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와 열정 2
나는 낫을 들고 콩을 꺾기 시작했다. 허리를 숙이는 일에 익숙하지 않아 얼마 못되어 통증으로 숙였다 폈다 하기를
반복했다. 숙인 허리 위로 드러난 맨 살은 시리고 작은 고무신에 끼인 발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지만 마음에는 불이 붙기 시작했다. 급한 마음에
미친 듯이 콩을 꺾어 나가자 얼마 못되어 어머니는 “야야, 그렇게 막 다루면 익은 콩 다 벌어진다. 좀 살살 하거라”. 하긴 그랬다. 콩을
추수하자는 것이지 콩대를 거두자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조신하게 콩대를 꺾자니 허리는 더 빠지는 것 같았다. 허리를 펴면, 다음 날 있을 설교
걱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콩을 꺾으면서 묵상을 시작했다. 주님은 종일 씨를 뿌리고 가꾸는 것, 추수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다. 늦가을
추수 밭에서 주님은 자연을 통해 내게 많은 교훈을 주셨다. 내가 정말 어머님처럼 뿌리고, 뿌리고, 또 뿌리는 열심있는 천국 일군인지? 나의
사역지, 카라칼팍스탄이 눈에 어른거렸다. Passion, 이 말은 열정과 수난이라는 상이한 의미를 동시에 가진 단어이다. 그러나 같은 뜻을 가진
러시아어에는 ‘수난’이란 말과 ‘추수하다’라는 말이 같은 어근이다.
추수는 열정과 고난을 동반하는 일이다. 추수꾼에겐 낫을 기다리는 밭을 볼 때 끓어오르는 열정과 짧은 시간 내에
추수를 마쳐야 하는 혹독한 육체적 고난이 늘 상존하는 법이다. 희어져 추수하게 된 밭을 보면 뿌리고 가꾼 자의 기쁨은 말할 수 없이 크지만
추수는 또한 혹독한 수고를 요구한다. 가을 짧은 볕에 익은 곡식을 거두자면 추수꾼은 쉴 수 가 없다. 오죽하면 농번기엔 고양이의 손이라도
빌린다라는 말이 있겠는가! 얼마나 일손이 부족하면 고양이가 혀로 다리에 침을 묻혀 털을 고르는 모습에 그 앞다리가 일손으로 보이는 것일까?
그러나 추수는 그런 고통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만족을 주는 일이기도 하다. Passion of Christ. 주님은 우리를 십자가에서 낳아
주시기 위해 고통을 견디셨다. 그 수난은 이루어질 생명의 추수를 향한 주님의 강렬한 열정, 열망의 표현이었다.
쌀쌀한 날씨에 힘든 노동인지라 시장기가 금새 찾아왔다. 챙겨 온 점심을 어머님과 함께 앉아 긴 감사 기도를 드리고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눈은 자꾸 등 뒤 밭으로 가고 있었다. 숟가락을 놓자 마자 다시 밭으로 향했다. 한 참이 지나 추수 밭으로 어머님이 새
참을 들고 오셨다. 마음에 앉을 여유가 없이 나는 선 채로 먹었다. 해는 서산으로 반쯤 기울어지고 있었다. 해가 넘어 가기 전까지 남은 콩은 다
꺾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밭에 쌓인 저 많은 단을 어떻게 길로 옮길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아버님이 나타나신 것이다. 나는 눈을 의심했다. 병원에 있어야 할 분이 어떻게 여길 오셨단 말인가? 어머님도 놀라 병원에 있지
무엇 하려고 여기까지 왔냐며 타박을 하셨다. 아버님은 병원에서 밭의 일이 궁금해서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옆 사람에게만 알리고 몰래 병원을 빠져
나오셨다는 것이다.
폐에 물을 빼기 위해 꽂아 놓은 호스를 매단 채 밭으로 오신 것이다. 어머님은 경칠 일 없으니 그냥 앉아 있으라고
언성을 높였지만, 아버님은 밭으로 들어가셔서 고랑에 쌓인 단을 길가로 옮기기 시작하셨다. 허리를 숙이면 통증이 있어서 꼿꼿이 콩단을 머리에 이고
나가셔서, 콩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스레 내려 놓았다. 못 말리는 일이다. 나도 그만 두시라고 성화를 부리다가 결국은 포기했다. 밭 가에 가득
쌓여가는 단을 어떻게 집까지 실어갈지 고민하
는데 우리 밭 쪽으로 트럭 한 대가 요란스레
소리를 내며 올라오고 있었다. 먼 친척 형님 내외가 트럭에서 내렸다. 아버님이 오시면서 부탁을 해서 짐을 실으러 왔다는 것이다.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우리는 트럭을 타고 산을 내려갔다.
늦은 저녁을 먹은 후 나는 부모님에게 “내년부터는 농사, 그만 좀 지으세요! 두 분이 연세 드셔서 이렇게
고생하는 것 생각하면 자식들 마음이…….” “야야. 그렇지 않아도 내년엔 조금만 할란다. 먹을 것이나 좀 하지 뭐. 이젠 더 하고 싶어도 힘에
부쳐서 못하겠다.” 그러나 나는 두 분의 그 말이 빈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년 봄이 되면 또 그 병이 도져 논밭으로 나가실 것을 훤히
알기 때문이었다. 뿌리는 자의 소망과 거두는 자의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는 분들이기에...
[SEED Canada 대표 / 778-316-3579]
[SEED Canada 대표 / 778-316-3579]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