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16일 목요일

‘NGO 푸른나무’ 6년여 북한 사랑이 일궜다



 

北, 장애인올림픽 첫 출전

밴쿠버에 본부를 둔 국제 NGO, 푸른나무 후원으로



북한이 국제 비정부기구 ‘푸른나무’(Green Tree)의 도움을 받아 8월 29일 열리는 영국 런던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마스코트)에 처음으로 참가한다. 푸른나무는 캐나다 밴쿠버에 본부를 둔 국제 NGO로 북한 장애인 및 고아원 지원사업을 주로 해왔다. 푸른나무 대표 곽수광(52) 목사는 30일 “런던 장애인올림픽에 북한 장애인선수단 24명이 참가한다”면서 “이들의 왕복 항공료와 체재비 미화 7만 달러(약 8000만원) 정도를 푸른나무에서 지원키로 했다”고 말했다.

북한은 재정 부족 등으로 그동안 패럴림픽에 참가하지 못했으나 이번에 푸른나무의 후원으로 첫 참가가 가능하게 됐다. 출전선수는 수영의 임주성(17) 한 명뿐이지만 탁구 등 다른 종목 선수 4명이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의 초청으로 경기를 참관할 수 있게 됐다. 임 선수는 5세 때 왼팔과 왼다리를 잃은 장애인으로 런던 대회에서 S6(지체장애 6등급), SB5(지체장애 5등급) 평영 경기에 출전할 예정이다. 런던 패럴림픽은 오는 8월 29일부터 9월 9일까지 열린다.

북한 선수단은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북 단일팀 우승 주역인 북한 인민영웅 이분희(44) 조선장애자체육협회 서기장이 이끈다. 수차례 방북하며 선수단 지원 실무를 도맡아온 신영순(미국명 수 킨슬러) 푸른나무 협력선교사도 공식 일원으로 북한 선수단과 동행한다.

최근 영국 언론은 임 선수의 출전에 평양 주재 영국대사관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보도했지만 영국대사관은 임 선수가 지난달 독일에서 열린 예선대회에 참가했을 때 항공료만 댔을 뿐이다.

임 선수를 비롯한 북한 선수단 전원의 국제경기 참가는 푸른나무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가능해졌다.

북한의 장애인올림픽 참가는 6년간 공을 들인 끝에 나온 결실이다. 푸른나무는 공식적으로는 지난해 설립된 단체지만 곽 목사와 신 선교사 등은 오래전부터 대북지원사업을 벌여왔다. 2007년부터 장애인 체육용품·기자재를 보내줬고 2010년에는 중국 광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에 이 서기장 등 북한 체육계 인사 6명을 초청해 참관토록 했다. 장애인 아들을 둔 이 서기장은 이때 큰 감동을 받고 돌아가 장애인 탁구단을 만들었다. 그 영향으로 지난해 조선장애자체육협회가 설립됐다. 이 서기장은 푸른나무 관계자에게 “전에는 내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영웅이었는데 이제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푸른나무는 지난 5월 북한 선수단의 중국 베이징 전지훈련도 지원했다. 전지훈련 때 이 서기장과 현정화(43) 대한탁구협회 전무의 21년 만의 재회도 추진됐으나 한국 정부의 허가가 나지 않아 무산됐다.

신 선교사는 “정치적으로 꽉 막힌 남북관계에서 실낱같이 열려 있는 길은 장애인 분야뿐”이라며 “민족화해의 길을 만들기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북한 선수단과 함께하게 됐다”고 말했다.

푸른나무는 북한 장애인뿐 아니라 북한 전역의 고아원 43곳을 돕고 있다. 곽 목사는 “한반도에 살고 있는 크리스천으로서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다”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들을 품고 도와줘야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 100곳에 푸른나무 디아스포라(흩어진 사람들) 협력센터를 세우는 것이 목표이며 현재 미국 중국 일본 등 13곳에 설립했다고 밝혔다.

북한 당국은 푸른나무가 평양 시내에 장애인 종합회복센터를 지을 수 있도록 1만3200㎡(4000평)의 땅을 제공했다. 곽 목사는 연내 평양에서 착공식을 열 계획이다. 그는 “해외동포들도 도움을 주고 있지만 역시 남한의 후원이 가장 크고 중요하다”며 “북한 고아들을 먹이고 장애인을 돕는 일에 후원의 손길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kukinews.com]





미서부 반세기 만에 최악의 가뭄


“기도만 드릴 수 밖에 없는  실정”




56년 만에 몰아닥친 가뭄피해로 세계 최대 곡물수출국인 미국 전영토의 절반 이상이 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미주크리스천신문에 따르면 “미 서부 캘리포니아주에서 미시간주에 이르기까지 29개 주 1천3백여 개의 도시에 반세기 만에 최악의 가뭄으로 농부들은 교회로가 기도만 드릴 수 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으며 이를 위해 “버켓감리교회에서 개최한 ‘특별가뭄기도회’에는 전체주민 106명 중 60명 이상이 가족단위로 함께 했다”고 전했다. 이어 “1956년 이후 찾아온 대가뭄에 통계상 국토의 58%가 말라붙어 있는 현실이라며 결국 말라붙은 대지를 적셔줄 수 있는 있는 은총은 하늘로부터만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미 해양대기관리처는 미국에서 가뭄을 겪고 있는 지역이 전체 면적의 55%에 달하고 통계상으로는 국토의 58%가 말라붙어 있다고 전했다. 인디아나주 와와카 포트웨인에서 농사짓는 올해 91세인 톰 프랭크 씨는 “1936년과 1988년에도 큰 가뭄이 있었지만 올해처럼 심각하지는 않았다”고 회고했다. 현지 매체는 “해갈을 위한 관개시설도 현재는 보존 저수량의 절대 부족으로 지하수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직접적인 피해는 농가를 넘어 도시와 전 세계, 가정 식탁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국제사회에서는 세계 최대 식량창고로 불리는 미국의 가뭄이 옥수수와 콩 등 작물에도 영향을 미쳐 그 영향이 국경을 넘어 유럽 재정위기와 미국 재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 했다. 또 미주크리스천신문은 올해에는 러시아와 남미 곡창지대도 가뭄으로 농작물의 작황이 예년과 같지 않다고 전하며 식량위기의 가능성이 확산될 조짐이 보인다고 보도했다.

밀과 대두를 포함해 곡물가격이 폭등할 조짐이 보인다며 그 피해 규모가 저소득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일각에서는 “저소득층은 수입의 상당액을 식료품 구입에 사용하기 때문에 가뭄과 농산물, 가공식품의 가격 인상은 직접적 영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미 농무부는 대가뭄으로 옥수수 농장이 88%의 피해를 입어 올해 수확량이 30% 가량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길진리생명이신 그리스도 예수 < 3 >



“어지러운 세상 중에…”




0011. US 시대에서 UN으로
US시대에서 지금은 UN주도의 세상으로 움직이고 있는 중이다. 『새세계질서』(NWO-New World Order)를 통한 ‘세계정부’수립을 위해 UN이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는 4대강령은 아래와 같다.
  1) 인간의 정신에서 개체(개성)주의 제거
  2) 가정관습에 대한 전통을 파괴
  3) 국가에 대한 충성심 제거
  4) 모든 종교의 교리제거

이를 달성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뉴에이지』교육의 4가지 거짓말이 심어지고 있다.
  1) 죄(罪)의 교리 부인
  2)『그리스도』의 보혈로 이룬 대속부인
  3) 천국과 지옥 부인 (NIV 성경의 구약에서 ‘지옥’(Hell)이란 단어 100%, 신약에서는 48% 제거)
  4) 예수안에만 있는 구원을 부인

『파시스트』무쏠리니(B. Mussolini, 1883-1945)가 『몬테쏘리』협회 총재였던 『몬테쏘리』 교육에서부터 『뉴에이지』사상은 아이들의 머리에 주입된다. UN 산하의 교육기관으로 알려진 UNICEF의 슬로건 중에는 “모든 아이는 우리의 아이다”(Every Child is Our Child)라는 구호가 있다. 독일 나치는 초등학생부터 시작하여 대학생들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나치화 하는데 성공하였다. 히틀러는 공공연하게 “당신의 아이는 이미 우리에게 속한다”(“Your children belong to us already......” - Adolf Hitler, Nov. 6, 1933/William Shirer, The Rise and Fall of the Third Reich)고 장담하였다.

0012. 뉴에이지 교육의 대부 존 듀이
근대 미국교육의 아버지로 불리는 존 듀이(John Dewey, 1859-1952)는 뉴에이지 교육의 개념을 미리 간파하였다. 그는 “만일 학교가 아이들을 아침 7시 반에서 오후 3시 반까지 잡아둘 수 있다면, 그리고 그 후부터 저녁 6시까지는 ‘스포츠’등으로 소일하게 하고, 온 저녁을 학교숙제로 바쁘게 만들어, 하루에 자녀들이 부모들과 지내는 시간이 30분이 안되도록 아이들을 잡아둘 수 있다면, 한 세대가 가기 전에 학교는 그들의 부모와 그들의 종교적 영향에서 아이들을 떼내어 놓을 수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우리의 자녀는 우리가 바라는 소원 안에 머물고 있는가?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0013. 예배가 카니발인가? (1996년 9월)
국민일보 하단 전면광고에는 빈야드운동이 요란하다. 『빛과 소금』(7월)은 커버스토리로 PK운동을 소개, 교계신문잡지가 이단들을 적극 선전하고 있는 어지러운 영적혼란기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예배는 축제’라고 말하는 무리들이 늘어나고 있다. 축제, 즉 카니발(‘바알의 제사장’이라는 뜻)은 paganism의 산물로서 저들은 찬송을 제거하고 노래로 분위기를 조성한다. 놀라운 기만이다. 인류최초의 살인, 즉 형이 아우를 죽이는 살인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현장에서 일어났음을 기억하시라. ‘예배는 신령과 진리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지 축제가 아니다’.

영국국교가 지옥을 부인하게 이르렀고, 스위스의 복음주의 목사라는 자가 그리스도 교회에서 ‘호모’들의 결혼식을 주례한다. 영국불교협회장 불교승려가 세계 3대 대학교회 중 하나인 『케임브리지』대학교회(King’s College Chapel)에서 주일대예배설교를 하더니 이제는 『무슬림』 사제가 강단에 섰다. 미감리교, 장로교단에서는 ‘게이, 레즈비언’들의 목사안수와 이혼이 공공연하다. 1984년 미감리교 여성분과위원회는 ‘어디에나 계시는 우리 어머니/아버지…”로 시작되는 주기도문을 제정, 출판까지 하였다 (‘Women and Worship’ Harper & Row, 1984).
연합성서공회(UBS) 산하의 미국성서공회(ABS)에는 이사, 상임위원, 재정/행정운영위원으로서, 부회장자리를 점령하고있는 천주교신부 R.J. Robbins를 위시한 천주교도들이 진을 치고있다(ABS Record, May 1996). 영국천주교회의 ‘원닝’추기경이 1995년 스코틀랜드 장로교단총회에서 연설, 우리의 교단총회에도 저들이 서겠다는 날이 올 것이 아닌가? ‘복음적’(Evangelical)이란 단어가 이제 그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는 요즈음, 지난 4월 80여명의 복음주의자들은 하버드대학 교정의 Harvard Square에 모여 ‘케임브리지 선언’을 발표, 개혁자들이 부르짖은 5대원칙 - Scripture Alone, Christ Alone, Grace Alone, Faith Alone, and Glory to God Alone - 을 재확인하였다.

0014. “이와 같이 부정적이고 치명적인 카톨릭교회의 오류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변화들에는 긍정적인 요소들이 있다… 그러므로 저자는 카톨릭교회안에 간과할 수 없는 심각한 교리상의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개신교회와 카톨릭 교회가 일치로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불편하고 경솔한 열심은 피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목회와 신학』(1995.7. 276쪽)에 게재된 어느 신학교수의 책에 대한 평이다.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양 진영에 둥우리를 까는 자들이 두뇌는 있어 교수가 되어 신학교를 점령하고 있고, 이들로부터 배운 신학생들이 목회전선에서는 천주교에 대하여는 아예 벙어리들이 된다. 로마교황이 한국을 두 번 다녀간 후, 기독교에서 천주교로 넘어간 사람들 등 200만의 신도가 불었다는 천주교회. 교황이 10번 다녀가면 우리의 교회에 몇 명이 남을 것인지 .....   (민족복음화 여의도대회를 아무리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이들은 7세만 되면 강제로 천주교학교로 끌려가서 천주교교육을 받았고 프로테스탄트교도들의 십일조가 자동으로 천주교로 들어갔던 프랑스의 『위그노』교도들이 당했던 고난은 우리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현상유지에 배부른 정신적 빈곤자들이 영적지도자로 자처하고 있는 곳은 차마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어두운 곳이다.. ‘복음을 전하라’ 그리고 ‘이단을 폭로하라’ -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두 가지를 늘 함께 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러하였고,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마태23.33), 헤롯을 향하여는 “저 여우에게...”라고 맞섰던 예수님, 이단 경계를 가르쳐 온 사도들의 메시지… 개혁자들. 복음의 양면성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사랑만 읊조리는 자들을 경계하라.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 기독교와 천주교가 언젠가는 일치가 필요한 관계로 보는 어리석은 ‘탕자’신학자들을 통해 배도가 교회 안에서 고개를 들게 되어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마태5.37)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눅6.26)

0015. 인류의 조상 원숭이, 원숭이의 조상 인류? (1996년 11월)
로마교황이 다윈의 진화론을 지지하고 나섰으며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발간되는 일간지 IL GIORNALE는 “교황 왈 인간은 원숭이들로부터 유래되었을지도 모른다”(“The Pope Says We May Descend From Monkeys”)라는 헤드라인을 개재하였다. 이중정책에 명수들이라 늘 피할 길을 두고 일을 벌이는 자들이라 이들과의 논쟁은 무의미하다.

1633년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했을 때 그를 종교재판에 회부하였던 로마교황청은 그로부터 360년이 지난 1992년에 정식으로 갈릴레오에게 사과, 아일랜드의 어느 목사는 ‘이제는 지구가 돌아도 좋다는 교황의 허락을 받았다’고 촌평.
1990년에 천주교에서 발간한 주석서 New Jerome Biblical Commentary는 역사적 기독교의 기본교리들을 공격, 기독교는 인간이 만든 종교로써 성경은 오류와 공상, 신화, 전설 등으로 가득 차 있다고 기술하고 있으며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구속사역에 대한 교리까지도 부인하고 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바쁜 때나 틈 날 때
예수 친히 하신 말씀 날 더 귀히 여겨라
(찬366 어지러운 세상 중에 ③)

구영재 선교사 [P.O. Box 8844 Victoria, BC V8W 3Z1]


아브라함 이야기



17. 인간적 대안의 결과 / 창 16:1-6 (상)


믿음의 조상인 아브람이 처음부터 위대한 믿음을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불신자의 가정에 태어나 75세에 비로소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뿐 아니라, 때로는 믿음으로 행하지 못하고 낙심하고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기근이 들었을 때, 아브람은 가나안을 떠나 이집트로 내려갔었고, 하나님의 약속이 지연되자 두려워하고 낙심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않고 대신 인간적인 대안을 선택합니다.

사래의 원망
아브람이 가나안에 들어온지 10년 째가 되었지만 (창 16:3),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실 때 약속하신 것들은, 아무 것도 실질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없었습니다. 특히 가장 쉬워 보이는 자손에 대한 약속조차 지난 10년 동안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창 16:1). 이것에 대해 사래는 자신이 출산하지 못하는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창 16:2). 여기서 ‘허락하지 않으셨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차라니’인데 그 뜻은 ‘저지하다’ 혹은 ‘막다’ 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사래 자신이 임신을 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막고 저지하셨기 때문에, 자신이 이제까지 출산하지 못했던 것이고 그런 하나님이 원망스럽다는 것입니다. 

사래의 오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해서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자, 사래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을 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않으셨으니” (창 16:2). 그녀는 만약 하나님께서 자손을 주신다면, 사래 자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대리모를 통해서 주실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결과 그녀는 더 늦기 전에 자손을 얻기 위한 방법을 시도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래의 생각이 틀렸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면서 사래는 생식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당시 고대근동에는 대리모를 통해서 자식을 얻는 일이 흔히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일을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래의 제안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사래는 아브람에게 제안을 합니다: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창 16:2)
즉, 사래는 아브람에게 세상 사람들이 하듯이 세상적인 방법을 따라 자신의 노예인 하갈을 대리모로 삼아 자식을 얻어 보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막연하게 여겨졌던 하나님의 약속에 비해 굉장히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창 3장에 보면, 뱀은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왜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는지에 대해서 궁금하게 만든 다음, 아주 그럴듯하게 설명을 합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 3:5). 즉, 너희가 하나님처럼 되는 것을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기 때문에 그 열매를 금하셨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그럴듯한 논리를 앞세운 뱀의 말에 빠져 하나님 앞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맙니다. 사래 역시 하나님 말씀보다는 자신의 그럴듯한 논리와 당시 문화적 관습을 더 신뢰하였기에 아브람에게 인간적인 대안을 제시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논리적으로 혹은 이성적으로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워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계속>


[정기수 목사 / 캐나다중앙교회 / 778-237-8084]

예수님의 마음 치유



모세에게 이런 광채가 주어졌다면 온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은 아담과 하와에게는 참으로 놀라운 광채가 임했으리라는 것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독자들의 연구와 묵상을 위해서 “광채”라는 단어가 나오는 성경 말씀 몇 개를 적는다.

저희가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입었으니 그 얼굴이 영영히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시34:5)
여호와의 영광이 그룹에서 올라 성전 문지방에 임하니 구름이 성전에 가득하며 여호와의 영화로운 광채가 뜰에 가득하였고 (겔10:4)
지혜자와 같은 자 누구며 사리의 해석을 아는 자 누구냐 사람의 지혜는 그 사람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 (전8:1)

이 안목을 가지고 중국 문자(한자)에 담긴 하나님의 창조의 비밀 중에서 인간의 빛나는 영광스러운 모습을 짧게 설명하고자 한다. (당신이 아직 이 비밀을 모르고 있었다면 꼭 연구하기를 권면드린다.)




‘사람’은 한자에서 ‘인(人)’ 으로 쓴다. 그런데 원래 인간의 모습엔 이렇게 두 개의 점이 찍혀있다. “火”. 즉 불꽃이 빛나는 사람인 것이다. 인간에게 이렇게 빛이 나고 있었다. 그 빛은 하나님의 영의 능력이 인간의 영에게 부어질 때에 따라오는 것이었다. 한 걸음 더 가보자. ‘영광’을 한자로 이렇게 쓴다 “榮光”. ‘영’ 자 위에 두 개의 빛나는 사람이 서있다. 아담과 하와가 생명나무가 있는 집 위에 서 있는 모습,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인 것이다. 이제 빛 ‘광’자를 보자. 아래에 있는 ‘두 다리’는 사람을 나타내고, 위에 있는 ‘세 획’은 빛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빛나는 사람’의 모습인 것이다. ‘영’자와 ‘광’자 모두가 빛나는 사람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 (Adam)을 이렇게 영광스럽게 창조하신 것이다. 그런데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이제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그의 영이, 또한 그 영에서 비쳐 나오던 모든 “영화로움”이 사라진 (죽은) 것이다. 이제는 모든 동물들이 보아서 전혀 두려워하고 순복할 존재가 아닌 것이다. 힘으로 누를 수 있는 자그마한 존재가 된 것이다. 자신들이 보아도 별 볼일 없는 모습이 된 것이다. 무화과 잎으로 가려야하는 안타까운 모습이 된 것이다.
이제부터는 두 사람은 육신의 눈에 보이는 것에 의지해서, 또 감각에 의지해서, 또 육신의 지혜에 의지해서 살아야만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큰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게 된 것이다. 찬란한 왕의 옷을 벗어버린 ‘거지 왕자’가 된 것이다. 밝은 낮엔 그런대로 살아가지만 어두운 밤이 오면 그 두려움은 엄청나게 커진다. 이제 그들이 의지할 것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이 아니라 나를 지켜주는 “육신”이 된 것이다.


제 11 장   영의 치유와 혼의 치유


1. 육이 주관하는 삶
아담과 이브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그 영이 “죽었을 때” 그들은 지성소가 없는 성전이 된 것이고, 전기 스위치가 꺼진 전등이 된 것이다. 겉으로 보아서는 멀쩡하지만 알맹이가 없는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여태까지는 전적으로 영의 뜻에 순종하던 혼이 주인을 잃어버렸다. 혼자서는 결코 살아갈 수 없는 혼이기에 이제 혼은 영 대신에 육을 붙잡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것은 마치 왕비가 의지하던 왕이 별안간 식물인간이 되어버렸고 경호 장관이 왕비를 자신의 부인으로 삼고 나라의 권세를 이어받은 모습이다. 그냥 둘이 그렇게 부부가 되어서 아들 딸 낳고 오래 살아온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나라를 다스리는 훈련을 받지 못한 경호 장관은 독재자가 되어서 힘으로 모든 것을 다스린다. 군사 독재 정권이 시작된 것이다.


구자형 목사(밴쿠버내적치유사역원장)saranghealing@hanmail.net

사람이 선물이다


사람이 선물이다 - 조정민 지음




요즘에 SNS (Social Network Service)가 세상을 바꾸는 중요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소통하기도 하고 자유롭게 자기의 생각을 나누고, 심지어는 사회적, 정치적 이슈를 다루는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목회자 중에서도 조정민 목사는 트위터 (Twitter)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가 보낸 글을 묶어 ‘사람이 선물이다’ ‘인생이 선물이다’의 책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그 중 마음에 담고 싶은 것이 있어 함께 나눕니다.

 내 상처가 나으면 나는 이제 백신입니다. 나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특효약 입니다. 주위를 살피면... 오직 나만이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 겸손은 나를 거름으로 묻어야 피는 꽃입니다.
 내가 하기 쉬운 일만 골라서 하고 보람 있는 인생을 산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하기 힘든 일에 도전하지 않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산 사람은 없습니다.
 인생의 가치는 더 많은 소유가 아니라 더 깊은 인격입니다. 인생의 진정한 목적은 무한한 성장이 아니라 끝없는 성숙입니다. 인생의 참된 아름다움은 성공이 아니라 성품입니다.
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사람은 그럴 수 있습니다. 너무 몰아세우지 마세요.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따지는 사람도 흔히 꼭 같이 그런 일을 저리르니까…
 ‘무슨 옷이 걸리건 네가 옷걸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세탁소 선배 옷걸이가 후배 옷걸이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 왜 소리가 큽니까? 부딪치는 알갱이 때문입니다. 곱게 빻아져서 가루가 되면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내가 여전히 소란스러운 까닭은 내 안에 아직 부서져야 할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 ‘괜찮습니다.’ ‘사랑합니다.’ ‘평안합니다.’ ‘행복합니다.’ 감옥에서는 못 듣는 말입니다. 감옥이 아닌데도 이런 말들이 사라졌다면… 세상이 감옥같이 변하는 조짐입니다.
 당신의 경력보다 인격이 훨씬 값집니다. 이력서 한 장의 경력보다 인격의 향기가 훨씬 오래 기억됩니다.
 믿으면 설명이 불필요하고, 믿지 않으면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복이면 예수는 복이 없습니다. 오래 사는 것이 복이면 예수는 참 복이 없습니다. 잘 죽는 것이 복이면 예수는 정말 복이 없습니다. 예수는 세상의 복이 아니라 길이고 진리이며 생명입니다.
 십자가는 목걸이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첨탑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죽음의 형틀입니다. 내 욕망 하나 못 박지 못하고, 내 성질하나 죽지 않는 십자가는 정말…십가자가 아닙니다. 
 모든 여행의 마지막 목적은 귀향입니다.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를 잊어버리면…아무리 좋은 여행도 방황이고 방랑입니다.
 기쁨은 내면의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신뢰감입니다. 상황과 조건에 흔들리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쾌락입니다.
 학은 다리를 접고 천년을 묵상해도 물고기 한마리가 전부이고, 사자가 평원을 가로질러 질풍노도처럼 달려도 얼룩말 한마리 쫓는 일이 전부입니다.
 35만톤 유조선 건조 책임자의 말입니다. ‘사람 눈에 이 배가 아무리 크게 보여도 망망대해에 나가면 점 하납니다.’ 맞습니다. 아무리 큰 일, 큰 사람, 큰 능력도 사람 눈에 비칠 때이고 대자연 앞에선 점입니다. 일과 사람, 대단하지 않습니다.
 행복은 가난한 마음입니다. 내가 행복한 사람은 남을 불행하게 만들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내가 불행한 사람은 남을 행복하게 할 능력이 없습니다.
 돈이 없어서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돈 있다고 행복하지 않습니다. 병들어서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건강하다고 행복하지 않습니다. 무명이어서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명하다고 행복하지 않습니다. 행복은… 조건이 아닙니다.
 부족해도 주는 것은 돕는 일이고, 남아서 주는 것은 재고 정리입니다. 주고 잊어버리면 남을 도운 것이고, 기억하면 나를 도운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주건…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낫습니다.
 사랑은 부스러기라도 좋습니다.  은혜는 작은 조각이라도 좋습니다. 배려는 고사리손 한 줌이라도 좋습니다.  아무리 작아도… 나눔이 기적의 씨앗입니다.
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보다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가 먼저입니다. 세상의 숱한 문제가 잘못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긴 결과입니다.
 말은 생각을 다듬어 행동을 다듬습니다. 말은 의식의 골을 파 무의식의 골을 팝니다. 말은 현재를 조각해 미래를 조각합니다. 말이 바뀌어서 삶이 바뀝니다. 말… 삶을 다루는 조각칼 입니다.
 갖고도 나누지 못하면 가난한 것입니다.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입니다. 바쁜데 열매가 없다면 게으른 것입니다.
 사랑하면 보이고 사랑하면 들립니다. 사랑은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원하는 것을 주는 마음입니다. 그가 원하고 그의 필요를 아는데… 사랑하며 주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 관계는 수용입니다. 관계가 고통스러운 까닭은…신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을 인간에게서 찾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실수가 전공이고 부족이 특징입니다.
 사실 외딴 섬은 없습니다. 바다 속에 들어가면 모든 섬이 연결돼있고 땅과 섬도 하납니다. 세상도 같습니다. 욕하고 이간하고 분열하는 일이 제 몸에 상처 내는 것임을 어찌 알겠어요. 우린 하나예요. 우리는 모두 연결된 존재예요. 생명의 근원인 창조주 안에서.

살아가는 길이 쉽지 않지만 오늘도 사랑하며 위로하며 격려하고 함께 걸어가는 축복의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네트웍으로만 연결된 세상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연결된 세상을 살고픕니다.

 [778-868-3063 / Ezekiel475k@gmail.com]

재미있는 여호수아서

 

‘속도’가 아닌 ‘방향’으로 승부하라



리더는 나침반과 같은 존재다.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 리더이기 때문이다. 코비리더십센터 창립자인 블레인 리의 <지도력의 원칙>에 보면 젊은 날의 자신의 경험 하나를 소개한다.

미국 캔자스 주, 농촌 어느 마을에 갔다. 한 농부가 트랙터로 밭을 갈고 있었다. 그 일이 아주 쉬워보였다. 자신도 트랙터의 운전대를 잡았다. 밭이랑을 따라 열심히 몰았다. 결과는 아주 비참했다. 밭이랑이 지그재그로 파여져 있었다. 농부가 이를 보고 충고했다. “자네는 딱 한 가지를 실수했네. 바로 가고자 하는 사람은, 남이 갈아놓은 밭고랑을 보고 가서는 안 되네, 먼 산을 똑 바로 주시하고 가야 한다네!” 방향성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이야기다.

리더십(leadership)이란 말의 의미는 “바르고 옳다고 믿는 어떤 목적이나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다. 리더십의 의미는 보는 관점에 따라 조금씩 달라 질 수 있다. 그러나 공통적인 요소가 하나있다. 그것은 ‘방향성의 요소’이다. 우리말의 지도력(指導力)이란 말의 의미는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는 행위’를 말한다. 리더십에 있어서 방향성은 곧 ‘비전’이다. 방향성의 중요성은 성경도 말하는 진리이다. ‘묵시(Vision)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잠29:18). 리더가 길을 잃고, 헤매면서 다른 사람의 길을 인도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진정한 리더는 나침반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여호수아의 나이는 이미 100세가 넘었다(수24:29).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것 같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들을 모았다(수23:2). 그리고 전 이스라엘의 방향을 제시한다. 아주 명료하다. 단순하다. 구체적이다. 광야 40년, 긴 가나안 정복 전쟁을 통해 얻은 엑기스다.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하기를 오늘까지 행한 것같이 하라”(수23:8). ‘가까이’ 하라는 말은 히브리어 ‘다바크’ ‘바싹 밀착하다’, ‘견고히 달라붙다’는 의미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단단히 달라붙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수23:6). 하나님께 확실히 붙어 있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 이스라엘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자, 우리 모두의 방향이다(수23:3,10).

우리는 자주 이런 말을 듣는다.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려왔다’ 언제 해가 뜨는지 그리고 달이 뜨는지도 모르고 왔다고 한다. 열심히 살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인생에는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방향’이다. 우리집 아이들과 컴퓨터 축구 게임을 가끔 한다. 처음게임을 시작할 때는 아주 재미있다. 조금 지나면 지루해 진다. 게임이 지루해 지면 내가 하는 것이 있다. 우리 편 선수 한명을 전속력으로 공을 몰아, 우리 골대로 가서 슛을 날려 자살골을 넣게 하는 것이다. 아빠의 이런 행동에 아이들은 어처구니 없어한다. 짜증도 낸다. 화도 낸다. 결국 게임기를 놓고 자리를 떠나 버린다. 아이들이 짜증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아빠의 잘못된 방향성에 분노하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지구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26·자메이카)처럼 속도를 내서 바쁘게 사는 것, 참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이렇게 바쁜지를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올바른 방향을 향해 달리고 있는 지도 확인해야 한다. 아무리 번개 같이 빠른 속도의 삶을 산 다해도, 잘못 잡은 방향을 향한 빠른 속도라면 이보다 더 큰 불행이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인생, 속도가 아닌 방향으로 승부하라.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

황보창완 목사 (밴쿠버성산교회 청년부) / 778-708-5540

터키 이야기

 

 

5. 구약 성경과 터키

1) 티그리스 강과 유브라데 강 (창2:14, 계16:12-16)
성경에서 인간에 대한 이야기는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로 시작한다. 그들이 처음 살았던 에덴동산에는 네 개의 강이 흘렀는데, 그 중 티그리스와 유브라데(270Km) 강이 터키 동부 산악지방이 그 발원지이며, 두 강이 병칭되 메소포타미아 평야를 흐르며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꽃피우게 했다.

2) 노아의 방주와 아라랏산
노아의 방주가 묻힌 것으로 알려진 아라랏산은 높이 5,165m로 터키 동부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3,500m부터는 매우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4,900m부터는 완전히 눈으로 덮여있다. 아르메니안들은 이 산을 노아의 방주와 에덴동산이 있는 곳으로 믿고 있으며, 1982년, 아폴로 15호 달 탐험에 성공한 제임스 어윈에 의해 노아의 방주가 발견되었다고 보도되었으며, 1977년부터 미국인 윌리엄 와트가 10년간 심혈을 기울여 전자 레이더, 지질 탐사기 등 최신 장비로 시각적, 물리학적, 화학적 탐사 결과 노아의 방주가 묻혀있음을 확인했으며, 노아는 구멍 뚫린 4개의 돌을 닻 대신 사용했으며, 배는 우주선 모양이고, 방주의 크기는 157.08m×26.2m 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아의 방주가 정확히 발견된 것은 아니며, 다만 노아의 방주와 흡사한 모습을 띤 곳을 노아의 방주로 추정하고 있다.

3) 하란 (Haran)
하란은 샨르울파에서 약 45Km 떨어진 동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오늘날까지도 옛 이름 그대로 하란으로 불리는 이곳은 옛 시대의 유적과 함께 독특한 건축기술로도 관심을 끌어 모으는 곳이다. 하란 언덕에는 역사적인 수백 개의 흙집이 있다. 이것은 벌집 혹은 누에고치 같은 모양으로 매우 흥미롭게 보이는데 찰흙과 돌로 만들어졌으며, 그 지방의 기후에 적당하도록 지어졌다.

 하란(Haran)은 ‘가두(街頭)’, ‘통로’, ‘대상’이라는 뜻으로 일어나 떠나야 할 도시를 말한다. 하란은 티그리스 강과 지중해를 연결하는 ‘고산’과 ‘갈그미스’ 사이의 중간에 위치하여 통상로의 교차점이 되었고, 교역의 중계도시로 번성했다. 하란은 아브라함 가족이 가나안 땅으로 가던 중 체류한 곳으로 여기서 부친 데라가 죽었고(창11:31-32), 체류 중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가나안으로 가라는 소명을 재차 받은 곳(창12:4-5)이다. 또 이삭의 아내 리브가의 고향이며(창24장), 훗날 야곱이 에서를 피하여 도망한 곳(창27:43)이며, 야곱의 아내 라헬과 레아의 고향이기도 하다(창12장, 24장, 28장).

하란은 갈대아 우르와 함께 기원전 19세기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번창했던 상업도시로서 우르와 함께 달의 신인 신(Sin)을 숭배하는 우상 숭배의 중심지였다(왕하19:12). 따라서 부르심을 입은 자가 체류하기에는 부적당한 곳이었다.

하란에서 1Km 거리에는 야곱의 우물로 알려진 곳이 있다.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아내를 찾기 위해 양떼를 이곳 우물곁에 쉬게 하고 물을 길러오는 여인들을 지켜보았다는 우물인데 지금은 다 말라버려 그 형태만 간직하고 있다.

4) 울파 (Urfa)
동방의 의인 ‘욥’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울파’ 지역에는 욥의 무덤으로 알려진 곳이 있고,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거주지역인 ‘하란’에는 그를 기념하는 거대한 사원과 전설이 살아있다. 이곳 전승에 의하면 울파에 동방의 의인 욥이 상피병에 시달리며 7년 동안 살았던 동굴이 있고, ‘네비욥’이라는 마을에는 욥과 그의 아내 라히메의 무덤이 있다. 욥이 병중에 살았던 동굴 위에는 팔각정 건물이 있고, 그 동굴에는 욥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몸을 씻었던 샘물이 있는데, AD 460년 ‘노나’라고 하는 이곳 주교가 이 샘물에 몸을 씻으면 문둥병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부근에 ‘구라’ 병원을 세웠다. 현재 이슬람 사원 내부에 있는 욥의 무덤은 동굴 형태의 철망으로 가려져 있어서 내부를 볼 수가 없다.

성경의 하란에 대해 샨르 울파(SANLI URFA)의 주요도시인 울파는 해발 540m에 있다. 울파는 ‘선지자의 도시’라고 불렸다. 이곳은 아나톨리아에서 발생한 모든 역사적인 사건의 증인이다. 알렉산더 대왕 때에는 ‘에데사’라고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