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9일 금요일

사망에서 생명으로 (3)



4. 세상의 자유인에서 하나님 나라의 자유인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번 주간에도 하나님의 크신 은총과 사랑이 밴쿠버 그리스도인 여러분에게 부어지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삶을 사는 우리 모두 하나님께,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 빚을 감당하는 거룩한 마음과 자세로 이번 주간도 삶의 현장에 나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난 호에서 나누었던 것처럼 저는 중국에서 돈이 주는 쾌감과 행복(?)함을 맛보는 동시에 마음 한켠에서 어찌할 수 없는 공허함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열심히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성공의 기준으로 되어버린 자본주의 체제에 익숙해진 중국에서의 삶은 주님을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내재해있던 본능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을 하게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결코 사람의 어떤 기준치 또는 만족감을 완벽하게 채워줄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돈을 버는 것의 끝은 어디일까?’라고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기도 했지만 그 끝이 없음을 발견하면서 마음 한켠이 구멍 뚫린 것 같이 휑하고 허탈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되어 3년간 떠나있던 고향땅을 다시 밟게 되었고 3년간 놀랍게 변한 북한의 눈부신 시장경제의 발전을 보면서 다시금 ‘돈을 많이 벌어 성공해야 한다’는 세상적 성공기준에 마음을 뺏겼습니다. 돈을 버는 것의 끝이 없음을 깨닫기도 했지만 마음중심에 모시지 못한 하나님의 부재는 다시금 사람이 성공하는 길은 오직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고 속삭였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마음을 잘 아셨기에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재물을 두 주인(마 6:24)에 비유하시고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신 것은 아닐까요?

그런 깨달음과 함께 재탈북하여 한국행을 준비하면서 마음에 굳힌 세 가지 다짐, 그 다짐은 한국으로 들어오기 전 태국에서 만난 하나님으로 인해 부서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두 번의 한국행이 실패로 돌아가고 세 번째 한국행을 방콕의 어느 한인교회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간섭하심은 드디어 어느날 새벽기도시간에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내가 살아온 삶을 하나의 필름으로 순식간에 보여주시는데 누가 강요해서가 아니라 저절로 깨달아지고 믿어지는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고 저는 무릎을 꿇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울고 또 울었는지, 제 인생에서의 가장 아름다운 첫 상봉은 그렇게 새벽시간에 홀로 교회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때 중얼거리듯이 고백했습니다.
“아, 하나님! 나는 몰랐지만 나를 잘 알고계시는 하나님께서 내가 믿지 않았던 북한에서부터, 아니 태초부터 나의 삶을 인도해오셨군요. 내 인생가운데 하나님은 늘 함께 계셨군요...”

그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졌을 때 저는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현실세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만 볼 수 있는, 그 분과의 소통가운데서만 발견할 수 있는 놀라운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는 참 자유의 세상이 있음을 보게 된 것입니다. 세상의 자유가 얼마나 인생을 옭아매는 올가미의 구조인지, 하나님나라의 자유가 얼마나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측량못할 자유의 세계인지 맛보기 시작한 것이죠.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사실이 왜 그리도 놀랍고 감격스러운지, 그리고 내가 영원히 살 수 있는 영생을 얻었다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해서 매일매일 행복의 도가니에 휩싸여 태국에서의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자유인으로 신분탈환을 한 저는 주님을 만난 그날 새벽에 분명하고도 또렷한 주님의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계속>


[오 테레사 선교사 / ot20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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