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3. 프랑스의 두 마을 이야기(1): 산골 마을 ‘샴봉’
제2차세계대전시 유대인 3,500여명을 숨겨 돌봐준 『위그노』마을
로마교황청이 프랑스의 왕권을 동원하여 거의 한 계절 동안 계속 된 성 바돌로메 대학살로 인해 남불(南佛)로 피신하여 살았던 위그노(Huguenot)와, 역시 로마교회의 끊임없는 박해를 피해 산속으로 피신하였던 보드와(Vaudois/Waldensian)들의 유적들을 찾아나섰다. 22년 전의 일로 아무에게도 해본 적이 없는 이야기를 처음으로 글로 쓰고 있다. 지역들이 너무 광범위하여 두 곳을 먼저 보기로 하고 프랑스의 남동부 지역의 세벤느(Cevennes) 산악지대에 위치한 구릉지대(les Plateau)에 가까운 인구 3천 여명의 마을 『샴봉』(Le Chambon-sur-Lignon)에 도착하였다. 상세한 프랑스 지도가 아니면 표기가 되어있지 않는 산골로써 주민 거의가 위그노들의 후손들로서 매년 9월 첫 주가 되면 전세계에서 위그노들의 후손들이 이곳 산골로 모여 천주교회의 박해를 피해 산 속에서 숨어 살면서 믿음의 주(主)를 찬송하였던 저들의 선진들의 믿음을 기리고 있었다. 산골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을 보니 눈물 겨웠다. 워낙 먹지 못하고 쫓겨다닌 위그노들의 지도자 - 목사, 장로, 집사 - 들의 평균수명이 47세를 넘지 못한 때였다. 노예선으로 끌려가 바다에 수장된 성도들의 명단 수백 명이 색바랜 종이 위에 기록되어 있었다.
제2차세계대전시 유대인 3,500여명을 숨겨 돌봐준 『위그노』마을
로마교황청이 프랑스의 왕권을 동원하여 거의 한 계절 동안 계속 된 성 바돌로메 대학살로 인해 남불(南佛)로 피신하여 살았던 위그노(Huguenot)와, 역시 로마교회의 끊임없는 박해를 피해 산속으로 피신하였던 보드와(Vaudois/Waldensian)들의 유적들을 찾아나섰다. 22년 전의 일로 아무에게도 해본 적이 없는 이야기를 처음으로 글로 쓰고 있다. 지역들이 너무 광범위하여 두 곳을 먼저 보기로 하고 프랑스의 남동부 지역의 세벤느(Cevennes) 산악지대에 위치한 구릉지대(les Plateau)에 가까운 인구 3천 여명의 마을 『샴봉』(Le Chambon-sur-Lignon)에 도착하였다. 상세한 프랑스 지도가 아니면 표기가 되어있지 않는 산골로써 주민 거의가 위그노들의 후손들로서 매년 9월 첫 주가 되면 전세계에서 위그노들의 후손들이 이곳 산골로 모여 천주교회의 박해를 피해 산 속에서 숨어 살면서 믿음의 주(主)를 찬송하였던 저들의 선진들의 믿음을 기리고 있었다. 산골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을 보니 눈물 겨웠다. 워낙 먹지 못하고 쫓겨다닌 위그노들의 지도자 - 목사, 장로, 집사 - 들의 평균수명이 47세를 넘지 못한 때였다. 노예선으로 끌려가 바다에 수장된 성도들의 명단 수백 명이 색바랜 종이 위에 기록되어 있었다.
제2차세계대전 발발 하루를 앞두고, 이곳 교회로 부임한 프랑스 개혁교단 소속의 트로큼(A. Trocme)목사
부부. 그는 이곳 저곳 농경지를 중심으로 넓게 퍼져있었던 성도들의 구역성경공부 지도를 위해 13개의 구역과 지도자들을 세웠다. ‘히틀러의 교황’
『비오』12세의 로마교황청을 통해 나치는 프랑스의 우방으로 선전되고 있었고 친 나치 포스터들이 온 프랑스에 나붙고, 일부 ‘레지스땅’들의 반격
외에는 나치는 총성 한 방 울리지 않고 빠리 개선문 아래로 진군하였다. 로마교황청의 ‘20세기 십자군 나치’를 통한 전유럽천주교화의 계획이었다.
나치의 진군으로 프랑스도 이제는 더 이상 유대인들에게 안전한 나라가 되지 못하였다. 스위스로, 미국으로, 남미로 멀리 떠난 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그 나라안에서 ‘도피성’을 찾아야만 하였다. 천주교회에 의해 대량 학살당하고 『빠리』거주가 불법으로 선언되었던 위그노들.
유대인들은 저들과 같은 운명을 이미 경험하였던 위그노들의 산골마을로 한 두 명씩 찾아들기 시작하였고 『샴봉』의 산골사람들은 그들에게 은둔처를
제공하였다. 이 소문이 유대인들에게 퍼져나가기 시작하자 이제는 유대인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이 마을로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전교생이 14명에
불과하였던 산골초등학교의 유대인들이 들어오면서 학생 수가 220명을 넘게 되어 증축이 불가피 하였다. 트로큼 목사의 지도 아래 동네사람들이
증축한 학교교실은 전시에 마을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충당하여 여름캠프장 숙소같이 조그만 건물들이었다.
트로큼 목사는 깊은 번뇌 속에서 기도에 몰입하였다. ‘산상수훈’을 읽었고 ‘누가 네 이웃이냐?’라는 주님의 음성을
기억하였다. 유대인들을 숨겨주다가 발각되는 날에는 누구나 유대인들과 같은 운명을 각오해야만 하였다. ‘구약들’(舊約, Old Testament,
산골사람들은 유대인들을 ‘구약들’로 불렀다)은 매일매일 『샴봉』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트로큼 목사의 마음은 확정되고 확정되었다. “아버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저희들에게 보내주시는데 어떻게 저희들이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13명의 성경공부 구역장들과의 연락망도 조직되었다.
스위스나 스페인으로 가고자 하는 유대인들은 교인들이 비밀 루트를 통해 스위스나 스페인 국경까지 인도하였다. 그리고 단 한 푼의 금전도 요구하지
않았다. 로마카톨릭교회를 통해 조국 프랑스를 나치에 매도한 ‘빼땅’(Petain)정권의 새 수도 ‘비쉬’(Vichy)는 이 마을에서 불과
140키로 떨어진 서북편에 있었다. 비록 산골이기는 하였지만 나치의 비밀경찰(Gestapo) 주둔지역과 너무나 가까웠다. 예기치않은 나치의
순찰이 오기 전날에는 알 수 없는 사람으로부터 트로큼 목사에게 꼭 전화가 걸려왔다. “내일, 내일” 그리고는 전화가 끊어졌다. 전 유대인들은
깊은 숲속으로 피신하였고 비밀경찰이 철수하면 『샴봉』마을 성도들은 교회로 모여 하나님의 돌보심을, 온 감격으로 찬송하였다. 이 찬송소리를 신호로
숨었던 유대인들은 다시 숲을 빠져나왔다. 필자가 들어가본 숲은 나무는 크지 않았으나 대낮에도 햇빛이 차단될 정도로 빽빽한 숲이었다. 후에 트로큼
목사와 마을 지도자 2명 포함 모두 3명의 지도자들이 나치 비밀경찰에 구속되어 수용소에 갇혔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독일의 패전을 앞두고
죄수들이 죽음의 수용소로 재수용되기 일주일 전, 이들 3명은 수용소의 서류처리 미비로 기적적으로 석방되어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1940-44년
사이에 트로큼 목사의 지도 아래 이 마을에서 목숨을 건진 유대인들의 수는 무려 3,500명이 넘었다. 이 마을을 거쳐 이스라엘로 돌아간 많은
유대인들이 다시 이 마을로 돌아와 자신들의 은인들에게 감사를 표시하게되었고 1979년에는 이 곳 마을 중심거리의 담벽에 기념헌판을 부착, 저들을
구해준 샴봉 마을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시하였다. 시편 말씀 “의인은 영원히 기념하게 되리로다”(시편 112:6)는 히브리어와 프랑스어로
기록하였다.
이곳에서 태어난 유대인 ‘소바지’(Sauvade)씨는 영화제작자가 되어 이 마을을 소재로 다큐멘터리 영화
‘Weapons of the Spirit’을 제작함으로써 거의 반세기 만에 이 이야기가 대대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이스라엘 정부에서는
이곳에 조사단을 보냈다. 그러나 주민들 어느 누구 한 사람도 이 일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이미 세상을 떠난 트로큼 목사 내외를 도와
구약백성들을 숨겨주었던 젊은 베텍스(Bettex)목사도 이제는 팔순(당시 78세)을 바라보고 있었고 『샴봉』부읍(邑)장 등 주민 40여명은
이스라엘 정부 초청으로 예루살렘의 『야드 바셈』(Yad Vashem, 유대인 대학살 추모기념관)에 새겨진 ‘『샴봉』마을 기념헌판식’에
참석하였으며, 이스라엘 정부는 유대인들 구출에 생명을 걸었던 이들에게 『의(義)의 메달』을 수여하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정부는 “우리가 당신들의
선행을 폭력(?)으로 노출시키고자 한 행동을 정중히 사과합니다”라는 사과문을 발표하였다.
영화제작자로 성장한 ‘소바지’씨의 가족을 숨겨준 마리 브로뜨 할머니 집을 방문, 한나절 대화를 나누었다. 이
할머니의 친아들은 어린시절에 시도 때도 없이 어머니로부터 회초리를 맞았던 이야기를 필자에게 들려주었다. 혹시나 어린 아들이 ‘너희집에 유대인이
있지?’하고 누가 물으면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며, ‘있다’고 대답하면 이렇게 호되게 맞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실제로 어머니로부터 회초리를
여러 번 맞았다고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그는 장성하여 그 지역의 중학교에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0084. ‘교리를 부패하게 만드는 유전들’
유전은 교리(敎理)를 부패케 한다. 인간의 유전을 하나님의 말씀과 동등한 선에 올려 놓고 외경(外經)을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였던 가장 사단적인 『트렌트』공회(1545-63). 그 후 “미혹케하는 영과 마귀의 교리를 좇아”(딤전4:1) 로마카톨릭교회가 “발람과 니골라 당의 교리”(계2:14,15)들을 제정한 이 “사단의 회”(계2:9)가 어째서 거룩한(?) 기독공회란 말인가? 이러한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가르침(행2:42)을 벗어나 “지내쳐”(요이1:9),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벗어났다. 진정한 교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미 확정한 것들로서 우리에게 온전한 교리로 주어졌다. 사도들은 후에 올 공회들에 앞서서 교회의 생명의 원천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를 기록한 자들이었다. 딤후3:16,17 말씀은 우리를 “온전케”하시는 교리에 대해 말씀하신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하려 함이니라”. 어느 교단 할 것 없이 기독교 신학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아시아의 일곱교회를 심판하듯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아래 있다. 그러나 천주교 신학에서는 성경은 ‘교회의 책’이 된다. 즉, 로마교황 아래 예속된 책으로 교황의 권위 아래 종속된 책에 불과하다. ‘성경과 유전’을 언급할 때 성경은 늘 소문자(scripture)이고 유전은 대문자(Tradition)로 기록된다. 로마교황청의 ‘유럽 공동체’(EC)는 2006년 8월을 기해 ‘그리스도와 교회’의 두 단어 기술을 그리스도는 ‘소문자’(christ)로 쓰기로 결정, 강제로 시행되고있으며 교회는 천주교의 전통대로 그대로 대문자(Church)를 고수하고 있다. 이제 세계종교통합을 주도, 모든 종교 안에 ‘메시아’(그리스도)의 존재를 인정할 채비를 마쳤다.
0084. ‘교리를 부패하게 만드는 유전들’
유전은 교리(敎理)를 부패케 한다. 인간의 유전을 하나님의 말씀과 동등한 선에 올려 놓고 외경(外經)을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였던 가장 사단적인 『트렌트』공회(1545-63). 그 후 “미혹케하는 영과 마귀의 교리를 좇아”(딤전4:1) 로마카톨릭교회가 “발람과 니골라 당의 교리”(계2:14,15)들을 제정한 이 “사단의 회”(계2:9)가 어째서 거룩한(?) 기독공회란 말인가? 이러한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가르침(행2:42)을 벗어나 “지내쳐”(요이1:9),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벗어났다. 진정한 교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미 확정한 것들로서 우리에게 온전한 교리로 주어졌다. 사도들은 후에 올 공회들에 앞서서 교회의 생명의 원천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를 기록한 자들이었다. 딤후3:16,17 말씀은 우리를 “온전케”하시는 교리에 대해 말씀하신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하려 함이니라”. 어느 교단 할 것 없이 기독교 신학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아시아의 일곱교회를 심판하듯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아래 있다. 그러나 천주교 신학에서는 성경은 ‘교회의 책’이 된다. 즉, 로마교황 아래 예속된 책으로 교황의 권위 아래 종속된 책에 불과하다. ‘성경과 유전’을 언급할 때 성경은 늘 소문자(scripture)이고 유전은 대문자(Tradition)로 기록된다. 로마교황청의 ‘유럽 공동체’(EC)는 2006년 8월을 기해 ‘그리스도와 교회’의 두 단어 기술을 그리스도는 ‘소문자’(christ)로 쓰기로 결정, 강제로 시행되고있으며 교회는 천주교의 전통대로 그대로 대문자(Church)를 고수하고 있다. 이제 세계종교통합을 주도, 모든 종교 안에 ‘메시아’(그리스도)의 존재를 인정할 채비를 마쳤다.
기뻐하라 나라들 예수 구원하신다
구원하는 소리를 산과 들에 전하라
우리들의 승전가 예수 구원하신다
(찬송가 252 / 기쁜 소리 들리니 ④)
구영재 선교사 [KOO / PO Box 8844 Victoria, BC V8W 3Z1
Canad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