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불신과 완고함 / 창 17:15-22 (하)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심아브라함이 아직도 눈에 보이는 이스마엘을
약속의 씨로 여기자, 하나님은 아주 구체적으로 그리고 분명하게 자신의 뜻을 알려주십니다. 20절에 보면, “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을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신다는 것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21절에서 분명하게 못을
박으십니다: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은 이삭과 세우리라.” 즉, 하나님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지만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을 신뢰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약속하신 바를 그대로 이루시고 성취하시는
능력의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하고, 주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면 아주
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아직도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덮개, 영적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불신의 덮개가 있지는 않는지 자신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삼상 15:22-23에 보면,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
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점을 보거나 우상숭배하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큰 죄로 여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 점보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완고한
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의 완고함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 완고함을 잘라버리고 믿음에 견고하게 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완고함을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축복받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완고함이 아니라 믿음에 견고한 신앙인들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정기수 목사 / 캐나다중앙교회 / 778-237-8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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