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30일 목요일

“종교성 강화되면 사회 나아질 것”



“종교성 강화되면 사회 나아질 것”, 미국인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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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대다수는 미국 사회에서 종교가 영향력을 잃고 있다고 느끼면서 사회를 개선하기 위해 종교성이 강화되기를 바라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은 기독교 전통이 뿌리 깊은 나라여서 종교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기독교를 가리킨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은 최근 미 전역의 성인 1535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77%가 “종교가 미국인의 삶에 대한 영향력을 잃고 있다”고 응답했다고 30일 밝혔다.

종교의 영향력에 대한 조사가 시작된 1950년대 이래로 가장 부정적인 결과다. 종교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응답은 20%에 그쳤다.

이 같은 인식은 교회에 자주 출석하는 사람이나 안 하는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 개인의 삶에서 종교가 아무리 중요해도 사회적 차원에서 느끼는 종교의 영향력은 약화되는 추세가 뚜렷한 것이다.

이런 추세에는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집권 이후 동성애와 낙태 옹호론자들이 기세등등해진 세태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기독교적 가치관에 반하는 이슈들이 공공연히 용인되면서 자연히 기독교의 영향력이 약화된 것이다.

이전 조사를 보면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으로 반전여론이 치솟고 히피문화가 휩쓸던 1969년에도 종교의 영향력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75%로 매우 높았다. 반면 ‘종교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응답이 최고치(71%)를 기록했을 때는 2001년 9·11 테러로 미국인들이 큰 충격을 받았던 시기였다. 또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초반인 2005년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집권기인 1980년대 등 사회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했을 때 종교의 영향력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우세했다.

이번 조사에선 “더 많은 미국인이 종교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사회에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라는 질문에 ‘긍정적’이란 대답이 75%를 차지했다. 종교의 잠재력에 대한 긍정적 견해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의미다. 조사 책임자인 프랭크 뉴포트는 “미국인 대다수가 종교의 영향력이 퇴색한 현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는 종교의 영향력에 대한 평가가 미국보다 긍정적인 편이다. 지난해 11월 불교사회연구소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50.2%가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증가했다”고 답했으며, 한국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종교로 개신교(43.3%)를 꼽았다.

올해 초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의 종교생활·의식조사에서도 “개신교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다”는 응답은 43.8%를 차지했다. [http://missionlife.kukinews.com]
 
 
 
 
 

교회음악 Plus


 

교회 안의 찬송은...

 
교회 안에서 사용하는 음악을, 흔히 교회음악이라고 한다. 그러나 무조건 교회 안에 있다고 교회음악은 아니다.  그리고 교회의 신앙과 바른 목적에 맞지 않으면, 이는 교회음악이라 할 수 없다

오늘 우리 교회 안에 무분별하게 음악들이 들어 오고 이들이 교회음악으로 자리잡으려고 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시기에 교회음악인들이(목회자, 지도자들도) 교회에 대해서 먼저 바로 알고 신앙을 바로 가지고 음악에 대한 선별과 식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교회음악인들은 음악을 알기 전에 먼저 교회에 대하여 그리고 그 기능과 역할에 대하여 바로 알아야 한다.
찬양(Praise) 안에는 감사, 감사(Thanks) 안에는 구원, 구원(Salvation) 안에는 십자가, 십자가(Cross) 안에는 보혈, 보혈(Blood of Christ)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Love)을 찬양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할렐루야!
 
홍동근 / 목사, Music Minister
 
 
 
 
 

통일과 한민족의 부르심



 
 
 

New Korea Season! (4)


오늘도 주의 나라를 세워가시는 밴쿠버의 모든 그리스도인 여러분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오늘도 호흡이 있게 하시고 살게 하시는 그 분의 뜻이 무엇인지 기도하고 여쭤보며 한민족의 통일을 위해 더욱 기도의 끈을 동이는 우리네 삶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지난주까지 저는 New Korea Season이라는 음성을 듣게 된 초창기 NK100일중보기도의 시간을 회상하면서, NK100일중보기도의 미션을 받았던 북한선교캠프(현재 통일비전캠프로 매해 진행되는 캠프)에서 첫 날 첫 예배 때 부어주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그 은혜는 2006년 이스라엘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 겟세마네 동산으로 부르셔서 ‘거룩과 기름부으심’의 코드로 ‘한반도 부흥의 키는 거룩함을 회복하는 것이고, 열방의 부흥의 키는 한반도가 통일되는 것’이라는 엄청난 비밀을 알려주신 하나님의 예비된 은혜였음을 나눴습니다. 이 일이 먼저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NK100일중보기도를 하면서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3) 북한을 위한 100일기도를 시작하라!
  2008년 2월 북한선교캠프에 참석한 첫날 첫 예배에서 저는 지난 두 주에 거쳐 나누었던 감격을 아주 짧은 시간에 온 몸으로 전율하며 받았었습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나에게 임하셨으니 이는 주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라는 대목에서 2006년 이스라엘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순식간에 지나간 것이죠. 그리고 그 뒤에 나오는 찬양의 가사(사 61:1-3)처럼 내게 기름을 부으시는 이유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며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고 포로 된 자에게 주님의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주님의 신원의 날을 선포하도록 하기 위한 것’임을 깨달았을 때 저는 울고 또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셨고 그래서 거룩에 대해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흐느껴 울며 감격하는 그 때에 또렷한 한 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북한을 위한 100일기도를 시작하라!”는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얼마나 놀랐는지, 흐느껴 울다 말고 저는 바로 질문했습니다. “네? 북한을 위해서 100일기도를요?” 그리고 주님과의 주고받는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북한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은 알겠지만 왜 하필 100일인지 저는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예배 중에 계속 물었습니다. “왜 하필 100일입니까? 성경에 나오는 40일도, 21일도 아닌 왜 100일인지 알려주십시오.”
  그렇게 첫날 씨름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섬광처럼 뇌리를 스치는 한 그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2008년 2월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던 길에 경유했던 중국에서 저는 북한으로 오랫동안 다니시며 사랑으로 선교하시는 한 목사님을 뵙게 되었는데 그 분과 차안에서 주고받았던 아주 짧은 내용이었습니다. 캐나다로 강의가 있어 떠나시는 그 선교사님을 배웅해드리고자 함께 차를 타고 공항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은 혼잣말처럼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정말 큰일이야. 태양절 100주년이니 어쩌니 하면서 북에서는 강성대국 건설한다고 또 우리 힘없는 인민들을 닦달하고 있으니...” 북녘의 백성들을 향한 그 선교사님의 애절한 마음을 금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스쳐들었는데, 글쎄 왜 100일동안 기도해야 하는지 집요하게 묻는 저에게 성령님은 그 차안에서 들었던 내용을 생각나게 하신 것입니다. 순간 저는 ‘아! 태양절 100주년 때문이었구나!‘ 라고 눈치 챈 다음 대체 태양절 100주년이 언제인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태양절 100주년은 아직 5년이나 더 있어야 하는 2012년인 것을 발견하고 다시 또 따지듯이 주님께 물었습니다. “아니 주님, 태양절 100주년은 2012년이고 지금은 2008년인데 왜 벌써 말씀하십니까?” 그랬더니 주님은 “그들이 태양절 100주년이라고 저렇게 여전히 내 앞에서 목을 곧게 하고 ‘강성대국’(경제강국, 군사강국, 사상강국)을 세운다고 하는데 지금부터 기도해야 하지 않겠니? 내가 저 땅의 우상숭배의 뿌리를 뽑을 것이다.’라고 하시는 겁니다.
 
저는 설득력 있는 주님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일단 100일이라는 기간과 기도를 시작해야 함에 수긍하게 되었습니다.   (계속)
 
[오 테레사 선교사 / ot2022@hanmail.net]
 
 
 
 
 
 
 
 

예수님의 마음치유



제 20 장   유산의 공포를 체험한 사람들

 
“유산의 공포”라는 제목을 보면서 산모가 유산을 앞에 놓고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라는 내용이리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 말이 아니다. 이 공포는 뱃속에 있는 아이가 경험하는 공포를 의미하는 것이다.
 
태아는 잉태가 되고 -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 아주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모든 생각과 감정을 받아먹으면서 또 밖에서 들리는 수 많은 음성과 대화를 이해하면서 자라난다는 사실이 계속해서 증명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오래 전에 그 비밀을 알고 태교를 강조한 것이다.
 
종전 칼럼에서도 자세히 설명했지만 「태교 신기」에 이런 말씀이 있다.
 
     임산부가 성낼까 두려우니 분한 일을 들려주지 말고
     임산부가 무서워할까 두려우니 흉한 일을 들려주지 말고
     임산부가 걱정할까 두려우니 어려운 일을 들려주지 말고
     임산부가 놀랄까 두려우니 화급한 일을 들려주지 마라
 
태중의 아기는 엄마의 말은 물론이고 그 생각과 마음까지도 다 이해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능력이다. 뱃속의 아기는 엄마의 유산에 대한 생각과 시도를 다 알고서 결사적으로 엄마를 붙잡고 살아남으려 투쟁을 벌인다. 실제로 인공 유산을 시키려고 기계를 자궁 속에 밀어 넣으면 태아가 최선을 다해서 그 기계를 피해다니는 모습을 과학자들이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충격을 준 적이 있다.
 
엄마가 유산을 생각하고 구체적인 시도를 시작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아기에게는 충격 그 이상이다. 지금까지 아기는 엄마만을 전적으로 의지해왔다. 자기에게 생명을 주었고, 살 집을 주고, 모든 음식을 공급해 주던 사랑의 엄마가 이제 별안간 돌변해서 자기를 죽이려 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 배신감은 말할 수도 없다. 피할 방도도 없다. 그냥 좁은 자궁 안에서 그 시련을 견디어 내어야만 한다. 살아나리라는 보장도 없다. 
 
우리가 잠시라도 그 아이의 처지가 되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경험이 된다. 사람에 대한 모든 신뢰가 사라지고 “사랑”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지지 않겠는가? 그 아이는 계속해서 이렇게 독백을 할 것이다
“이 세상에 믿을 사람은 하나도 없어. 나 혼자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거야.”  그러면서 깊은 우울에 빠져 들어간다.
 
이 아이는 자라면서 대인 관계를 만들지 못한다. 아무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나도 그 가까워짐을 받아들이기가 겁이 난다. 그 사람이 꼭 자기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든다. 그래서 가까워지기 전에 먼저 거부하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죽음이 아주 가깝게 느껴진다. 우리 주위에 이런 사람이 의외로 많다.
 
구자형 목사(밴쿠버내적치유사역원장) saranghealing@hanmail.net
 
 
 
 
 

정성헌선교사의 선교칼럼



화장실 숫자만 늘리다 죽은 인생 1.  

 

-  무엇이 되고 싶니? (누런 금메달)

 
 
우리 가정이 선교지로 출발할 때 둘째 아이는 생후 20개월쯤 되었었다. 아들이 자라자 언젠가 나는 다른 아버지들이 하는 것처럼 “너는 장래에 무엇이 되고 싶니?”라고 물었다. 그 때 5살쯤 된 아들은 스스럼없이 버스 운전사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소방차나 대형버스 운전사도 아닌 ‘마슈르트까’.... 마슈르뜨까는 우리가 살던 지역에 12인승 마이크로 버스로 도시의 거점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수단이었다. 적잖게 실망한 나는 속내를 감추며 “왜 굳이 마슈르뜨까 운전사가 되고 싶니?”라고 물었다. “아빠, 마슈르뜨까 운전사는 돈을 많이 벌잖아요! “아니, 무슨 운전사가 돈을 많이 번다고 그래?” “아빠! 엄마랑 시장 갈 때마다 마슈르뜨까 타는데, 앞 사람이 바구니를 돌리면 차에 탄 모든 사람들이 돈을 담아 운전수에게 건네주잖아요. 그러니 얼마나 돈을 많이 벌겠어요!”

어쩌다가 목사, 선교사의 아들이 돈을 벌어보겠다고 운전사가 된다는 건지? 나는 그런 작은 꿈 말고 큰 꿈을 꾸라고 말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더 큰 꿈을 가지게 할까 생각하던 나는 바로 “얘, 운전하는 사람이 돈을 많이 벌겠니, 아니면 그 버스를 수 십대, 수 백대를 운영하는 버스회사 사장이 돈을 많이 벌겠니?  “아빠, 버스회사도 있어요? 그러면 나는 버스회사 사장될래요. 그래서 돈을 많이 벌래요”

왜 돈타령인지? 이유는 금방 감이 잡혔다. 현지생활 수준에 맞게 생활하다 보니 아들 놈이 좋아하는 장난감 ‘레고’며, 노란 바나나를 사주질 않고 지내다 보니, 아들은 선교사의 가정은 늘 가난해서 그런 것을 부모님이 사주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 지 나는 막막하기만 했다.
 
2002년 한국에서 월드컵이 한 창일 때 선교지에서도 응원열기가 대단했다. 아들은 머리에 띠를 띠고 “대한민국, 짜작짝 짝짝!’을 연발하며 드라마틱하게 4강에 올라가는 한국팀을 응원했다. 결국 브라질이 우승을 했다. 브라질 축구팀은 우승컵을 높이 들어 올리며, 복음을 전할 기회로 삼아 언더 셔츠에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등의 글귀를 새기고 나와 전세계에 하나님을 증거했다.
 
월드컵이 끝나자, 한국에서 선물로 붉은 악마들의 빨간 셔츠가 도착했다. 둘째가 학교에서 돌아오자 말자, 가방을 집어 던지고 붉은 옷을 갈아 입고서, 집 근처에 있는 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200미터 트랙을 30바퀴 돌고, 턱걸이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나를 불러 축구 골대 앞을 가로 막고 서서는 패널티 킥을 차라는 것이었다. 왜 이러느냐고 묻자, 자기는 거미 손의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래! 브라질 선수들이 하는 것 봤지! 우승하고 하나님을 전하는 것을.” 나는 그래도 아들의 새로운 꿈이 운전사 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며 흥분을 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이, 나를 당황케 했다. “아빠! 죄송해요. 전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저는 금메달을 따고 싶어요!” “금메달, 좋지! 그래서 매일 열심히 운동을 하는 거야?”  “예! 금메달이 얼마나 비싼 되요. 저도 금메달 따서 부자가 되고 싶어요!”.
나는 기가 막혀 “야! 이 녀석아! 브라질 선수들이 목에 건 금메달은 돈으로 따지자면 그 사람들이 받은 연봉에 비하면 껌 값이야!”라고 했지만 연봉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들은 변함없이 누런 금메달이 달러로 얼마나 되는지 집요하게 물었다.
 
안식년을 맞아 한국으로 온 아들은 매일 학교운동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한국학교라곤 다녀 본적이 없어 받아쓰기는 늘 50점을 밑돌았지만, 반에서 골키퍼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아들은 눈치를 살펴 내가 좀 자유롭다 싶으면 나를 놀이터 모래사장으로 불러내곤 했다. 여러 개의 테니스 공을 구석으로 던지면 날렵하게 다이빙을 해 막아내는 훈련을 수 없이 했다. 그래서 집안은 온통 모래투성이였다.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갈 때 제일 먼저 챙겨 간 것이 축구공과 그리고 모형 우승컵, 골키퍼용 손 장갑이었다. 선교지로 돌아온 후에도 운동장을 뛰는 것과 철봉연습은 매일 빠뜨리지 않는 아들의 일과였다. 그 때까지도 아들에게는 금메달은 인생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누런 금송아지로 보였던 것이다.
 
그 해 겨울 방학을 맞아 나는 가족을 태우고 먼 사역지로 운전하여 가고 있었다. 새벽에 출발한 차는 20여 시간 운전을 해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것도 스텝지역과 사막을. 좁은 승용차에서 지루해 지기 시작하자 무료함과 졸음을 깨우기 나는 위해 한국에서 가져온 카세트를 꽂았다. ‘샘물 호스피스’ 원장인 원주희 목사의 강의 테이프였다. 틀자마자 거기엔 기막힌 이야기 하나가 소개되었다.
 
샘물 호스피스에 중년의 여성 말기암 환우 한 사람이 들어왔다. 원장은 이 여성에게 “이제는 마지막을 준비하셔야 합니다!”라고 하자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악을 쓰면서 “나는 못 죽어요! 어떤 X 좋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악에 받친 대답에 놀란 원장이 차근차근 그 여인의 지난 삶을 캐물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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