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distortion)과 극단(extreme)
요즘 신문기사를 보니 일본의 역사왜곡이 심각한 듯 합니다. 식민지 침략전쟁을 부정하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
그러나 이것은 비단 일본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국내에서는 최근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북한의 특수부대가 남파되어 선동한 폭동이라는 왜곡된 내용이 종편방송을 통해 방송되었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이미 평가되어 국가적 기념일로까지 제정된 분명한 사실을 왜곡하려는 시도가 참으로 안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그런 내용을 방영한 채널이 한국의 우익성향을 대표하는 언론사가 사주로 있는 곳이라는 사실입니다.
반면, 정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한국전쟁이 남측의 침략으로 시작되었다는 소설같은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극좌파의 성향을 가진 분들의 입에서 종종 오르내리는 내용입니다. 이 또한 터무니없는 심각한 왜곡이지요.
우파든 좌파든, 어느 사회에나 두 부류는 공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서로 발전적 견제의 관계성으로 사회 전체에 공동의 유익을 도출해 낸다면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문제는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는 극우나 극좌의 성향입니다. 저들의 특징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나 사상을 절대화하여 상대의 의견을 묵살하는 정도를 넘어 사실로 드러난 정황까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사상의 옷을 입혀 왜곡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자신들이 생각하고 싶은대로 생각하고,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몇가지 예들이 바로 그것을 말해줍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극단으로 치닫을 때, 우리 신앙은 왜곡된 모습으로 변질될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 안에 신비한 현상을 인정하고 기대하는 것은 좋으나, ‘신비주의’는 문제입니다. 은사를 사모하는 것은 좋으나, ‘은사주의’는 문제입니다. 종말을 고대하고 기도하는 것은 좋으나, ‘종말주의’는 문제입니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극단주의적 신앙의 색깔들을 주의하고 배척하는 성도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단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성교회들에서 느끼지 못했던 자극적인 극단에 사람들이 관심을 두기 때문입니다.
‘왜곡’은 ‘극단’에 따라오는 필수적 결과물입니다. 정도를 걸어야 합니다. 믿고 싶은 것을 믿지 말고, 믿어야 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파도, 좌파도 아닌 주(主)파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문경돈 목사 / 나무십자가한인교회 / 778-772-4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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