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2일 금요일

정성헌 선교사 선교 칼럼


그 분이 하신다

 
 
한 지역에 선교의 문이 열리고, 부흥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그것은 인간의 좁은 머리로는  계산할 수 없는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임이 분명하다.  일례로 중국의 경우를 보면 서방의 기독교전문가들 조차도 중국기독교는 공산화와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약화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추측에 불가할 뿐이었다. 하나님은 극한 환난 가운데서 중국기독교를 1억의 성도를 가진 교회로 성장시키셨다.

이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1979년 팔레비 왕조의 멸망 함께 ‘호메이니’ 혁명으로 이란은 이슬람의 신정 일치로 돌아갔다. 근본주의 이슬람 안에서 지금의 이란에서 일어나고있는 강력한 영적 부흥을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지금 이란에는 80만 명 정도의 기독교인이 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그들 대부분은 외부인을 통해 복음을 받아 회심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꿈과 환상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그리스도를 따른 자들이 된 것이다.
 
1991-2000년 까지 중앙아시아에 불었던 부흥 불길은 중앙아시아 정부들의 조직적 핍박을 받아 그 불이 사그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반드시 인간의 판단과 예측이 빗나가게 할 위대한 일을 하나님이 친히 행하실 것을 나는 의심치 않는다. 내게 그런 확신을 갖게 한 ‘호젤리’시의 부흥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 부흥의 불은 한 자매의 헌신으로 당겨진 것이었다.
‘에스더’는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의 한국말은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로 완전히 2세였다. 그런 그가 20대 중반, 대학을 마치고 미국평화봉사단으로 지구반대편 누쿠스란 도시의 영어학원에 교사로 자원하여 온 것이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영어를 가르치며 2년을 살았다. 그는 학원에 다니던 10대 후반의 ‘이리나’와 ‘율라’라는 여학생에게 복음을 전했고, 오직 그 두 명을 영어로 양육하고서 돌아갔다. 그 중 하나인 ‘이리나’는 고려인 아버지와 우즈벡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리나는 수도의 강 건너 있는 인구 10만의 ‘호젤리’시에서 수도에 있는 영어학원을 다녔다. 그 당시 나는 자치공화국 수도와 다른 한 도시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섬기고 있었지만, 인구 10만이나 되는 호젤리시에는 단 한 명의 회심자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교회는 그곳에 전도의 문을 열어달라고 부르짖고 있었다. 그런 던 어느 날 ‘이리나’가 교회에 출석을 하기 시작했는데, 가족 중 누구도 그녀가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리나로 인해 고무된 교회는 ‘호젤리’시에 전도의 문이 열리도록 더욱 열심히 기도를 집중하고 있었다.
 
용기를 낸 ‘이리나’는 가족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알리고 복음을 전하려 했으나, 강한 저항과 핍박에 부딪히게 되었다. 우즈벡인 어머니 ‘쏘냐’는 전통적인 무슬림이라 더욱 심하게 핍박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 쏘냐가 이리나에게 “베드로가 누구냐?”라고 물었다.  이리나는 “엄마, 초대 교황인 사도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베드로 사도는 왜요?”라고 되물었다.  “응, 그 사람이 내게 와서 너를 핍박하지 말라고 하더구나!” 놀란 이리나는 용기를 내어 다시 복음 전했다. 그러나 어머니 쏘냐의 마음은 더욱 강퍅해져서 집에서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하고 기도시간엔 고의적으로 방해하기 시작했다.
 
몇 일이 지나 다시 쇼냐는 “이리나, 바울 이라는 사람은 누구냐?”라고 물었다. “엄마,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성경 13권을 쓰신 분인데요.”라고 대답하자 “그래 그 사도가 너를 핍박하지 말라고 한다. 네가 나에게 악을 행하지 않고 선을 행하는데 왜 너를 핍박하느냐라고 나를 책망하더구나” “엄마,  꿈에 나타난 그 사람이 바울인 줄 어떻게 아셨어요?” “응, 자기를 소개하지 않았지만 마음에서 바울이라고 하더구나”
그런 일이 있고 난 후에 아버지와 동생은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마침내 주님을 영접했다.
그러나 어머니 쏘냐의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쏘냐가 다시 이리나에게 “세례 요한이 누구냐?”라고 물었다. 이리나는 다시 설명을 했다.  무슨 말을 하더냐고 묻자 “그 사람이 예수가 세상 죄를 진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하더구나. 그 사람의 복장이 특이 했단다. 낙타 털을 입고 있더구나.”
이리나는 더욱 흥분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교회의 기도를 부탁했다. 어느 날 이리나가 학교를 마치고 돌아 갔을 때 어머니 쏘냐는 경건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이리나를 향해 연거푸 “그 분이 오셨어! 그 분이 오셨어!”를 연발했다. 무슨 일이냐 묻자 쏘냐가 낮에 비몽사몽간에 누가 문을 두드려 아파트의 문을 보는데, 문 밖에는 예수님이 사도들과 함께 서서 문을 두드리며 서 계셨다는 것이다. 너무 놀랍고 무서워서 열어주질 못하자 닫힌 문을 바로 통과하여 들어오셔서 “내가 이 도시에 행할 일을 의논하고자 하니 너는 밖에 있으라.” 하시고는 거실로 너와 너의 아버지, 오빠, 동생을 데리고 들어가 앉으셨단다.”
 
그 후 쏘냐는 주님을 영접했다. 온 가족은 이리나의 인도로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아버지 볼료자는 카작스탄에서 일하고 있던 큰 아들 ‘빅토르’에게 집으로 돌아오라고 전화를 했다. 돌아온 큰 아들은 집안의 변화를 보고 다시 온 가족과 불화하며 제 정신이 아니라고 대적했다. 그러던 어느 늦은 밤 텔레비전 위에 얹혀진 영화 ‘예수’ 테이프를 발견하고 재생기에 밀어 넣었다. 영화가 끝날 때엔 눈물을 흐리며 자막을 따라 영접기도를 했다.
 
그렇게 호젤리의 부흥은 시작되었다. 그 후 이리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국제기관에 취직을 했다가, 선교사로 사역하던 영국인 청년 다니엘을 만나 나의 주례로 결혼했다. 다니엘은 지금 런던의 대학에서 경영학을 가르치고 있다. 이리나의 동생 빅토르는 회심한 후 신학을 마치고 목사가 되었다. 그 후 개척된 고향 호젤리시에서 담임목사로 섬기다가 지금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사역하고 있다. 
 
[SEED Canada 대표 / 778-316-3579]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