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30일 목요일

필객의 붓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홈통을 타고 흐르는 빗물소리에 새벽을 맞는 동네가 물 위에 둥둥 떠있는 느낌입니다. 빗물에 번지는 포근한 불빛 앞으로 분사되는 투명한 빗방울을 보고 있으니 새벽 하늘이 흘린 눈부신 비늘이 땅으로 쏟아져 내리는 것 같습니다. 몇 일째 내리는 비에 부쩍 우거지고 푸르러진 풀과 나무들처럼, 지붕아래 깃든 인간들도 저 맑은 물에 씻겨 탁해진 영혼이 맑아지고 어두워진 총명이 밝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나누며 이해하고 사랑한다면 각자의 담장에 갇혀 마음에 짓눌리고 힘들어하지 않고 살 수 있을텐데, 이웃의 얼굴도 잘 모르고 살 정도로 우리는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살아갑니다. 관계에서 단절되면서 사람들이 점점 이상 성격으로 변해가고 있고 우리는 서로를 두려워하며 살고 있습니다.
 
허리가 휠 정도로 무거운 죄짐을 지고 불안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기도 없이는 정신을 가눌 수 없어 늘 기도를 갈망하면서도 막상 기도하려 앉으면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광야에 표류하여 어디로 방향을 잡고 발을 떼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무엇부터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늘 난감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예수님께 어떻게 기도할까를 물어 우리 주님께서 기도의 본을 남겨주셨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접했던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쯤으로 친구를 따라 갔던 여름 성경학교에서 받은 책받침에 손을 모으고 기도하시는 예수님 사진 옆에 쓰여진 주기도문을 통해서입니다. 그 이전에 단 한번도 교회에 가본 적 없는 나였지만 그 말들은 세상의 언어와는 다른 신성한 기운과 함부로 할 수 없는 권위가 느껴졌습니다. 미신적인 분위기에서 삼재나 액땜이나 부적이란 말을 들으며 귀신을 무서워하며 살던 나에게는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말이 무척 의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악이란 알아갈수록, 살아갈수록 더욱 악하고 잔인하고 몸서리쳐지도록 무서운 것임을 깨닫습니다.
 
죄를 심상히 여기며 웬만한 죄는 죄로 여기지 않고 인간으로서 당연시 되는 세상에서 죄를 싸고 있는 포장이 너무 화려하고 아름다워 아이들은 죄악의 형상을 흠모하면서 자라납니다.
남자 아이들이 귀를 여러개를 뚫고 화장을 하고 눈을 그리기까지 하는 것이 이제는 하나도 이상하지 않고, 여자들까지 문신을 하고 야한 옷과 음란한 몸놀림을 하는 것이 별 거부감 없이 먹혀들어가고 있고, 욕이 아니면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아이들의 언어가 망가져있습니다. 노골적인 폭력과 음란의 문화에 쩔어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고 반항으로 눈빛이 날카로우면서도 총명의 빛이 어두워져 게슴츠레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게임을 끊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지 말고 노래를 듣지 말라고 하면 ‘그럼 나보고 죽으란 말인가’ 하는 얼굴로 뜨악해합니다. 어른들마저 죄도 짓지 않고 심심하고 따분해서 어떻게 사는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사는 재미가 없을 것이라 동정합니다. 그러나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양식은 쾌락이나 재미가 아닌 진리와 거룩함입니다.
 
성경을 19금의 책으로 하는 법률을 제정하기 위해 서명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이 쓴, 성경을 폄하하고 비방하는 글을 읽으면서 정말 마지막 때의 징후 중 가장 뚜렷한 징후를 보는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그토록 나쁜 쪽으로 부각시키며 일리(?)가 있게 써놓았는지, 아들을 죽이시면서까지 이 세상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들은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만합니다. 세상에 악이 충만하다는 성경의 표현에 많은 사람들이 반발합니다. 도대체 세상이 어때서..?  이 편한 세상.. 이 아름다운 세상.. 이라는 긍정의 문구에 익숙하며 아직도 세상은 나쁜 사람들보다 착하고 선한 사람들이 더 많다고 믿으며 갖고 싶은 것, 가보고 싶은 곳도 많은, 이 세상이나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극단적이고 광신적이며 혐오스러운 표현이라고 눈살을 찌푸립니다. 그래서 교회들은 과격한 표현들을 피하고 슬그머니 긍정의 언어들과 섞어 그 의미들을 누그러뜨렸습니다.
이 세상 신은 사람들을 욕망으로 충동질해서 악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욕망의 덫에 걸려들면 사람들은 그 어떤 지혜의 말이나 눈물의 호소로도 설득할 수 없을 정도로 미련해지고 앞을 분간하지 못합니다. 결국 죄는 사람들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시키고 신의 성품을 썩음으로 오염시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음이 악이요 고통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마음에 예수님을 모시지 않음이 바로 악인 것이고 고통입니다. 모든 악의 근원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안에 있습니다. 이제는 좀 됐나 싶으면 여지 없이 나의 허물과 죄가 나옵니다. 양파껍질 처럼 죄와 허물과 더러움과 부끄러움은 까도까도 끝이 없습니다. 우리가 악에 빠지지 않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육체를 입고 사는 동안 내 안에서 끝없이 일어나는 죄악을 멈출 수 없지만,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의 영이 내 생명의 주체가 되시기에 더이상 죄가 나를 주관할 수 없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오늘도 예수님의 한없이 온유하고 평온한 음성이 나를 너무나 영광스러운 은혜의 자리로 초청하십니다. 허무로 짙은 그림자 나라에서 시간에 허덕이며 사는 먼지보다 작은 존재이지만, 오늘도 예수님의 영이 나를 악에서 건져주시며 성령님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나를 덮으시라는, 과감한 기도를 하늘로 쏘아 올립니다.
 
[서수영 사모 / penofg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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