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일 금요일

아브라함 이야기 (22)-2



아브라함의 섬김 / 창 18:1-8 (하)


아브라함이 섬길 수 있었던 이유
고대 근동지역이 손님 대접을 큰 미덕으로 여겼고, 지금도 이것이 유목민족인 베두윈의 전통으로 내려오긴 하지만, 아브람의 행동은 풍속을 넘어서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심이 후한 주인이 나그네를 대접했다기보다는 주인을 섬기는 종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섬김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아브라함이 나그네들의 존재를 알았기 때문이 아니라, 17장에 나타난 사건의 결과로 나타났을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이 불신과 완고함에서 벗어나 영적으로 회복되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이러한 섬김의 모습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불신과 완고함이 무너진 다음에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섬김의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섬김이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믿음의 정도에 비례해서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고의 섬김의 모습- 예수 그리스도
아브라함이 주인이었고 고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가는 나그네들을 최고로 섬길 수 있었던 이유가 아브라함의 영적인 회복에 있었다면, 최고로 믿음에 견고하셨던 예수님에게서도 이러한 섬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 13장에 보면, 예수님은 스승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유월절 마지막 식사 자리에서 허리에 수건을 동인 채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빌 2:6-8에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포기하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최고의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서로 섬기기를 원하시는 주님
요 13:15에 보면, 주님은 제자들에게 섬김의 본을 보여주신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즉, 주님은 제자들이 주님처럼 행동하기를 원하셔서 본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요 13:14에 보면, 주님은 제자들에게 서로 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여기서 ‘옳다’는 말은 ‘그렇게 하는 것이 옳기 때문에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은 서로 섬기는 모습이 제자들의 올바른 모습이기 때문에 반드시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나가는 나그네라 할지라도 박대하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풍성하게 섬기는 모습, 서로의 발을 씻는 섬김의 모습이 제자들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거룩한 섬김이 있는 교회
하지만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는데 더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 같습니다. 어느덧 직분은 일하기 위한 것이기 보다는 자신의 신앙 년수를 자랑하고, 교회 안에서의 얼마나 많이 인정받는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요3서 9에 보면, 디오드레베는 으뜸되기를 좋아하고 형제들을 영접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영접하고자 하는 자들을 금하고 교회에서 내쫓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디오드레베를 본받아서는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거룩함으로 섬기는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교회가 이 땅에 든든히 서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친목회나 사회복지단체와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여러분에게 섬김의 모습이 약하게 나타나고 있다면 먼저 믿음에 견고한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사셨고, 어떠한 삶을 원하시는지를 바로 깨닫고 아브라함처럼 주님이 원하시는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정기수 목사 / 캐나다중앙교회 / 778-237-8084]





필객의 붓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시지 않으시면



가을의 풍경이 그려진 또 한 장의 달력을 뜯어내면서 모든 것이 미진한 채로 세월만 가는 것 같아 초조해집니다. 한 발도 뒤로 무를 수 없고, 단 한 순간도 뒤로 돌이킬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한 단 한번뿐인 순간을 살고 있으면서도, 그토록 귀한 시간의 가치에 합당한 내용을 이루며 살고 있질 못함이 늘 아쉽습니다. “자고 나면 십 년” 이란 말에 무릎을 치게 되는 나이에 이르고 보니,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적어도 부끄럽고 누추한 자취들은 말끔히 정리해놓고 갈 수 있도록 준비된 채로 살고 싶다는 소망이 생깁니다. 그러나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가버리는 시간을 따라 잡지 못해 오늘 할 일도 미처 끝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몇 달 전부터 정리하려 했던 사물들도 여전히 마음에 부담으로 쌓여있고 자꾸만 늘어가는 글들도 요연하게 정리가 안된 채로 있습니다.

산 등성이에 있는 달이 산에 오르면 손에 닿을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는 것처럼, 인생이 바로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을 요즘 자주합니다. 크게 부를 이룬 사람이 오히려 더 숫자에 찌들어 보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성공을 이룬 사람의 품위가 오히려 평범한 이보다 격이 떨어질 때도 있고, 최 정상의 인기를 누린 사람의 입에서 외롭다는 고백이 나오기도 하고, 평생 눕지도 않고 앉아서 참선을 하고 잠도 자지 않고 고행을 하며 단 한 순간도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오직 착한 생각만 하고 온전한 지혜로 행하며 살았던 위대한 수도승들의 입에서도 결국 무(無)가 고백인 것을 보면, 좀 더 열심히 살면, 좀 더 노력하고 좀 더 착하고 바르게 살면 뭔가 잡을 수 있고 품에 안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인간의 믿음이 얼마나 어리석고 허망한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 텅 빈 의식, 이 허무의 고통을 채우기 위해 사람들은 그토록 취할 거리들을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취해 있는 동안의 뭔가 채워진 것 같고 가까워진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이 귀한 생애를 아무렇게나 흘러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생의 종점에서 그들이 도달한 곳이 영원한 황폐와 멸망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얼마나 놀라고 두려울까 걱정이 됩니다.

지금 미국 동부지역에 태풍 샌디의 영향으로 폭설과 홍수로 인한 엄청난 인명과 재산의 피해가 보도 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한국에서도 물고기가 떼 죽음을 당했다는 보도가 있었고,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지만 밴쿠버에도 규모 7.7의 지진이 있었습니다. 화산이나 태풍, 지진 등의 자연 재해뿐 아니라 전쟁의 위협, 기름 값 상승, 세계적인 불황, 청년 실업 등 세계적인 재앙의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들의 안전을 간절히 원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지키시지 않으시면 아무리 철통 같은 자물쇠로 집을 잠가놓고 지킨다고 해도, 아무리 좋은 음식만 챙겨 먹으며 몸을 보양한다 해도, 지하 깊은 곳에 지은 호화 캡슐에 들어가 있다 해도 목숨과 재산을 보전할 수 없습니다.

아직도 세상은 시간과 돈과 학벌과 인맥과 경력이 인생의 관건이라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내가 그 은혜를 모르고 인생이 나의 노력에 달린 것인 양, 무작정 달릴 때에는 더 잘했어야만 했고 그런 말을 하면 안됐었고 등, 마음에 걸리는 생각들 때문에 찜찜하고 괴로워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 인생의 기관차를 염려나 안달이 아니라 은혜로 바꾸고 보니 어디서나 평안합니다.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올라오는 염려의 가라지를 뽑아내고 좋은 생각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하면서 신경뿐 아니라 음식이나 잠자리나 사람에 대해 좋고 싫음의 까탈이 없어지고 물 흐르듯 모든 것과 어우러져 가는 순탄함을 맛보고 있습니다. 아직도 내 마음에 탐욕과 이생의 자랑, 생활에 대한 염려가 있지만 마음에 늘 좋은 생각들로 바로 바로 바꾸면서 많이 행복해졌습니다.

사람들은 길을 묻습니다
앞으로 어떤 운명이 펼쳐질지 알기 위해 손금을 보고 행운을 점칩니다. 그러나 생은 정해진 운명의 궤도를 가는 것이 아니라 많은 부분 오늘 내가 하는 선택으로 채워집니다. 지금 이 시간 내가 산에 가면 나무들을 볼 것이고 바다를 가면 파도가 나의 경험이 될 것입니다. 산이냐 바다냐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를 가든지 사랑하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있는가 입니다.

나의 집을 세우시고 성을 지키시는 하나님,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하나님의 극진한 보호하심이 언제나 나를 두르고 계시다는 믿음으로, 바람에 어지럽게 흩어진 염려의 낙엽과 생각의 잔가지들을 치워내니 영혼에서 맑은 가락이 울려납니다.
잠시 시간을 내서 주님 앞에 엎드리는 일이 단 몇 줄 성경을 읽을 따름이고 얇고 불안정한 음성으로 기도 몇 마디 올리는 정도일 뿐이지만, 삶이 참 존귀하게 느껴지고 행복합니다.

위대함은 성취나 소유한 물질의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실과 성실과 충성을 담은 마음의 크기 안에 있고 인간의 존귀는 거룩함에서 나오는 것을 알겠습니다. 이제 남은 나의 역사가 존귀하고 보배로운 것이 될 수 있도록, 지금 나를 두르고 있는 관계와 일들이 좋은 의미들로 맺음 할 수 있도록 오늘 감사와 정직과 사랑의 말을 심을 것입니다.

오늘 부는 바람이 내 인생의 배를 위협한다면 더 높은 소망을 품고 돛을 높이 올리겠습니다.

[서수영 사모 / 밴쿠버크리스찬문인협회 부회장 / penofgod@gmail.com]





재미있는 사도행전



진정한 슈퍼맨



진정한 ‘교만’이 무엇인가? 해석이 필요없다. 이 이야기 하나로 충분하다. 한국에 있었을 때 일이다. 노회 주일학교 찬양대회기 있었다. 나는 행사 임원을 맡았다. 그 해, 심사를 맡은 음대 교수님들은 유년부 대상(大賞)을 두명 선정했다. 둘의 실력이 비등했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행사를 잘 마쳤다. 잠시 후 행사 진행 사무실로 유년부 대상을 받은 아이의 엄마가 사무실을 찾았다.

딸 아이가 받은 상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자존심 상해서 이 상을 못 받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그 대답이 아주 가관이었다. “나는 성악을 전공해서 잘 압니다. 대상은 우리 아이만 차지해야 하는데, 왜 대상이 두명이 나왔습니까?”라는 괴변을 토해냈다.

정말 강심장 이었다. 찬양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높이는 것 아닌가? 그녀의 관심은 오직 딸과 자신의 영광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진정한 교만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보여주고 떠났다.

베드로가 참 많이 변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너무 많이 변해 버렸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베드로가 굉장히 겸손해 졌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나면서 걸어 본적이 없는 사람을 걷게 했다. 이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베드로를 슈퍼맨으로 보았다(행3:7-8).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열광하기 시작했다(행3:11).

베드로는 불을 꺼버렸다. 그를 향한 열광의 불을 꺼버린 것이다. 메뚜기도 한 철인데 이때 인기 몰이를 해야 하는데, 그것을 차버린 것이다. 베드로는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왜 나를 주목하십니까?”,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닌 예수님의 능력입니다”(행3:12-16)라고 절규했다.

진실로 예수님을 만난 자의 대표적인 표가 무엇인가? ‘겸손’이다. 19세기 남아프리카의 성자로 불리는 ‘앤드류 머레이’가 자신에 대한,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오랜 고민과 깊은 묵상 끝에 나온 책, ‘겸손’에서 그리스도인이 겸손해야 하는 이유 세 가지를 이렇게 말했다. “나는 피조물이고, 죄인이고, 성도이기 때문에 겸손해야 합니다”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 방학 때, 동네 못(농수를 담아 놓는 작은 댐)에서 수영하다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수영의 달인 귀섭이가 나를 구하러 왔다. 나는 살고보자는 마음에 그의 목을 있는 힘을 다해 끌어 안았다. 귀섭이도 나 때문에 죽게 생겼다. 귀섭이는 머리가 비상했다. 이러다 자기도 죽겠다 싶어, 나의 머리채를 잡고는 목을 비틀어 버렸다. 목이 틀리니 그 어떤 힘도 쓸 수가 없게 되었다. 이때, 귀섭이는 힘빠진 나를 연못 밖으로 끌어 낼 수 있었다.

‘진정한 슈퍼맨’은 나의 힘을 빼고, 주님의 능력을 힘입는 자다(고후13:9).

황보창완 목사 (밴쿠버성산교회 청년부) / 778-708-5540
 
 
 
 
 

터키 이야기 (13)




6. 신약 성경과 터키



4) 갑바도기아 (Cappadocia)

◎ 카이막클르 (Kaymaklı)이 지하 동굴도시는 기원전 5세기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기독교인들이 아랍의 핍박자들로부터 피신처로 사용되었다. 통로가 낮고 좁으며 경사가 진 점에서 데린쿠유 지하도시와는 다르며, 1964년에 일반에 공개되었다. 위치는 네브쉐히르에서 남쪽으로 20Km 정도 떨어져 있다.

현재는 환기 갱 주변으로 지하 4층까지만 발굴되었다. 이 지하도시는 방어를 더 잘 할 목적으로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각 구역마다 지름이 약 1.5m 되는 맷돌 모양의 바위 문으로 막아서 서로 격리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구역 간 통로는 약 30Km에 이르며 회랑은 매우 좁다. 그러나 거실, 회의실, 교회 및 기타 시설들은 매우 안락하게 지어졌다.

창고는 주민들이 수개월 동안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양을 저장할 수 있을 만큼 크다. 환기 갱과 우물은 15,000명이 모두 함께 매우 오랜 기간 동안 살기에 충분한 규모이다.

지하 1층은 축사로서 그 규모가 작은 것으로 보아서는 아직 발굴되지 않은 다른 곳에 더 많은 축사들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축사 왼쪽으로 있는 통로에는 맷돌 모양의 돌문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거실로 쓰인 방들이 있다. 지하 2층에는 교회가 있으며 그 옆으로 무덤이 있다. 지하 3층에는 창고, 포도주 양조장, 부엌 등이 있으며, 지하 4층에 있는 포도주 양조장에 토기로 된 항아리 두는 곳과 저장실이 많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서 이 지하도시에 살았던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 마즈 (Mazı)마즈는 울귭에서 남쪽으로 18Km, 카이막클르에서 동쪽으로 1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지하도시는 마을 서쪽에 가파른 계곡에 있으며, 지금까지 4개의 입구가 발견되었다. 이 지하도시도 데린쿠유나 카이막클르와 같이 축사, 포도주 양조장, 거실, 교회 등이 있으며, 입구 통로에는 맷돌 모양의 돌문이 있다. 이 지하도시의 특징은 아래층은 짧은 통로로 연결되어 있으나, 위층은 길고 좁은 통로로 되어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통로가 무너졌기 때문에 지하도시 전체 규모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나 지하도시에 교회가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넓은 지역의 지하도시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 외즈코낙 (Özkonak)외즈코낙 지하도시는 아바노스에서 북쪽으로 14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1972년에 발견되었으나, 아직 완전한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기에는 데린쿠유나 카이막클르와는 달리 매우 길고 좁은 방들이 있어 층간에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돌문 중앙에는 구멍이 없지만 문 앞 천정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있고 터널로 연결되어 적에게 이 구멍으로 뜨거운 기름을 붓거나 창으로 찌를 수 있게 되어있다. 입구에 있는 축사나 부엌, 거실, 무덤 등이 있는 것은 데린쿠유나 카이막클르 지하도시와 비슷하다.

◎ 탓라린(Tatlarin)
이 지하도시는 아지괼 북쪽 10Km에 위치한 탓라린 마을에 있는 ‘성채’라 하는 이름의 언덕 위에 있다. 1975년에 처음 발견되어 1991년에 일반에 공개되었다. 성채에는 지하도시 외에도 다수의 교회가 있었으나, 자연현상에 의해 대부분 붕괴되었다. 지하도시는 상당히 넓은 지역에 걸쳐 있지만, 지하 2층까지 일부분만 공개되며, 공간의 규모, 창고의 수, 수많은 교회 등으로 보아서 이곳은 요새이거나 수도원들이 모여 있던 곳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는 L자 모양의 통로를 지닌 화장실이 발견되는데 L자 통로는 냄새를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화장실을 이곳 외에는 오직 규젤율트 지하도시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계속>
 








 

2012년 10월 27일 토요일

길진리생명이신 그리스도 예수 < 13 >


 


0064. “내 백성을 가게하라”
마이어 대위의 죽음과 드레퓌스 사건은 헤르츨의 마음에 “시온으로 돌아가자”는 열망을 심었다. 『유대국가』(Der Judenstaat, 1896)라는 소책자를 저술한 후, 오지리 비엔나에서 모인 시온주의자들은 스위스 바젤(Basel)을 임시근거지로 삼고 첫 『세계 시온주의자 회합』(World Zionist Congress, 1897)을 개최하였다. 유대인들로부터 ‘새 모세’(New Moses)로 불려지기 시작한 헤르츨은 독일의 황제 빌헤름(Wilhelm), 터키의 술탄(Sultan), 영국의 챔블린(Chamberlain), 이탈리아 왕 빅토르 임마누엘 3세(Victor Emanuel Ⅲ)를, 그리고 1904년에는 마지막으로 로마교황 비오10세(Pius X) 를 만났다. 로마교황은 헤르츨에게 유대인들은 모두 카톨릭으로 개종할 것과 그렇지 않고 팔레스타인에 이주할 경우에는 그곳에 있는 천주교 사제들을 명하여 모든 유대인들을 강제로 천주교 영세를 베풀것임을 통보하였다. 과로한 헤르츨은 로마에서 비엔나의 집으로 돌아와 반년 후에 44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으며, 그가 죽은 후 다시 44년 후인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국가 건국이 델 아비브(Tel Aviv)에서 선포되었다.


0065. 기독교와 교회교(敎會敎)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유다서3)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믿음의 도는 성도들(saints)에게 주어졌지 학자들(scholars)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복음의 본질을 파괴, 복음의 종교화 작업을 위해 사단은 학자들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사도들이 세상을 떠난 후 교회지도자들은 사도에 걸맞는 칭호를 찾다가 옛 바벨론 종교의 제사장들이 사용한 아버지(Father)란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그들은 제우스 신(神)이 아버지로 불려진 것도 알고 있었다. 교회의 박사들로 알려진 초대교부(Church Father)란 역시 ‘교회의 아버지’란 뜻이 된다. 그리하여 이 말은 후에 교황, 신부(神父), 대부(代父)등, 로마카톨릭교의 용어들의 씨가 되었다. 예수께서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아시고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마23:9)고 경고하셨다. 인간의 명예욕은 이미 복음으로 선포된 것을 종교로 변질시키고 있었다. ‘종교’(‘religio’-Lat.)란 ‘로마의 종교의식을 지키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기독교는 곧 그리스도시다. 구약의 그 많은 선지자들에 의해 예고되어온 이름은 교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였다. 마귀를 쫓아낸 이름 또한 교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였다(막9.38; 눅10.17; 행16.18). 교회의 이름이 아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침)례를 받게 되었다(마28:19, 행8:16, 19:5).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업수히 여겼던 구약의 제사장들 처럼(말1:6), 하나님께 바쳐져야 할 영광을 토색질하고도 앞줄에 나와 토색질한 것이 없다고 기도했던 바리새인 처럼(눅18:11), 종교인들의 교만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었으며, 그들은 예수의 이름은 버리고 교회를 전하기 시작하였다. 조직은 주 예수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인간 주 주교(the Lord Bishop)를 앉혔다. 구속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거두어졌고, “예수”대신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구호를 들고 나섰다.

사단은 구원의 초점을 예수로부터 교회로 돌리고 있었다. 학자들은 교회를 두고 성경에도 없는 여러가지 수식어들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이레네우스(Irenaeus)의 ‘어머니 교회’(Mother Church),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의 ‘처녀 어머니’(Virgin Mother), 오리겐의 ‘국가들의 어머니’(Mother of the Nations), 키프리안(Cyprian)의 ‘어머니 교회’등의 표현들이 초대교회 교부들에 의해 로마교회 안에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AD 3세기 경에는 ‘교회를 어머니로 가지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실 수가 없다’라는 해괴망측한 말이 나오기까지 하였다. 교회에 헌신, ‘모든 신자의 어머니’(Mother of the Faithful)가 되는 교회사랑이 곧 신앙(信仰)으로 간주되었다. 서머나의 폴리캅(Polycarp), 리용(Lyons)의 신자들은 교회를 ‘어머니’(Mother)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바벨론의 어미(계17:5)가 이미 로마제국의 영토 안의 교회에 뿌리를 내렸다. 예수의 이름은 제쳐지고 그 자리에 교회가 들어 섰다. 오리겐의 글에 자주 언급된 표현 - ‘교회의 규정’, ‘교회의 신앙’, ‘교회의 가르침’, ‘교회의 전통’- 들은 교회의 주교들이 가졌던 종교적 야심을 그대로 반영한 것들이었다.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거룩한 아이 예수”(행4:27, KJV)를 높이는 대신, 자신들의 위치를 높이기 위해 자기들이 소속된 교회를 높이는데 혼신을 쏟았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ciam nulla salus)라는 말이 나오면서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엡5:25)을 섬김으로써 “하나님의 천국복음”(막1:14)를 보게 하는 대신에, “그의 몸된 교회”(골1:18,24)를 강조,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인간중심의 종교, 교회교(敎會敎, Churchianity)로 향하게 하였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엡5:23-24)의 순서를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머리’위에 올라 앉은 꼴이 되어버렸다.” 기독교회사의 흐름을 바꾼 영향력을 행사한 이단들은 거의 모두가 학자들이었다. 사도 바울과 베드로는 이러한 거짓 선생들이 그리스도의 교회를 교란케 할 것임을 미리 예언하였다(행20:19, 벧후2:1).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Ignatius, 35-107)는 그리스도교회의 일치가 예수가 아닌 주교에 집중시켜, 주교감독 정치제도를 도입, 기독신앙의 일치의 가장 안전한 수호자를 주교(Bishop)에 두었다. 성령께서 가라사대 ‘주교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음성을 들었다고 주장, 주교가 없이는 성례전, 결혼식 거행 등을 불가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의 자리에 대리자로 자처한 이그나티우스에 대해 터툴리안(Tertullian)은 “교회는 주교들의 모임이 아니다”라고 항의 하였다. 리베리우스(Liberius, 352-366)는 대중을 향하여 감히 “한 하나님, 한 그리스도, 한 주교”(One God, One Christ, One Bishop)를 외침으로 삼위일체의 성령의 자리를 주교로 대치시켰고, 콘스탄티노플에서는 주교에 대항한 한 기병장교 대장을 죽여 거리에 끌고 다니게 함으로써 주교에 대한 불경죄의 본을 보여주었다. 주교들의 종교성은 복음에 이르는 길을 차단하고는 복음을 사유(私有)화 하였다. 그리하여 예수의 복음보다도 종교에 몰두 하였다. 예수께서는 교회를 세우시고 3위(三位)가 되신 성령을 통해 그의 사역을 펼칠 터전으로 삼기를 원했으나, 주교들은 성령의 자리를 점령, 교회의 주인행세를 하였으며 교회에 대한 저들의 세속적인 야심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하게 만들었다. 빠스깔(B. Pascal, 1623-62)이 암시하였듯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철학자의 하나님, 신학자들의 하나님으로 채색질하였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믿는 것이지 종교나 교회를 믿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궁극적 목적의 하나는 영생(永生)이며, 우리의 구속주는 예수이며, 그 외에는 아무도 아니다. 성경은 분명히 예수를 믿으라고 말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KJV). 예수 외에 어느 누가 우리에게 영생을 책임져줄 수가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교회에서 복음의 본질보다 인간의 종교성을 밝히는 자들은 천국복음을 인간의 종교와 같은 범주에다 두고 다루는 죄악(罪惡)을 범하면서 기독교의 복음이 배타적이라고까지 말하나,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한 중대한 오해이다.

0066. 『가이사』의 교회로 탈바꿈한 그리스도의 교회 
콘스탄틴의 회심에는 군주적인 목적이 있었다. 교회와 국가를 자신의 통제하에 확고하게 둠으로써 백성들로부터 효율적이고도 전적인 지원을 필요로 했으며 정적(政敵)의 공격으로부터, 또 그가 힘들게 손에 쥔 제국을 안전하게 장악해야 할 계산을 가지고 있었다. 잔인하고 독재적인 성격에 마귀적인 영리함을 소유한 인물이었다. 그는 종교의 정치적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어떠한 대가를 무릅쓰고서라도 기독교회와 로마제국을 묶으려고 하였다. 이러한 콘스탄틴의 결정은 로마제국 내의 기독교회에 교리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제국종교로의 진전은 곧 배도 그 자체였다. 아직 국가종교는 안되었으나 제국종교가 된 배도의 황제의 교회는 이제는 제국의 한 상징으로 전락하였고, 로마제국의 종교를 가져보지 못했던 콘스탄티노플에서는 기독교가 곧 국가종교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교회(롬16:16)는 ‘가이사의 교회’로 둔갑하였고, 주교들은 ‘가이사의 성직자’(Caesarean Clergy)가 되어 사도적, 정통, 카톨릭을 표방하고 나섰다. 로마의 국가종교는 유유히 정치목적에 이용되었다. 콘스탄틴 이후로는 이교(異敎)에 기원을 둔 바실리카(Basilica)및 베스타(Vesta)성전이 건축, 헌당되었고, 애굽의 하늘황후 이시스(Isis, queen of heaven) 숭배신앙이 로마교회 안에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오늘날 로마교황에 의해 지정되는 천주교회의 바실리카는 특별히 왕족, 국가원수를 위한 미사집전의 장소로써 그 목적을 수행하고 있으며, 천주교의 수녀(修女)제도와 하늘황후 마리아(‘Mary, Queen of Heaven’)숭배는 모두 바벨론종교에 기원을 두고있는 베스타 처녀(‘Vestal Virgins’)와 이시스 숭배신앙의 연속이다. 이교(異敎)사회의 국가에서는 황제를 최고의 수장(Summus Pontifex)으로 하는 종교적 예식이 공개적으로 치러져 왔다. 로마제국 국가교회의 최고승원장(Pontifex Maximus)이 된 황제는 기독교 창설자로 군림, 국가의 조직기구에 교회를 편입시켜 국가의 보호아래 있는 국가교회(國家敎會, State Church)를 만들어 스스로 그 무덤을 파고 있었고, 저들이 취한 다른 복음(갈1장)은 로마제국의 멸망을 자초한 근본원인이 되었다. 12명의 가이사들이 통치하였던 로마제국은 어부들, 세리 등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들로 변한 열 두 제자들이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적함으로써 스스로 제국의 종말을 고했다. 

0067. 교회와 국가의 일치사상
콘스탄틴 이후로 뿌리를 내려온 사단의 ‘교회와 국가의 일치사상’으로 인해 10세기 이후로는 로마교회가 오히려 국가를 흔들기에 이르렀다. 1440년, 로마카톨릭교회 안에서 태어난 합스부르크가(家)의 출범과 더불어 로마교황들은 옛 최고승원장(Pont. Max./PM)을 자유로이 취하였으며, 21세기의 현 교황에 이르기까지 역사상의 모든 교황들이 이 칭호를 탈취, 로마카톨릭교의 본질이 로마제국의 연장임을 스스로 노출하고있다. 교황권제도 자체가 하나의 스캔들임에도 불구, 세상은 이 세력이 종교의 얼굴을 가지고 오랜 세월을 두고 속에 품어온 거대한 정치조직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마22:15-22)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단순히 세금문제를 두고 언급하신 것 만은 아니었다. 다가올 세상에서의 성도들이 세상과 분리되고 성별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시사하셨고,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단호하게 언급하셨던 것이다. 사단에 볼모잡힌 로마카톨릭교회는 애초에 ‘그리스도냐? 가이사냐?’의 갈림길에서 저들이 선택한 가시아의 세력을 더욱 깊이 속에 품었다. 국가와의 경쟁 ‘시소’게임은 이제 판결이 난 것과 다름이 없었다. 옛  로마황제의 칭호에다 ‘아비’(the Pope/PAPA = Pater Paterum/Father of Fathers 마23:9-10)를 추가, ‘우리 주 하나님 교황’(Our Lord God the Pope)이 되었다.


성령을 내 맘에 보내셔서
내 어둔 영의 눈 밝히시사
말씀에 감추인 참 진리를
깨달아 알도록 하옵소서
(찬송가 284 / 주예수 해변서④)


구영재 선교사 [KOO, P.O. Box 8844 Victoria, BC V8W 3Z1 Cana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