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유혹 VS 더러운 유혹

유혹의 두 종류, ‘아름다운 유혹’, ‘더러운 유혹’.
‘아름다운 유혹’은 그 목적이 선하고, 개인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더러운 유혹’은 조직과 개인의 삶을 철저하게 부수는 분쇄기다. 문제는 더러운 유혹으로부터의 공격이다. 이는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막기 힘든 공격이다. 최선의 방책은 유혹의 강도가 커지는 만큼 경계의 강도를 높이는 것이다.
‘아름다운 유혹’은 그 목적이 선하고, 개인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더러운 유혹’은 조직과 개인의 삶을 철저하게 부수는 분쇄기다. 문제는 더러운 유혹으로부터의 공격이다. 이는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막기 힘든 공격이다. 최선의 방책은 유혹의 강도가 커지는 만큼 경계의 강도를 높이는 것이다.
유혹의 강도가 커지자, 경계의 강도가 실종되어 버렸다. 부부란 이름의 두 엔진이 함께 돌아 대놓고 거짓말 하고,
보기 좋게 사탄의 밥도 되어버렸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지은 시편 51:11절의 절규의 의미를 이제야 알겠다.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라는 피맺힌 외침의 의미를...... 다윗은 주의 성령이 떠나는 것을 왜 그렇게도 두려워했을까?
성령이 떠난 자리는 사탄의 놀이터로 변해 버리기 때문이다(행5:3).
사탄이 ‘아나니아와 삽비라 놀이터’에서 ‘돈’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이미 이들의 영혼에 사탄이 둥지를 틀고 알까지 낳았다. 새가 나의 머리 위를 비행하는 것,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나의 머리위에 앉아 똥을 싸고, 둥지는 못짓게 해야하지 않겠는가! 유혹! 하루 수 천 번 이상 우리의 영혼을 터치(Touch)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더러운 유혹이 사탄과 함께 나의 영혼에 둥지를 짓고 알은 못 낳게 해야 하는 것이다.
사탄이 ‘아나니아와 삽비라 놀이터’에서 ‘돈’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이미 이들의 영혼에 사탄이 둥지를 틀고 알까지 낳았다. 새가 나의 머리 위를 비행하는 것,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나의 머리위에 앉아 똥을 싸고, 둥지는 못짓게 해야하지 않겠는가! 유혹! 하루 수 천 번 이상 우리의 영혼을 터치(Touch)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더러운 유혹이 사탄과 함께 나의 영혼에 둥지를 짓고 알은 못 낳게 해야 하는 것이다.
유혹이 오면 초반에 박살내라! 명심하라! 사탄은 절대 대화의 상대가 아니다.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할
대상이다(히12:4). 이들과 대화의 자리에 앉는 순간 이미 패한 것이다. 사탄은 항상 대화를 원한다. 우리를 항상 자신이 마련한 협상 테이블로
이끈다. 속지 말라! 하와가 사탄과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는가? 보기 좋게 실패했다. “적을 알아야 이긴다” 그래야 백전백승한다. ‘손자병법
모공편’에 있는 말이다.
더러운 유혹의 특징은 이렇다, 자기중심적이다. 말씀과 쌍벽을 이룬다. 숨기고 싶다. 거짓말과 자동 연결
된다(행5:4). 사도행전 5장2절을 보라!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땅값 얼마를 ‘감추매’라고 했다. 이 헬라어 ‘에노스피사토’는 ‘……에 등을
돌리다’는 의미다. 여기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횡령하고, 감추는’ 나쁜 행위를 의미한다. 이렇듯 더러운 유혹의 특징은 지극히 자기 중심적이고
거짓의 항구로 우리를 인도한다.
‘최고의 수비는 공격!’이다. 싸움을 걸어오면 기죽지 말라! 대적하라! 무엇으로 대적할 것인가?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성령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성령의 힘을 어떻게 빌릴 것인가? 그것은 바로
말씀의 힘과 능력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마귀의 간계(엡6:11)를 이기기 위해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6:17)고 한
것이다. 말씀의 검을 가지라! 승리는 이미 보장된 것이다.

오늘날 강한 유혹의 문화는 갈수록 그 마수의 손길을 넓게 펼치고 있다. 사탄은 오늘도 헛소리하며 삼킬 자를 찾아
돌아다닌다(벧전5:8). ‘참지 말고 즐겨라’ ‘아끼지 말고 쓰면서 살아라’ ‘숨기지 말고 보여줘라’ ‘걱정하지 말고 취하라’ ‘미련 두지 말고
버려라.’ ‘주저하지 말고 떠나라’ 우리를 충동질하는 광고가 주변에 차고 넘친다. 거짓 광고에 속지말라! 이것 때문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죽음을 너무 일찍 맛보게 되었다(행5:5,10).
황보창완 목사 (밴쿠버성산교회 청년부) /
778-708-5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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