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이 하신다
이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1979년 팔레비 왕조의 멸망 함께 ‘호메이니’ 혁명으로 이란은 이슬람의 신정 일치로 돌아갔다. 근본주의 이슬람 안에서 지금의 이란에서 일어나고있는 강력한 영적 부흥을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지금 이란에는 80만 명 정도의 기독교인이 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그들 대부분은 외부인을 통해 복음을 받아 회심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꿈과 환상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그리스도를 따른 자들이 된 것이다.
1991-2000년 까지 중앙아시아에 불었던 부흥 불길은 중앙아시아 정부들의 조직적 핍박을 받아 그 불이 사그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반드시 인간의 판단과 예측이 빗나가게 할 위대한 일을 하나님이 친히 행하실 것을 나는 의심치 않는다. 내게 그런 확신을 갖게 한 ‘호젤리’시의 부흥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 부흥의 불은 한 자매의 헌신으로 당겨진 것이었다.
‘에스더’는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의 한국말은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로 완전히 2세였다. 그런 그가 20대 중반, 대학을 마치고 미국평화봉사단으로 지구반대편 누쿠스란 도시의 영어학원에 교사로 자원하여 온 것이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영어를 가르치며 2년을 살았다. 그는 학원에 다니던 10대 후반의 ‘이리나’와 ‘율라’라는 여학생에게 복음을 전했고, 오직 그 두 명을 영어로 양육하고서 돌아갔다. 그 중 하나인 ‘이리나’는 고려인 아버지와 우즈벡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리나는 수도의 강 건너 있는 인구 10만의 ‘호젤리’시에서 수도에 있는 영어학원을 다녔다. 그 당시 나는 자치공화국 수도와 다른 한 도시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섬기고 있었지만, 인구 10만이나 되는 호젤리시에는 단 한 명의 회심자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교회는 그곳에 전도의 문을 열어달라고 부르짖고 있었다. 그런 던 어느 날 ‘이리나’가 교회에 출석을 하기 시작했는데, 가족 중 누구도 그녀가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리나로 인해 고무된 교회는 ‘호젤리’시에 전도의 문이 열리도록 더욱 열심히 기도를 집중하고 있었다.
용기를 낸 ‘이리나’는 가족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알리고 복음을 전하려 했으나, 강한 저항과 핍박에 부딪히게 되었다. 우즈벡인 어머니 ‘쏘냐’는 전통적인 무슬림이라 더욱 심하게 핍박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 쏘냐가 이리나에게 “베드로가 누구냐?”라고 물었다. 이리나는 “엄마, 초대 교황인 사도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베드로 사도는 왜요?”라고 되물었다. “응, 그 사람이 내게 와서 너를 핍박하지 말라고 하더구나!” 놀란 이리나는 용기를 내어 다시 복음 전했다. 그러나 어머니 쏘냐의 마음은 더욱 강퍅해져서 집에서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하고 기도시간엔 고의적으로 방해하기 시작했다.
몇 일이 지나 다시 쇼냐는 “이리나, 바울 이라는 사람은 누구냐?”라고 물었다. “엄마,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성경 13권을 쓰신 분인데요.”라고 대답하자 “그래 그 사도가 너를 핍박하지 말라고 한다. 네가 나에게 악을 행하지 않고 선을 행하는데 왜 너를 핍박하느냐라고 나를 책망하더구나” “엄마, 꿈에 나타난 그 사람이 바울인 줄 어떻게 아셨어요?” “응, 자기를 소개하지 않았지만 마음에서 바울이라고 하더구나”
그런 일이 있고 난 후에 아버지와 동생은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마침내 주님을 영접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에 아버지와 동생은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마침내 주님을 영접했다.
그러나 어머니 쏘냐의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쏘냐가 다시 이리나에게 “세례 요한이 누구냐?”라고 물었다. 이리나는 다시 설명을 했다. 무슨 말을 하더냐고 묻자 “그 사람이 예수가 세상 죄를 진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하더구나. 그 사람의 복장이 특이 했단다. 낙타 털을 입고 있더구나.”
이리나는 더욱 흥분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교회의 기도를 부탁했다. 어느 날 이리나가 학교를 마치고 돌아 갔을 때 어머니 쏘냐는 경건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이리나를 향해 연거푸 “그 분이 오셨어! 그 분이 오셨어!”를 연발했다. 무슨 일이냐 묻자 쏘냐가 낮에 비몽사몽간에 누가 문을 두드려 아파트의 문을 보는데, 문 밖에는 예수님이 사도들과 함께 서서 문을 두드리며 서 계셨다는 것이다. 너무 놀랍고 무서워서 열어주질 못하자 닫힌 문을 바로 통과하여 들어오셔서 “내가 이 도시에 행할 일을 의논하고자 하니 너는 밖에 있으라.” 하시고는 거실로 너와 너의 아버지, 오빠, 동생을 데리고 들어가 앉으셨단다.”
그 후 쏘냐는 주님을 영접했다. 온 가족은 이리나의 인도로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아버지 볼료자는 카작스탄에서 일하고 있던 큰 아들 ‘빅토르’에게 집으로 돌아오라고 전화를 했다. 돌아온 큰 아들은 집안의
변화를 보고 다시 온 가족과 불화하며 제 정신이 아니라고 대적했다. 그러던 어느 늦은 밤 텔레비전 위에 얹혀진 영화 ‘예수’ 테이프를 발견하고 재생기에 밀어 넣었다. 영화가 끝날 때엔 눈물을 흐리며 자막을 따라 영접기도를 했다.
그렇게 호젤리의 부흥은 시작되었다. 그 후 이리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국제기관에 취직을 했다가, 선교사로 사역하던 영국인 청년 다니엘을 만나 나의 주례로 결혼했다. 다니엘은 지금 런던의 대학에서 경영학을 가르치고 있다. 이리나의 동생 빅토르는 회심한 후 신학을 마치고 목사가 되었다. 그 후 개척된 고향 호젤리시에서 담임목사로 섬기다가 지금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사역하고 있다.
[SEED Canada 대표 / 778-316-3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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