선교하기 위해서는 인정해야할 때도 있다”고 주장했다.

인보라 선교사 또한 중국 선교 시 주의해줄 것을 요청했다. 인 선교사는 “중국 정부는 중국이 하나가 되길 원하는 마음이 크다”며 “떨어져 나가기 원하는 티베트, 신장, 조선족 등 중국 정부가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상황에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또한 “중국 공안당국이 이미 중국에 있는 한인교회는 물론 선교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파악하고 있다”며 중국 정부의 신경을 건드리는 일들을 삼가줄 것을 요청했다.

많은 문제들이 산재한 가운데서도 복음을 전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돼야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 교회는 중국 선교에 있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인보라 선교사는 “많은 선교사들이 중국 선교에 나설 때 무언가 가르치러 가는 것 같다”며 “사실 기독교는 중국에 먼저 전해졌다. 그들에게 무언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섬기러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진정성에 대한 조언도 이어졌다. 인 선교사는 “중국 공안들도 진심으로 섬기려는 것은 모두 느낀다”며 “조금만 관계가 이뤄지면 그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먼저 그들에게 신임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그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할 경우 선교가 더욱 힘들어질 수도 있다”고 염려했다.

한편, 손창남 선교사는 “중국인들에게 필요한 사람으로 여겨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입장에서 도움이 될 존재라면 쫓아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손 선교사는 “150년 전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을 선교할 때도 중국인들은 선교사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가 그들에게 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에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렇게 그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 섬기다 보면 결국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드러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선교 전문가들은 한국적 선교와 신앙을 강요해선 안 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손 선교사는 “중국문화 안에서 신학이 재정립돼 그들만의 신학이 생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인보라 선교사 또한 “중국의 문화를 무시하고 우리의 문화를 내비치기보다는 그들의 문화를 먼저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어려운 상황에서 불씨에 불이 붙어 타오르기 시작한 중국 선교가 이제는 서양에 영향을 끼쳐 그들의 꺼진 불꽃에 다시 불을 붙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경 200독 완수, 황현성 장로



"성경을 통해 받은 은혜로 주께 영광 돌린다”


1997년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해 최근 성경 200독을 완수한 황현성 장로(수원 성림교회). 황 장로는 “읽을수록 말씀이 깨달아지고 쉬워지는데 왜 진작 안 읽었나 후회된다”며 “성경을 통해 받은 은혜에 감사해 주께 영광을 돌린다”고 전했다.

본지 창간독자이기도 한 황 장로는 “1997년 전만 해도 내게 성경은 휴대품에 머물러 있었다”며 “성경이 생명책인 줄 알면서도 인생의 고민이나 영적 갈등이 있을 때조차 성경을 찾지 않았던 사람이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는 1997년부터 굳은 각오로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2007년엔 30독, 2011년 4월엔 80독, 같은 해 7월엔 100독을 했고, 올해 2월 150독을 끝냈다. 황 장로는 “80독을 하고나니 속독법을 익혀 성경을 읽는데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며 “성경구절마다 밑줄을 긋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또한 황 장로는 “한 종류의 성경만을 읽으니 지루한 감이 있어 쉬운 성경, 큰 글자 등으로 표제를 달아 출판된 다른 성경을 읽었는데, 오히려 전 성경에 비해 은혜가 되지 못했다”며 “한자용어는 한글로 풀어 일상용어로 바꿔 영성이 떨어지고, 어떤 성경은 주석인지 설교집인지 분별이 안 될 정도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세계엔 언어별로 5천여 종의 성경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오는 목회자나 신학자들이 이 중의 하나를 들여와 기독출판사와 제휴번역하면서 성경의 종류가 많아지고 있다”며 “주석이 많고 찬송가 또한 여러 종류가 되도 좋으나 예배용 성경은 하나로 통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기독서적 편찬 회사들이 다른 성경과의 차별화를 위해 용어선택에 신중을 기하지 않고 속어도 서슴없이 사용함으로써 자의적 해석 또는 억지풀이가 나타나고 있다”며 “이러한 경향이 교회가 분리되고 세속화되어가는 효시가 아닌가 하는 염려도 된다”고 우려했다.

또한 황 장로는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우직하게 성경을 읽어나갈 때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며 성경 읽는 것을 권면했다.

‘랑데뷰(RENDEZ-VOUS)’



2012 YWAM CANADA Conference
‘랑데뷰(RENDEZ-VOUS)’열렸다




지난 8월 19일부터 24일까지 2012년 YWAM CANADA Conference가 매니토바 주 위니펙에 있는 피나와에서 열렸다.

“New Season, Connection, Identity, Inspiration”이란 주제를 가지고 캐나다 YWAM 베이스가 있는 48개 지역에서 약 200명(어린이 포함)의 Full time 사역자들이 참석했다.

1999년 부터 시작된 YWAM CANADA Conference는 ‘랑데뷰(RENDEZ-VOUS)’로 불린다. 랑데뷰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의 만남’이란 뜻의 불어이다. 1800년대 초 캐나다 원주민(Frist nations people)과 프랑스 무역상인들이 물물교환을 위해 만났던 랑데뷰는 캐나다 건국의 초기 역사성을 가진다. 그러나 오늘날 YWAM CANADA의 랑데뷰는 영적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 다양한 민족과 세대들이 각 문화를 뛰어넘어 화합하고 사역하기 때문이다. 이는 다민족 국가이고 Multicultural한 캐나다의 모습과 겹친다.

중보기도, 찬양, 나눔, 강의와 주제별 Workshop 그리고 여러 Community Activity를 통해 서로가 치유받고 격려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렸다. 또한 새로운 사역팀을 축복하고 간증하며 다음 랑데뷰를 기약하면서 은혜 가운데 2012 랑데뷰를 마쳤다.

[제공: YWAM CANADA NEXIA 글로리아 임]

아브라함 이야기



18. 하갈의 체험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 / 창 16:7-16 (상)



하나님의 약속이 지연되고 미래가 불투명해지자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 대신 그럴듯해 보이는 사래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하갈을 통해 후손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들의 계획은 처음에는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곧 평화롭던 가정에 원망과 다툼이 생기더니 결국 임신한 하갈은 여주인 사래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도망치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이후에 일어난 사건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집트로 도망가는 하갈사래의 학대를 피해 사막 (광야)으로 도망친 하갈은 수르 (Shur)로 가는 길 옆에 있는 샘 (우물)에서 하나님의 천사를 만납니다. ‘수르’ (Shur)는 시내 (Sinai)산 북서쪽에 있는 이집트 바로 옆 광야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지금 하갈이 가나안에서 이집트로 가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즉, 하갈은 자신이 원래 나왔던 이집트로 도망을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갈을 만난 하나님의 천사이집트로 가던 하갈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천사는 그녀에게 질문을 합니다: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8절 상). 처음 보는 낯선 이가 자신의 이름 뿐 아니라 자신의 여주인의 이름과 신분을 말할 때, 하갈은 크게 놀랬고 이 낯선 사람이 신적인 존재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천사는 하갈에게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봅니다. 이미 하갈의 이름은 물론 그녀의 신분까지 알고 있던 천사가 정말 몰라서 묻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하갈로 하여금 지금 현재 그녀가 처한 상황을 돌아보게 하신 것입니다. 똑같은 질문에 대해서 거짓말을 했던 가인 (창 4:9)과는 달리 그녀는 솔직하게 말합니다: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8절 하). 그러자 그 천사는 하갈에게 명령을 합니다: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9절). 이것은 하갈이 여전히 사래의 종이기 때문에 돌아가라는 냉혹하고 확고한 명령입니다. 특히 여기에 쓰인 ‘복종하라’는 말은 히브리어 동사 ‘아나’ (ʿānā)의 ‘히트파엘’ (Hitpael)형으로 그 뜻은 ‘시달리다’ 혹은 ‘비하하다’ 입니다. 이것은 하갈이 다시 사래에게로 돌아가 자신을 낮추고 사래에게 시달려야 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갈은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녀와 임신한 아이가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갈에게 약속을 준 하나님의 천사
하갈에게 다시 여주인에게로 돌아가라 명령한 천사는 이번에는 그녀에게 약속을 줍니다: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10절). 이것은 아브람에게 하셨던 약속들 (창 12:2; 13:16; 15:5)과 똑같은 것으로 하갈의 자손이 아브람의 약속에 포함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어서 그 천사는 하갈이 아들을 낳을 것이고 이스마엘이라고 이름 지으라고 말합니다: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11절). 여기서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은 직역하면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하갈의 고통스러운 부르짖음을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주석가들이 이 구절을 해석하면서, 하나님은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고통과 압제당하는 자들의 부르짖음을 외면치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왜 하나님께서 하갈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고통당하는 하갈에게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본문은 비록 하갈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초점은 여전히 아브람에게 있습니다. 왜냐하면 12절 때문에 그렇습니다.

[정기수 목사 / 캐나다중앙교회 / 778-237-8084]

예수님의 마음 치유



제 11 장 영의 치유와 혼의 치유


3. 영의 치유와 혼의 치유는 아주 다른 것이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과 이미 예수를 잘 믿고 있는 사람은 아주 다른 두 종류의 사람들이다. 믿지 않는 사람은 남의 식구, 즉 ‘외인’이고 믿는 사람은 우리 식구, 즉 내 자식, ‘내 형제’이기 때문이다. 믿지 않는 사람을 믿게 하는 것은 남의 자식을 감옥에서 꺼내오는 것이고 믿는 사람을 치유하고 성숙하게 하는 작업은 내 식구를 ‘양육’하는 사역인 것이다. 이것을 명심하며 구별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이 두 그룹을 위한 말씀의 사역, 성령님의 사역, 또 회복의 사역에서 그 내용과 방법과 과정과 목적이 아주 달라야만 한다.

영의 ‘치유’와 영의 ‘성숙’
영의 치유와 영의 성숙은 또한 아주 다른 것이다. 그런데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혼동하고 있다. 이 혼동이 심각한 혼란을 불러 일으킨다. “영의 치유”가 가장 먼저 필요한 사람들이란 예수를 믿지 않고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영이 기절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깨어나게 해야 한다. 즉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오직 “거듭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기타의 무엇도 그들에게는 의미가 없다, 아니 오히려 해로운 경우가 많다. 일단 죽은 영혼을 살려야만 한다. 예수님의 구원의 복음의 선포가 필요하고 성령님의 “기적”의 역사가 필요하다. 선교지에서 온갖 기적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기적의 역사 말이다. 그 다음으로 영의 치유가 필요한 사람은 어둠의 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다. 즉 악령을 섬기는 자들이고 다른 종교를 깊이 믿는 사람들이다. 회교도, 불교도, 또 사탄 숭배자 같은 사람들이다.
이에 비해서 “영의 성숙”은 거듭난 사람들이 말씀과 성령으로 양육 받으며 자라나는 과정을 의미한다.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마치 어린이들이 해를 거듭하며 자라나는 과정과 같은 것이다.

혼의 치유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혼의 치유가 도움이 된다. 대인 관계가 좋아지고 가정이 평화로워진다. 그러나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혼의 치유가 예수님 앞에 나오는 과정을 오히려 지연시킬 수 있기에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으로 내적 치유를 심각하게 시도하지 않는다. 물론 주님께서 이미 예비하신 경우는 예외이지만.
예수님이 성경에서 수많은 “기적”을 일으키셨다. 그런데 이 기적의 장면들을 주의 깊게 봐야한다. 각각의 기적이 ‘죽은 사람’ (아직 거듭나지 못한 사람)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열두 제자들을 포함해서 이미 ‘살아난 사람’을 위한 것인지, 말이다.

잘 믿는 그리스도인들도 “눈에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수십 년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따르던 열두제자들도 그랬다. 그들이 비록 거듭났고 하나님이신 예수님과 모든 것을 함께하며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예수님의 음성뿐이 아니라 예수님을 직접 보고 듣고 만지며 말씀을 들었지만 그들은 “세상 남편”의 큰 영향아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조금 있으면 승천하실 상황에서도 이 땅에 “왕국”을 세우고 신나게 권세를 부리는 삶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도행전 1:6)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제자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제자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기적이 아니었다. 기적을 보면 볼수록 그들의 세상을 향한 욕망은 더욱 커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 나도 저렇게 능력을 행사해서 사람들의 인기를 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육적인 마음이 자극을 받는다. 그 기적들은 제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믿지 않는 사람들을 주님께 나아오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였던 것이다.

제자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속사람의 변화”였다. 그들이 예수님처럼 되는 것이 예수님의 목표였다. 그들의 상하고 찢어진 마음을 치료해서 그들의 영으로 받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이 되게 만들어 가시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 훈련”이었던 것이다. 말씀을 통해서 영을 “성장”하게 하면서, 혼을 계속해서 “치유”해 가신 것이었다. 영의 치유가 아니라 “혼의 치유 작업”이었다. 혼이 치유되는 만큼 영이 성장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수준이 목회자라는 그릇의 수준을 넘을 수 없고, 성도의 인격 수준이 목회자의 인격 수준을 넘을 수 없다는 말을 음미해 보시라. 그릇이 수리되는 만큼 성령의 기름이 담겨지는 것이다.

구자형 목사(밴쿠버내적치유사역원장)saranghealing@hanmail.net

기쁨을 묻다 - R. T. 켄달



기쁨을 묻다 - R. T. 켄달




예수 믿고 살아가는 삶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은 무엇일까요? 세상사람들과 다르게 살게 원할 때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확신하게 할 그 무엇이 있는지요? 상황과 환경의 굴곡을 경험하는 때에는 결코 놓을 수 없는 기쁨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오는가요? 신앙생활은 무미건조해서는 안됩니다.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집중하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에 목말라 있습니다. 작은 선행이나 실천에도 다른 사람의 인정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인정만으로 만족하고 사람들의 칭송을 일부러 구하지 않는 사람은 흔하지 않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통째로 삼켜도 해갈되지 않는 그 욕구를 가진 우리에게 주님은 경고하십니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 5:44).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 참된 영광은 없습니다. 바울은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라고 고백합니다.

종교적 권위나 자기 의를 포기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실패하면 우리는 진짜를 놓치게 됩니다. 이론적으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함을 위해 알고 인정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인정받고 싶은 유혹을 이길 힘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비밀스러운 경험’인 진정한 만족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오늘이라도 주님을 섬겨 행하는 어떤 일에서든지 사람보다 하나님의 칭찬을 구하겠다고 다짐하고 실행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하박국 처럼 ‘구원의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기뻐하게’될 것입니다. 즐거움은 상황에 따른 반응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주님으로 만족하겠다는 ‘결단’의 결과입니다.

성령 안에 거하는 삶온 우주를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영으로 내 안에 거주하심은 얼마나 놀라운 경험이고 은혜인지 모릅니다. 우리의 문제는 성령의 인도를 구하지도, 성령의 충만한 임재를 구하지도 않는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직접 교제하고 싶어 하십니다.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참여하는 축복의 일부분입니다. 성령의 내주와 성령체험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과 임재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는 인도, 교리를 깨달음, 기도 응답, 영 분별 등다양한 경험을 하게 합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의 핵심적이고 필수적인 증거는 기쁨, 즉 온전한 기쁨입니다. 세상 그 무엇보다 하나님과 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이런 기쁨을 얻습니다. 성령과 동행할 때 우리는 풍성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서로 용서하고 용납하여 줄 때 우리는 쓴 뿌리에서 놓이게 됩니다. 우리는 또한 성령께 민감해야 합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음행, 탐욕, 추잡한 말, 점잖지 못한 농담, 독설, 격정, 분노, 욕설은 성령을 근심케 합니다. 성령 안에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길과 방식을 배웁니다. 진정한 동행을 위해서는 반드시 함께 시간을 보내야만 합니다. 또한 성령과 더불어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과 걷는 길이 가장 좋은 길이고 행복한 길입니다.

불가능한 기쁨인생에서 때로 시련을 만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시련도 결국은 끝나는 법입니다. 시련을 기쁘게 받아들이면 ‘너는 나의 영광’이라고 영예를 부여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 고난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빌 1:29). 시련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 재정적 어려움, 상실, 질병, 오해, 실패, 실망, 배신, 학대, 실업, 해고, 정신적, 감정적 우울증, 사고, 외로움 등 다양하게 옵니다. 하나님은 권면하십니다:
시련을 환영하라, 두려움에서 벗어나라, 가난한 심령을 가지라, 하나님이 시련을 허락하셨음을 기억하라, 끝내려고 애쓰지 말라, 불평하지 말라, 하나님의 기대를 기억하라.
때로 시련 중에 우리는 멀리 계신 것 같은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잭 테일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고통스러운 상황이 지속된다면, 이 문제에 대해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우리가 아직 듣지 못했다는 뜻이다. 시련이 계속되는 것은 시련을 통해 이루어야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장벽을 넘어 하나님을 더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의지하고 열심히 기도하며, 빛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 30:5).

천국을 보는 믿음사실상 이 땅에서 우리는 나그네와도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진정한 본향을 향한 영혼의 갈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자주 우리는 이 땅에서 떠나지 않을 사람처럼 살아갑니다. 하늘 소망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상급이 있습니다. 또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이 있다고 하십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 10:42).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이 행한대로 갚으리라”(마 16:27) 라고 하십니다. 주님이 “잘했다”고 칭찬하시면 그것이 최고의 기쁨입니다. 이는 가장 높은 수준의 기쁨입니다. 지상에서 가장 큰 행복은 하나님을 기다리다 결국 그분의 역사를 보는 것입니다. 더욱 풍성한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778-868-3063 / Ezekiel475k@gmail.com]

그동안 ‘마음이 이어질 때’를 연재해 주신 김영남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편집인】

대기 만성

 
 

대기 만성

 
 
 
한국에서는 인성교육에 치중해야할 유치원에서 부터 ‘등수’ 경쟁이 시작되고 있다. 유치원 때부터 그렇게 해야 일류 대학에 들어 갈 수 있고 일류 직장엘 갈 수 있다고 한다. 일등이 되기위한 줄서기 경쟁에서 선두에 선 사람들만이 일등 신랑, 신부감이 되고 이들이 같은 부류의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면 최고로 성공한 젊은이라고 여기는 것이 한국 사회이다. 옛날에는 가난한 집 아이들도 공부를 열심히 하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어 소위 ‘개천에서 용이 나왔다’는 말이 많이 통용되었다. 유치원에서부터 시작된 경쟁에서 선두에 들면서 대학까지 졸업을 하려면 수억 원의 교육비가 들어가야 한다는데 이는 가난한 집에서는 도저히 감당 할수 없는 거액이다. 그래서 요즈음 한국에서 가난한 집을 의미하는 즉 ‘개천에서는 용은 커녕 미꾸라지도 나오기 힘들다’는 말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드는 교육비를 투자하고 열심히 공부만 한다고 다 일류대 좋은 ‘꽈’에 갈수 있는 것도 절대로 아니다. 소위 일류 중에 일류라는 몇 개 대학에 들어가서 최고인 대기업 직장 군에 들어 갈수 있는 사람은 전체 대학 응시자중 2%도 안 된다. 그럼으로 대학응시자중 일류대에 들어가지 못하는 절대 다수가 패배자 즉 요즈음 젊은이들이 많이 쓰는 용어로 ‘루져’가 되어 인생 출발점에서부터 실망과 열등감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전체 대학 응시자가 2%내에 들어가기 위하여 ‘너죽고 나살자’ 식 경쟁의 길로만 가야 하는 가를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산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길은 산 반대쪽에서도 오를 수 있는 길이 있는 등 반듯이 여러 개의 길이 있다. 그리고 산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변치 않는 끈질긴 의지와 집착만 있다면 정상에 오늘 못 오르면 내일 완성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서울대, 고대, 연대 등 소위 잘 알려진 일류대학에 진학하는 것만이 정상에 오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우물안 개구리 같은 생각을 떨쳐버리고 우물 밖의 세상을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산 반대쪽에도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길이 무수히 존재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세계에는 삽십 오만 삼천개나 되는 많은 대학들이 있는데 그중 소위 최고 일류라고하는 100개 대학의 명단이 매년 발표되고 있다. 2012년 자료를 살펴보면 톱 100위 안에 들어있는 일류 대학이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으로 34개의 대학들이 미국에 포진하고 있다. 그리고 영국에 18개, 호주에 7개, 독일과 일본에 6개, 캐나다, 스위스에 4개, 불란서와 한국에 3개 대학들이 자리잡고 있다. 100위 안에 들어있는 한국 대학 순위를 보면 이제는 전교 1등 해도 입학이 쉽지 않다는 서울대가 51위에 불과하며, 포스택이 68위, 그리고 카이스트가 94위에 있다. 그리고 캐나다의 대학을 보면 토론토대 27위 UBC 37위 맥길 65위, 맥마스터 91위로 되어있다. 이들 정규대학 말고도 자기 적성에 따라 갈 수 있는 교육과정들은 대학보다 더 많은데 한국 사람들은 성공의 길로 4년제 정규 대학 과정만 고집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적성은 고려되지 않고 장래에 편안히 돈을 잘 버는 길로만 자녀들을 몰아가고 있다.
한국에는 이 백개 가까운 4년제 대학이 있다. 상위 12개 대학들의 2012년도 순위를 보면 서울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연대, 고대, 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 외국어대, 이화여대, 중앙대, 경희대 순으로 되어 있다. 이중 2개 대학만 지방에 있고 모두 서울에 위치하고 있으며 20위까지 대학을 살펴봐도 거의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서울에 있는 대학에만 입학해도 모두가 최고 명문인 ‘서울대학’에 입학한 것이란 유행어가 나온 것 같다. 세계 랭킹에서는 연대가 203위 고대는 236위에 있으며 그 밖의 모든 한국대학들은 세계 랭킹순위에서 세계적인 잣대로 볼 때는 그저 그런 대학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학부모들은 이 학교들에 자녀를 입학시키려고 무척 애를 쓰고 있다.
교포 자녀들이나 유학생들이 외국유명 대학에 입학하는 수는 해마다 괄목할만하게 늘어나고 있다. 특별한 몇 학교를 제외하고 어지간하게 노력하는 한국학생들이면 세계 100위권 내에 있는 유명학교에 어렵지 않게 입학들을 한다. 그러나 입학한 학생수에 비하여 끝까지 학업을 마치고 학위를 취득하는 학생 수는 적어 중간에 학업을 포기하고 도태되는 학생 수가 한국 학생이 타 민족에 비해 최고 으뜸에 달하고 있다고 한다.
그 원인은 세가지 관점으로 분석되어 진다. 첫째는 한국학생들은 주입식이나 암기식 방법으로 공부를 해 왔는데 연구와 토론에 바탕을 둔 대학공부 방식에 익숙치 못하여 학업을 따라갈 수 없는 경우라고 한다. 그리고 두 번째는 전공분야가 본인의 적성과는 관계없이 부모 등 외적 작용에 의해서 결정되어 대학에 와보니 전혀 자기와 맞지 않는 경우라고 한다. 그리고 세 번째는 목표를 향한 끈질긴 노력과 집착의 부족이라고 한다. 이곳의 대학공부는 지옥훈련과 같은 것인데 이를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는 학생이 적지 않다고 한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자녀이고 나의 형님은 불신자 인데 형님은 호주에 나는 캐나다에 정착하여 살고 있다. 형님은 두 아들을 두셨고 나는 딸과 아들이 있는데 이들 모두는 40대 중반이거나 40을 바라보는 연령이다. 형님과 나는 모두 자식들 교육문제가 주된 목적이 되어 이민을 하였지만 이민자로서의 형편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 가운데 시작되었다. 형님은 ‘시드니’ 부자동네에 호화주택을 직접 짓고 이민 아니 ‘이사’를 하셨다. 나는 형님보다 여러 해 먼저 호주로 이민하였지만 겨우 작은 집을 마련하고 여유없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때 형님가정을 초청 하였다.
조카들은 한국에서부터 특수학교에 다니는 등 부모로부터 아낌없는 교육투자와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그러나 장조카는 고려대에 공대가 있는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때 고려대 공과대학에 겨우 들어가 부모에게 실망을 안긴 케스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둘째 조카는 일차에 낙방하여 이차 대학인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한성’대학에 겨우 입학이 되어 형님은 또 한번의 자녀 교육에 실망을 하시고 체면이 땅에 떨어지셨다. 그러던 중 고민 끝에 호주로 오셨다. 그 후 형님과 형수님은 모든 생활을 아이들 공부 뒷바라지에 혼신을 다하셨다. 다행히 장조카가 다니던 고려대가 한국의 명문대로 인정을 받아 세계 랭킹 50위 안에 드는 NSW 공대 원자력 공학과에 입학이 되었다. 하지만 한성대학에 적만 두었던 둘째 조카는 어느 대학에서도 입학이 허락되질 않다가 호주의 ‘메쿼리’ 대학이란 비교적 인지도가 떨어지는 대학 경제학과에 겨우 입학이 되었다.
그후 이들의 피나는 노력에 부모들의 노력이 더해진 결과는 기적을 낳았다. 공학 석사인 장조카는 현재 호주 원자력원의 수석 ‘엔지니어’로 호주에서 원자로를 구입 할 때면 구매팀장이 되어 미국엘 자주 오가고 있다. 한편 둘째 조카는 호주의 ‘켐브리지’라 일컷는 시드니 대학으로 전학을 하여 졸업하였다. 그 후 석사, 박사를 마치고 시드니 대학의 경제과 교수가 되어 있어 한국인의 자랑거리가 되는 기적을 낳았다. 2005년부터 세계 경제 학술지에 최다 연구실적을 싣는 시드니 대학의 유명교수로 자리하고 있다. 미국 TV 방송에 호주 경제를 설명하는 자리에 동양인인 조카가 나와 놀란 적도 있었다. 한국서 1차 대학에 낙방하고 방구석에서 소주만 들이키며 좌절했던 조카를 상상하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이들 조카들이 한국에 있었다면 죽었다 다시 태어나기 전에는 이렇게 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이민 성공케이스다. 하지만 부모들의 노력과 희생은 필설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컸으며 교육 투자도 한사람 당 얼추 계산해도 거의 십억씩은 들어 간 것 같다.
한편,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의 행로를 살펴보면 부모인 내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아주 작고 모두 주님이 이끌어 오셨고 이끌어 가실 부분임으로 나의 의지와는 별개인 것임을 나는 확신하고 있다. 나는 그저 협력자였던 것에 불과하였다. 나는 형님이 자식들에게 한 것에 비하면 아이들 공부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학교에 적응할 만하면 이사를 하게 되거나 캐나다 또는 호주로 다시 이민을 하게 되어 아이들은 5군데의 초 중고등학교를 다녀야 해서 아이들에게 큰 혼란만 더해주는 부모였다.
딸아이가 공부를 잘한다고 내용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의사가 되라고 UBC 생물과에 입학시키는 무지함으로 아이들의 대학 교육이 시작되었다. 진로를 잘못 설정해 주어 딸아이는 다시 공부를 계속하여 다른 degree 따고 아직도 계속 공부하며 목표에 근접해 가고 있는 중이다. 현재는 포트랜드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아들 녀석도 UBC 2학년을 마치고 진로가 확정되었었다. 그런데 중국아이들이 너무 많아 UBC가 싫다고 동쪽에 있는 맥마스터 상과대학으로 도망가듯 전학을 갔다. 나는 아이들이 대학을 다니는 동안 이민생활에 쫓기다 보니 많은 관심을 주질 못하였고 졸업식 때 마저도 참석을 못하는 무성의한 부모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한가지 게을리지 하지 않았던 것은 아이들이 실천을 하던 못하던 만나기만하면 성경말씀 특히 잠언을 계속 읽도록 어려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계속 권장 하고있다. 그리고 설정한 목표를 향하여 쉬지 말고 끈질기게 노력할 것을 주문하였다. 나는 두 자녀를 둔 딸아이에게도 계속 공부하여 가르치는 사람이 되라고 용기를 주고 있는 중이다.
아들에게도 ‘철밥통’(노후까지 보장된다는 공무원의 별칭) 이라고 부르는 연방공무원으로 만족하지 말고 계속 공부하라고 채근해 왔다. 아들은 미국과 캐나다 공인회계사 자격들을 취득한 후 결혼 하고도 이제까지 끈질기게 열심히 공부하며 삼 차에 걸친 CFA(국제 투자, 재정 분석사)시험을 보았다. 아들이 최종 합격 통지도 이달에 받아 이달은 집안에 여러 경사가 겹친 달이 되었다. 나는 CFA를 정확하게 몰라 인터냇에 들어가 검색해 보았다.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라이센스’로 CFA라는 것이 있는데 법조계에서는 사법고시를 으쁨으로 치듯이 ‘상경계’ 에서는 CFA고시를 으뜸으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항만청에서 기업분석과 투자 관리를 맡고있는 아들의 업무에 권위있게 쓰임 받을 자격증이 되었다. 항만청에서는 청내 공무원들에게 CFA 취득을 오래도록 권장해 왔다고 한다. 항만청에 있는 유일한 한국인인 아들이 유일한 CFA 취득자가 되어 그 일을 해내 한국인의 위상도 높아 졌다고 전해주었다. ‘스텐리팍’과 밴쿠버 항만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새 집무실에 식구들을 초청하여 승진의 기쁨을 나누는 것을 본다. 형님과 비교하면 자식에게 혼란만 더하게 했지 별로 ‘서포트’도 못해준 것이 미안했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겨자씨만 하지만 네 믿음과 하나님 일 열심히 해온 너를 보고 내가 네 자녀들을 너 대신 돌보아 왔느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가정에는 나의 형님처럼 피나는 부모의 노력과 엄청난 투자가 없었어도 하나님께서 알아서 인도해 주고 계심을 확실히 본다. 나는 우리를 늘 축복해 주시고 계신 하나님께 특별히 감사하고 있다.
- 수필가 (밴쿠버 문협, 한국순수 문학) 김용규

2012년 8월 26일 일요일

‘철가방 우수씨’



윤학렬 감독 “영화 속에 작은예수를 담아내려 했죠”





72만원의 월급을 받으면서도 5명의 저소득층 어린이를 돕던 중국집 배달부가 있었다. 고아 출신으로 1평 남짓 고시원에 살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비결은 매일 읽던 성경에 있었다. 훈훈한 미담이 알려지면서 2009년 청와대 만찬까지 초청받았다. 그러나 그 배달부는 2011년 9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짧은 생애를 마무리했다. 고 김우수씨의 실제 이야기다. 그의 스토리를 담은 영화 ‘철가방 우수씨’가 오는 11월 개봉된다. 주인공은 탤런트 최수종씨가 맡았다. 메가폰을 잡은 윤학렬(46·일산 화평교회 집사) 감독을 23일 만났다.

“어려운 형편에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통해 5명의 아동을 7년간이나 도운 김우수씨의 이야기를 지난해 9월 처음 접했습니다. 새벽기도를 드리는데 계속 그분이 마음에 걸리는 겁니다. 그래서 그분이 일하시던 중국집과 서울 논현동 고시원도 직접 찾아갔어요. 문을 열었는데 5명의 후원아동 사진과 구약 817쪽이 펴진 낡은 성경책이 책상에 있더군요. 그 부분이 마침 시편 23편이었어요.”

서울예술대에서 영화를 전공한 윤 감독은 199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에 당선된 이후 방송작가를 시작해 19년간 SBS에서 대본을 썼다. 2003년 장나라가 출연한 ‘오 해피데이’가 그의 작품이다.

“시트콤이나 드라마에 왜 무당이 출연하고 ‘무릎팍 도사’처럼 역술인 콘셉트나 샤머니스트가 자주 나오는지 아십니까. 의식 있는 역술인들은 대중매체의 영향력을 정확히 알고 드라마 제작경비를 지원합니다. 대중의 마음속 은연중에 역술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각인시키는 것이죠.”

2008년 지인의 전도를 받고 회심한 윤 감독은 영상에 간접적이고 기호학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야 한다고 고민해왔다. 그는 고시원을 방문한 날부터 10일 만에 원고지 1000매 분량의 대본을 만들어냈다. 자초지종을 들은 불교신자인 친구가 8억4000만원의 제작비를 댔다. 그해 10월 중순 소식을 접한 최수종씨가 “단숨에 대본을 읽었는데 18 년 만에 내가 해야 할 영화를 찾았다. 주연을 맡겠다”며 흔쾌히 수락했다. 탤런트 김수미씨와 가수 김태원씨가 자발적으로 연기와 음악으로 동참했다. 윤 감독은 “아마도 김씨의 스토리가 갖고 있던 진정성이 통했던 것 같다”면서 “하나님이 영화를 만드시려는 계획하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90분짜리 영화는 도시의 빨간 네온사인 십자가부터 김씨가 낭독하는 시편 23편까지 기독교적 가치관이 잔잔하게 깔려 있다. 윤 감독은 “자신의 머리 둘 곳조차 없는 인생이었지만 생명보험의 수령자를 5명의 어린이로 돌려놓고 장기기증까지 실천한 김씨의 삶은 작은 예수를 생각나게 한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철가방 우수씨’를 통해 나눔문화가 확산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왜 우리는 이렇게도 이기적일까요, 공개적인 일에는 나눔을 실천한다고 떠벌리지만 작은 일에는 왜 이리 소홀할까요. 영화를 통해 가장 낮은 자가 낮은 자를 섬긴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진정한 나눔이 무엇인지도요.” [http://missionlife.kukinews.com/]


'묻지마 범죄’, 한국교회 예방대책은?



“사회 부적응자에게 꾸준한 관심과 애정 쏟아야”

미래목회포럼 논평

 
목회상담학자 “사회안전망 구축 목소리 높이고, 인성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 충실해야”
최근 한국사회는 불특정 다수를 향해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는 ‘묻지마 범죄’로 큰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있다. 이와 관련 사회 전반적으로 묻지마 범죄의 발생 원인을 진단하고, 예방할 수 있는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사회의 각계 전문가들은 개인의 정신적, 성격적 장애로 묻지마 범죄가 발생하고 있지만 사회 병리현상으로 진단하는 것도 필요하다며 사회 및 경제의 양극화 현상으로 인한 소외감과 좌절, 상대적 박탈감이 누적되면서 극단적인 보복심리로 표출되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특히 높은 실업률과 경제적 압박, 치열한 경쟁 등이 사회 전반의 불안과 긴장으로 연결돼 묻지마 범죄와 같은 현상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목회상담학자들도 이와 비슷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성결대 기독교상담학 전요섭 교수는 “묻지마 범죄는 스스로 감정 및 욕구 통제를 못하거나, 그것이 좌절됐을 때 범행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며 “어려서부터 자신을 통제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의 중요성을 가정과 학교에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장신대 이상억 교수는 “개인적, 공동체적으로 갖고 있는 사회적 불만과 분노, 정서적 고립과 스트레스, 경제적인 어려움, 대인관계 기피 등 묻지마 범죄의 발생원인은 다각도록 분석할 수 있다”며 “신경정신과 측면에서는 일종의 정신질환, 성격장애, 알콜중독 등으로 인한 자기 통제력의 상실로 진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내재적 측면에서 ‘나는 존재할 가치가 없고, 세상 누구도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생각이 외부적으로 불특정 다수를 향해 범죄와 같은 잘못된 형태로 표출될 수도 있다”며 “묻지마 범죄의 경우, ‘나는 괴롭다, 사회가 싫다. 나에게 관심을 갖고 집중해 달라’는 것으로 범행동기도 불분명하고, 죄의식이나 죄책감 같은 것도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묻지마 범죄의 가해자가 될 수도 있는 사회 부적응자나 반사회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꾸준한 관심과 애정을 갖는 등 가난과 소외, 애정 결여 등의 열악한 환경에 처한 이들을 돌볼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미래목회포럼의 경우 지난 23일 논평을 통해 “묻지마 범죄의 희생량이 우리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심정으로 교회와 성도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미래목회포럼은 “최근 급증하고 있는 ‘묻지마 범죄’에 한국 교회 목회자들은 안타까움과 함께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애꿎은 사람들의 희생이 다시는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정부나 사회가 사회적 안전망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 촉구했다.

특히 “현 상황에서 정부는 이성보다는 감정에 치우친 여론을 넘어 근본부터 고쳐나가려는 정책적 노력을 펼쳐야 한다”며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와 관심, 제도적 보호 장치 등의 정책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피력했다.

미래목회포럼은 “한국 교회도 이웃들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며 “교회가 지역사회 안에서 이상 징후를 진단해 이를 예방하고, 치유하는 방안에 대해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주변의 사회 부적응자나 반사회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꾸준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야 한다”며 “가난과 소외, 애정 결여 등의 열악한 환경이 가중돼 사회적 외톨이가 양산되는데, 여기에 교회를 향한 기대와 역할이 있다. 소외계층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곧 이 시대 교회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묻지마 범죄’ 예방을 위해 교회는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호남신대 김진영 교수는 “한국 교회가 이와 같은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정책이나 기구를 만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교회는 치안이나 범죄 문제를 직접 다룰 수 있는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나 정부가 보다 효과적인 사회 안전망을 구축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사회의 도덕적인 윤리와 법은 초등학교 1~2학년 때 거의 다 배우는 것”이라며 “일본의 경우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사회 안에서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철저하게 교육시킨다. 한국사회도 이와 같은 인성교육을 저학년 때부터 반드시 실시할 수 있도록 교회가 인성교육 기관으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어 “한국 교회는 정신건강이나 품행을 위한 예방대책위원회를 만들 필요가 있다”며 “목회자와 성도들은 정신건강에 예민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목회자는 성도들의 정신건강을 유심히 살피고, 사회 안에서 교사나 공무원 등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성도들의 경우 동료들의 행동이 정상적이지 않다면 그들을 보호하거나 치료하는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상억 교수는 “한국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교회 안에서 ‘묻지마 신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대형화를 막지 못하더라도 작은 교회, 소그룹 공동체를 지향하면서 교인들 상호간 관계를 증진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실시해 상대적인 박탈감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사회 부적응자, 반사회적 성향을 가진 사람, 소외계층을 찾아내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시나 군 안에 설치돼 있는 건강관리상담센터, 다문화센터 등에 인적, 물적자원을 지원하면서 사회적 범죄를 예방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아브라함 이야기 (17)-2




17. 인간적 대안의 결과 / 창 16:1-6 (하)



아브람의 반응아무리 사래가 이성과 논리를 앞세운 그럴듯한 인간적인 대안을 제시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언약을 받은 아브람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야 됨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무 말없이 사래의 말을 따릅니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창 16:2). 다시 말하면,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대처하면서 그 주도권을 사래에게 빼앗긴 것입니다. 여기서 ‘들었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잇쉬마아’로 문자적인 뜻은 ‘그 목소리를 듣다’ 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람은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사래의 목소리를 듣고 그 말에 순종했다는 의미입니다. 왜 아브람은 사래의 말에 따랐습니까? 그것은 막연한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사래의 제안이 훨씬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래의 말을 따르면, 자손의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문제의 시작사래의 제안을 받아들인 아브람은 사래가 이집트 여인 하갈을 데려다 주었을 때, 그녀와 동침하여 드디어 기다리던 임신 소식을 듣게 됩니다: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창 16:4). 하갈의 임신 소식은 사래의 인간적인 대안이 성공한 것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임신 때문에, 그의 가정에 다른 문제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즉, 하갈이 사래를 멸시하게 된 것입니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창 16:4). 여기서 ‘멸시하다’라는 말은 ‘테칼 베에이네이하’로 그 뜻은 ‘그녀의 눈들로 (그녀의 여주인을) 가볍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하갈이 여주인 사래를 ‘깔보았다’ 혹은 ‘얕잡아 보았다’는 뜻입니다. 이 일로 사래는 분노하면서, 이번에도 주도권을 쥐고 아브람을 원망을 합니다: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창 16:5). 그런데 이 문장을 문자적으로는 번역하면 ‘나의 폭력이 당신 위에’라는 뜻이 됩니다. 여기서 “내가 받는 모욕”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하마쉬’로 그 뜻은 ‘나의 (내가 받은) 폭력’ 혹은 ‘나의 (내가 받은) 부당함’인데, 이 단어가 창 6:11, 13절에서는 “포악함”으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사래가 하갈의 자만심을 얼마나 못 견뎌 했는지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래는 창 16:5 끝에서 거의 저주와 같은 말을 합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아브람의 우유부단
하갈을 취한 사건 때문에 가정에 분란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은 너무도 무책임하게 화가 난 사래만을 달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창 16:6). 그 결과 사래는 하갈을 학대하고 하갈은 그 학대를 당하다 견디지 못하고 도망을 하게 됩니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창 16:6).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인간적인 대안을 선택한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평화롭던 가정에 평지풍파가 일어나 여주인과 종이 미워하고 반목하다가, 결국 하갈은 임신을 한 채 광야로 도망가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모든 인간관계가 파괴되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마저도 위태롭게 된 것입니다.

아브람은 가나안에 기근이 왔을 때에, 자신의 생각대로 이집트로 내려갔다가 문제가 더 복잡해지는 경험을 이미 했었습니다. 그러한 신앙경험들을 통해 그의 믿음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었지만 아직 온전한 신앙이 아니었기 때문에 또 다시 그럴듯해 보이는 인간적인 대안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 사건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인간적인 대안이 해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막연하게 보여도 하나님의 말씀만이 정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지속적으로 인내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도합니다.

[정기수 목사 / 캐나다중앙교회 / 778-237-8084]


 

이단은 날뛰는데‘전문가’가 없다



신학자ㆍ목회자ㆍ상담자ㆍ법률가 등의 이단전문위원회 구축 필요




이단ㆍ사이비 단체들의 공격적인 포교활동으로 목회자 및 성도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교계 단체 및 교단들이 적극적인 대처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CBS의 경우 신천지 고발 웹사이트인 ‘한국 교회를 살리자-신천지 OUT’(http://antiscj.cbs.co.kr)이라는 사이트를 오픈하고 이단상담소, 신천지대책 전국연합을 비롯해 각 교단 이단대책위원회 등과 연대해 이단 척결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신천지 아웃’ 사이트는 신천지의 이단성과 교회 침투방법 및 파괴, 성도를 유인하는 방법 등에 대해 고발하는 내용을 비롯해 신천지의 포교활동에 대처하는 방안 등을 소개하고 있으며, 교회의 각종 피해사례 소개 및 피해 접수, 상담 지원 등의 코너도 함께 마련해놓고 있다.

예장합동, 통합, 백석, 고신, 대신 등 장로교 주요 교단들도 ‘이단경계주일’을 정하는 등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으며 교단 산하 각 교회들에게 이단ㆍ사이비 단체들의 포교활동에 대한 안내문과 경고 포스터를 제작, 배포하는 등 신앙공동체 안에 교묘하게 침투하는 이단ㆍ사이비의 공격에 강력하게 대응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이와 같이 교계 단체 및 교단들이 이단ㆍ사이비 단체의 포교활동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이유는 교회의 피해사례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출과 이혼, 학업 및 직장 포기, 비도덕적 가정생활, 경제적 손실 등 성도는 개인의 행복을 잃어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목회자 및 성도들에 대한 음해, 교회 중직자들 간 불화 조장, 루머를 퍼뜨려 교회에 내분을 일으키는 등 교회적 차원의 피해도 극심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대다수 이단전문가들은 이단ㆍ사이비 단체에 의해 피해가 발생할 경우 치료 및 회복이 매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예방적 차원의 대처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목회자들에게는 평소 정통신학의 교리가 무엇인지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이단들의 잘못된 교리를 분석하는 등 이단ㆍ사이비의 공격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하지만 이단전문가들은 이단들과 만났을 경우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교리 논쟁이나 설득하려는 시도를 삼갈 것을 권고한다. 또한 절대 당황하거나 서두르지 말고 정확한 정보와 사실에 입각해 대처하는 등 추측이나 추론을 절대 삼가고 공신력 있는 이단연구소의 지침에 따라 행동할 것을 당부한다.

특히 일반 성도들의 경우 신학적, 성경적인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단ㆍ사이비의 속임수에 쉽게 넘어갈 수 있다. 따라서 이단에 현혹됐거나 현혹될 위기에 처한 성도들을 발견했을 경우에는 목회자나 주변 성도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보다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협회(www.jesus114.net) 등과 같은 전문적인 기관을 통해 신앙상담(이단상담)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 목회자와 성도들의 경우 이단ㆍ사이비 단체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단전문가들은 교회 담임목사는 정기적인 세미나를 개최해 이단ㆍ사이비 단체들의 다양한 정보를 습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한다. 또한 평소 건강한 구원론, 기독론, 성령론 등의 설교를 통해 신학적이고 성경적인 교리를 성도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와 같은 이단대처를 위한 연구에 있어서 공신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도 필요하다. 탁지일 교수(부산장신대)는 “이단과의 투쟁을 통해 교회의 신학과 신앙이 정립되기도 했지만 때로는 ‘정통수호’라는 명분하에 ‘정적 제거’의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다”며 “오늘날 공신력 있는 이단대처는 기독교 공동체를 순결하게 지켜내지만 무분별한 이단정죄는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탁 교수는 “모든 교단들은 관련 학자, 신학자 등의 전문 인력자원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사회가 공감할 수 있는 이단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며 “이단연구는 교단을 넘어 타교단과 기관, 사회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공감대를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것은 다양한 지원이다. 탁 교수는 “이단 피해자들에 대한 한국 교회의 배려와 지원은 상대적으로 미약한 편”이라며 “신학자, 목회자, 상담자, 의료전문가, 법률가, 피해자 가족 등으로 구성된 상설 전문위원회가 전국 각 지역단위로 구축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단피해 지원을 위한 조직적인 지원프로그램 운영 없이는 이단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은 제한적인 임시방편일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위해 각 교단들이 ‘이단상담소’를 개설하거나, 이미 개설돼 있는 상담소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예장 합동총회 산하 이단(사이비)피해대책조사연구위원회(위원장:박호근 목사)는 지난 16일 ‘제1회 총회 이단ㆍ사이비 대책 전략 세미나’를 개최하고 이단ㆍ사이비 상담소 운영의 방향성을 모색하기도 했다.

이날 이대위 서기 유웅상 목사는 “총회가 이대위를 상설해 이단대책에 적극적으로 활동하도록 하고, 이단상담소를 설치 운영하고 있지만 매우 어려운 상황임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 목사는 “상담원의 부족과 운영에 따른 경제적인 어려움, 이단들의 고소고발에 따른 법적인 대응을 위한 지원 등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무엇보다 이대위의 적극적인 지원과 총회 산하 모든 교회들의 관심이 절실하게 필요한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이단에 미혹됐거나 앞으로 미혹되는 한국 교회의 피해를 줄이고 회심하도록 대처하기 위한 이단상담소의 역할과 사명은 큰데 반해 효과적으로 운영되기에는 많은 과제들을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 목사는 “이단들의 미혹이 극심한 시대에 몇몇 이단상담소만으로 미혹된 성도들을 상담하는 것은 역부족”이라며 “한국 교회 전체가 이단의 미혹에 대한 대처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특히 이단상담사의 양성, 이단상담학의 학문화, 법무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총회 이단상담소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법률 자문 기구를 만들 것 △총회 본부에 이단 상담소를 개설할 것 △이단 상담훈련 △이단 연구과목 개설 △합리적인 재정정책 등의 방향성을 제시한 박호근 목사는 “총회는 이단 상담소를 보호하며 지도해 역할을 성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상담소 역시 총회에 긴밀히 협력해 총회의 이단 대책사역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단상담소장 김종한 목사(벌교대광교회)는 “이단 세미나 개최, 이단에 빠진 성도들의 정보 수집, 이단들의 불법에 대한 법적 대응, 이단에 대한 주제별 집중교육 등 이단ㆍ사이비에 대한 교회의 피해대책방안은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김 목사는 “한국 교회가 이단ㆍ사이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면 쉽게 포교하지 못할 것”이라며 “각 교단은 목회자들이 이단들에 대해 연구하도록 지도하고, 지역 노회별로 평신도를 훈련하는 센터를 만들어 특정 이단의 교리를 주제별로 가르쳐 이단과 맞설 수 있는 적극적인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단피해대책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잃어버린 영혼들을 다시 회복시켜 신실한 그리스도인들로 만드는 것”이라며 “한국 교회는 이단전문가를 양성하는 기관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예수님의 마음 치유


 

제 11 장 영의 치유와 혼의 치유


1. 육이 주관하는 삶

..... 하나님의 뜻대로 나라를 다스리는 훈련을 받지 못한 경호 장관은 독재자가 되어서 힘으로 모든 것을 다스린다. 군사 독재 정권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혼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순간 영이 다시 살아난다 (Born again: 거듭남) 왕이 식물인간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왕비는 깨어난 왕을 보고는 엄청 기뻐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전의 자리로 돌아가고자 애를 쓴다. 그러나 그것이 뜻대로 되질 않는다. 다시 깨어난 왕의 힘이 아직 너무 약하다. 또한 지난 수 십 년동안 자신의 삶과 주위 온 세상이 “새 남편”에게 길들여졌고 거기에 순응하는 삶이 되었기 때문이다. 혼(왕비)은 갈등한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쪽에 붙었다, 저쪽에 붙었다 한다. 남편이 두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고, 새 남편으로부터 자식들을 많이 낳았기 떄문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라는 고백이 흘러나온다.

(로마서 7장 22-24)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이” 이 상황에서 살아간다. 사도 바울같은 신앙에 들어가면 모를까 보통 사람이라면 아무리 고명한 목회자라 할지라도 우리들과 별 차이가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은가? 존경받으며 세상을 떠난 주의 종들도 뒷 이야기가 많은 것을 우리가 자주 경험한다. 세월이 가면서 무너져 내리는 육신을 버티어내기에는 우리의 영과 혼의 힘이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2. 혼은 무엇엔가 의지해야만 한다 - 영 아니면 육체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능력을 강조한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면 인간의 문제 정도는, 나아가서 혼의 연약함 정도는 바로 해결된다고 선포하면서 목소리를 높인다. 자기들을 통해서 능력을 받으면 만사가 해결된다고 말한다. 정말 그런가? 우리 모두가 잘 안다. 성령의 충만함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게도 문제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혼(왕비)이 겪고 있는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가 없는 문제다. 결혼을 두 번해서 양쪽에 자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문제가 어찌 쉽게 결말이 나겠는가? 양쪽 모두 내 자식들이다. 비록 자신이 왕비라는 것을 이제 확실하게 알았더라도 말이다.

진실된 아가페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끝없는 이해심을 가지고 혼이 (왕비가) 하나씩 하나씩 결단을 해 나가도록 도와야 한다. 서서히 원래의 자리로 올라오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이 내적 치유인 것이고 성화의 과정인 것이다. 성화가 성령의 충만으로 즉시 이루어 질 수 있을까? 만일 그렇게 믿고 또 기대한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위험한 길에 서게 될 것이다. 아주 쉽게 이단 종파의 먹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화는, 즉 내적 치유는 ‘영’ (깨어난 왕)의 문제라기보다 두 번 결혼한 왕비 (혼)를 통해서 일어난 복잡한 상황과 문제들을 원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담의 모습으로 회복하는 작업이고 과정인 것이다. 성령의 불같은 충만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 (갈라디아서 5: 22-24) 를 맺는 나무로 그 “뿌리”를 변화시키는 작업인 것이다. 한때는 남편으로 의지하던 경호 장관 (육체)를 온전하게 제 자리로 돌려놓는 데까지 가야만 하는 것이다.

(마태복음7:17-18)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결코 쉽지 않은 일이고 과정이다. 이 일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는 그동안 남편 (왕) 없이 왕비가 살아온 험한 세월을 겪으며 받은 수많은 마음의 아픔과 상처들을 치료해야 한다. 그리고 삶과 마음과 생각과 습관의 모든 것을 원상으로 회복해야만 하는 것이고 나아가서 과거의 모든 기억까지 치유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구자형 목사(밴쿠버내적치유사역원장) saranghealing@hanmail.net




내 돈인가? 하나님 돈인가?



내 돈인가? 하나님 돈인가? - 랜디 알콘



경제학 개론 첫 시간에 들은 ‘인간활동의 대부분은 경제활동이다’ 라는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돈 만큼 가깝고도 먼(?), 그러면서도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주제가 없어 보입니다. 쉽지도 않고 자유 하지도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돈과 함께 살아가는데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돈과 소유돈에 대한 올바른 사고는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이 얼마이든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를 통해 볼 수 판별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에게 맡겨진 것에 충성되지 않으면 주인 되신 하나님이 더 많이 맡기시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은 현재의 삶에서 돈에 대한 태도는 철저히 청지기적 사명에 있다고 강조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청지기의 최고의 목표는 주인에게 충성하고 인정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라며 당연히 우리의 모든 소유도 하나님의 것이며,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주인과 반드시 회계할 날이 있음을 기억하고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돈에 대한 잘못된 관점들돈은 나쁜가? 그렇지 않습니다. 돈은 가치 중립적입니다. 성경은 돈 자체가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합니다 (딤전6:10). 돈은 사용하는 사람의 가치 기준에 따라 다르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돈을 사용하지만 종이 되어 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물질 만능주의 즉 배금사상은 가짜 하나님,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탐욕은 성적인 부도덕과 우상숭배와 같은 종류의 심각한 죄악입니다 (골3:5). 인생은 결코 소유에 따라 측정되지 않습니다.
물질만능주의의 치명적인 위험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우리의 영적인 삶을 방해하거나 파괴시킨다.
2) 물을 담을 수 없는 깨어진 그릇이다.
3) 부의 저주로 우리를 눈멀게 한다.
4) 불행과 염려를 가져다 준다.
5) 종착역은 궁극적으로 공허함이다.
6) 인생의 많은 축복들을 깨닫지 못하게 만든다.
7) 믿음에 치명적인 독립성을 낳는다.
8) 교만과 엘리트의식을 갖게 만든다.
9) 부정과 착취를 증진시킨다.
10) 부도덕성과 가정의 황폐함을 가속시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물질 만능주의와 부단히 싸워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성경적인 경제관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이 버려지고, 깨어지며, 소용없게 되었을 때, 우리의 소유를 가지고 영원까지 지속될 일을 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유함을 주신 것은 그것을 붙잡으라는 의미가 아니라 관대하게 나누라고 맡기신 것입니다.

영원성의 관점에서 본 청지기직
예수께서는 우리의 보물과 마음을 하나님 나라에 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6:19-24) 이 땅에서 재물을 하나님 나라를 위한 목적에 드림으로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으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삶이기 때문입니다. 장례식 행렬에 이삿짐 트럭이 따라가는 것을 본 적이 없는 것처럼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리고 나눔으로 먼저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하십니다. 충성스러운 청지기에게 주시는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주님 앞에서 자신들의 삶에 대한 결산을 하게 될 것인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 재능, 돈, 소유와 같은 자원들로 행한 일을 영원의 관점에서 측정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돈과 소유를 드리고 나눔십일조는 우리의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기억하는 훈련의 도구 입니다. 또한 기쁨과 감사를 담아 자발적으로 드리는 헌금을 하나님은 기뻐 받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또한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을 돕고 복음을 전하는 것을 꼭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돈과 소유물을 지혜롭게 다루기
진정한 제자도는 전략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선택하도록 인도합니다. 부르심을 따라 하나님을 온전히 섬겨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빚을 지는 것에 주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빚은 우리를 속박하여 사람의 종이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잠22:7). 최대한 빨리 빚으로부터 자유로워 지시기 바랍니다. 빚을 지는 상황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 묻고, 자신의 씀씀이나 경제적 제한에 대한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또한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현재뿐 아니라 미래의 관점에서 비용을 측정하고 저축해야 합니다. 유산을 상속할 때도 자녀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어야 하고, 때로 지나치게 많은 부를 상속함으로 자녀들에게 중독, 게으름, 부도덕을 조장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지혜로운 청지기직의 전수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돈과 소유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들이 물질에 몰두하여 경건한 삶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정말 중요하고 더 필요한 유산은 지혜와 관용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돈뿐 아니라 우리에게 돌보라고 맡기신 자녀들의 청지기이기도 합니다. 교회 공동체가 청지기직의 모범을 보이고, 공동체로서도 돈에 대한 올바른 가치를 실현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건강한 재정적인 모델이 세워져야 합니다.

돈을 벌고 사용하지만 결코 돈에 지배당하지 않는 건강한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소유가 영원하지 않음을 기억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꺼이 나누고 드리는 헌신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돈과 소유로 영원한 가치를 이루시기 바랍니다.

[778-868-3063 / Ezekiel475k@gmail.com]


 

재미있는 여호수아서 (24)



위대한 결단



AD 79년 8월 24일 오후 1시, 전대미문의 자연재해가 한 지역을 강타했다. 24시간 동안 폼페이시와 5,000명 이상의 시민들이 갑자기 지상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폼페이 최후의 날”은 이 사건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다. 도시의 뒷산에서 화산이 터져 용암이 흘러 도시를 덮어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앞 다투어 도시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때 한 여인이 수많은 인파 가운데 도시를 잘 빠져 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발길을 돌렸다. 금고 속에 있던 자신의 보물이 생각 난 것이다. 뛰고 또 뛰어, 자신의 집에 도착했다. 황급히 금고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보물을 자신의 품에 안았다. 그때 갑자기 그녀의 머리위로 집의 벽이 무너져 즉사하고 말았다. 잘못된 결단의 최후를 실감나게 하는 영화였다.

신앙은 “결단(Decision)”하는 것이다. 중립지대가 없다. ‘신앙인’이란 자신이 택한 진리를 위해 죽기를 각오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바닷가에 가면 갑각류(게)가 있다. 게는 항상 겟벌 속에 들어가 두 개의 구멍을 뚫고 자신의 몸을 숨긴다. 적의 침입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들만의 전략이다. 그러므로 게를 잡으려면 한 쪽 구멍을 막고, 다른 쪽 구멍을 파들어 가야 게를 잡을 수 있다. 신앙생활도 바다 게처럼 할 수 있다. ‘진리’를 향한 구멍 하나와 ‘세상’을 향한 구멍 하나를 뚫어 놓고, 그 사이를 매일 넘나들며 사는 것이다. 이런 자들을 향해 성경은 강하게 도전한다.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 만약 그렇지 않으면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계3:16)고 경고한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수24:1,29).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위대한 결단’을 촉구한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 여호수아는 오랜 기간 동안 하나님을 경험했다. 절대 부인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것이다(수24:1-13). 그래서 여호수아는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결단하라”고 외쳤다. 여호수아의 외침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스(Yes)”로 화답했다(수24:21). 여호수아는 입으로만 하는 약속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율법 책에 그들의 약속을 기록 했다(수24:25). 이것도 불안했다. 다시 돌을 가져다 성소 곁에 세웠다.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겠다는 증표로 돌을 세운 것이다(수24:27). 여호수아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백성을 향한 사랑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명장면이다.

성공한 사람들 가운데 대부분은 ‘강인한 결단력’을 소유한 자들이 많다. 세계적인 기업 ‘코카콜라’는 위대한 결단력이 만든 기업이다. ‘아사 캔들러’는 코카콜라의 창업주다. 그는 원래 알코올 중독자였다. 의지력도 약했다. 주위 사람에게 몇 번이나 금주선언도 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어느 날 술에 취해 길을 걷던 중 마음의 음성이 들려왔다. “자신의 본능적 요구를 거절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소리였다. 이 이야기를 자신의 아내에게 들려주었다. 아내는 바로 그 시간 남편의 ‘금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순간 캔들러는 ‘금주’를 결단했다. 엄청난 인내의 과정 속에 영혼의 안식이 그의 영혼에 찾아 들었다. 그리고 알콜중독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결단이란 말은 이것을 택하기 위해서 저것은 버려야 하는 것을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결단은 “이방신들을 치워 버리고 너희의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수24:23)는 말씀에, 나의 전 인생을 걸겠다고 결단하는 것이다.

황보창완 목사 (밴쿠버성산교회 청년부) / 778-708-5540

“재미있는 여호수아서”는 이번 회로 마칩니다. 9월 7일자부터는 계속해서 “사도행전” 시리즈가 이어집니다. 많은 애독 바랍니다. 【편집자】



 

터키 이야기 (10)



 

6. 신약 성경과 터키


1) 수리아 안디옥
바울의 선교기지였던 수리아 안디옥 교회는 최초로 크리스천이란 칭호를 들은 교회이다. 사도 베드로는 여기서 얼마동안 살면서 안디옥 교회의 초대감독으로 일했고 사도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을 선교센터로 삼았다. 바울은 그의 4번에 걸친 전도여행 중 3번을 안디옥에서 출발했다.

안디옥은 셀레우코스 1세(BC 321-281)에 의해 세워졌으며 그의 부왕의 이름을 따서 ‘ANTIOCH’라 불리었다. 셀레우코스 왕조는 BC 83년에 멸망당하여 로마의 속주 시리아의 수도가 되었다. 로마의 지배 하에서 안디옥은 번영을 누리게 되며 당시 로마, 알렉산드리아 다음으로 세계 3대 도시로 부상된다. 그러나 AD 6세기에 이 도시는 2번의 재난을 당하게 되는데, 그 하나는 대지진으로(AD 523년) 약 20만 명의 사망자를 내게 되었고, 또 하나는 페르시아군의 침략으로 도시가 깡그리 불타버렸다.

유적으로는 사도 베드로의 암굴교회와 로마시대의 수로, 성벽, 비잔틴 시대의 모자이크를 모아놓은 박물관 등이 있다. 특별히 베드로 동굴교회의 모습은 당시 박해 아래서 신앙을 고수하던 수리아 안디옥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사도베드로는 선교여행 중(AD 29-40년) 안디옥 교회를 방문하게 되며, 그의 지지자들과 함께 이 동굴교회에서 목회를 하였다. 12세기-13세기에 들어 교회는 십자군들에 의해 동굴입구에 고딕 스타일의 교회 정면이 건립되었다. 지금의 동굴교회 안에는 바닥 모자이크를 볼 수 있으며, 오른쪽 귀퉁이에는 우물이 있고, 왼쪽에는 크리스천들이 사용했던 비밀 통로가 있다. 이 좁고 긴 터널은 외부의 침략이 있을 때 교회 안에 있던 크리스천들이 산 너머 다른 곳으로 피신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베드로 동굴교회>

2) 실루기아 (행13:4)바울의 첫 번째 전도여행은 안디옥을 출발하여 현재 사만다(Samandağ)로 불리는 실루기아로 가서 거기서 배를 타고 구브로(키프러스) 섬으로 갔다.

3) 다소 (TARSUS - 행8:1-2; 11:25; 22:3)
길리기아 지방의 다소는 사도바울의 출생지로서 학문과 상업의 중심지였다. 다소는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순교한 곳이기도 하다. 로마시대에 다소는 문화도시로서 많은 석학들을 배출한 도시였으며 따라서 사도바울은 자신이 길리기아 다소 사람이라는 큰 자부심이 있었다. 바울은 유대인의 혈통이면서 로마시민으로 이곳에서 태어났다.

기원전 67년 타르수스와 실리시아의 나머지 지역이 로마의 첫 번째 실리기아 주지사였던 키케로에 의해 통치되었고 줄리어스 시저가 47년에 이 도시를 방문하기도 한 영광스러운 도시였다. 기원전 41년 타르수스는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로마의 안토니우스가 로맨스를 만든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다. 타르수스는 중요한 기독교 센터가 되었으나 아랍족의 약탈과 통치자들이 수없이 바뀌면서 쇠퇴되었다. 1515년, 오스만 터키의 수중에 들어가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적으로는 사도바울의 우물, 클레오파트라의 문, 타르수스 박물관 등이 남아있으며, 마을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외부는 봉쇄된 아치와 4개의 기둥으로 장식되어 있고, 실내의 둥근 중심부에 예수님을 비롯해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모습이 프레스코로 장식되어 있다. 북서쪽의 끝에는 예쁜 종탑이 있다.


<바울 우물>

4) 갑바도기아 (Cappadocia)아나톨리아의 중앙 동쪽 지역을 갑바도기아라고 불렀으며, 서쪽으로는 갈라디아(앙카라)와 루가오니아(코냐)로, 동쪽으로는 아르메니아, 북쪽으로는 본도, 남쪽으로는 길리기아에 둘러싸여 있다. 이 지역은 타우로스 산맥의 북쪽 고원지대로서 오랜 옛날 이 지방의 가장 높은 에르지에스산(3,914m)의 화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시간이 지나면서 비바람의 풍화작용 등으로 깎여나가 이런 특이한 모양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네로 황제의 박해를 피해 약 250년 동안 이곳으로 은둔하였다. 그들은 이곳의 자연을 이용하여 지하도시를 건설하고 기도처, 동굴교회, 주택, 학교 등을 만들어 생활하였으며 그 후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뒤 교회가 타락해가자 초대교회의 신앙을 따르던 수도사들이 이곳에 와서 수도원을 건설, 경건한 신앙생활을 계속하였다. 이슬람의 침략으로 또 다시 기독교인들은 이곳을 찾았고 비잔틴 시대에는 성화파 신앙인들의 은둔처가 되기도 했다. <계속>

<갑바도기아의 지하도시>







“어지러운 세상 중에…”





0016. 문선명+George Bush, Robert Schuller, Tim LaHaye, Jerry Falwell, Ralph Reed (Christian Coalition)
부에노스 아이레스 발 1996년 11월 24일자 로이터 통신에 의하면 미국 전대통령 조지 부시는 문선명의 스페인어판 신문창간을 돕기 위해 초청 연사로 참가하여 문선명을 극찬하였으며 우루과이의 수도 몬데비데오에서의 젊은 일본여성 4200명의 통일교 원리교육을 위한 신학교 창설을 위해 이웃 우루과이에까지 문선명과 동행하였다. 워싱턴포스트에 의하면 부시 전대통령은 문선명으로부터 미화 10만불을 받은 것으로 보도되었다...... 또 Ralph Reed는 지난 9월 역시 통일교 교주 문선명이 주최한 세미나에 Jerry Falwell, Tim & Bev. LaHaye, Robert Schuller등과 함께 연사로 참가, 자칭 메시아 문선명의 들러리 노릇을 한 자들 중 한 사람이다. (The Fundamentalist Digest, Nov/Dec. `1996)

0017. 케네디 대통령 집권 시 성경과정과 기도모임이 폐기된 미국 공립학교 (1997년 봄)
1962년 미국 역사상 첫 로마카톨릭 대통령으로 당선된 케네디 대통령 재임 시에 미국공립학교의 성경과정과 기도모임이 폐기되었고 흠정역성경(AV/KJV)이 아이들의 손에서 수거된 후 지난 35년 동안 사단은 대부분의 신학교를 점령하고 있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추종자들과 말씀의 잡상인들과의 합작을 서둘게하여 수십 종류가 넘는 조악한 성경들 - Homo 등의 불신자들이 번역한 NIV, 로마교황청과의 합작으로 번역한 에큐메니칼 성경 NRSV에서 전 성경에 166번 언급된 ‘은혜’(grace)란 단어를 완전 100% 제거한 미국성서공회(ABS)/캐나다성서공회(CBS)간(刊) 성경 The Promise - CEV(Contemporary English Version, 1995)에 이르기까지 - 을 만들어 시중에 내어놓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기만해 왔다. 당신의 성경은 『에반제리칼』성경인가? 아니면 『에큐메니칼』성경인가?

0018. 교권의 타락은 세속권력의 흑암과 직결된다
부패한 성경은 거짓된 교리를 만들어 내고 그 교리는 온갖 악(惡)의 근원이 된다. 부패한 것들이 감히 ‘성경’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 후 4반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간통, 동성애, 온갖 죄악들이 제방의 봇물 터지듯 닥쳐왔다. 교회들이 ‘Homosexual Union’을 축복하였고 미국 대통령 사상 최초의 로마카톨릭대학 (예수회가 운영하는 『조지타운』대) 출신으로 뉴에이지 대통령으로 당선된 클린턴은 Homo, Lesbian들을 초대하고 대통령 취임식을 가졌다. 고어 부통령 부부는 그들을 위해 파티를 주관하였고 15 여명의 Homosexual 지도자들을 초청하였다. AP 통신 기사에 따르면 고어 부통령은 Homo 지도자들이 놀라운 일들을 하고 있다고 격찬하였다 (“It’s wonderful thing you’re doing” - The McALVANY Intelligence Advisor, March 1996).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역사상 가장 Pro-Gay 대통령으로서 Homosexual 잡지와의 인터뷰를 가진 최초의 대통령으로 기록되었다(The Fundamentalist Digest, Nov/Dec. 1996). 최근의 ‘월간 Moody’잡지는 Homo들이 미대법원 앞에서 손에 손을 잡고 전통적인 결혼법 폐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사진을 게재하였다(Moody Monthly, Nov/Dec. 1996).

0019. 『제임스 답슨』의 ‘열린가정’ (1997년 봄)
미국전역에 2900여개의 라디오망을 통해 220만명의 뱀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PK(Promise Keepers) 동원책 James Dobson. 그는 ‘Focus on the Family’(한국에서는『열린 가정』으로 침투)을 운영하며 천주교 월간지의 ‘카버’인물로 등장한 향(向)로마 지도자이다. 그는 오하이오 주 Steubenville소재 천주교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받고 프리메이슨 33급인 Amway 창설자 재벌로부터 400만불이 넘는 돈을 받은 인물이다. 피라미드 조직 Sale 방법으로 돈을 번 Amway의 돈을 기증받은 Dobson의 Focus on the Family의 새 본부건물은 애굽의 ‘피라미드’ 모양을 하고 있다. Amway는 다른 이름으로 지금 우리네 교회안에 들어와 있다.
 
 
 
0020. “죄의 사람”(Man of Sin, 살후2:3) ‘로마교황’ (1996년 10월 / 위 그림 참조)
영문 흠정역(AV/KJV) 성경 서문에 ‘로마교황’을 두고 언급한 “죄의 사람”(Man of Sin, 살후2.3)은 오늘날 대부분의 성경에서 “불법의 사람”으로 변개되어 있다. Thomas Nelson 사는 흠정역 1611년판 원본복사판을 판매하면서, “Man of Sinne”을 ‘man of sinne’으로 변개, 의도적으로 흠정역이 언급한 ‘로마교황’을 숨기고 있다. 기독교의 고전 천로역정에 나오는 ‘기독교도’ 순례자는 ‘죽음의 그늘의 계곡’에 앉아있는 두 거인, ‘교황’과 이교도를 만난다. 오늘날 우리들의 자녀들이 가지고 있는 소위 ‘간추린’ 천로역정에는 이 부분이 의도적으로 삭제되어있다.
0021. 날으는 교황 (Flying Pope),『슈퍼스타』(1997년 봄)
역대 로마 교황들은 거의가 모두 로마를 떠나지 않고 죽었다. 263번째 교황으로 알려진 지금 교황은 전임 262명의 모든 교황이 여행한 거리를 다 합친 것 보다 더 많은 거리를 여행한 교황이다. ‘날으는 교황’(‘Flying Pope’), ‘슈퍼스타’란 별명이 붙은 현 교황 요한 바오로Ⅱ세는 전세계를 방문하면서 엄청난 군중들을 동원하였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메시지를 전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는 사실을 독자는 아시는지? - 작년 크리스마스 미사 때는 연설 중 두 번이나 쓰러져 현 교황의 후계자 문제 기사가 다양하다.
0022. 신(New)복음주의자들의 New 성경들 (1997년 봄)
현대역 성경 The Living Bible의 번역자 Taylor는 이 성경을 번역 중 실언증에 걸렸다. 그의 정신과 의사의 진단소견은 “Taylor씨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었던 바를 스스로 함부로 고쳐버린데 대한 심리적인 자책감으로 목소리를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Time, 1972.7.24)...... 1995년 가을 The John Ankerberg Show에서 현대역 성경 지지학자들과 흠정역(AV/KJV)성경학자들과의 논쟁 중 하나님께서는 현대역 성경학자들의 입을 강권적으로 봉쇄해 버려 실황 TV방송이 중단되는 소동까지 일어났다. 현대역 성경측의 Dr. Wilkins가 입을 열었으나 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당황하여 두려움에 찬 얼굴의 Wilkins 박사가 겨우 할 수 있었던 말은 “I.... I’ve... lost... my voice!”였다 (Flashpoint, Oct.1995). 더구나 이 사악한 작품 The Living Bible을 성경이라고 추천하는 자들은 모두 소위 ‘신(Neo-)복음주의’자들로 알려진 빌리 그래함, 빌 브라잇, 척 니콜슨, 루이 팔라우 이며 사실을 사실대로 직시하는 역사성이 부족한 자는 창조주가 아닌 유명한(?) 피조물을 숭상하느라 편견의 가도를 달린다.
주여 크신 은혜로써 부름듣게 하시고
복종하는 마음을 주사 따라가게 하소서
(찬366 어지러운 세상 중에 ④)
구영재 선교사 [P.O. Box 8844 Victoria, BC V8W 3Z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