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8.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인류역사 이래로 전쟁이 없었던 평화의 해(年)는 통틀어 300년이 채 안 된다고 한다. 그 300년도 다음 전쟁을 위한 준비기간이었다고 보면 인간은 끝없이 분쟁을 일삼는 존재임이 확실하다. 그래서 옥스포드(Oxford)대학의 두 사가(史家)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 1852-83와 그의 조카 1889-1975, 동명이인)는 “인류사는 전쟁사(史)다”라고 규정하였다. 지난 1992년 한 해 동안에만 인류는 지구상에서 모두 93번의 전쟁을 치뤘다는 기록을 남겼다.
그 많은 전쟁들 중 어찌하여 두 번의 ‘세계대전’(World War)이 20세기에 들어서자 일어났는가?하고 골몰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내가 흔들었노라’는 음성이 마음에 들려온다. 사람이 거듭나게 되면 그리스도인의 영혼 안에 질(質)의 재창조가 일어나는 심오한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자기자신과 세상을 향한 가치관에 대한 변화를 곧 인식하게 된다. 육신적인 감각을 통해서 세상을 볼 수 밖에 없었던 자아(自我)가 영적인 감각 또는 감수성으로 세상을 판별하게 된다. 역사를 보는 마음의 눈도 바뀐다. 인간중심사(史)가 아닌 하나님의 섭리의 눈으로 역사를 헤아리게 된다.
인류역사 이래로 전쟁이 없었던 평화의 해(年)는 통틀어 300년이 채 안 된다고 한다. 그 300년도 다음 전쟁을 위한 준비기간이었다고 보면 인간은 끝없이 분쟁을 일삼는 존재임이 확실하다. 그래서 옥스포드(Oxford)대학의 두 사가(史家)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 1852-83와 그의 조카 1889-1975, 동명이인)는 “인류사는 전쟁사(史)다”라고 규정하였다. 지난 1992년 한 해 동안에만 인류는 지구상에서 모두 93번의 전쟁을 치뤘다는 기록을 남겼다.
그 많은 전쟁들 중 어찌하여 두 번의 ‘세계대전’(World War)이 20세기에 들어서자 일어났는가?하고 골몰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내가 흔들었노라’는 음성이 마음에 들려온다. 사람이 거듭나게 되면 그리스도인의 영혼 안에 질(質)의 재창조가 일어나는 심오한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자기자신과 세상을 향한 가치관에 대한 변화를 곧 인식하게 된다. 육신적인 감각을 통해서 세상을 볼 수 밖에 없었던 자아(自我)가 영적인 감각 또는 감수성으로 세상을 판별하게 된다. 역사를 보는 마음의 눈도 바뀐다. 인간중심사(史)가 아닌 하나님의 섭리의 눈으로 역사를 헤아리게 된다.
아론과 모세가 바로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전했다: “내 백성을 가게하라”(‘보내라’, 출5-10장). 7번을
고했으나 바로는 듣지 않았다. 9번의 재앙과 애굽의 모든 장자들을 치는 재앙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애굽인들로부터 귀금속 등의 보화까지 받아 애굽을
떠나게 된다. 오늘날 이스라엘에 가면 지난 2천여년 동안 유대인들이 살다가 돌아온 나라의 국기들이 걸려있다. 무려 100개국이 넘는 나라의
국기들이!
헤르츨(Theodor Herzl, 1860-1904)이 유럽의 왕들과 군주들을, 그리고 로마교황을 만났으나 그의
요구는 거절당했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40:1)는 말씀은 무시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온 유럽의 ‘저주거리’였던 유대인들을 온
세계(100개국이 넘는 나라들)로부터 불러내어 옛땅에 다시 심기위해 ‘세계대전’을 허락하셨다. 먼저 프랑스 혁명, 보불전쟁, 『드레퓌스』사건으로
흔드셨다. 제1차세계대전(1914-18)은 1918 년 11월 11일 밤 11시 11분에 끝났다. 하나님께서는 그 다음 해에 러시아의 유대인들을
불러내기 위하여 ‘러시아 혁명’(1919-29)을, 그리고 독일 나치가 1938년에 ‘유대인 대학살’(the Holocaust)을 감행하자
곧바로 ‘제2차세계대전’(1939-45)을 허락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리는 오늘 이 시간에도 전진하고 있다.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보다 끔찍한 동물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프리카의 식인종도 아닌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게르만 민족에 의해
자행된 만행을 보면서 인간은 금수(禽獸)도 하지 않는 짓을 조직적으로 하는 금수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제1차 십자군 원정이 결성,
출발하였던 벨기에 남부의 소도(小都) 부이용(Bouillon)의 산 위에 있는 옛 성(城)에 들어갔을 때, 그곳에 진열 되어 있었던 천주교회가
종교재판 때 사용 하였던 끔찍한 고문 기구들을 보았을 때의 구토증과 역겨움이 다시 일어난다. ‘유대인 대학살’ 사진들은 너무나 끔찍해서
독자들에게 보여줄 용기가 나질 않는다. 모세가 죽기 전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한 “복과 저주”의 말씀이 살아서 움직인다: “...세계 만국 중에
흩음을 당하고...너를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며...너를 도와줄 자가 없을 것이며...이르므로 네 눈에 보이는 일로 인해서 네가
미치리라...”(신28:25-35). “너희가 말세에 재앙을 당하리라”(신31:29).
0069.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 법
‘제1차세계대전’(1914-18)으로 2천만명이, ‘제2차세계대전’(1939-45)에서는 6천만명이 생명을 잃었다. 남편을, 자녀들을 전쟁터에 보낸 유럽인들은 더 이상 유대인들에게 참견할 겨를이 없었다. 애굽에 임하였던 10번째 재앙이 온 세상에 임함으로써 세상은 겸손해졌고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옛 고토, 이스라엘 땅으로 불러모으기 시작하였다. ‘가나안’(창12:5, 시105:11), ‘이스라엘’(삼상13:19), 또는 ‘유대’(마19:1, 막10:1) 땅으로 불려진 유대인들의 고토는 유대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들을 철저히 부인한 로마교황청의 입김으로 이스라엘의 원수였던 ‘블레셋’(Philistiens, 삼상13:19)이란 지역거민의 이름에서 유래된 ‘팔레스타인’이란 이름으로 둔갑해있었으나, 구약에 140여번 기록된 유대인들의 고토복귀에 관한 예언에 ‘팔레스타인’이란 이름은 단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다(에스겔37장 참조).
‘제2차세계대전’이 종결되고 온 나라들이 자국의 전쟁폐허 재건복구에 골몰하고 있었을 동안에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옛땅으로 인도하심으로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의 독립을 허락하셨다. 3년 후인 1948년, 2000여년 동안 전세계에 흩어졌던 유대인들은 옛 고토에 심겨져 다시 나라를 건국하였다:
“...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를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내가 또 내 신(神)을 너희 속에 두고 너희로 살게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의 고토에 거하게 하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간바(흩어진) 열국에서 취하여 그 사면에서 모아서 그 고토로 돌아가게 하고 그 땅 이스라엘 모든 산(山)에서 그들로 한 나라를 이루어서...”(겔37장).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 중 인간보다 악한 동물이 있을 것인가?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어디든지 일간신문이 발간된다. 그 신문의 기사 내용들이 누구에게나 확인시켜주는 진실은 인간은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교회가 무기력하다는 비판을 듣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나는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거듭나지 못한’, 자칭 의인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제1차세계대전’(1914-18)으로 2천만명이, ‘제2차세계대전’(1939-45)에서는 6천만명이 생명을 잃었다. 남편을, 자녀들을 전쟁터에 보낸 유럽인들은 더 이상 유대인들에게 참견할 겨를이 없었다. 애굽에 임하였던 10번째 재앙이 온 세상에 임함으로써 세상은 겸손해졌고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옛 고토, 이스라엘 땅으로 불러모으기 시작하였다. ‘가나안’(창12:5, 시105:11), ‘이스라엘’(삼상13:19), 또는 ‘유대’(마19:1, 막10:1) 땅으로 불려진 유대인들의 고토는 유대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들을 철저히 부인한 로마교황청의 입김으로 이스라엘의 원수였던 ‘블레셋’(Philistiens, 삼상13:19)이란 지역거민의 이름에서 유래된 ‘팔레스타인’이란 이름으로 둔갑해있었으나, 구약에 140여번 기록된 유대인들의 고토복귀에 관한 예언에 ‘팔레스타인’이란 이름은 단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다(에스겔37장 참조).
‘제2차세계대전’이 종결되고 온 나라들이 자국의 전쟁폐허 재건복구에 골몰하고 있었을 동안에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옛땅으로 인도하심으로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의 독립을 허락하셨다. 3년 후인 1948년, 2000여년 동안 전세계에 흩어졌던 유대인들은 옛 고토에 심겨져 다시 나라를 건국하였다:
“...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를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내가 또 내 신(神)을 너희 속에 두고 너희로 살게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의 고토에 거하게 하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간바(흩어진) 열국에서 취하여 그 사면에서 모아서 그 고토로 돌아가게 하고 그 땅 이스라엘 모든 산(山)에서 그들로 한 나라를 이루어서...”(겔37장).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 중 인간보다 악한 동물이 있을 것인가?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어디든지 일간신문이 발간된다. 그 신문의 기사 내용들이 누구에게나 확인시켜주는 진실은 인간은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교회가 무기력하다는 비판을 듣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나는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거듭나지 못한’, 자칭 의인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순간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자각이 온 영혼으로 기쁘게 깨달아짐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지는 과정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이 “거듭남”(요3:1-7)은 인간이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체험하게 되는 모든
경험들 중에서도 가장 기쁘고도 놀라운 정점이다.
0070. 하나님의 돌과 『바벨론』의 벽돌
니므롯은 시날 평지에서 도시건설에 착수하였다: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여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그 이름을 바벨이라하여...”(창11:1-9).
이‘어미’바벨론종교의 자기구속은 “벽돌로 돌을 대신하여”하나님을 대적한 인간문명의 시도이다. 아브라함, 이삭 등 하나님의 사람은 성(城)을 쌓거나 도시를 건설하지 않았다.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성(城)이 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인간의 손으로 구운 벽돌이 아닌 자연석(石) 즉, 돌을 취해왔다. “돌을 대신하여” 라는 말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인간 스스로가 『여호와』신앙을 떠나 사단종교의 굴레에 얽매이는 것을 말한다. 야곱이 베게로 취한 “돌”베게는 곧 하나님의 돌이었다: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창28장).
야곱은 다시 돌을 취하여 돌기둥을 만들고 그의 삼촌 라반과 언약을 맺는 것을 보게된다(창31:43-45).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아론과 훌은 돌을 취하여 모세의 아래에 받쳐놓아 아말렉을 쳐서 이겼고(출17:8-16), 돌 위에 십계명을 손수 쓰신 하나님은 돌단을 요구하셨고(출20:22-26), 솔로몬 성전은 돌로 지어졌다. 다니엘은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단2:34)부숴뜨리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인간이 구운 벽돌은 곧 속박과 우상숭배 종교를 의미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에서 “벽돌”굽는 노예들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내었으나(출1:14), 이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도 벽돌을 버리지 못하고 벽돌 위에서 분향함으로써 하나님을 노엽게 하였다: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좇아 불선한 길을 행하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곧 동산에서 제사하여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사65:1-7).
니므롯은 시날 평지에서 도시건설에 착수하였다: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여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그 이름을 바벨이라하여...”(창11:1-9).
이‘어미’바벨론종교의 자기구속은 “벽돌로 돌을 대신하여”하나님을 대적한 인간문명의 시도이다. 아브라함, 이삭 등 하나님의 사람은 성(城)을 쌓거나 도시를 건설하지 않았다.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성(城)이 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인간의 손으로 구운 벽돌이 아닌 자연석(石) 즉, 돌을 취해왔다. “돌을 대신하여” 라는 말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인간 스스로가 『여호와』신앙을 떠나 사단종교의 굴레에 얽매이는 것을 말한다. 야곱이 베게로 취한 “돌”베게는 곧 하나님의 돌이었다: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창28장).
야곱은 다시 돌을 취하여 돌기둥을 만들고 그의 삼촌 라반과 언약을 맺는 것을 보게된다(창31:43-45).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아론과 훌은 돌을 취하여 모세의 아래에 받쳐놓아 아말렉을 쳐서 이겼고(출17:8-16), 돌 위에 십계명을 손수 쓰신 하나님은 돌단을 요구하셨고(출20:22-26), 솔로몬 성전은 돌로 지어졌다. 다니엘은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단2:34)부숴뜨리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인간이 구운 벽돌은 곧 속박과 우상숭배 종교를 의미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에서 “벽돌”굽는 노예들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내었으나(출1:14), 이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도 벽돌을 버리지 못하고 벽돌 위에서 분향함으로써 하나님을 노엽게 하였다: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좇아 불선한 길을 행하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곧 동산에서 제사하여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사65:1-7).
0071. 하나님의 고귀한 무리들
초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샀다. 그들은 좋은 시민으로서 국가의 법에 순응하였다. 그러나 가이사가 자신을 주 하나님(The Lord God)으로
선언하자 문제가 발생하였다. 가이사의 신성(神聖)에 대한 제사요구를 거부하자 곧 핍박이 따랐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도덕 뿐만 아니라 자신을 곧
국가로 선언한 황제까지도 판단할 수 있는 하나님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신(神)으로 선언한 가이사들의 눈총에 났다. 맹수들에게
던져지기 전에 그들은 세속화되어 가고 있었던 교회조직으로부터 스스로 분리되기를 원하였고, 곧 “고귀한 무리”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사실
콘스탄틴의 기독교 공인이란 배도가 있은 후 이 에큐메니즘의 국가종교는 스스로 무덤을 파고 인간을 더욱 조직적으로 죽이기 시작하였으며 국가의
권력을 동원, 기독교인의 생명을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0072. “떨어져나간 형제들”이란 음모
AD 39년경 북(北)이태리의
브레스치아(Brescia)의 로마교회의 수(首)주교(主敎) 필라스트리우스(Filastrius)는 그의 전생애를 바쳐 이미 그 당시에 이단으로
알려진 156개 집단의 목록을 작성하였다. 이단이란 말은 무서운 말이다. 중세암흑시대의 로마카톨릭교회에 의해 “이단”으로 선고받고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이 말은 자신은 물론 온 가문에 내려진 사형선고를 의미하였다. 1926년 로마카톨릭교의 예수회 학자 마르케(John
Markoe)가 그의 저서 ‘교회의 승리’(The Triumph of the Church)에서 정죄한 88개의 이단들 중에는 -
몬타니스트(Montanists)로부터 구세군에 이르기까지 - 오늘날도 그 이름을 가지고 있는 24개의 이단(?)들이 언급되어 있다. 그에 의하면
재침례파, 루터교, 장로교, 메노나이트, 성공회, 칼빈파, 위그노, 화란개혁파, 모라비안, 감리교 등, 로마카톨릭교회가 아니면 모두 이단이었다.
초대교회시대 때에 지하 등으로 숨었던 성도들 자신에 대한 기록은 거의 전무하며, 참 성도의 기록은 발각되는 대로 이단 서적, 금서로 간주되어
소각되었고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초기문서의 대부분은 로마교회가 참 성도들의 모임을 ‘영지주의’(靈知主意, Gnosticism) 이단
등으로 몰아 부치고는, 로마카톨릭교회에 유리한 문서들만이 귀중한(?) 자료로 간주되어 전해 내려오고 있는 형편이다. 그들은 성경과 수 많은
개혁자들을 불태웠으나 그리스도의 진리는 태울 수가 없었다. 최근의 제2바티칸공회(1962-65)전 까지만 해도 기독교(『프로테스탄트』포함)내의
모든 교단들은 로마카톨릭교회에 의해 이단으로 간주되었었다. 이제는 『프로테스탄트』교회를 향해 ‘떨어져 나간 형제들’이라고 하며 로마교회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저들은 말하나, 사실은 AD 313년에 저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떨어져 나갔다. 오늘날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은 로마종교와의
짝사랑에 눈이 가려져, 믿음의 선진들이 그렇게도 확실하게 들려준 유언들을 무시하고 있다. 흑암에서 가느다란 빛줄기를 발견한 루터가 목숨걸고
대항한 로마카톨릭교회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기쁜 소리 들리니 예수 구원하신다
만민에게 전하라 예수 구원하신다
주님 명령하시니 산을 넘고 물 건너
온 세상에 전하라 예수 구원하신다
만민에게 전하라 예수 구원하신다
주님 명령하시니 산을 넘고 물 건너
온 세상에 전하라 예수 구원하신다
(찬송가 252 / 기쁜 소리 들리니 ①)
구영재 선교사 [KOO, P.O. Box 8844 Victoria, BC V8W 3Z1
Canad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