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12일 목요일

재미있는 여호수아서


도피성Ⅰ


유대인 ‘시몬 비젠탈’은 2차 대전 때 아유슈비츠 유대인 수용소에서 그의 자녀를 포함해 모두 89명의 가족을 잃었다. 그는 결심했다. ‘만약 내가 이 수용소에서 살아만 나간다면 나치들에게 피의 복수를 하리라’ 결심하고 또 결심했다. 긴 인내의 시간을 거쳐 복수의 시간이 다가왔다. 1945년 2차 대전이 독일의 패배로 끝난 것이다. 비젠탈은 철저한 복수를 위해 비엔나와 린쯔에 ‘전범 기록 연구소’를 세웠다. 그리고 2차 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에 깊게 가담했던 나치들의 명단을 확보했다. 비젠탈은 학살자들의 대부분이 잠수함에 금괴를 싣고 남미로 도망갔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바로 이들을 찾아 남미로 떠났다.  

1960년 5월, 비젠탈은 오랜 숨바꼭질 끝에 유대인 학살의 제 2인자 ‘아돌프 아이히만’을 아르헨티나에서 체포하는데 성공했다. 최악질 전범 아이히만이 잡혔다는 소식에 유대인들의 복수심은 극에 달했다. “저 아이히만을 찢어 죽여라! 히틀러보다 더 나쁜 놈이다”고 외쳤다. 아이히만의 신변처리 문제는 유대인뿐 아니라 전 세계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세계의 이목은 이제 비젠탈의 말과 행동에 집중되어졌다. 그런데 이런 해괴망칙한 일이 또 있을까? 불타오르는 복수심 때문에 비젠탈이 미쳐버린 것일까? 비젠탈은 갑자기 “용서하자! 그러나 절대 잊지는 말자!”라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문제를 인간적 감정이 아닌, 정당한 재판 절차를 거쳐 그를 처벌하자고 호소했다.

비젠탈은 유대인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아이히만을 전범 재판에 회부 하는데 성공했다. 그 후 아이히만은 뉘른베르크의 전범 재판소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비젠탈은 왜 그의 전 생애를 바쳐 붙잡은 원수를 자신의 복수심에 의존하여 처리하지 않고, 국제 사회의 법정에 세운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유력한 이유는 민수기 35장 그리고 여호수아서 20장에 나오는 ‘과실치사자’들을 위한 ‘도피성’의 원칙을, 살인자 아이히만에게 적용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도피성’(수20:1-6)이란, 말 그대로 ‘도망가서 피하는 성’이다. 도피성은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인간을 향한 그의 사랑과 자비심의 표현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였다면 그 사람은 당연히 죽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사람이 살다보면 실수로 사람을 죽이거나 다른 여러 죄들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하나님은 잘 아시기에, 도피성을 만들어 피할 길을 주신 것이다. 도피성 제도는 너무나 중요한 제도이기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민35장)를 이어, 여호수아(수20장)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도피성의 설치 장소, 처리, 재판방법, 심지어는 피난자의 책임 한계까지 분명히 명시해 주신 것이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 정복 후, 땅을 지파별로 분배했다. 그러나 레위지파는 땅을 분배하지 않았다. 레위지파 사람들은 성막과 제사 일을 맡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각 지파 속으로 흩어져 살았다. 그래서 가나안 땅 전체에 48개의 레위인 성읍들이 있었다. 이 중 여섯 군데를 지정해서 도피성을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도피성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성읍이라는 것, 그리고 도피자들을 돌보는 사람은 바로 제사장과 레위인들이었다.             <다음 주 계속>

황보창완 목사 (밴쿠버성산교회 청년부) / 778-708-5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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