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5일 토요일

“아이티”에 다녀왔습니다



“아이티”에 다녀왔습니다





물질에 파묻혀 지내면서도 여전히 정신이 빈궁한 아이들, 귀에 음악을 꽂고 기계의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살아가며 인간적인 교감을 잃고 자신의 모습과 목소리가 점점 희미해지는 아이들, 쓰나미처럼 덮쳐오는 문화의 위력 앞에 문신이며 피어싱이며 노출이 심한 옷차림, 우리 세대에 악으로 눈총을 받던 것이 버젓이 유행이 되고 악하고 음란한 문화를 세련됨으로, 미련한 생각을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아이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넘어 이대로 놔두면 안되겠다는 위협을 느끼기까지 했습니다. 껍데기적인 것들과 허황된 형상들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본질을 볼 수 있는 눈을 띄워주고 싶다는 열망이 있던 차에 아이티 선교 여행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한국과 캐나다가 여행 자제 지역으로 분류해놓은 나라, 아이티 여행을 준비하면서 참 많은 싸움이 있었습니다. 전염병에 대한 위험이나 불안한 치안과 흉흉한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는 곳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라는 걱정들과 떠나기 전날까지 예방 접종이 없이는 못 들어가며 아이티를 다녀온 사람들에게는 한국의 입국이 제한된다는 허황된 소식과 싸워야 했습니다.
우리를 초대하신 현지 선교사님께서 워낙 일을 평온하게 진행해 가시기에 쓸데 없는 걱정으로 번거로움을 드리고 싶지 않아 내가 감당할 부분들을 조용히 기도로 싸우면서 내심 두렵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과연 그곳에서 보고 듣게 될 것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곳에서 보고 들을 엄청난 사실 앞에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 때문에 가슴에 울렁증이 일고 천진하게 나를 믿고 따르는 아이들 앞에서 내 마음의 깊이와 사랑의 함량이 금새 바닥을 드러내면 어쩌나 하는 것도 두려웠습니다.

포르토 프랭스의 공항에 도착하니 날씨가 후끈하고 피부에 닿는 햇살이 맵습니다. 무법천지의 나라답게 눈 앞에서 불법이 상식처럼 행해지고 있습니다. 구호품은 대부분 중간에서 분실되고 비행기에서 직접 짐으로 가져온 가방도 하나 둘 씩은 없어진다고 하는데 다행히 우리 짐은 박스 몇 개가 뜯어져 있었던 것 말고는 잃어버린 짐은 없었습니다.

2년 전 지진으로 황폐해진 땅을 복구하고 부상자를 치료하고 물과 양식을 전달하기 위해 많은 세계의 사람들이 이 땅으로 들어왔다는 생각을 하니 감동이 느껴집니다. 거리의 사람들 하나 하나 얼굴을 살펴서 엄청난 재난을 겪은 저들의 눈빛에 담긴 것이 무엇일까 읽게 됩니다. 도시 전체가 폐허 더미 같고 수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겉돌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가난과 처참한 과거와 쓰레기 더미가 이리로 흘러 들어오는 것처럼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상했던 악취는 없었습니다. 너무나 뜨거운 볕에 모든 것이 다 말라 비틀어져 냄새는 거의 안 났습니다.

숙소
숙소는 수출 자유 공단 안에 LA의 한국인 사업가가 세우신 건물에 머물렀는데 유엔군이 치안을 담당하고 있어 안전했습니다. 아이티는 수도와 전기가 공급되지 않아 사람들이 도로 위로 흐르는 구정물에 몸을 닦고 뭔가를 씻는 모습도 간혹 보이고 밤에는 자체 발전을 한 몇몇의 집 외에는 완전한 어둠입니다. 그러나 공단 안에는 자체 발전기로 전기와 수도 시설이 되어있어 에어컨도 시원하게 나오고 화장실이나 샤워 시설도 잘 갖춰져 있고 침대마다 모기장이 쳐져 있습니다.

레오간 까사인 학교
가장 지진 피해가 많았던 레오간이란 곳에 선교사님께서 세우신 난민촌과 학교를 방문했습니다. 학교에 와야 하루 한끼 먹는다는 아이들의 눈빛에 간절함인지 체념인지 모를 난감한 깊이가 있습니다. 하루 한끼 먹는 천사처럼 맑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이들의 허기를 달래줄 수 있다면 뭐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속으로 무척 안쓰러웠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반응을 곁눈질해 보니 아이들을 보는 눈빛에 깊이가 있고 눈동자가 젖어있습니다. 누구 하나 더럽다고 인상을 쓰거나 하지 않고 해맑게 웃으며 아이들을 껴안아주는 모습과,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착하고 진실하게 반응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무척 대견하고 안심이 되었습니다. 콩 물을 끼얹은 밥을 쏟고 울어버리는 아이의 밥을 손으로 주어 담으며 아이들의 얼굴에 참회의 기색이 서렸습니다. 음료수 내기 축구 경기에 지고도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아이들은 이기고 싶은 마음보다 사랑하고 캐어 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더 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의 가난이 아이들 안에 잠자고 있던 사랑을 깨웠고 그들의 연약함이 아이들 안에 돌보는 마음을 깨웠습니다. 생각에 사랑 한 방울을 섞으면 마음은 온통 사랑으로 물들고 생각에 미움 한 방울을 섞으면 마음은 온통 증오의 도가니가 됩니다. 마음에 미련 한 방울이 떨어지면 생각이 온통 미련해지고 생각에 작은 지혜가 들어가면 마음은 총명으로 반짝입니다.

시내 땅 밟기와 십 만 명의 묘지티브이에서 여러 번 보았던 대통령 궁과 포르토 프랭스 대성당과 지진이 일어났던 여러 지역을 돌면서 기도 한 후 십만 명이 한 구덩이에 묻힌 곳에서 선교사님의 권유로 성찬식을 하고 유언장을 썼습니다. 세계의 언론이 보도한 바, 삼 십 만 명의 시체들이 길거리에 뒹굴고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중, 사람들은 여진에 대한 공포로 몇 달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에서 잠을 잤다는 아비규환의 상황과 사람들의 눈물도 애통도 국가적인 절망도 지금은 모두 땅속에 묻혀 고요하기만 합니다. 우리 모두는 수 많은 사람들의 죽음 앞에서 자신의 죽음을 묵상하며 현재의 삶을 바로 잡았습니다.

카리브해의 바닷가는 아름다웠습니다. 신비스럽도록 아름다운 바다 물결이 쓰레기 더미 저 너머에 넘실대고 있고 사람들은 이 바다와 아무 상관 없는 듯 살아갑니다. 리조트로 개발되어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이웃 나라 도미니카와는 달리 국제 자본주의가 외면한 이 땅에 대한 말 할 수 없는 긍휼과 애착이 생깁니다.

고아원 방문
처음에는 인형처럼 텅 빈 감정으로 그냥만 지켜보던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마음을 열고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기도하는 시간에는 아이티의 아이들의 앞날을 하나님께 부탁 드리면서 북미의 아이들이 마음을 다해 오래도록 기도했습니다.

아이티 교회 주일 예배 사역과 공연 예술 캠프주일에는 현지의 장관들이나 유력자들이 출석한다는, 그 땅에서 가장 큰 교회에서, 온 성도들이 한 목소리로 열창하는 찬양과 심령의 가난과 간절함으로 드리는 무척 감동스러운 예배에 참석하여 우리 아이들도 워십댄스와 드라마를 했습니다. 청소년 아이들이 열정적으로 노래하고 춤추며 드라마 하는 모습을 보고 현지인들이 무척 은혜를 받았고 그 나라의 대통령 변호사가 친히 전화를 해서 아이들의 사역에 감동을 받았다고 감사를 전해왔습니다. 두 번째 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오전과 오후에 현지 교회의 아이들에게 춤과 노래를 가르치고 공연 캠프가 끝난 후에는 교회의 청년들과 함께 노방전도를 하고 금요일 오후에는 그 교회에서 다 함께 공연을 했습니다.


니꼬 형제현재 총리가 된 전 외무부 장관의 비서로서 현지인 변호사이며 한국의 성균관 대학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어 한국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는 니꼬 형제에게서 지진 당시의 상황과 생과 사의 기구한 엇갈림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차베스가 아이티의 지진이 인공 지진이라고 했다는 말도 들었지만 누구의 소행이든,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참 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신 말씀을 생각하며 마음에 계속 되던 질문, 그 땅의 사람들 하나하나 이름을 알게 되고, 땀이 축축한 손을 잡으면서 더 강렬해졌던 질문 “왜?”에 대한 대답을 그 형제의 입을 통해 들었습니다.

그는 나사로의 부활에 대해 나누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힘과 소망이 완전히 죽게 하셨지만 하나님의 능력과 힘으로만 일으킬 수 있음을 모두가 인정할 수 밖에 없을 때 이 땅을 다시 일으키실 것이라는 부활에 대한 약속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지진이 재앙이라고 말하지만 자신에겐 더 큰 은혜에 대한 약속이라 하는 말에 무조건 수긍하고 싶고 그대로 되도록 기도하고 싶었습니다.

감사패
아이티의 사람들은 다른 어느 빈국의 사람들보다 가난해도 염치가 있었습니다. 알량한 도움을 가지고 들어와 거들먹거리는 외국인들에 대한 반감으로 우리를 경계하던 사람들이, 땀에 흠뻑 젖어 헐떡거리면서도 뜨겁고 먼지가 흩날리는 길거리에서 찬양하고 드라마하며 복음을 전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감동하여 눈빛에서 경계심이 풀리고 진정으로 우리 아이들을 알고 싶어하고 친구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그 땅을 떠나온 이후 현지 교회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감사패를 보내왔습니다. 어려운 지역에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선교사님의 사역에 누만 끼치지 않고 와도 성공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선교사님께서는 이제껏 들어왔던 팀들 중에 넘버 1 팀이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셔서 모두에게 무척 격려가 되었습니다.

아이티에 오기 전 올란도 플로리다에서 최고의 휴가를 즐기고 온 한 아이의 플로리다는 너무 재미있었지만 밤이 되면 공허했고 일주일이 지나니 이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곳에서는 매일 밤 뿌듯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잠들고 돌아갈 시간이 되니 너무나 아쉽다는 고백을 들으면서 사람들은 역시 의미로 사는 존재임을 확인했습니다. 아이티의 울퉁불퉁한 도로 위를 흙먼지를 쓰고 다니던 아이들이 뉴욕에 도착해서 비단 길처럼 부드러운 길을 달리면서도, 타임스퀘어의 현란한 밤 도시를 걸으면서도 아이들은 아이티를 이야기하며 그리워했습니다. 오직 물질에만 반응하며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러운 것들만 가치 있게 여기는 것 같던 아이들을 움직이는 가치도 역시 사랑이며 헌신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이 되었습니다.

아이티에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처럼 소망하고 갈망하며 꿈을 꾸는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만났습니다. 여행이 끝나기만 기다리며 다시는 안 가겠다고 할 줄 알았던 아이들이 너무 아쉬워하며 내년에도 꼭 다시 오겠다고 하는 말에 무척 놀랐고 힘든 대가를 치르고 이 땅에 왔던 보람이 크게 느껴졌습니다.

[서수영 사모 / 밴쿠버크리스찬문인협회 부회장 / penofg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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