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6일 금요일

길진리생명이신 그리스도 예수 < 37 >



 
 
 
 
 
 
 
 

0167. 666 이야기(2) - 딤후 3장 / 갈 5장

 
 
1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1
돈을 사랑하며  2
자긍하며  3
교만하며  4
훼방하며 5
부모를 거역하며  6
                                        

                                         6                                                                  

감사치 아니하며 1
거룩하지 아니하며 2
3 무정하며 3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4
참소하며 5
절제하지 못하며 6
                                        

                                         6                                                          

사나우며 1
선한 것을 좋아아니하며 2
4 배반하여 팔며 3
조급하며 4
자고하며 5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 하며 6
                                        

                                         6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3:1-5)
 
 
말세의 징조들 중 하나로 666, 즉 사단의 인을 받을 인간들의 18가지 성품들이 기록되어 있는 구절이다.
올바른 지식 위에 참된 신앙이 세워진다. 바른 정보도 중요하다. 정보시대라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올바른 지식이나 정보가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인들은 선택하고 판별하며 사색함으로써 얻는 창의력을 거세당한 기계화된 세대이다. 죄(정보)가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은 죄(육)의 욕심(정욕)에 끌려간다. 이 죄는 우리의 바깥에 있는 환경의 산물만이 아니라 우리 안에 깊이 들어앉아있는 본성의 한 부분이기도하다. 우리 각자의 의지에 따라 범해진 죄악과는 구별되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과 함께 시초부터 우리와 함께 동거해온 원죄라는 것이다. 고로 선(善)도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악의 한 부분이 된다. 참으로 하나님앞에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써 변화(성화)된 우리의 성품이지 지식만이 아니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죄(악)의 종류를 나열할 때 그 순서에 유의하시기 바란다. 보통 제일 먼저 언급되는 죄가 모든 죄의 원인내지 가장 악함을 이야기할 때가 많다. 딤후3:1-5에서는 “자기사랑”으로 창세기 3장의 첫 여자가 불러들인 죄악이다. 18종류의 죄를 다 품고도 경건의 모양을 시위하는 것이 사단의 자식이다. 그러나 모양만있고 능력이 없다는 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바깥에 있다는 뜻이며 거듭나지 못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666의 자식이라는 뜻이다.

갈5:1-18을 잘 읽으시라. 그리고 그 다음의 18가지 죄악, 즉 666의 세력에서 벗어난 삶을 살고 있는지 각자가 자신을 살필 문제다.


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간음과>> 1
 음행과 2
 더러운 것과 3
 호색과 4
20 우상숭배와 5
 술수와 6
                                        

                                   6

 원수를 맺는 것과 1
 분쟁과 2
 시기와 3
 분냄과 4
 당 짓는 것과 5
 분리함과 6
                                        

                                 6

 이단과 1
21 투기와 2
 <<살인>>과 3
 술취함과 4
 방탕함과 5
 또 그와 같은 것이라 6
                                         

                                 6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오 (갈5:19-21, kjv / 대부분의 현대역들은 ‘간음’‘살인’을 누락하고 있다).
 
‘베리 칩’에 관한 정보에도 무조건 거부할 것이 아니라 신중히 숙고하기를 바란다. 다수결의 ‘이다, 아니다’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단지 비본질적인 또는 악의 문제에 너무 깊이 사로잡혀 그리스도의 복음의 본질적인 문제의 심층을 벗어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좋은 소식의 골자는 역시 그리스도의 중보와 행위, 약속들이 복음의 중심내용이다. 인간의 죄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행위에 대해서는『존 오웬』의 전집(“죄와 은혜의 지배”/부흥과 개혁사 刊 부터 읽으시라)이나『요나단 에드워드』전집 (부흥과 개혁사 刊)을 권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지러운 세상속에서도 평강과 확신이다.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살후2:2).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 예수는 “…이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고 선언하신 주님이시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고 하신 약속보다 더 안전하고 확실한 것은 이 세상에 존재치 않는다.
 
나 가는 길 비록 좁고
내 뜻대로 안 돼도
모든 욕심 다 버리고
주만 따라 가겠네
찬양하리 찬양하리
죽임 당한 어린양
주께 영광 돌리어라
나의 죄를 씻어 주셨네
<찬198 / 정결하게 하는 샘이②>
 
구영재 선교사 [KOO / PO Box 8844 Victoria,  BC V8W 3Z1 Canada]

 
 
 
 
 
 

이문수 목사의 건강 칼럼



 
 
 
 
 
  
 

봄철에 찾아오기 쉬운 Allergy성 비염

 
어김없이 추웠던 날씨가 풀리고 꽃망울이 터지는 봄이 오면 의례적으로 찾아오는 불청객 Allergy 증상들이다. 일교차가 심한  요즈음 몸의 균형(balance)이 깨지면서 더 심하게 느낄수 있다. Allergy란 일반적으로 해가되지 않는 물질에 우리몸이 과민하게 반응 하면서 일어나는 증상을 말한다. 우리몸에 있는 이물질을 제거 하기 위해서  일어나는 면역 반응중에 하나로써 필요 이상으로 민감하게 반응 하는것을 말한다. Allergy원인은 유전적인 요인, 환경적인 요인, 신체적인 요인으로 구분 할수 있는데 오늘은 요즘 일어나는 환경적인 요인중에 하나인 꽃가루 와 찬 바람에 의하여 일어나는 Allergy성 비염에 대하여 언급 하고져 한다.
 
Allergy성 비염은 한의학적으로는 폐의 기와 비장의 후천적인기, 신장의 선천적인 양기가 허약해져서 인체를 방어하는 위기(Defensive Qi)가 느슨해졌을때 계절적인 여러가지 요인 꽃가루 먼지, 진드기, 찬바람 등으로 인해서 비염을 일으킬수 있다. 나타나는 증상은 코가 막히고 맑은 콧물이 흐르고 발작적인 재치기가 일어나며 눈이 가렵거나 코안 및 피부등이 가려울때가 있고 환절기 기후 적응력이 떨어질때 심하게 나타나며 치료는 단순히 코에만 국한 시켜 치료해서는 안되며 환자의 체질과 합병증 여부를 살피며 종합적인 치료를 해야한다.
 
만일 호흡기나 소화 기능이 약한 사람들은 식은땀을 흘리면 기를 돕고 폐의 기능을 강화 시키고, 신체가 건강 하지만 감염에 의하여 비염이 발생되었다면 발산하는 약물을 적용 시키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한방 치료를 통해서 원기를 회복시키고 면역력을 키우고 해독기능을 정상화 시키는데 도움이 될수 있다. 또한 식습관 개선에는 올리고당, 섬유질, 물 등을 충분히 섭취하고 트랜스지방, 설탕 등의 섭취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 시즌에는 정신적인 피로와 육체적인 과로를 가급적 피하고 체온조절에 알맞게 하고 실내습도를 적당히 유지해야한다. 또한 Allergy성 비염을 유발하는 요인에 대한 노출을 가급적으로 삼가는 것이 좋고 꽃가루가 날리는 이 시즌에는 창문을 가능한한 열지 말고 외출시에는 마스크, 모자 안경을 착용한 뒤 귀가한 후 몸의 청결을 위해 양치질과 샤워를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한 긍극적으로는 몸의 기능 즉, 양기(陽氣)의 기능을 강화시킨다면 Allergy성 비염을 완화 시키거나 억제 할 수 도 있다. 많은 분들이 Allergy 체질이 바뀌나요? 라고 물어 보시는데 유전적인 특정 알러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Allergy 유전자는 바뀌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Allergy에 민감한 체질을 개선시키려는 노력으로 충분히, 민감하지 않은 사람과 동일하게 환절기를 보낼수 있다고 사료된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 가 범사 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3서 1:2 )
 
[클로버데일한인교회 담임 / 엘림한방클리닉 원장 R.Ac, TCM.P / 604-441-6934]
 
 
 
 
 

4인4색 밴쿠버목양일기



 
 
 
 
 
 
 

 

마지노선(Maginot Line)

 
마지노선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마지노선은 1차 대전을 마친 프랑스가 독일의 공격을 막기 위해 국경지역에 만든 요새입니다. 프랑스는 1차 대전 중 독일에 알자스와 로랜 지방을 빼앗기는 등 고생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프랑스는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앙드레 마지노'의 이름을 딴 항구적인 방어 진지를 구축하게 됩니다. 1927년부터 약 10여년 간 공을 들였다고 하니, 실로 난공불락의 요새를 구축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마지노선은 결국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1940년 5월, 독일은 마지노선이 구축된 지역이 아닌 아닌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로 우회하여 프랑스를 침공하였고, 프랑스는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완벽할 줄 알았던 최후의 보루, 마지노선이 실제로는 전혀 쓸모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믿으며 혼신의 힘을 다해 열심히 구축하고 있는 마지노선 같은, 자신 만의 요새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마치 철벽의 요새처럼 그것을 구축하고 세우는 일에 참으로 혼신의 힘을 다하며 열심을 냅니다. 그것의 모양과 크기는 각자 다를 수 있지만, 자신을 위해 마지노선을 만드는 일에 대한 열정만은 모두가 동일 한 것 같습니다. 그것은 '물질'이 될 수도 있고 '학력'이나 '직위'와 같이 자신의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로 인식하는 소위 스펙(specification)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짧은 여정을 걸어왔지만 제가 인생을 경험해 보니 그렇게 구축해둔 나만의 마지노선이 무용지물일 때가 참으로 많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독일군이 마지노선을 피해 프랑스를 향해 우회공격로를 택한 것처럼 우리 인생을 어지럽히고, 괴롭히는 여러가지 일들도 우리가 구축해 놓은 마지노선을 교묘하게 피하여 다가온다는 사실입니다. 물질이라는 마지노선을 구축해 놓으면 물질이 아닌 다른 문제가 우리를 공격해 오고, 또 다른 마지노선을 구축해 놓으면 그것이 아닌 또 다른 문제가 우리 인생을 공격해 옵니다. 즉 우리가 완전하고 완벽하게 구축해 놓은 것 같은 마지노선이 우리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할 때가 너무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구축하는 것은 어떠한 것도 완벽한 것이 없습니다. 열심으로 그리고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인생을 살아야 함은 분명하지만, 그 한계점을 분명히 알고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 끝은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라는 말을 좋아하지만, 그 말에 100% 공감할 수는 없습니다. 노력으로만 극복되지 않은 인간적 한계가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한계를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준비한 마지노선만으로 막을 수 없는 일들에 대한 대비가 중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철저히 인정하고 그 하나님의 다스리심 앞에 겸손히 순복하는 성도의 자세입니다. 하나님 만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쉽지 않은 이민의 삶 가운데, 하나님으로 우리 인생의 마지노선 삼는 지혜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한계 그 이상을 넘어서 계신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전능하심을 기대하는 인생이 참으로 복된 인생입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34:7-8)
 
[문경돈 목사 / 나무십자가한인교회 / 778-772-4738]
 
 
 
 
 

아브라함 이야기



사라의 죽음과 아브라함의 신앙 / 창 23:1-20 (상)

 
 
오늘 말씀은 사라의 죽음을 통해서 나타난 아브라함의 신앙과 하나님 약속에 대한 성취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라의 죽음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가 127세에 죽었다고 나옵니다: “사라가 백이십칠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 죽음은 신앙의 유무를 떠나서 우리 인생 최대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가 살아있지 않는다면, 아무리 신실한 크리스천이라고 해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은 어느 누구도  죽음을 연기하거나 피할 수 없습니다. 본래 죽음은 우리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로서, 형벌로서 세상에 들어온 우리의 적입니다. 죽음은 삶의 자연스러운 부분이 아닙니다. 죽음은 바로 하나님을 대항해서 반역한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상기시켜 주는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성도들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딤후 1:10). 하지만 주님의 승리는 믿음의 백성들인 우리가 부활의 몸을 가질 때까지는 완전히 실현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애곡하는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아내 사라가 죽자 슬피 울었습니다: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2절). 아브라함은 자신의 전 생애를 사라와 함께 나누었습니다. 가나안으로 이주할 때 그와 함께 걱정을 했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들을 함께 기다렸고, 아들 이삭이 태어나고 자라는 것을 함께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의 삶을 사라와 나눌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사라가 죽었을 때,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슬픔을 표현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비록 우리가 마지막 날에 부활할 것을 믿지만, 슬퍼하며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도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셨고 (요 11:35), 바울도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롬 12:15)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사별의 슬픔
4, 8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두 번이나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해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의 문자적인 뜻은, “나의 눈 앞에서 나의 죽음을 묻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사라가 죽었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특별한 위로를 주시기 위해 나타나시거나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버리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친구였던 아브라함 조차도 사별의 슬픔과 외로움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별의 경험은 우리 인간의 한계이기 때문입니다.     
 
이민자- 나그네요 외국인
그런데 아브라함은 사라의 죽음 앞에서 애도하거나 눈물만을 흘리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죽음 앞에서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3절).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4절). 이것은 우리의 인생이  돌아가야 할 ‘본향’이 있는 나그네라는 의미입니다: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히 11:13 하-14).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고백은 그가 비록 사별의 슬픔을 갖고 있었지만, 동시에 천국에서 그녀를 다시 만날 소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으니라” (히 11:16). 즉, 아브라함은 우리의 인생이 나그네와 같은 존재들이며 돌아갈 본향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기수 목사 / 캐나다중앙교회 / 778-237-8084]
 
 
 
 
 

한국 홀사모 난생처음 밴쿠버 나들이 (2)

 
 
 
 
 
 
 

임정열 전도사 (전북 정읍) 간증

 
할렐루야!
저는 전북 정읍 작은 시골 교회에서 사역하는 임정열 전도사입니다. 사실은 부끄러운 저를 드러내는 일이지만 지면을 통하여 밴쿠버 성도님들께 인사를 드리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증거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가 없는 충청도 공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서 미신을 섬기며 우상을 숭배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저희 가정은 넉넉한 편이라 공주에 있는 계룡 여중학교에서 공부 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은 저에게 점차 신앙을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던 곳입니다.
 
비록 부모님 세대에서는 친척을 통 털어 누구도 믿는 사람이 없었지만, 결국 저는 가문에서 예수 믿는 첫 열매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공부하며 자라서 결혼 적령기에 법무부 소속 공무원 남편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너무나 좋은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성실하고, 근면하며, 책임감이 투철했습니다. 직장에서 승진을 거듭하여 마침내 사무관에 오르게 되었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가정이 되었습니다. 능력 있는 남편에 두 아들을 양육하며 고생이 무엇인지 흔히 말하는 고난이 무엇인지 모르며 살아갔습니다. 그러던 제 인생에 풍파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남편이 간경화라는 진단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게 10년을 투병하던 남편은 세상 물정 모르는 아내와 두 아들을 남겨두고 17년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돈 떨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아무런 준비도 경험도 없는 세상에 세 모자를 남기고 간 남편의 빈자리를 책임지면서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낮에는 생업을 꾸려가고 밤에는 그동안 하고 싶었던 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남편 떠난 빈자리가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신학을 마쳤고, 마침내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사실 세상 물정도 잘 몰랐지만, 목회 세계도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 저는 전남 진도 근처에 있는 20여 가구가 사는 '죽도'라는 섬마을의 작은 교회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전기, 수도가 없는 그리고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배가 몇 일 씩 운행을 못하는 곳이었고, 이장님을 제외하고는 할머님들이 전체 주민인 가난하고 소박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었습니다.
 
대개 섬에는 양식장과 어선을 가지고 수산업을 하는 주민이 있기 마련인데, 유독 그 마을에는 그런 사업을 하시는 분이 없었습니다. 단순히 호미로 작은 텃밭을 일구며, 썰물에 물이 빠지면 바닷가에 가서 어패류를 캐며 살아가시는 전형적인 섬사람들이었습니다. 다투는 일 없이 서로 도우며 순박하게 살아가는 낙도 인심은 초보 전도사에게 큰 위로가 되었고 그것은 제 인생의 첫 목회를 잘 감당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지난 지금 뒤돌아보니 하나님께서 내 약함을 아시고 그런 곳에서 목회 첫 단추를 끼우게 하셨습니다. 이것 또한 하나님의 축복임을 생각할 때 지금도 눈물 겹도록 감사를 드립니다. 사례비도 없었고 없는 것이 많은 그곳에 따뜻한 마음들이 어우러지니 지금 생각해도 그렇게 작은 돈으로 그곳에서 5년을 살았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지만 제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나날들이었답니다.
 
그때 제 통장에는 달랑 천원 밖에 없었고, 그렇다고 어디에다 도움을 청할 방법도 길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지금까지 남편 덕분에 순탄하게 살았던 저를 낮출대로 낮추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가면서, 남들은 힘들겠다며 별의별 소리를 다 하여도 저는 견디고 있었습니다. 빗물을 받아먹고, 호롱불에다 냉방에서 잠을 잤습니다. 목회가 어렵다고 잔뜩 겁먹고 달려가는 저를 안심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주일이면 교회로 찾아오시는 노인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만 5년의 사역이 끝이 나고, 정읍에 위치한, 2년째 사역자도 교인도 없는 빈 교회 건물을 빚을 얻어 시작하면서 새로운 농촌 목회의 길이 주어졌습니다. 서로 돕고 의지하던 섬 목회와는 달리 점점 어려움들이 다가오기 시작하였습니다.
 
1년 반 정도 지난 어느 날, 평소 점점 기울어 가던 교회 건물이 갑자기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넘어진 그 자리에 천막 칠 돈도 없어서 비닐하우스를 만들었는데, 겨울이 왔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곳 정읍에는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내립니다. 날마다 눈이 오면 걱정과 두려움이 엄습해옵니다. 눈이 조금만 쌓이면 비닐하우스가 축 처지고 금방 무너지기 때문에 비닐하우스 꼭대기에 눈이 쌓이지 않도록 계속 빗자루로 쓸어야 했습니다. 도구를 사용하면 비닐이 찢어지기 때문에 지붕을 보호하려고 밤새도록 눈 전쟁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하얀 눈을 보고 예쁘다고 감상에 젖어 들지만 가난한 농촌 여 전도사에게는 너무도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눈은 자주 오고 많이 오는지 어느 날은 밤새도록 눈을 치우고 울면서 눈을 치우고 안에 들어가면 눈물이 얼어서 고드름이 되고 등에 내린 눈이 얼어서 옷이 안 벗어지고 여름에는 더워서 울고 겨울에는 춥고 눈 치우며 울고 섬에서 저축한 눈물 몇 배를 그때 다 쏟았습니다.
 
그런 여건에서도 농촌에 사는 농부들의 영혼을 붙들고 기도하는 저에게 서울 어느 교회의 손길을 통하여 교회 건물이 조립식으로 새로 세워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비록 작은 조립식 건물이지만, 저에게는 대리석 못지않은 성전이 되어 이곳 마을을 전도하며 기도로 섬기는 복음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비록 미자립 교회지만 노인분들 중심으로 성도님들이 계십니다. 그동안 전도사 엄마 옆에서 함께 고생하며 자라던 두 아들은 잘 자라서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17년간 낙도와 농촌에서 사역하면서 외출 한 번 제대로 못 했었는데, 이번에 캐나다에서 따뜻하게 초청을 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그동안의 쌓였던 모든 피로가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 넓은 나라를 직접 눈으로 보고 말로만 듣던 미국과 캐나다 땅을 밟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렙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맡기신 농촌 사람들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열심을 내려고 합니다.
 
시골 전도사를 초청해 주신 밴쿠버 숭실 교회와 교민들께 감사드립니다.
정읍에서 임전도사 드립니다.
 
 
 
 
 

필객의 붓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새벽 어둠이 슬슬 얇아지기 시작하니 잠을 물리치고 일어나는 일이 한결 쉬워집니다. 몸을 기대며 감겨오는 잠에 취한 아이들을 쓰다듬으며 앉은 차 안에서 투명한 빛이 서리기 시작한 새벽 하늘을 보면서 이대로 멈추지 않고 영원까지 달리고 싶습니다. 마지막 나팔 소리에 홀연히 변화되어 구름타고 오시는 주님을 공중에서 만날 때를 그려보면서 이 차가 놀이 공원의 기구처럼 들려 하늘로 올라가는 상상으로 즐거워합니다. 죄 밖에 지을 줄 모르고 쾌락과 미련에 종노릇하던 내가 어쩌다 예수님을 만나 이 귀한 말씀을 읽고 듣고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놀라운 복을 받았는지, 이 세상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감사할 것이 많은 사람이 나인 것만 같습니다.
 
‘밤새 안녕’ 이라는 옛 어른들의 말처럼 하루가 다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진동하는 세상이 불안해 요즘은 새벽 기도를 나오기 전 인터넷을 열고 뉴스 기사 제목들을 훑습니다.
지난 한주 동안도 일본과 이란과 중국의 지진이 잇달아 발생하고 일본과 이탈리아등 화산 폭발 위협, 보스턴 테러와 텍사스 폭발로 흉흉한 미국의 중부지역에 홍수가 나서 물에 잠겼다는 소식,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 총격전에 대한 기사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도살의 날" 이라는 표현처럼 사람들이나 동물과 새, 바다 생물들이 너무 많이 죽습니다. 사람들의 죄악으로 인해 땅이 거민들을 토해 내치는 메스꺼움이 일고 있는 모양입니다. 뉴질랜드에 이어 프랑스에서도 동성 결혼이 합법화 되었다고 합니다. 인간의 죄악이 관영할수록 심판을 자초하는 인간들의 말과 행동이 거세질수록 자연은 고통으로 뒤채며 크게 탄식한다고 합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뉴스 기사의 제목들을  한번 노트에 적어보았더니 제목 만으로도 군중을 선동하고 불안을 조성하려는 의도가 느껴지고, 대중을 미련하고 시시하게 길들이는 듯한 경박하고 말초적인 말들을 보면서 세상이 얼마나 짙은 혼란이며 어둠인지가 느껴집니다. 전세계의 언론이 전쟁과 테러, 경제 붕괴, 에큐메니칼, 동성 결혼과 차별 금지, 미디어 법 등 전 세계가 한 맥락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차별금지 법이 통과되면 죄와 불법에 대해서 조차 말 할 수 없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며, 미디어 법이 통과되면 그야말로 의도되고 조작된 기사들만 우리에게 전해질 것이며 그 이면의 진실을 대중들은 절대 알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성경의 진리를 외치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시대의 예레미야입니다. 모두가 긍정을 말하고 좋은 언어를 말하고 잘된다는 말, 듣기 좋은 말, 평화와 화합 아래 여러 길을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꿀이 떨어지고 기름보다 미끄러운 말들 속에 종말과 심판과 지옥과 천국에 대한 말을 하는 교회가 가시처럼 거슬리고 불편한 존재들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돌리지 않고 분명하게 하신 말씀이 어떻게 그렇게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긍정과 사랑과 축복의 언어로 바뀌었는지, 고난과 핍박과 십자가가 교회 안에서조차 얼마나 감이 멀고 광신적인 것이 되어버렸는지, 실제로 청소년 사역을 하면서 물질과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러운 정신에 혼을 뺏기며 긍정의 말들에 귀가 닳아진 아이들에게 죄와 회개와 심판에 대한 과격한 말을 하는 것이 민망해 입이 막히고 할 말을 잃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나 기도할 수 있습니다!”
거대한 절망을 앓고 있는 세상에 금이나 은이나 힘과 능으로는 아무런 기여도 할 수 없지만 크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할 수 있는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내가 가장 바라는 기도는 아버지의 뜻이 내 생애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나라의 정치와 경제와 문화가 죄악과 파멸의 사단의 나라를 임하게 하려는 듯이 흘러가는 지금이지만 오늘도 아버지의 거룩하신 뜻이 이루어지기만을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오늘 내가 드려야 할 것은 순종일 것입니다.
그동안 생각없이 너무 쉽게 입에 담았었지만 이삭을 드린 아브라함의 순종은 정말 살떨리는 것이며 그 명령을 나에게 견주는 것 조차 두려운 것입니다. 바로 그 놀라운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실 수 있었고 천하 만민이 그를 통해 복을 얻었습니다. 내 작은 믿음의 분량으로는 그런 위대한 순종은 드릴 수 없을지라도 나의 일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말하고 생활하는 제사를 올려드리며 내 작은 순종을 통해 주변이 복을 얻게 되기를 정말 너무도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면 혈관에서 근심과 불안이 씻겨나가고 평강과 행복이 안정감이 퍼집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내면의 안테나가 예민한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릴 적부터 살짝 바람만 불어도 마음이 불안해지곤 했는데, 사람을 찾아가도 파티나 오락속에 있어도 떨칠 수 없던 근원적인 불안감이 기도를 할때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염려나 불안이 스멀거리면 기도하라는 사인으로 알고 바로 엎드립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침 빛이 영화롭게 퍼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어린양이 서신 시온산을 마음으로 그려봅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나의 남은 삶과 인생을 주장하시길 바라는 내 영혼의 부르짖음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신 줄 믿어집니다. 성령님께서 나와 동행하시며 내 생애에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이 이루어지는 그 영광을 보게 하실 것을 생각하니 오늘 살아서 숨쉬는 일이 너무나 아름답고 놀라운 은혜로 느껴집니다.  
 
[서수영 사모 / penofgod@gmail.com]
 
 
 
 
 

정성헌 선교사의 선교칼럼

 
 

선교지에서 만난 동역자-매부리 코



선교지 교회개척을 시한 지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건강한 20대과 30대 초반 젊은이 두 사람이 사택으로 나를 찾아왔다. 그들은 자신을 ‘알렉’과 ‘발레라’라고 소개했다.

알렉은 한 눈에도 거의 술에 빠져 있는 알코올 중독자로 보였다. 그러나 발레라는 매서운 눈과 매부리 코, 다 부진 몸을 가진 범상치 않은 얼굴을 한 카프카즈 사람으로 보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두 사람이 안내되어 우리 집 거실로 들어오는데 매부리코를 한 사내의 이마에 감옥이라는 두 글자가 어른거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무슨 일로 나를 찾아 왔느냐고 물었다. 두 사람은 간단히 자신을 소개하고며 자신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깊이 알고 싶고 그리고 새롭게 생긴 이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를 알고 싶다고 했다. 내게 매부리 코를 가진 발레라라는 형제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구체적으로 들은 적이 있냐고 물었다.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나는 형제가 갓 감옥에서 출소하여 나를 찾아온 것 같다며 그곳 감옥에서 예수를 믿게 된 것이냐고 물었다. 말을 하면서도 나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발레라도 눈이 휘둥그레져서 어떻게 자신이 감옥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았냐고 물었다. 나는 거실 들어올 때 발레라의 얼굴에 그렇게 감옥이라는 두 글자가 써 있었다고 말했다. 이 말에 그는 자세를 고치고 무릎을 끓었다. 그리고 그는 내게 자신에게 말씀을 가르쳐 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수요일 마다 성경공부를 하고 있으니 참석하라고 알려 주었다. 나는 ‘발레라’라는 이 형제가 어떻게 감옥까지 가서 예수를 알고 영접하게 되었는지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발레라는 사이클 선수로 한 때 중앙아시아의 사이클 참피언이었고, 한 때 학교에서 사이클 코치로 일한 적이 있다고 했다. 쏘련이 붕괴되면서 혼란을 겪자 그는 더 이상 그 땅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며 주먹세계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조직을 만들고, 술과 마약에 빠지게 되면서 국가의 고위공무원들의 집과 경찰들의 간부의 집들만 골라서 떨었다고 한다. 그리고 암흑가의 보스가 되기 위해 별(?)을 달고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스스로 잡혀 주었다고 했다. 그리고 감옥에 가게 되었고 그 감옥에서 다시 사고를 쳐서 중죄인들만 가는 감옥으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그는 그곳에서 주먹으로 그를 당할 사람이 없는 흉측한 인간으로 바뀌고 말았다고 했다. 손재주가 탁월했던 그는 간수들을 매수해서, 각종 상아와 뼈들을 구해서 조각품을 만들고 간수들이 그것을 팔아 이익을 남기고 그가 요구하는 마약을 구해다 주었다. 일석 점호가 끝이 나면 감방의 문을 열어 주면 그들은 그들 만의 아지트가 있어 그곳에서 마약을 하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벌였다고 한다.
 
흑암의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가 무렵, 그의 수하에서 밤마다 같이 마약을 하던 크림 따따르 족 한 명이 한 날 갑자기 예수님을 알게 되었는데 자신은 더 이상 마약을 하지 않겠다고 해서 흠씬 패 주었다고 한다. 몇 일을 맞아도 마약을 거부하자 이유를 물었는데, 자신은 이제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더 이상 성령의 전을 더럽힐 수 없다고 고백했다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그 친구가 예수를 믿게 되었냐고 묻자, 한 날 화장실에서 뒤를 보던 자신의 친구가 늘 찢어 사용하던 책을 우연히 읽기 시작한 것이 출애굽기였다는 것이었다. 그 뜯어진 종이에는 이스라엘이 모세의 인도로 홍해를 건너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었다. 그 친구는 이상한 힘에 이끌려 그 책을 숨겨 매일 매일 읽기 시작했는데, 이미 화장실로 많이 들어가 그 성경책은 창세기와 계시록이 없는 성경이었다. 그 친구는 성경을 읽다가 성령님의 역사로 복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친구가 급격하게 변화된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하자 그 모습을 본 발렐라가 성경을 찾아 갈기갈기 찢어 버리자 성경을 잃어버린 친구는 통곡을 했다. 친구의 절규하는 모습에 양심이 찔려, 그 감옥에 누가 성경을 가지고 있는지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한 터키 사람이 가지고 있는데 부적처럼 거룩한 책의 힘이 자기를 지켜주리라 믿으면서 성경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사람이었다. 발레라는 그 책을 팔라고 했으나 그가 거절했다. 그러자 발렐라는 “네가 읽지도 않으면서 모셔 놓는 것보다야 정말 그 책을 생명처럼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 너의 신을 기쁘게 하는 일이 아니겠냐"고 설득해서 성경을 얻었다고 한다. 자신의 친구는 성경을 구해다 주자 뛸 듯이 기뻐하며, 밤이면 아지트에 나가 두 명이 마약을 하는 중에도 혼자 성경을 읽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발레라는 그 내용이 무엇인지 읽어 보라고 청했는데 요한복음으로부터 밤이 새도록 성경을 읽어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이, 중독 상태가 심해 하루라도 마약을 하지 않으면 명현현상으로 견딜 수 가 없는데 왠 일인지 그 날 밤에 말씀을 들으면서 아무런 고통도 없이 날을 새고 만 것이다. 이에 세 명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예수를 영접했다. 그리고 그들은 밤마다 보여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십계명 중의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교도소 소장에게 자신들을 위한 예배장소를 요청했으나 거부를 당했다. 그래서 그들은 토요일이면 감옥소 큰 나무 밑에 모여 성경을 읽고 기도를 했다.
 
 
그 모임이 자라나 30-40명의 죄수들이 모여 성경을 낭독하고 함께 기도한다는 소식이 외부에 전해지자 교회에서 성경과 찬송가를 보냈고, 간혹 외부 목사가 와서 예배를 인도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들은 이 모임을 감옥소의 이름을 따서 ‘딱박사이 형제’교회라 불렀다. 그렇게 3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개과천선한 모임의 형제들은 죄수들이 하나님이 살아 계신 증거가 어디 있나라고 물을 때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이야기 했다는 것이다. “모임을 시작한 우리 두 사람이 한 날 동시에 이곳에서 나가면 하나님이 계신 줄 믿어라”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그런 말이 툭 튀어 나왔다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은 다 웃었다고 한다. 한 사람은 2년, 한 사람은 3년 반이나 복역기간이 남았는데 어떻게 함께 감옥을 나간단 말인가, 탈옥이라도 할 거냐? 라고 다시 비아냥 거렸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한 날 전체 조회를 위해 모인 죄수를 앞에서 대통령 사면령이 발표되는데 그 많은 죄수 중에 단 두 사람의 이름이 불려졌다.
 
[SEED Canada 대표 / 778-316-3579]

예수님의 마음치유



제 18 장   주님의 치유가 시작되면 ...


A.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 (계속)
 
(5) 우월감으로 가득해서 교만하게 행동하던 사람이 겸손하게 된다

열등감과 우월감은 동전의 양면이다. 열등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자신보다 약해보이는 사람 앞에서 우월감을 드러내려 애를 쓰기에 교만하게 보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의 마음은 약하고 겁에 질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에게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마음 때문에 약점을 보이지 않으려고 결사적으로 노력한다. 그런데 주위 사람에게는 그 모든 것이 잘 보인다.
  그 사람이 치유를 받으면 여태 보지 못하던 자신의 뒷모습을 보게 되고 자신의 열등감의 뿌리와 그 원인을 알게 된다. 자신의 부족함이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닌 것을 깨닫게 되면서 자신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자신의 약점을 담대하게 고백하게 된다. 자신의 마음을 열고 사는 것이다. 점점 겸손해지고 기분 좋은 사람이 되어간다.
 
 
(6) 귀신이 들렸다고 손가락질 받던 사람이 정상으로 회복된다
영적인 속임수에 빠져서 고통하던 사람이 옳은 신앙으로 돌아온다. 한 가족을 대대로 사로잡고 있던 속임수와 미움의 결박이 풀어진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매우 사모한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강조하고 성령님의 초능력을(Super power) 사모한다. 기적이 많이 일어나고 구원의 역사가 넘친다. 참으로 귀한 신앙이다.
그런데 거기에도 부작용이 따른다. 성령님이 인격적인 삼위일체 하나님 중의 한분이라는 것을 자주 잊어버리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제는 성령님의 시대입니다” 라는 말까지 한다. 위험한 신앙관이다. 나아가서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성령님과 사탄의 능력의 대결로 보면서 능력 사역을 (Power ministry) 주장한다. 기록된 말씀에서 자주 벗어나면서 쉽게 속임수에 빠진다. 그 미혹은 자녀들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이 같은 신앙에 길들은 기독교인들은 어떤 사람의 행동과 말이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면 “저 사람 귀신 들렸어...” 라고 말하며 어려운 상황을 피해나간다. 자신의 잘못으로 가족이나 이웃과의 관계가 깨어져도 같은 식으로 사탄과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피해나간다. 영적으로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중에 이런 경향이 심각하다.
  “당신 딸이 귀신 들렸어...” 라는 말을 들은 엄마가 받는 충격을 생각해보자. 온 집안이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엄마가 어린 딸을 데리고 여기 저기 기도를 받으러 다니다가 능력 있다는 사람을 만나서 기도를 받았다. “이제 당신의 딸에게서 귀신을 다 쫓아냈습니다” 라는 선포를 받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같은 증상이 다시 나타난다.
  나아가서 그 아이를 대하기가 아주 부담스러워진다. “저 아이에게 있는 귀신이 나에게 또 다른 가족에게 넘어오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에 서서히 잡혀간다. 사랑하는 딸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두려워지고 딸이 두렵고 부담스러워진다. 부모가 그런 마음을 품으면 그 아이는 점점 더 이상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이제는 귀신 쫓는 기도도 믿어지지 않는다. 예수님이 야속하고 “아~ 예수님도 우리 딸을 보호하지 못하는구나 ...” 하는 생각이 자리를 잡는다. 믿음의 기초가 무너져 간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또 그 사람의 자녀들에게 “귀신이 들렸습니다” 하는 진단은 대부분 잘못된 것임을 발견한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상한 행동과 말을 하는 것은 ‘거의 모든 경우’ 어려서 받은 마음의 깊은 상처와 아픔 때문이다. 귀신이 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속의 어린아이가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다. 마치 출산의 진통을 겪는 임산부가 온갖 이상한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해대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런 임산부에게 “당신 귀신들렸어..” 라는 말을 한다면 오히려 그 사람을 정신 병원에 집어넣어야 하리라.
 
구자형 목사(밴쿠버내적치유사역원장) saranghealing@hanmail.net
 
 
 
 
 

교회음악 Plus



 
 
 
 
 
 
 
 

찬양은 영적인 봉헌이다

 
유대 기독교인들은 예수께서 그들의 메시아인 것을 보고 체험한 증인으로 더 이상 다른 유대인들과 함께 예배 할 수 없었다. 찬양과 예배의 행위는 그들의 제사가 되었다. 그들은 어디서든 언제든지 하나님께 드릴 수가 있었다. 이 일은 그들에게 선지자 호세아의 말씀을 기억나게 한다.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호세아서 14장 2절)
찬양의 제사는 오늘 주를 믿는 우리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자신을 드리신 일을 감사하는 것과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증거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한다 할 찌라도 복음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친절한 행위와 나눔은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기뻐하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날마다 찬양으로 제사를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한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브리서 13장 15절
 
홍동근 / 목사, Music Minister
 
 
 
 
 
 

통일과 한민족의 부르심



 
 
 
 
 
 
 
 
 

아시안하이웨이의 영적도로를 뚫어주소서!

 
밴쿠버의 그리스도인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이곳 한국의 날씨는 이제야 자기 자리를 찾은 듯, 봄의 모습이 제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팽팽하던 핵전쟁 위기는 한풀 꺾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만개한 꽃들과 벌써 떨어져가는 꽃잎들을 바라보면서, 통일 한반도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기도의 끈을 놓을래야 놓을 수 없는 지금의 한반도 정세 때문에 이번 주에도 여러분과 함께 기도하고자 기도할 내용을 가지고 왔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한반도를 올려주시기를 간곡히 요청합니다.
 
아시는 분들도 계실텐데요, 「아시안하이웨이」(Asian Highway)에 대한 영적흐름을 잠깐 나누려고 합니다.  ‘아시안하이웨이’는 아시아 32개국을 횡단하는 전체 길이 14만Km에 이르는 고속도로망으로서 이 프로젝트가 실시되어 고속도로가 뚫리면 아시아 대륙을 자동차 한 대로 종횡무진할 수 있는 이른바 현대판 실크로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시작하여 우리나라를 관통하는 도로는 동쪽으로는 현재 7번국도(AH6: 동해안도로)이고 서쪽으로 1번국도(AH1: 서해안도로)입니다. 이 도로는 휴전선을 넘어 서쪽으로는 일본-부산-서울-평양-신의주-중국' 등으로 연결되는 AH1과 동쪽(AH6)으로는 부산-강릉-원산-러시아(하산)' 등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금강산의 통로가 막힌 2008년 7월 이후 5년이 된 시점인 오늘 또 개성공단의 통로가 막힐 위기에 있는 것이 어떤 영적인 의미를 가지는 걸까요?
 
사도바울 선생이 살던 로마시대, 복음이 확장되어갈 때 함께 발전한 것이 '경제발전과 더불어 발달된 도로망'이었던 것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이 프로젝트가 추진되기 시작한 것은 2003년으로 올해 들어 10년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독교역사의 부흥의 발원지를 볼 때 평양대부흥(서쪽방향)이 있기 전에 강원도 원산(동해안)에서 먼저 부흥이 시작되었습니다. 통일이라는 관점에서 여러 나라들이 주목하고 있고 현재 투자되고 있는 지역인 동쪽의 라선특구지역과 유일하게 남한과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던 서쪽의 개성공단 지역은 분명히 영적흐름에서의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볼 수 있는데요, 원래 동쪽 라인에 두 곳, 서쪽 라인에 두 곳에 문이 열릴 수 있었습니다. 동쪽에는 실제로 두 곳(라선지역과 금강산)이 열렸는데 2008년에 금강산이 닫혔구요, 서쪽으로도 두 곳(개성공단, 신의주특구 시도)의 문이 열릴 수 있었는데, 신의주특구는 시도를 하다 실패했습니다. 결국 양쪽 라인(동쪽과 서쪽)에 두개의 문이 열려있었고, 특히나 개성공단은 너무나 중요한 곳인데 지금 계속해서 뉴스를 통해 나오고 있는 불안한 소식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나 몰라라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들립니다. 북한을 통하지 않는 아시안하이웨이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아시안하이웨이의 도로망 그림을 보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마지막 때를 풀어가시는지 잘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을 통해서 복음의 실크로드를 타고 복음 확장의 뜻을 이루어가시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경륜에 동참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 아시안하이웨이의 1번도로와 6번도로가 뚫리도록(통일이 되어야 할 중요한 이유입니다) 영적전쟁을 선포하고 가십시다. 우리나라를 만만히 보는 마귀들의 궤계를 꾸짖고 개성공단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오히려 통일의 출발을 끌어낼 수 있는 귀한 통로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 이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도를 쉬지 않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에게 묶고 푸는 권세를 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개성공단을 향해, 북한의 위정자들을 향해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가로막고 있는 사탄의 계략은 깨질지어다! 북한의 위정자들 가운데 부드러운 마음을, 열린 마음을 허락해주시고 남한정부의 위정자들 가운데는 격려와 끈기, 인내를 더해주셔서 더 열린 마음과 포용의 마음을 갖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 테레사 선교사 / ot2022@hanmail.net]
 
 
 
 
 

장애우의, 장애우에 의한, 장애우를 위한 . . .



장애우의, 장애우에 의한, 장애우를 위한 . . .

Joe’s Table 커피숍 오픈한다

 
 
지난 17일, 버나비 소재 CDI College 건물에서 Joe’s Table 커피숍 정식 오픈 전,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에미나타 그룹(회장 정문현 장로)에서는 장애우들을 위한 커피숍인 ‘죠스 테이블’을 오픈한다고 밝히고 이는 비영리로 운영되며 운영 전반에 걸쳐서 장애우들이 쓰임 받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부인 정성자 권사는 “먼저 간 아들 죠셉은 늘 사람들과 인사하기를 좋아했다는 것에 착안,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 해줄 수 있는 Greeter의 직업을 만들어 주고자 생각한 것이 이 커피 전문점을 열게된 동기”라면서 다른 장애우들도 함께 동등한 자격으로 일하며, 청소나 궂은 일만을 도맡아 하면서 동정을 받는 대상이 아닌 빵도 찍어내고 커피도 만들어내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전문적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비영리 사회적 기업인 죠스 테이블은 주로 정신 장애우들을 채용할 계획이며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소외되지 않게 그들을 도우며 후원하는 기관인 posAbilities를 통해 소정의 교육 이수 후 채용되게 된다면서 죠스테이블이 작은 씨앗이 되어 다른 회사들도 이와 같은 고용을 창출 할수 있도록 선한 영향을 끼치는 것 또한 죠스 테이블의 목표라고 전했다. 
또 정 권사는 “죠스 테이블에 들어서는 순간 눈에 띄는 문구 ‘Hi, how are you? My name is Joseph. What is your name?’은 죠셉이 사람들을 만나면 언제나 하던 말이었다”면서 “더 이상 죠셉은 이세상에 없지만 죠스 테이블에 많은 장애우들을 고용하여 그 꿈을 더 크게 이룰 수 있게 되었다”며 눈물지었다.
한편, 죠스 테이블 2층에는 작은 갤러리와 미니 무대가 마련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장애우들과 일반인들이 함께 어울리는 작은 공연과 작품전시가 이루어질 수 있어 장애우와 그 부모들에 대한 관심이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죠스 테이블은 앞으로 에미나타의 학교들을  중심으로  lower mainland 지역에 계속 열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5021 Kingsway, Burnaby)

정성자 권사의 기자 간담회 내용은 [크리스쳔TV] 에서 다시 볼 수 있다. 
 
 
 
 
 

북한 사역 전문 단체 ‘올투게더 코리아’ 방북 사역 시작한다



북한 사역 전문 단체 ‘올투게더 코리아’ 방북 사역 시작한다

 
 
 
북한 사역 전문 단체로 2012년 연방정부의 등록을 마친 비영리 재단법인 ‘올투게더 코리아’(사무국장 최은경 전도사)가 9월 창단을 앞두고 본격적인 방북 사역을 시작한다.
‘올투게더 코리아’에서는 오는 5월 2일부터 9일까지 북한을 방문, 원산농아학교, 사리원 애육원, 대덕맹학교 및 사리원 빵공장을 방문하고 의약품 등 물자를 지원할 예정으로 있다.
이번 방북에는 최은경 사무국장 외에 밴쿠버에서 이홍건 목사(크로스한인교회)가 동행하며 미국에서는 김상환 목사(세계결핵제로운동본부)가 함께하며 한국 푸른나무 신영순 선교사의 인도를 받게 된다.
‘올투게더 코리아’는 북한 장애인 및 고아를 지원하고 있는 신영순 선교사의 사역을 후원 및 협력하며 장애인 교육지원과 재활지원 등 추후 자체적 사역을 목적으로 발기되어 그동안 매월 2회 정기적으로 모여 기도하며 조직을 다져왔다. 본 재단은 한국 푸른나무의 해외협력센터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이번 방북에는 특별히 아이들에게 항생제, 감기약, 아스피린 등을 지원할 계획으로 있으며 헌물/헌금하기 원하는 개인 및 단체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문의: 크리스쳔신문 604-961-6052]
 
 
 
 
 

길진리생명이신 그리스도 예수 < 36 >



 
 
 
 
 
  
 
 
 
0165. 1948년 『컴퓨터』시대의 시작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의 독립과 더불어 컴퓨터 시대가 시작된다. 물론 그 전에도 컴퓨터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히틀러와 협력한 미국의 두 기업 중 하나인 IBM의 기계는 유대인 색출과 통제를 도왔다. 그러나 오늘 날의 본격적인 컴퓨터의 시작은 1948년 영국『케임브리지』대학을 거점으로 시작되었으며『빌 게이츠』가 이 대학에 거액의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필자의 벨기에 사역 당시 유럽공동체(EC)가 룩셈부르크 국에서 처음으로 가동한 컴퓨터의 이름은 “짐승”(the Beast, 계4:7,13 / 단7장)이었고, 유럽을 떠나올 즈음에 짐승보다 더 거대한(세계최대라고들 하였음) 컴퓨터는 EC의 수도 브뤼셀의 본부에 설치된 것으로 그 이름은 “히드라”(Hydra, 계13:1의 바다에서 올라오는 7-9머리를 가진 바다괴물/뱀)였다. 세계의 돈을 하나로 묶는 작업을 하고 있는『SWIFT』본부(벨기에) 건물이 가동될 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은 ‘콴툼’(Quantum, 양자)시대라 한다. 과학잡지에 자주 오르내리는 용어이나 벨기에의 화학자 Solvay가 세운 세계적인 회사가 1911년 수도 브뤼셀에서 주도한 ‘국제Solvay회합’때의 사진과 내용을 보면 Einstein, Curie, Planck, Bohr 등등의 세계적인 물리학자들의 모임에서도 콴툼물리학/Mechanics의 언급이 있어왔으며, 1930년대에는 나치 히틀러의 과학자들이 몰두했던 분야였다(John Cornwell, Hitler’s Scientists, 2003, Viking). 전세계 대학 및 연구기관들이 경쟁투자하고 있는 초고속 콴툼 컴퓨터(Quantum Computer)가 2015년까지는 작동될 예정이라는 뉴스다. 양자컴퓨터란 양자역학(量子力學)의 원리를 이용한 것으로 종전의 컴퓨터와는 달리 한 개의 처리장치로 수많은 계산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어 정보처리량과 속도에서 월등히 앞선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슈퍼컴퓨터가 150년에 걸쳐 계산해야 할 것을 단 4분에 끝낼 수 있다니…(어지럽고 무서운 시대라 오래살고만 볼 일은 아닌 것 같다).
국내외 항공기, 미국/캐나다 간의 선박 안에서 일체 현찰을 받지 않은지가 몇 년이 되었다. 현찰없는(cashless) 사회를 위해 세계정부주의자들의 플랜이 대기업에 시달된 지가 오래되었다. 컴퓨터 덕택에 가능한 플랜을 추진 중에 있고 성경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이러한 날이 올 것임을 예고해왔다. 세상은 하루가 무섭게 변하고 있으나, 변치않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는 오늘도 제 길을 가고 있다.
 
0166. 666 이야기(1) - 눅 13장 / 계 13장 
 
16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로 그 오른손 <<안에>>나 이마 <<안에>>표를 받게 하고
17 누구든지 그 표나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이름의 수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더라
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그 수는 <<한>>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666 이니라 (계13:16-18, kjv)
성경에 나오는 ‘히브리’숫자에는 다 의미가 있고, 이 수 666을 세어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우시는 “지혜와 총명”을 필요로 한다. 666은 실제로 변형된 다른 숫자들 18과 9, 즉 “억압”(bondage)의 숫자로 성경의 여러 곳에 나타난다.
 

6+6+6=1+8=9………1(oneness)

 
666은 18이나 9로 변형되어 숨어있다. 이 사단의 세력은 하나님의 완전수 10에서 1(하나)이 부족하기 때문에 늘 1(하나)를 추구(‘oneness’ movement/일치통합운동),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해 인류를 억압하고 죽이기 위해 광분한다. 누가복음 13장에 잘 설명되어있다:

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죽은 <열여덟 / 18>사람이 예루살렘에…
11 <십팔년 / 18>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16 그러면 <십팔년 / 18>동안 사단에게 매인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매이고 억압당하고 앓으며 죽임당하는”<18>이란 숫자가 3번이나 계속해서 나옴에 유의하시라. 신약성경에 나타난 사단의 별명은 모두 18개나 된다. 인간을 죄로 넘어지게 만든 악(惡)의 세력이라 ‘죄(罪)와 투쟁의 장(章)’으로 알려진 로마서 7:7-8:17에는 “죄”라는 명사단어가 역시 18번 기술되어있으며, 18과 9는 로마교황청과『프리메이슨』의 성수(聖數, sacred number)이다. 천주교 국가에서는 온 나라가 18과 9로 돌아가고 있으며 (예, 『마리아』가 18번 나타났다고하여 로마교황청에 의해 성지로 선포된 곳이 모두 9곳이 되며, 『프리메이슨』들이 골프장을 만들 때는 반드시 18홀 또는 9홀이다. 두 조직이 함께 세운 뉴욕의 UN본부는 18 에이커 땅 위에 자리잡고 있다), 『일루미나티』등 18종류의 이름을 가진 프리메이슨들의 비밀 조직들이 활동 중이다. 이들은 ‘부수고’(all empires/churches/religions/civil laws/order) ‘세우며’(Inter-Faith/universal rationalist faith), 이들 중에서는 성경파괴 그룹도 포함, 각 나라의 성서공회(Bible Society)를 거점으로 활동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와 품위를 ‘떨어뜨리는’(degrading) 일을 서슴지 않는다. 1824년 러시아 성서공회에서도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다(G. Hosking, Russia and the Russians: A History, 2001, Harvard, 728pp).
 
말씀이 ‘오염’되면 반드시 ‘망함’이 뒤따른다. 교계지도자들이 짓는 죄악들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은, 1)『피터슨』의 ‘The Message’와 같은 너절한 오역을 내어놓고 하나님 말씀 행세를 하는 것과 2)여러 오염된 번역물들을 가지고 이 구절은 누구 번역이 좋고, 저 구절은 무슨 성경역판을 택했다는 Rick Warren식의 거짓된 권위다. 하나님 말씀이 최종권위가 아니라 목회자 자신의 결정이 최종권위가 되는 무서운 교만의 죄악(罪惡)이다.

정결하게 하는 샘이 나의 앞에 있도다
성령께서 권고하되 죄 씻으라 하시네
찬양하리 찬양하리 
죽임 당한 어린양
주께 영광 돌리어라
나의 죄를 씻어 주셨네
(찬198 / 정결하게 하는 샘이 ①)
 
구영재 선교사 [KOO / PO Box 8844 Victoria,  BC V8W 3Z1 Canada]
 
 
 
 
 

교회음악 Plus



 
 
 
 
 
 
 
 

찬양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많은 은혜로운 선물에 대한 감사이다.
다윗의 찬양의 초점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선행에 있다. 우리는 삶에 대한 불평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로 가득 채운 시편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의 죄를 구속하여 주심, 우리의 병으로부터 낫게 하심,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심, 사랑과 인내로 우리에게 영광의 면류관을 주심, 우리의 요구를 들어 주심, 만족시켜 주심, 공의와 공평으로 우리와 함께 하심 등등.. 우리는 어떠한 거절이나 문제 없이 다 응답 받고 있다.
인생의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상관없이 과거, 현재, 미래에서 항상 받은 복들을 세어 보아야 한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느낄 때, 우리는 시편을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다윗이 열거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들을 꼭 읽어 보아야 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시103:2)
찬양은 하나님께 구원의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누군가가 선물을 준다면, 아마 우리는 ‘참 좋은 것이군, 제가 빚을 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기 보다는 선물에 대해 그저 ‘감사합니다.’라고만 말할 것이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얼마나 자주 이렇게 대답을 할까?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구속하여 주신 은혜에 대하여, 선물과 같이 거저 주신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계속 일하시며 돕고 있는 것을 느끼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를 구속해 주신 구속의 선물, 믿음에 대해 우리는 날마다 기쁨과 찬양과 감사로 응답하여야 한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2: 8-9)
 
홍동근 / 목사, Music Minister
 
 
 
 
 

예수님의 마음치유


제 18 장   주님의 치유가 시작되면 ...

 
 
A.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 (계속)
 
(3)  자신도 이유를 모르는 분노 때문에 수시로 화를 내며 주위를 고통스럽게 하던 사람이 차분해지기 시작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를 터뜨리는 사람이 아주 많다. 주로 남자들 중에 많지만 여자들 중에도 드물지 않다. 폭탄과 같은 사람들이다. 말을 걸기가 무서워서 그냥 저만큼 거리를 두고 살아간다. 가족 중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온 가족의 삶이 많이 힘들어진다.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없기에 모든 관계가 망가져가며 자녀들의 마음이 찌그러져 간다.
  강의를 통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고 안경을 벗어가면서 그런 사람이 차분해지기 시작한다. 화를 내지 않는다. 지금까지 “이건 화를 낼 일이야. 화를 내서 마땅해!!” 라고 생각했던 일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며 오히려 나를 치유하시는 주님의 손길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참는 힘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화내는 마음 자체가 잦아드는 것이다. 자신을 이해하면서 감정을 조절하게 되고, 다른 사람의 상처받은 마음을 보기 시작하고 말을 절제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강의 중에 물었다. “여러분의 성품들 중에 가장 맘에 들지 않는 것 한가지씩만 말해 보세요.” 여러 사람이 손을 든다. 앞에서 남편의 변화를 이야기한 권사님에게 기회를 드렸다. 놀라운 답이 나온다. “혈기 부리는 거요...” 여러 가지가 함께 설명이 되는 답이었다.
 
 
(4) 열등감에 눌려서 좌절하고 두려워하던 사람이 담대해지고 당당해지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심각한 열등감을 가지고 태어난다. 왕의 아들이라도 예외가 아니다. 여성을 비하하는 문화에서 자란 어머니의 태중에서 열 달을 지내고 나오기 때문이다. 엄마의 깊은 열등감을 자기 속옷으로 입고 태어나는 것이다. 중국 연변에서 유치원을 운영하는 선교사가 이렇게 말한다. “목사님, 아주 속이 상하는 일이 있어요. 베풀어주는 우리들의 아이들보다 도움을 받는 중국인 아이들이 더 당당한 거예요. 이것도 치유될 수 있겠지요?”
그 열등감 때문에 세상에 태어나서는 자신과 남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 실망하며 좌절하고 자신을 꾸짖고 때리고 정죄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 사람은 결코 이웃을 사랑할 수가 없다.
마음의 치유가 시작되면 이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기 시작한다. 더 이상 자신을 정죄하지 않고 자신에게 칼질을 멈춘다. 자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를 알게 되기에 자신을 격려하며 세워가기 시작한다. 이제는 악순환이 아니라 선(善)순환 (Good-cycle) 이 시작되는 것이다. 인간의 열등감의 뿌리는 워낙 깊어서 완전히 치유되는 데는 아주 오랜 세월이 필요하지만 눌려있던 어깨가 또 고개가 서서히 들려 올라간다. 당당해져간다. 주위 사람들이 놀라는 변화가 시작된다.
 
“나 괜찮아요. 주님과 함께 잘 살아요...”
 
  어려서부터 부모의 그늘에서 보호만 받고 자라던 40대 부인의 이야기이다. 부잣집 외동딸로 어려움을 모르고 늘 온 가족의 보호를 받고 자랐다. 원하는 것은 다 할 수 있었고 아무에게서도 괴로움을 당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오빠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못하는 바보”라는 생각이 마음 깊이 새겨졌다. 결혼하고 나서도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지 못하고 남편의 그늘에서 아이들만 기르며 살았다. 그러다가 아이들 교육 때문에 태평양을 건너 남편과 떨어져 사는 기러기 엄마가 되었다. 홀로서야 하겠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돌보아주는 사람이 없는 밴쿠버에서의 삶은 너무 외로웠고 힘들었다. 오히려 십대의 아들이 엄마를 돌보는 상황이 되어갔다. 그런데 치유 학교에 참석하면서 자신의 참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하나님의 딸이고 주님이 늘 함께하시는 것을 알게 되고 경험하게 되었다. 당당해지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감히 하지 않던 담대한 말을 한다.
“나 괜찮아요. 주님과 함께 잘 살아요...”
남편이 날마다 이렇게 말한단다. “어... 당신 이제 혼자서도 잘 사는 것 같네...”
 
구자형 목사(밴쿠버내적치유사역원장) saranghealing@hanmail.net
 
 
 
 

터키 이야기



7. 소아시아와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

 
 
 
(2) 서머나 (SMYRNA) - 신약성경과 서머나
 
서머나는 성경에서 2번 언급되어 있으며(계1:11; 2:8-11), 서머나 교회는 빌라델비아 교회와 더불어 책망 없이 칭찬만 받은 교회이다(계2:8-11). 서머나 교회의 칭찬의 내용은 그리스도를 위한 환란과 궁핍과 훼방을 견디어낸 것이었다. 서머나 교회에 주신 권고의 말씀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 것과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다. 폴리갑은 사도요한의 제자로서 약 60년 동안 서머나 교회의 감독을 지냈으며, 156년 화형으로 순교하였다.
  (1) 복음전파의 경로
서머나에 복음이 들어온 경로는 분명치 않으나, 첫째는 에베소에서 3년간 복음을 전했던 사도바울의 영향과 둘째는 바울의 순교 후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던 사도요한이 서머나와 버가모에도 복음을 전한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에베소와 서머나의 거리는 약 80Km 정도이고, 사도요한의 수제자였던 폴리갑이 오랫동안 서머나 교회의 감독으로 있었던 점들을 감안할 때 이러한 추측이 가능하다.
 
  (2) 계시록의 서머나 교회 (계2:8-11)
“내가 네 환란과 궁핍을 아노니”
‘서머나’라는 이름은 “쓰다”라는 뜻으로 끊임없는 환란과 박해, 자연재해로 인한 빈곤들로 인해서 이러한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생각된다. 특별히 서머나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당하였다. 폴리갑 순교기에 의하면 폴리갑은 빌라델비아에서 잡혀온 11명의 신자들과 함께 순교자로 화형 당했으며, 그 밖에도 많은 환란과 박해가 있었다. 주님께서 주신 말씀은 이러한 서머나 교회의 배경을 두고 하신 말씀으로 여겨진다.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서머나에는 제우스 신전, 퀴벨레 여신전, 등등 우상숭배가 성행하였고 로마시대에는 황제숭배가 성행하게 되었다. 그러자 우상숭배를 거절하는 기독교인들이 많은 박해를 받게 되었고, 특히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일에 유대인들이 로마인들의 앞잡이 역할을 하였다. 폴리갑이 12번째의 순교자로 화형 당할 때에도 서머나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율법 중 안식일을 범하는 죄를 지으면서까지 폴리갑을 산채로 화형 시키라고 주장했다. 폴리갑을 화형 시키기 위해 나무를 주워와 장작더미를 준비하는 등 실로 ‘사단의 회’처럼 기독교를 박해하는데 선두자 역할을 했다.
 
  (3) 속사도 시대의 서머나
◎ 이그나티우스의 서신들 ◎
서머나는 계시록의 기록에는 몇 절만 기록되어 있지만 계시록 이후 속사도 교부들의 시대에는 수신자로서 그리고 발신자로서 여러 편지들이 남아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사도요한과 거의 동일한 시대에 살았고, 안디옥 감독으로 로마로 이송되어 트라얀 황제 때(AD 98-117) 순교했던 이그나티우스(Ignatius)가 로마로 이송 도중 드로아(Troas)에서 서머나 교회와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갑에게 보낸 서신이 전해지고 있다. 그의 순교가 학자들이 추정하는 대로 AD 110년경 이루어졌다면 이 서신들은 아마 AD 110년 이전에 기록되어 보내졌을 것이다.
◎ 폴리갑의 빌립보서 ◎
빌립보서에서 보낸 서신에 답신으로 기록된 이 서신서는 이그나티우스의 순교와 관련되어 그의 신변에 대한 질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그나티우스의 순교 직전이나 직후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기록 연대는 AD 110년경으로 여겨진다.
그의 편지에서 폴리갑은 이단에게는 냉정하고 단호하였다. 당시 로마에서 활약한 말시온(Marsion)을 가리켜 “사단의 맏아들”이라고 잘라 말하였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적그리스도이다. 그리고 십자가의 증거를 고백하지 않는 자는 악마이다. 자기 욕심에 따라 주의 말씀을 왜곡시키고 부활과 심판의 사실을 부인하는 자는 사단의 장자이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그나티우스와 폴리갑 서신서들은 사도들로부터 예수님에 대해 직접적으로 배운 속사도 교부들이 점증하는 교회의 내적(영지주의적 이단들), 외적(황제의 탄압) 위험들이 맞서서 기독교의 진리를 어떻게 옹호하고 가르쳤는지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계속>

한국 홀사모 난생처음 밴쿠버 나들이 (1)



 
 
 
 
 
 

 

최원심 목사(전남 광주) 간증

 
겨우내 꽁꽁 얼어붙었던 땅에 새 생명들을 피워내는 따스한 봄에 한 여인의 이름 없는 들풀 같은 인생 이야기를 해 보려합니다. 저는 전남 나주의 가난한 가정에서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몸 반쪽을 못 쓰시는 장애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가난과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나이가 훨씬 많은 집에 후처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난 저는 어릴 때부터 남다른 아픔을 많이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더 좋은 환경을 찾아 시집을 갔을지 몰라도, 제가 자라는 과정은 날마다 가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신앙이 없는 집안에서 17살 소녀가 공장에 다니며 받은 월급은 혼자 사는 엄마와 두 동생을 거두는 생활비로 사용 되었습니다. 소녀 가장의 짐을 지고 살아가면서 말할 수 없는 외로움과 슬픔과 고통이 따랐습니다. 그러나 이때 신앙의 눈이 열리게 되고, 기도를 통하여 이겨내는 훈련을 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곧 제 신앙의 출발이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좋은 남편을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골 동네 사람들은 “그렇게 고생하며 살던 원심이가 좋은데 시집을 갔다”고  위로와 격려를 했습니다. 마음씨 좋은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젊은 우리부부는 믿음을 키워가며, 사역에 꿈을 키우며, 부지런히 준비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누리는 행복이었습니다. 사역자가 되겠다던 남편은 어느 날 갑자기 교통사고로 어린 두 아들을 남기고 저 세상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거기다가 교통사고 보상금으로 받은 그 당시 우리 세 모자의 생명줄 같았던 사천만원은  갑자기 당한 슬픔의 시간 속에 그만 사기를 당하게 되고, 어린 두 아들과 저는 세상에 버려진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어린 시절을 숱한 가난과 시련을 견디며 살아 왔었지만,  그 당시의 제 처지는 앞이 캄캄하고 도무지 정신을 차리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그토록 사역을 꿈꾸던 그 마음을 이어받아 주님께 매어 달리며 신학을 하고,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1인 3역을 감당하며 살았습니다. 아파도 아플 시간이 없을 정도로 두 아이의 엄마로, 야간에는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 주일은 교회 전도사로,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일에 감사하며 이겨나가던 어느 날, 작은 아들이 다른 아이들 같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생각에 병원에 데려 갔더니 “자폐아”라는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그때의 “자폐 장애” 판정은 이제 겨우 정신을 차리려고 하는 젊은 전도사의 마음과 믿음을 사정없이 깨부수는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현실. 아이가 4살이 넘어가면서 그 증세가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그런 아이를 데리고 사역을 한다는 자체가 너무나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전도사 과정을 다 마치고도 전임 사역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풀타임 사역자가 되어야 교회에서 사택을 제공받아 어린 두 아들을 따뜻하게 잠을 재울 수 있는데, 우리 처지를 받아주는 사역지는 아무데도 없었습니다.
 
파트타임도 수없이 많은 눈치를 받으며, 살얼음판을 걸어가는 심정으로 어렵게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날은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것도 눈치가 보이고 집에 혼자 두자니 더 큰 사고가 염려되어 마침내는 내가 나를  미워하는 그런 날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전도사가 그래서는 안 되는데 하나님이 너무나 멀리 계신 것 같았습니다. 내가 속한 어느 곳에서도 도무지 사랑을 찾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주님이 부르신 사명을 붙잡고 이를 악물고 여러 교회를 다녔습니다. 아이들 말대로 짤릴 때까지 다니니 남들이 보기에는 왜 저렇게 살까? 하겠지만 제 나름대로는 그것이 내가 붙잡은 작은 사역이며 목회였습니다.
 
목회가 아픈 목회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른 평범한 전도사님들 보다 내게는 약점이 많았기에 교회의 온갖 허드렛일은 다 감당을 하였고 장애자 아들을 끼고 살아가는 제 생활은 누구의 사랑과 긍휼을 얻기 이전에 제 자신이 날마다 더 힘들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을 데리고 저녁부터 교회 성전에 엎드렸습니다. 잠이든 아들을 눕혀 놓고 “하나님 우리 모녀를 오늘 천국으로 데려 가 주십시오.”하면서 밤새도록 울었습니다. 사실 우는 것이 아니라 통곡을 하였습니다. 새벽 기도를 인도하시려고 연세드신 담임 목사님이 처절하게 울며 기도하는 저를 보시고 가까이 오시더니 내 머리에 손을 얹고 “주님 여기 이 전도사님의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하며 간절히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 목사님의 기도가 응답이 되었다면 저희 모자는 지금 천국에 가 있어야 합니다.
 
어려운 중에서도 전라도 여러 지역의 교회에 길을 열어 주셔서 주님이 허락한 장소에서 몸을 던지면서 감당케 하셨습니다. 지금은 전남 광주 변두리에 어떤 젊은 남자 목사님이 목회하셨던 비어 있는 개척 교회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시간이 지나 큰 아들이 군대를 제대하고 학교를 복학하여 장애를 가진 동생을 시간이 허락 되는 대로 도와주니 큰 힘이 됩니다. 그 아들 역시 어린 시절을 동생에 치이며 자라서 볼 때마다 미안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잘 자라줘서 큰 위로가 됩니다.
 
이번에 캐나다 초청을 신청하면서 남들 같이 저는 내세울 사역도 열매도 없습니다. 다만 부끄러운 지난 일들을 안고 있는 저에게  꿈에도 엄두 못 낼 캐나다와 미국 여행을 하는 위로의 시간이 주어진다니, 저를 참여 시킨 것은 아마 숭실교회에서 많이 울면서 살아왔다는 말 그대로 위로하시려고 저를 선택 해 준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말이 사역자이지 언제나 맨 뒤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설교를 잘해서 어느 교회서 불러주지도 않고 큰 사역을 간증하라고 해도 내 놓을 것이 없습니다. 그저 많이 울어서 영산강 물에 내 눈물이 보태 진 것 같은 그런 지난 시간을 가진 저에게 비행기를 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막상 가려고 하니 또 작은 아들이 밟히고 걱정이 되어 망설이게 됩니다. 그러는 저에게 큰 아들이 꼭 갔다 오라고 등을 떠밀었습니다. 분명히 아들이 떠미는데 꼭 예수님이 시키신 것 같았습니다.
 
세상이 만만하지 않다고 어른들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길이 그렇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습니다. 다시 캐나다 여행을 하면서 주님께 새 힘을 달라고 기도 할 것이며, 돌아와서도 하나님께서 저에게 맡긴 나머지 사역을 붙잡으려 합니다. 저를 위하여 기도 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필객의 붓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옵시며

 
 
시간에도 인플레가 있는지 시간의 분량이나 가치에 대한 감이 이전 같지 않습니다. 몇 일 뒤의 소퐁 날이 도저히 오지 않을 것처럼 더디게만 흘러가는 시간에 애를 태우던 어릴적 시간에 대한 감이, 일 년의 행사가 몇 일 사이의 일처럼 짧게 느껴지고 늘 벌써?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요즘과 전혀 다른 길이의 시간으로 느껴집니다. 한 주를 시작할 때는 부자가 된 기분으로 주말의 사역들을 잘 준비하리라 맘을 먹지만, 몇 일을 건너뛰고 성큼 다가선 것 같은 시간에 당황하며 미진한 채로 주말을 맞이하곤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세월이 간다고 하는데 지금의 속도도 버거워하는 내가 점점 둔하고 느려지는 걸음으로 재빠르게 달아나는 세월의 보폭을 따라 잡을 수 있을까 긴장이 되곤 합니다.
 
봄 햇살 속에 하늘과 구름과 꽃과 잔디가 발산하는 색감이 너무나 생생하고 아름다워 도저히 집에 있을 수 없어 하려던 일을 멈추고 밖으로 나섰습니다. 시계가 없는 자연의 공간에서 심호흡을 하며 걸으니 심장을 분주하게 길들이던 초침소리도 멎고 불안감이 가십니다. 시간의 감시에서 벗어나 잠깐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긍휼의 시선이 머물러 있는 것만 같습니다. 새벽 기도 가기 전 보스톤 테러 소식이 궁금해 인터넷에 들어갔는데 이란의 지진 속보가 올라와 있어 오늘 아침은 어려움 가운데 있는 세계의 나라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하늘 아래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으로 울부짖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지금 이 공원을 걷는 사람들 중에도 마음으로 절망을 앓거나 울고 있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마음이 쓰입니다. 미국의 언론은 또 다시 테러와의 전쟁에 서슬퍼렇게 날을 세우고, 총기 소지에 관한 제재를 가하겠다고 하는 등 계엄이 불가피한 분위기로 몰아가며, 키프러스의 뱅크런이 세계경제에 나비효과를 불러올 것에 대한 불길한 기대감을 조성하고 있는 등의 열강의 고래싸움에서 한국도 북한의 도발이나 WCC의 유치, 또 부동산이나 실물경제의 악화를 놓고 정치, 종교, 경제적으로 등이 터지는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기름받은자를 대적하며 그 맨것을 끊고 결박을 벗어버리자” 고 했던 시편 2편의 세상 같습니다. 학교 다닐 때 그토록 외울 것이 많고 지루하고 복잡하던 역사는 단순한 패턴으로 반복적으로 흘러가는 것이었습니다. 말세의 징조가 그 어느때보다도 뚜렷한 지금, 치열한 영적 전쟁의 때에, 계시록에서 온 천하를 꾀는 자, 마귀, 사탄의 존재가 참 큰 비중으로 등장하고 있고, 음악이나 영화나 패션에서 조차 마귀의 존재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 정작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에서는 마귀와 사단의 존재가 사라지고 고상하고 지적인 언어로 긍정과 축복이나 인간 개혁에 관한 메시지들로 채워지고 있음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옳고 그름이 없이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취향대로  두리뭉실하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포스트 모던의 세상은 정말 심각한 혼돈이며 짙은 어둠입니다. 테러를 당해 놀라고 고통을 당한 사람들에 대한 기사 옆에 음란과 물질을 선전하는 광고들이 도배가 되어있는 모습을 보면서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해도 울지 않는, 인간의 정을 잃어버린 세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어려운 전문 용어를 나열하며 무슨 말인지 모르게 복잡하게 쓴 기사들이나 자신이 말하려는 바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애매모호하게 빗겨서 쓴 기사들이나 저급한 문장력의 기사나 댓글을 보면서 책을 읽고 쓰는 시간보다는 주로 그림과 영상을 접하며 살아가는 대중들의 난독증이 심해지고 있음을 확연하게 느낄 수가 있습니다. 뭔가에 목소리를 내다가도 결정하고 반응하는 면에서 일관성 없이 이랬다 저랬다하는 사람들을 보면 혹시 이해하지도 못한 사실들을 이해한 듯 착각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딱한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되어질 세상이 성경 안에 밝히 드러나 있는데도 언론이 휘젓는대로 이리저리 쏠리며 우왕좌왕하는 대중들의 모습을 보면 백주에 담을 더듬듯한다는 신명기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마지막 때의 징조가 너무나 뚜렷하고 크고 두려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모세의 때보다 더 아름다운 때를 살고 있습니다. 율법 아래, 제사와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을 구하던 구약의 때가 지나고 신약의 세상을 여는 마태복음 1장에서 벌써 하나님의 임재의 약속이 펼져집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다 해결하고 난 후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내주하시는 성전이 되는 놀라운 은혜가 임했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등불이 항상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비춰줄 것이라 하신 약속대로, 성경을 열면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임마누엘의 은총으로 함께 하시고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영혼 안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너무나 영광스럽게도 이 누추한 인생에 거룩하신 아버지의 나라가 임했습니다. 나의 생애가 마치는 날까지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이루어 이 세상에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며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시길 간구하는 기도를 쉬지 않겠습니다. 
 
[서수영 사모 / penofgod@gmail.com]
 
 
 
 
 
 

아브라함 이야기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 / 창 22:11-19 (하)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이유- 온전한 헌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이든지 제한을 두지 않고 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 하셨습니다. 12절에 중반절에 보면,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라고 나와 있고 16절에도,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이라고 나와 있는데 여기서 ‘아끼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하샤크타’ (hΩaœsíak≈taœ)인데 그 뜻은 ‘제한하다, 금하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아들,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이삭을 하나님을 위해서 제한하거나 금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온전한 헌신을 보시고자 시험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제한없는 헌신을 하나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이유- 온전한 예배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지를 알고 싶어하셨습니다.12절에 보면,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하셨습니다. 앞에서 ‘경외’라는 것은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기 때문에 즉, 존재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경외하는 것’과 ‘예배하는 것’은 아주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예배의 핵심은 ‘거룩’과 ‘경외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경외함으로 무릎 꿇는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온전한 예배 드림을 보길 원하셨고, 아브라함이 경외함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였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이유- 온전한 순종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준행하는지를 알고 싶어 하셨습니다. 18절에 보면,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 ‘준행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샤마아타’ (sûaœma{taœ)인데 그 뜻은 ‘듣다’입니다. 단지 ‘듣다’라는 말이 ‘준행하다’라는 말로 번역된 것은 ‘준행하는 것’이 ‘듣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귀담아 ‘듣고,’ 마음 속 깊이 ‘새겨 들어야’ 비로소 순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뼈 속 깊이 새겨 들었는지를 알고 싶어하셨고, 아브라함은 한 말씀도 놓치지 않고 듣고 마음에 새겼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이유- 온전한 축복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위해서 온전히 헌신하고, 예배하고, 순종하기를 원하셨던 것은 아브라함을 향한 계획을 갖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 계획은 이미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알려주셨던 계획인데 본문에 다시 나오고 있습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17-18절). 여기서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는 말씀은 ‘그 원수들의 도시들을 정복한다’는 의미인데 비슷한 표현이 창 24:60에 나옵니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 문을 얻게 할지어다.” 이것은 이전에 주어진 약속보다 더 참신하고 실제적인 하나님 약속으로서 약속의 성취가 더욱 가까왔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거대한 믿음의 족속을 형성케 하시고 그 믿음의 족속들을 통하여 천하만민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도록 하시기 위해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축복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그릇이 되는가를 알기 원하셨고, 아브라함은 순종함으로 온전한 축복의 성취를 앞당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애독자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여호와 이레의 신앙으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신앙인들이 되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특히 온전한 헌신과 예배와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앞당겨지는 역사가 일어나길 축원합니다.
 
[정기수 목사 / 캐나다중앙교회 / 778-237-8084]
 
 
 
 
 

4인4색 밴쿠버목양일기


 
 
 
 
 
 
 
 
 
 
 

지금이 축복의 씨앗에서 싹이 날 기회 입니다

요즘 밴쿠버의 이슈 중 하나는 40대 주 총선거에 나서는 BC자유당의 선거 공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들의 이번 선거의 공약을 압축하면 “빚 없는 BC주”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슬로건을 희망으로 여기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이러한 공약을 실천시키려고 국민들이 내야 하는 세금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냐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저는 이런 시점에서 한가지 생각을 해 봅니다. 왜 사람들은 매번 선거 때가 되면 많은 기대감을 가졌다가 곧 실망하는 일들을 반복할까?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선거가 이슈가 되는 이유들 중에 중요한 한가지는 사람들이 희망에 굶주려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특히, 요즘 같은 경제 불황에서 밴쿠버에 사는 이민자들은 더욱 절박한 마음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얻고 싶어합니다. 현재 우리의 삶이 너무 곤고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밴쿠버로 이주하면서 좋은 꿈을 가슴에 품고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를 하면서 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민의 정착에서부터 순탄하지 않은 현실에 부딪히게 됩니다. 많은 경우 시간이 흘러도 이민의 삶이 전보다 나아지지 않습니다. 어떤 분들은 처음보다 더욱 힘든 삶을 사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과거에 다 비우고 왔던 조국이 생각나기도 하고, 조금의 미련도 두지 않고 잊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과거의 삶에 후회와 미련이 밀려옵니다.
요즘 성도들을 상담할 때 적지 않은 분들이 제게 묻는 것이 “목사님 제가 잘 가고 있는 것인지요?”라는 질문입니다. 이러한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가슴이 저려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저에게 있어서 그 분들이 결코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니라, 삶이 힘들고 곤고해서 내는 신음소리 같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가 한가지를 상기해 본다면 조그마한 위로가 되리라 생각을 합니다. 주님은 공생애가 시작이 되자 마자 첫 번째 하신 경험이 광야 생활이었습니다.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나가시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다윗… 우리가 성경 속에서 친숙하게 만나는 인물들 대부분에게 광야 생활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이들의 공통점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예배, 믿음만으로 광야의 인생을 견디었다는 것입니다. 그 시간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의미의 복된 삶이 그들의 인생에서 움트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 안에는 하나님이 심어 놓으신 축복의 씨앗이 있습니다. 적당한 환경이 주어질 때까지 그 씨앗은 딱딱한 껍질 속에 오랫동안 싸여져 있습니다. 모든 씨앗은 적당한 온도와 수분이 주어지면 싹을 틔우고 공기와 햇볕으로 광합성을 하면서 성장하고 꽃을 피웁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서 각 사람에게 심어주신 하나님의 축복의 씨앗에 언제 싹이 날까요? 유수한 성경의 인물들에게서 보여진 것처럼, 광야의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견디어 내는 그때에, 그리고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예배의 자리를 찾아 주님께 엎드리는 그때에 씨앗이 발아되기 시작을 합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시간이 없다면 절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축복의 싹을 우리 스스로 트게 할 수 없습니다.
현재의 상황이 모두가 어쩔 수 없는 경제 불황이다 생각하고 단순히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기 보다, 주님이 우리 안에 있는 축복의 씨앗을 발아시키기 위해서 주신 환경이구나 생각을 하시고 오히려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는 기회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지금이 축복의 씨앗에 싹이 날 기회입니다. 진정한 희망은 주님에게서 시작이 됩니다.
 
[라일주 목사 / 로고스교회 / 778-898-1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