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일 금요일

아브라함 이야기 (22)-2



아브라함의 섬김 / 창 18:1-8 (하)


아브라함이 섬길 수 있었던 이유
고대 근동지역이 손님 대접을 큰 미덕으로 여겼고, 지금도 이것이 유목민족인 베두윈의 전통으로 내려오긴 하지만, 아브람의 행동은 풍속을 넘어서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심이 후한 주인이 나그네를 대접했다기보다는 주인을 섬기는 종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섬김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아브라함이 나그네들의 존재를 알았기 때문이 아니라, 17장에 나타난 사건의 결과로 나타났을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이 불신과 완고함에서 벗어나 영적으로 회복되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이러한 섬김의 모습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불신과 완고함이 무너진 다음에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섬김의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섬김이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믿음의 정도에 비례해서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고의 섬김의 모습- 예수 그리스도
아브라함이 주인이었고 고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가는 나그네들을 최고로 섬길 수 있었던 이유가 아브라함의 영적인 회복에 있었다면, 최고로 믿음에 견고하셨던 예수님에게서도 이러한 섬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 13장에 보면, 예수님은 스승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유월절 마지막 식사 자리에서 허리에 수건을 동인 채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빌 2:6-8에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포기하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최고의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서로 섬기기를 원하시는 주님
요 13:15에 보면, 주님은 제자들에게 섬김의 본을 보여주신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즉, 주님은 제자들이 주님처럼 행동하기를 원하셔서 본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요 13:14에 보면, 주님은 제자들에게 서로 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여기서 ‘옳다’는 말은 ‘그렇게 하는 것이 옳기 때문에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은 서로 섬기는 모습이 제자들의 올바른 모습이기 때문에 반드시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나가는 나그네라 할지라도 박대하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풍성하게 섬기는 모습, 서로의 발을 씻는 섬김의 모습이 제자들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거룩한 섬김이 있는 교회
하지만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는데 더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 같습니다. 어느덧 직분은 일하기 위한 것이기 보다는 자신의 신앙 년수를 자랑하고, 교회 안에서의 얼마나 많이 인정받는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요3서 9에 보면, 디오드레베는 으뜸되기를 좋아하고 형제들을 영접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영접하고자 하는 자들을 금하고 교회에서 내쫓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디오드레베를 본받아서는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거룩함으로 섬기는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교회가 이 땅에 든든히 서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친목회나 사회복지단체와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여러분에게 섬김의 모습이 약하게 나타나고 있다면 먼저 믿음에 견고한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사셨고, 어떠한 삶을 원하시는지를 바로 깨닫고 아브라함처럼 주님이 원하시는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정기수 목사 / 캐나다중앙교회 / 778-237-8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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