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1일 일요일

터키 이야기



6. 신약 성경과 터키



4) 갑바도기아 (Cappadocia)

◎ 우르굽 (Ürgüp)고대 마을 우르귭은 네브쉐히르에서 카이세리로 가는 길가에 바위로 된 언덕 비탈에 세워져 있다. 이 언덕은 화산성 응회암으로 되어 있으며, 대부분 집들을 이와 같이 부드러운 바위를 파서 지었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집들은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지 않았으며, 이 마을을 멀리서 보면 옅은 흙색을 지녔다. 오늘날에는 바위를 파서 만든 집을 가축우리나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 이 새로운 관광지의 경치와 마을 어귀에 있는 박물관 건물들은 주변 풍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화려한 협곡의 가파른 언덕, 요정의 굴뚝, 천연적이면서도 사람이 만든 동굴들은 초자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요정의 굴뚝은 꼭대기에 커다란 바위를 얹어놓은 모습의 응회암 첨탑이다. 이 요정의 굴뚝은 지질활동과 풍화작용에 의해 만들어졌다.

◎ 네브쉐히르 (Nevşehir) 예전에 닛사(Nissa)라고 불리웠으며, 커다란 화산성 응회암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는 네브쉐히르는 갑바도기아에서 가장 오래된 주거지들 중의 하나이며, 인구가 150,000명인 이 지방의 도청 소재지이다. 이 도시는 신석기 시대 이후부터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변에 있는 이그델리 체쉬메 고분에서 신석기시대 주거지였음을 나타내주는 그릇들이 발견되었다. 네브쉐히르는 또한 크즐으르막 강과 가깝게 위치하고 있으며, 히타이트 족이 점거하고 있던 중요한 곳이었다. 그 후에는 이오니아, 앗시리아, 메데, 페르시아, 모라, 셀축으로 하여 마침내는 오스만이 점거하여 왔다. 언덕 정상에는 비잔틴 시대의 성채가 있으며, 오늘날에는 그 주변에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 올타히사르 (Ortahisar)
올타히사르 중앙에 벌집 모양 바위의 독특한 모습은 갑바도기아에서 유일한 형태이다. 이 마을 중앙의 바위는 “Sivri Kaya”라고 불린다.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이 바위를 파서 집으로 사용하였으며, 오늘날에는 창고로 이용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같은 바위를 벽돌로 만들어서 집을 짓고 있으며 옛날에 바위를 파서 지은 집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 우취히사르 (Uçhisar)
이곳은 괴레메에서 네브쉐히르로 향하여 3Km 정도 떨어져 있다. 우취히사르는 조그마한 주거지로서 100m 높이의 바위 정상에는 성채가 있다. 이 성채에 올라가면 주변의 협곡과 계곡들의 장대한 광경들을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수많은 집들이 바위를 파서 지어졌는데, 초기에 지어진 집들의 담은 풍화되어 이제는 집안에서 하늘이 보이게 된 곳들도 있다.

◎ 데린쿠유 (Derinkuyu) 데린쿠유 마을 주변에 30여개의 지하도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데린쿠유의 경우 깊이 55m, 면적이 2,500m2나 되는데, 지하도시의 사람들은 공간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침실을 따로 만들지 않고 거실 벽에 선반 모양의 굴을 파서 소위 ‘상자침대’에서 잠을 잤다.

또한 지하도시 입구에는 돌로 만든 높이 1-1.5m, 두께 30-50cm 규모의 맷돌 모양의 문이 있는데, 무게가 200-300Kg으로 안에서만 열고 닫을 수 있어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었으며, 문 중앙에는 구멍을 뚫어서 바깥쪽을 감시하거나 이 구멍을 통하여 적에게 활이나 창으로 공격을 하였다.

지하도시 내의 방과 방 사이에는 직경 10-15cm의 구멍으로 연결하여 여기를 통하여 통화를 하였다. 따라서 의사전달을 위해서 긴 통로를 다니지 않아도 되었으며, 비상시 쉽고도 신속하게 연락이 가능하였다. 환기를 위해서는 56개의 통풍 통로, 80m의 우물 등이 있다. 지하 1층에는 신학교와 학생들의 공부방이 있다. 지하 2층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파서 주거지로 사용했고, 그 아래층들은 피난처로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2층에는 부엌, 창고, 침실, 포도즙 틀, 화장실 등이 있다. 지하 3층은 주로 창고이며, 우물과 연결된 통로가 있는 곳도 있다.

지하 4층에는 출구와 연결되기도 하며, 주거공간이나 창고가 있기도 하다. 길고 좁으며 높은 연결 터널이 구불구불하게 지하 3층에서 5층까지 직접 연결되어 있으며, 그 중간에 돌로 된 문이 있다. 지하 5층에는 환기 갱이 있어 지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지하 5층과 6층 사이 통로 곁에는 거주를 위한 방들이 있다. 통로에는 구멍을 파서 촛불이나 기름등잔을 올려놓아 조명을 한다.

지하 7층에는 세 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십자가 모양의 넓은 공간이 있는데 폭이 10m, 길이가 25m이며, 높이는 3.5m에 이르며 교회로 사용되었다. 지하 8층에는 작은 방들과 환기 갱들이 있다.

한편, 지하 도시들을 연결하여 주는 터널이 있는데, 그 중에는 길이가 9Km에 달하는 것도 있으며, 서너 명이 옆으로 나란히 서서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큰 규모의 것도 있다. 데린쿠유 지하도시에서 발굴된 것은 약 4Km에 이른다.
<계속>




재미있는 사도행전




교회 스타일



상수 엄마를 서점에서 우연히 만났다. 큰 아이, 초등학교 같은 반 친구의 엄마였다. 목사로서 당연히 “예수님 믿으세요”를 가볍게 토스(toss)했다. 왠 횡제? “그러지 않아도 교회에 나가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신이 나서 “어떻게 갑자기 교회 나오실 생각을 다하셨어요?” 라고 묻자, 상수 엄마 왈(曰) “제가 부동산 중개업을 새로 시작 했거던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상수 엄마의 대답은 오늘 새벽, 인터넷에서 본 유치한 유머보다 더 웃겼다. 유머 내용은 이랬다. ‘며느리들이 제일 좋아하는 찬송은 무엇일까요?’ 답은, ‘예수가 함께 계시니 시험이(시어미) 오나 겁없네’였다. 한참을 웃었다. 그러나 난 상수 엄마 이야기가 더 웃긴다.

아뭏든 상수 엄마가 내뱉은 말은 나에게 기가차고, 메가차고, 개도, 소도 웃을 최고급 개그였다.

상수 엄마는 교회를 부동산 중개업 나와바리(일본말 ‘구역’) 정도로 생각했다. 마치 사도행전 3장 서두에 나오는 세상에 태어나 걸어본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사람과 흡사했다. 그 사람은 매일 성전 문 앞에 나왔다. 목적은 단 하나, ‘구걸’하기 위해서였다(행3:2). 그에게 성전은 구걸을 위한 장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 이외의 것은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요즘 강남 스타일이 세계를 흔들고 있다. 그 여파로 외국인들이 강남으로 모여들고 있다고 한다. 강남 스타일이 어떤 것인지 알고, 배우기 위해서다. 이제 강남은 한국의 강남에서 세계의 강남으로 발돋음 하고 있다. 강남 스타일이 뜬 이유가 무엇인가? 강남이 가진 독특한 이미지로 승부한 것이다.

교회도 교회 스타일이 있다. 교회가 교회 스타일을 버리면 교회는 세상 사람들의 눈에 사교 집단 혹은 사업 확장을 위한 좋은 먹이감 정도로 생각하게 만든다. 교회 스타일 이란 무엇인가? 답은 아주 간단하다. 교회가 잡다한 세속적 방법을 버리고, 예수 이름 하나로, 세상과 당당히 승부하는 것이다. 예수 이름 그 자체에 생명이 있고, 힘이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를 보라! 돈 대신, 예수 이름으로 승부수를 띄우는 모습을(행3:6).


사도 바울은 아덴에서 뼈아픈 경험을 했다. 세상의 지혜를 동원해 사람들을 설득 하려다 실패한 것이다. 이후 그는 아주 단호해 졌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1-2)고 선포했다.
이것이 바로 교회 스타일 이다.

황보창완 목사 (밴쿠버성산교회 청년부) / 778-708-5540
 
 
 
 
 

아브라함 이야기




아브라함의 불신과 완고함 / 창 17:15-22 (하)



말씀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9절에 보면, 하나님은 불신과 완고함으로 반응하는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즉,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불신과 완고함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말씀을 주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말씀을 앞세우고 말씀 중심으로 살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예수님도 사탄의 시험을 받으셨을 때 다른 어떤 것보다도 말씀을 앞세우셨던 것입니다. 또한 19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언약이 초기의 것보다 더 구체적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 12:2에서는, 단지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고만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큰 민족’이 이삭이라고 이름 지어질 아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너무도 세밀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똑같은 모양이 아닌, 우리의 믿음의 정도에 따라 점점 더 구체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반복적으로 그리고 점점 더 구체적으로 다가온다면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여도 좋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해져서 하나님의 말씀이 더 깊이 깨달아질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심아브라함이 아직도 눈에 보이는 이스마엘을 약속의 씨로 여기자, 하나님은 아주 구체적으로 그리고 분명하게 자신의 뜻을 알려주십니다. 20절에 보면, “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을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신다는 것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21절에서 분명하게 못을 박으십니다: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은 이삭과 세우리라.” 즉, 하나님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지만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을 신뢰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약속하신 바를 그대로 이루시고 성취하시는 능력의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하고, 주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면 아주 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아직도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덮개, 영적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불신의 덮개가 있지는 않는지 자신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삼상 15:22-23에 보면,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점을 보거나 우상숭배하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큰 죄로 여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 점보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완고한 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의 완고함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 완고함을 잘라버리고 믿음에 견고하게 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완고함을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축복받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완고함이 아니라 믿음에 견고한 신앙인들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정기수 목사 / 캐나다중앙교회 / 778-237-8084]
 
 
 
 
 

예수님의 마음치유




제 13 장 사랑과 결혼


돕는 배필 vs. 바라는 배필

돕는 배필이라는 단어는 내가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을 대신해서’ 도우려고 보내신 자, 즉 하나님의 ‘천사’라는 말이다. 남자 혼자서는 결코 해낼 수 없는 일이 우리 삶에 참 많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아기를 잉태하고 출산하고 양육하는 일이다. 온 세상 남자가 다 달려들어도 할 수 없는 일을 여자는 가볍게 해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자가 남자보다 우월하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다르게 설계하시고 만드셨다는 말이다. 나아가서 이 말씀은 약간 확대해서 남편과 아내 서로가 서로를 돕는 배필이 되어야 한다는 말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이제 모든 사람이 결혼한다는 전제 하에 사람들을 두 종류로 나누어 보자.

 돕는 배필의 의미를 깨닫고 돕는 배필이 되기를 결심한 사람
 바라는 배필 (내가 원하는 조건을 갖춘 사람) 을 구하고 기대하는 사람

이 사람의 결혼 생활은 시간이 지날수록 불행한 삶이 되어간다. 이 사람에게 배우자란 나의 부족함과 필요를 채우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상대의 부족함이 나타나면 당연히 그것은 그 사람의 약점일 뿐이고 나에겐 불만의 요인이 된다. 상대방이 실수하면 전적으로 상대방의 잘못이고 나는 그를 꾸짖을 ‘권리’가 있다는 자세로 살아간다. 이 사람은 항상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꾸짖으며 불안하게 만든다. 배우자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서 일을 처리해도 늘 트집을 잡는다.
자녀들도 나를 위해 존재한다. 나의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 나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자녀들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내 욕구가 최우선이다. 말은 그렇게 하지 않지만 말이다. 온 가정이 병들어간다.

(잠 19:13)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재앙이요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

결혼을 망가뜨리고 지연시키는 또 다른 이유들

이것 외에도 결혼을 망가뜨리는 요인들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큰 요인은 부모들의 행복하지 못한 결혼 생활이다. 부모의 결혼 생활이 행복해 보이면 자녀들이 결혼에 대해서 긍정적인 자세가 되고 부모의 결혼 생활이 불행해 보이면 자녀들도 결혼에 대해서 부정적인 자세가 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제 몇 가지 이유들을 나열해 본다. (추가 설명은 생략한다.)

- 남자에 대한 망가지고 찌그러진 인상들 - 아버지, (외)할아버지, 오빠
- 여자에 대한 망가지고 찌그러진 인상들 - 어머니, (외)할머니, 누나
- 나의 망가지고 찌그러진 자아상 / 낮은 자존감 / 열등감 / 수치심
- 배우자 선택의 세상적인 기준들
- 기타 여러 환경적인 원인들
 가난과 기타 경제적인 문제들
 무너진 도덕과 윤리의 기준들
 신체적인 약점들
 부모의 간섭과 반대
 결혼에 대한 두려움 /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
- 망가지고 깨어진 부모 사이,,,
- 깨어져가는 주변의 가정들을 보면서 ,,,
 과거 실패한 관계로 인한 두려움
 성폭행, 성희롱 및 기타 성적인 상처로 인한 후유증
 자녀 양육의 두려움과 불편함

구자형 목사(밴쿠버내적치유사역원장) saranghealing@hanmail.net
 
 
 
 
 

필객의 붓




그 어디나 하늘 나라



가을비에 세상이 푹 적셔지고 있습니다. 장대처럼 시원하게 내리 꽂히는 가을 비로 인해 낙엽이 아름답게 헝클어지고 있습니다. 자연은 혼돈조차 멋지고 기품이 있습니다. UBC에 말씀을 전하러 가는 남편을 따라 나서, 아름다운 가을 풍경 속에 놓인 집과 거리와 바다를 맘껏 누렸습니다.
몇 년씩 걸러, 몇 번 와 본 거리지만 올 때마다 변하지 않은 모습이라 곳곳에서 그 때의 추억들이 반갑게 손을 흔드는 것 같습니다. 반가움으로 젖어 드는 눈가에 겅중겅중 가고 있는 세월의 길고 야윈 다리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너무나 아름다운 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천국의 주인을 늘 마음에 모시고 사는 기쁨은 매사에 너무나 큰 능력이고 행복입니다. 천국은 죽음 이후에 가는 곳 인줄 알았었는데 지금 이 땅에서 나를 두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형적들이 제 아무리 화려하고 인기와 명예와 권력이 대단한 것 같아도, 나의 천국 앞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눈 요기 마술처럼 품에 안고 누릴 수 없는 허상임이 너무 잘 보입니다. 오늘의 나에 이르기 까지 너무나 큰 사랑이 함께 하셨습니다. 젊은 객기로 미련하게 설레고 다투며 살아가는 중에도 완전한 은혜로 구비된 하늘 나라가 함께 움직여 주어, 고되고 어려웠던 시간들이 나를 기도하게 했고, 힘들었던 시간들이 나를 둥글게 가다듬어 주었습니다.

욕망에 눈 멀어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려 있을 때는 내려가는 것이 높아지는 길이고, 섬기는 것이 다스리는 것이며, 고난을 받는 것이 영광을 향해 나가는 길이고, 겸손해지는 것이 존귀해지는 것이며, 나를 거부하는 것이 나를 수용하는 것이고 세상의 지혜에 미련해지는 것이 진정한 지혜를 얻는 길이라는 가르침에 ‘뭐가 그래?’ 하는 반발심이 일었습니다. 그래서 내 뜻과 기분에 합당한대로 살아 보았지만 욕심 낼 때 짜증과 불만은 더 커지고, 사랑 받고 싶어할 때 더 상처 받고 형편없이 외로워졌으며, 높아지고 싶어 자랑을 떠벌릴 때 부끄러움으로 처박혔고, 내 잔을 먼저 채우려 재빠르게 움직일 때 밀침을 당했고, 사람들에게 매달릴 때 사람을 잃었고. 인정받고 싶어 안달할 때 외면당하고 버림 당한 기분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알겠습니다.
하나라도 더 갖고자 움키고, 작은 손해도 보지 않기 위해 안달을 하며, 작은 억울함도 못 참는 세상에서, 겉 옷을 달라는 자에게 속 옷까지 벗어주며, 오리를 가달라고 염치없이 보채는 사람에게 십 리를 동행해주고, 오른 뺨을 치는 자에게 왼 뺨도 돌려대며 내면에 울분이나 억울함을 쌓지 않는 것이 참된 이김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사랑은 욕심 낼 때가 아니라 포기할 때 얻어지는 것이며, 상대를 존중히 여겨줄 때 나도 함께 존귀해지고, 상대의 잔을 행복으로 채워줄 때 나의 잔이 먼저 채워지며 나를 부인할 때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나의 참모습이 드러나는 신비를 경험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알아갈수록, 그 속에서 살아갈수록 너무나 엄청난 축복입니다. 그 이름으로 인해 고생을 하고 굶주리고 환난을 만나고 억울함을 당한다고 해도 우리가 이 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영예와 축복이 바로 이 신분입니다.

전 세계에 비축된 곡식 창고가 비어가고 있어 앞으로 식량대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신문에서 보도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농산물 가격이 오르고 미국 쌀에서 발암 물질인 비소가 검출되었고 불산 유출 사고로 인해 구미의 곡물들과 짐승과 가축들도 버려지고 있다고 하는 기사를 읽으면서 성경의 표현이 신문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의 걱정이 이젠 더 이상 가난한 자들만의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의 절망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믿음으로 무장해야 할 시기입니다. 우리는 공중의 새보다 들의 백합보다 더 귀한 존재들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는 존재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신문의 영향을 받으며 절망하고 낙담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 아래 있음을 담대히 믿고 선포해야 합니다. 이 때 우리의 노래는 세상처럼 허무와 우울과 무기력이 아니라 믿음이고 도전이고 사랑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위기는 신앙 안에서 큰 기회입니다. 바람을 탓하고 바람을 피하려고 애를 쓸 일이 아니라 바람이 가져다 준 변화를 믿음과 지혜로 슬기롭게 대처해서 아름다운 변화를 일구어 내며, 염치와 정절로 자신을 단장하여 삶에 그리스도인 다운 향기를 더하고 안으로 깊이 무르익도록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의 땅에 안전하게 거주하리라 (레26;5)” 는 말씀은 실제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나를 흔드십니다. 위대한 꿈을 꾸라고, 이 마지막 때에 구원을 위한 역동적인 기도를 시작 하라시는 것 같습니다. 지구본을 어루만지며 온 세상 사람들, 흩어져 있는 주의 몸 된 교회들과 어려움과 싸우고 있는 사역 자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내 영혼에 맑고 평온한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나의 앞으로의 세월에도 천국이 따를 것이기에, 아름다운 여행을 예약해 놓은 사람처럼 늘 천국을 그려보고 엿보고 미리 그 속에서 노닙니다. 아버지가 계신 완전한 행복의 처소를 향해 시간 여행을 하고 있는 나의 모든 순간이 즐거운 기대와 소망, 큰 안식의 시간입니다.

[서수영 사모 / 밴쿠버크리스찬문인협회 부회장 / penofgod@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