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6일 일요일

터키 이야기 (10)



 

6. 신약 성경과 터키


1) 수리아 안디옥
바울의 선교기지였던 수리아 안디옥 교회는 최초로 크리스천이란 칭호를 들은 교회이다. 사도 베드로는 여기서 얼마동안 살면서 안디옥 교회의 초대감독으로 일했고 사도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을 선교센터로 삼았다. 바울은 그의 4번에 걸친 전도여행 중 3번을 안디옥에서 출발했다.

안디옥은 셀레우코스 1세(BC 321-281)에 의해 세워졌으며 그의 부왕의 이름을 따서 ‘ANTIOCH’라 불리었다. 셀레우코스 왕조는 BC 83년에 멸망당하여 로마의 속주 시리아의 수도가 되었다. 로마의 지배 하에서 안디옥은 번영을 누리게 되며 당시 로마, 알렉산드리아 다음으로 세계 3대 도시로 부상된다. 그러나 AD 6세기에 이 도시는 2번의 재난을 당하게 되는데, 그 하나는 대지진으로(AD 523년) 약 20만 명의 사망자를 내게 되었고, 또 하나는 페르시아군의 침략으로 도시가 깡그리 불타버렸다.

유적으로는 사도 베드로의 암굴교회와 로마시대의 수로, 성벽, 비잔틴 시대의 모자이크를 모아놓은 박물관 등이 있다. 특별히 베드로 동굴교회의 모습은 당시 박해 아래서 신앙을 고수하던 수리아 안디옥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사도베드로는 선교여행 중(AD 29-40년) 안디옥 교회를 방문하게 되며, 그의 지지자들과 함께 이 동굴교회에서 목회를 하였다. 12세기-13세기에 들어 교회는 십자군들에 의해 동굴입구에 고딕 스타일의 교회 정면이 건립되었다. 지금의 동굴교회 안에는 바닥 모자이크를 볼 수 있으며, 오른쪽 귀퉁이에는 우물이 있고, 왼쪽에는 크리스천들이 사용했던 비밀 통로가 있다. 이 좁고 긴 터널은 외부의 침략이 있을 때 교회 안에 있던 크리스천들이 산 너머 다른 곳으로 피신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베드로 동굴교회>

2) 실루기아 (행13:4)바울의 첫 번째 전도여행은 안디옥을 출발하여 현재 사만다(Samandağ)로 불리는 실루기아로 가서 거기서 배를 타고 구브로(키프러스) 섬으로 갔다.

3) 다소 (TARSUS - 행8:1-2; 11:25; 22:3)
길리기아 지방의 다소는 사도바울의 출생지로서 학문과 상업의 중심지였다. 다소는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순교한 곳이기도 하다. 로마시대에 다소는 문화도시로서 많은 석학들을 배출한 도시였으며 따라서 사도바울은 자신이 길리기아 다소 사람이라는 큰 자부심이 있었다. 바울은 유대인의 혈통이면서 로마시민으로 이곳에서 태어났다.

기원전 67년 타르수스와 실리시아의 나머지 지역이 로마의 첫 번째 실리기아 주지사였던 키케로에 의해 통치되었고 줄리어스 시저가 47년에 이 도시를 방문하기도 한 영광스러운 도시였다. 기원전 41년 타르수스는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로마의 안토니우스가 로맨스를 만든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다. 타르수스는 중요한 기독교 센터가 되었으나 아랍족의 약탈과 통치자들이 수없이 바뀌면서 쇠퇴되었다. 1515년, 오스만 터키의 수중에 들어가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적으로는 사도바울의 우물, 클레오파트라의 문, 타르수스 박물관 등이 남아있으며, 마을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외부는 봉쇄된 아치와 4개의 기둥으로 장식되어 있고, 실내의 둥근 중심부에 예수님을 비롯해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모습이 프레스코로 장식되어 있다. 북서쪽의 끝에는 예쁜 종탑이 있다.


<바울 우물>

4) 갑바도기아 (Cappadocia)아나톨리아의 중앙 동쪽 지역을 갑바도기아라고 불렀으며, 서쪽으로는 갈라디아(앙카라)와 루가오니아(코냐)로, 동쪽으로는 아르메니아, 북쪽으로는 본도, 남쪽으로는 길리기아에 둘러싸여 있다. 이 지역은 타우로스 산맥의 북쪽 고원지대로서 오랜 옛날 이 지방의 가장 높은 에르지에스산(3,914m)의 화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시간이 지나면서 비바람의 풍화작용 등으로 깎여나가 이런 특이한 모양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네로 황제의 박해를 피해 약 250년 동안 이곳으로 은둔하였다. 그들은 이곳의 자연을 이용하여 지하도시를 건설하고 기도처, 동굴교회, 주택, 학교 등을 만들어 생활하였으며 그 후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뒤 교회가 타락해가자 초대교회의 신앙을 따르던 수도사들이 이곳에 와서 수도원을 건설, 경건한 신앙생활을 계속하였다. 이슬람의 침략으로 또 다시 기독교인들은 이곳을 찾았고 비잔틴 시대에는 성화파 신앙인들의 은둔처가 되기도 했다. <계속>

<갑바도기아의 지하도시>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