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알람 소리에 깨어 얼얼한 꿈의 잔상들을 환기시키려 일어나 브라인드를 엽니다. 새벽 어둠에 잠겨, 꿈의 세계만큼이나 희미한 실루엣을 이루고 있는 마을을 보며 이 생이 꿈보다 더 낫다고 할만한 무게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아왔지만 지금껏 살아온 날들이 꿈만큼이나 아득하고 내용이 빈약합니다. “이 생에서 수고하는 모든 것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 같다” 고 한 전도서의 말씀이, 아무리 기를 쓰고 달려도 뭔가 해결이 안된 것 같은 미진하고 석연치 않은 느낌과 절대 메꾸어지지 않는 공허의 부피속에 허우적거리는 인생이기에, 아침에 새롭게 눈 뜰때마다 노래처럼 입에 붙습니다. 뭐 하나 제대로 가져보지 못한 나 같은 사람에게야 이 공허가 너무나 당연한 느낌이라 쳐도, 왕으로써 모든 권력과 쾌락과 부와 명예와 지혜를 두루 누려본 솔로몬 왕이 이 같은 고백을 했음을 볼 때, 이 세상 모든 만물의 본질이 바로 이처럼 깊은 허무를 딛고 있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어제 밤 잠들기 전, 성경 다음의 베스트셀러로서 전 세계 주요 언어로 번역되어 읽히고 있는 ‘목적이 이끄는 삶’ 의 저자 릭 워렌 목사의 아들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읽고 충격을 받아 그런지 이 새벽 허무에 대한 감상이 더욱 실감이 나는 것 같습니다.
저의 딸이 다니는 학교가 ‘삼성 스쿨’ 프로그램 시범학교로 선정되었다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교육환경, 교사가 학생들을 일대 일로 수업을 지도할 수 있는 기술 혁신이라는 희망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제 교실에서마저 아이들이 기계를 통해 교육을 받게 된 것을 보면서 조지오엘의 소설 ‘1984’를 통해 선포된 빅브라더의 세상이 이렇게 좁혀오나 싶어 긴장이 되었습니다. 스마트폰이 사람들을 감시하고 일상을 통제할 수단이 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말하면서도 사람들은 그 기계를 거부하기는 커녕, 아이들은 더 최신형의 기계를 갖고 싶어 안달을 하고 부모들은 비싼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사주지 않고는 못배깁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기계에 매여 손에서 놓지 못하고 스스로 이 기계 앞에 나와 혼을 빼앗기는 모습을 보면 기계가 사람들의 주인이 되어 다스리는 것 같고, 이를 보고 공중 권세 잡은 악한 영들이 기뻐 날뛰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한국이 국제 사회에서 아주 유명해졌습니다. 북한의 핵 실험과 일촉즉발의 전쟁의 위기에 놓인 한반도의 긴장에 관한 뉴스가 이 곳 북미 뿐아니라 전세계의 뉴스를 연일 장식하고 있습니다. 20년 전 단기 선교로 해외를 나가면 한국이란 나라를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일 정도로 지구상에 보이지도 않고 잘 알려지지도 않았던 작은 나라가 이제는 정치, 경제적으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로서 언급되며 유가가 오르고 세계의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핑계로서 이용되고 있는 것 같아 정말 기도가 됩니다. 선교 한국이란 아름다운 이름으로 일컬어지던 모국의 교회가 이제 음란과 물질주의의 썩고 부패한 것의 전형처럼 여겨지고 대형 교회를 이끌고 있는 목사님들이 이런 저런 안좋은 일들에 연루되어 세상 기사의 입질에 오르내리고 WCC 부산 유치 등으로 인해 아버지의 이름이 땅에 짓밟히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옳고 합당하게 여겨지던 교회안의 교리들의 실체가 속속들이 그 뿌리가 드러나고 이단이며 용공이라 몰아세우는 기사들을 읽노라면 내가 지금 진리라 믿고 있는 것들이 과연 옳은 것일까 두렵습니다. 양파껍질처럼 벗기고 벗겨내도 만물보다 심히 거짓되고 부패한 마음에서 나오는 죄와 악은 끝이 없어 나의 의는 절대 의롭지 못하고 내가 말하는 정직과 정의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거짓과 모순 투성이 일 뿐임을 알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나를 통해, 이 낡고 보잘 것 없는 인생을 통해 거룩하신 아버지의 이름이 일컬어지고 있음이 참으로 두려운 일인지라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주신 기도문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이제는 너무나 간절한 기도의 마음으로 드리게 됩니다. 입에 붙은 헛된 주문처럼 공중의 모임에서나 뜻없이 외우던 주기도문을 개인 기도에서 깊이 묵상하며 나를 통해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실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부르짖게 됩니다.
오늘도 우주처럼 깊고 광대한 허무 속에 내가 부르고 붙들고 설 이름이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 내가 구원을 얻을 이름, 이 누추하고 거짓된 입에 담기에 너무나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이름이 내게 부여하신 소명이 있기에 내가 오늘 이 땅에 살아갈 이유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이 땅에서 거룩하신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영광된 부르심으로 인해 내 삶이 말할 수 없는 존귀를 입었습니다.
[서수영 사모 / penofg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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